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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삼씨 이야기 - 4

4. 64년 생 장순용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 잠시 비몽사몽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에 이뤄진 외박, 생각해보니 3년 전 회사를 그만 둔 후 시골에 계신 어머니한테 다녀온 것이 나의 마지막 외박 기록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니 어제 무리해서 걸었던 몸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끙끙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서는 일단 TV부터 켰다. TV는 달갑지 않은 고요함을 깨뜨리는 용도로도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멈추는 용도로써 더욱 더 훌륭하게 작동하는 물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TV를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고들 하지만 아마도 그런 헛소리를 한 사람은 한 번도 혼자되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 분명했다. 혼자 밥을 ..

소설, 에세이 2020.01.13

김두삼씨 이야기 - 3

3. 사발면, 초콜릿 그리고 가을 출발 후 첫 한 시간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나는 내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후로부터는 철저하게 사람들을 피해서 살아왔다.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야 하는 일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리거나 재활용품 정리하는 일, 과자나 라면 등을 사기 위해서 근처 편의점에 다녀오는 일을 할 때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을 이용했다. 그리고 12층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는 늘 계단을 이용했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일 년에 한 번씩 근처 초등학교에 민방위 훈련을 갔을 때였다. 지난 3년을 그렇게 살아온 내가 이런 멀쩡한 대낮에 거리를 걷고 있느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왔..

소설, 에세이 2020.01.10

김두삼씨 이야기 - 2

2. 새로운 일자리 솔직히 말해서 알량한 자존심만 무시하면 이런 내 처지에서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다르게 내 말투는 스스로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퉁명스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이 꼭 알량한 자존심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왕따로 2년, 혼자서 3년을 보낸 나는 더 이상 5년 전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과거에 내가 가졌었던 친절함, 상냥함, 배려심 같은 긍정적 성향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내 존재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의 별 의미 없는 말 한 마디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더 세게 되받아 치지 않으면 ..

소설, 에세이 2020.01.07

김두삼씨 이야기 - 1

1.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 이제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우울함조차 사치였던 날들을 지나는 중이었다. 아주 작은 불운한 사건 하나로 시작된 꼬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커지더니 서른다섯이 될 무렵쯤의 내 삶을 결국 대한민국 상위 1%로 올라서게 했다. 그 기준점이 차라리 가난 같은 것이라면 좋겠지만, 운 나쁘게도 그것은 바로 인간혐오의 순위였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주식 그래프도 중간에 잠시나마 반동이 있기 마련인데, 당시 내 삶은 그런 작은 반항조차 한번 하지 못하고 그렇게 맥없게 주저앉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 해주기 마련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나에겐 오히려 시간은 독이 될 뿐이었다. 당시 막 서른이..

소설, 에세이 2020.01.04

2019년 12월 31일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45분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아내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그리고 아마도 아내는 한참 전인 5시쯤 깨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요즘 대충 5시 반쯤 눈을 뜬다. 아내가 아침마다 회사에서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평균적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그렇게 빨라져 버렸다! 딱히 출근할 곳도 없는 내가 아침에 그리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일단 일찍 자니 일찍 깨는 것이기도 하고, 오늘처럼 일어나기 힘든데도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아침에 출근하는 힘든 아내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자상한 남편이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는 아내가 회사 회식이라서 늦게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한 것이 거의 11시..

내 불행의 정당성, 네 행복의 정당성

매일같이 사람들은 많은 말들을 한다. 내 얘기도 하고, 네 애기도 하고, 그 자리에 없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뭐, 사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별로 안 한다. 아무튼 사람들이 매일 수 많은 말들을 할 때 단골로 나오는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과거에 느꼈거나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에 대한 표현들이다. 누군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다든지, 누군가 자신을 짜증나게 했다든지, 누군가 자신을 억울한 감정이 들기 했다든지, 누군가 자신을 즐겁게 했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런 표현들 중에서 주로 서운한, 짜증, 억울함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언제나 암묵적으로 듣는 사람의 동의를 ..

카테고리 없음 2019.12.28

감정의 가격

최근에 미국에서 한 유명한 야구선수가 사용했던 나무 배트가 한 경매장에서 12억이란 가격으로 낙찰 되었다. 그 유명한 야구선수는 '베이브 루스' 이며, 경매된 배트는 그가 통산 500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사용했던 것이다. 그 일은 100년 전쯤인 1929년도 8월 11일날 일어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배트는 원가로 따지면 지금 시세로 10만원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록을 세운 배트이기에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그 배트는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게 된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무의미해 보인다. 야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베이브 루스라는 선수가 얼마나 대단하며, 그런 그가 특별한 기록을 세웠던 순간에 쓰인 배트의 가격이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

심리학 2019.12.24

오늘 삶이 힘든 그대에게..

힘든 그대,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별 다른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많이 힘들겠구나, 사는 것이 쉽지가 않네..' 라는 한마디 밖에 해줄 말이 없다.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또한 지금 그대를 힘들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낯선 이의 이런 무의미한 위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같이 이 시대를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고단함에 대한 작은 공감 정도는 같이 해줄 수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런데 아마도 진짜 문제는 지금의 힘듦이 그 끝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나마 끝이 보이는 힘듦은 당장은 숨이 턱턱 막혀도 결국 견뎌낼 수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질 않는 힘듦은 그대를 현재의 고통을 넘어서 절망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하지..

나의 이야기 2019.12.19

미움받을 용기 2

원래 제목이 너무 뻔해서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1편을 읽고 나서 책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개인적으로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쉽지 않은 책이 대중적 인기를 끈 것과 더해서 주변 분들이 읽을 만 했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고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던 책이었다. 1편의 내용은 나름대로 좋았지만 마지막 결론 부분이 좀 이상했다. 초반 문제 제시와 중반의 전개까지는 좋았는데 그래서 결국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이 '인간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설명되는 바람에 나름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2편이 나왔다. 물론 그것만을 목적으로 낸 책은 아닐 것이다. 1편이 잘..

영화와 책 2019.12.14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람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혼자 억지로 살려면 살겠지만, 그런 삶은 행복하기가 힘들다. 아니 행복은커녕 생존조차 힘들다. 혼자 살 때는 작게 베인 상처나 감기조차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잘 맺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생존과 행복 두 관점 모두에서 그렇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는 것과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사는 것처럼 외톨이로 살거나 심한 경우 적대적 관계, 즉 적에 둘러 쌓여서 사는 것은 오히려 혼자 사는 것보다도 못하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지인들이란 존재는 자신과 어느 ..

심리학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