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4

아이루다 2020. 1. 13. 08:53

 

 

4. 64년 생 장순용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 잠시 비몽사몽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에 이뤄진 외박, 생각해보니 3 회사를 그만 시골에 계신 어머니한테 다녀온 것이 나의 마지막 외박 기록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니 어제 무리해서 걸었던 몸이 도대체 나한테 그러냐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끙끙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서는 일단 TV부터 켰다. TV 달갑지 않은 고요함을 깨뜨리는 용도로도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멈추는 용도로써 더욱 훌륭하게 작동하는 물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TV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고들 하지만 아마도 그런 헛소리를 사람은 번도 혼자되어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 분명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설거지를 하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멍하게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TV만이 계속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더군다나 훌륭한 친구는 24시간 동안 잠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해주는 이야기도 무척 다양하고 내가 중에서 무엇을 들을지 고를 수도 있었다.

 

멍하게 TV 보고 있다가 보니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 무리를 것에 비해서 먹은 것이 너무 부실한 듯싶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은지가 20년이 넘었는데 뜬금없이 아침을 먹을까하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생각은 먹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그렇게 욕구가 커지자 자연스럽게 아침에 최대한 깨끗이 씻고 나가면 식당에서 있는 동안만큼은 몸에서 그리 냄새가 심하게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식당에 가서 아침밥을 먹을 용기를 있었던 것은 이곳이 서울이 아닌 것도 크게 작용한 듯했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낯선 장소였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 낯선 생각들, 그래서 결국 낯선 삶이 존재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런 모텔 주변에 있는 식당들이라면 잠시 스쳐가는 뜨내기들이기에 딱히 손님에게 관심 따위를 주지 않을 것이다. 원래 머물지 않을 자와 머물지 않을 것을 아는 사이에서는 기능적 역할로만 서로를 인식하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근처에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그들은 나를 사람이 아닌 그저 돈을 내는 존재로만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내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심지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제 밤에 만난 모텔의 직원처럼 그렇게.

 

그렇게 생각을 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바로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신경 써서 최대한 깨끗이 씻고 나왔다. 그리고 모텔에 비치되어 있는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발랐다. 화장품을 손에 덜어내자 흔한 맡아 보던 아저씨 냄새가 났다. 요즘 TV에서 광고를 많이 하는 식물성, 무색, 무취, 무자극 화장품과는 정반대 편에 있는 그런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강렬한 향으로 인해서 몸에서 나는 냄새를 어느 정도까지는 가려주는 용도로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제품들이었다. 나는 얼굴만 바르게 되어 있는 로션을 구석구석에 발랐다. 그리고는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그래도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거리엔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잠시 길을 따라서 혹시라도 문을 음식점이 있는지 찾았다.

 

좋게도 왼편 골목 안쪽으로 24시간 하고 있다고 커다랗게 쓰인 국밥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게 이름은 양평 국밥이었다. 저렇게 가게 이름으로 정도로 양평에 국밥이 유명했던가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뭐가 중요하랴. 나는 지금 배만 채우면 된다. 혹시라도 간판만 저렇게 해놓고 문을 닫았을까 걱정하면서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안쪽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어제 모텔과 비슷한 종소리가 났지만 어제만큼은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놀란 것은 식당 구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주머니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관록의 힘으로 금세 정신을 차린 능숙하게 나를 맞았다. 식당의 테이블은 대략 20 정도로 제법 넓었는데 당연히 손님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그녀가 앉아 있던 곳과 가장 안쪽 구석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잠시 아주머니가 물을 가져오고는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냥 기본국밥 그릇을 시켰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국밥과 빨갛게 익어 보이는 깍두기, 대충 썰어 놓은 당근, 매워 보이는 고추가 쌈장과 함께 나왔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국과 하얀 쌀밥을 보자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다. 후로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이런 식당에서 제대로 밥을 먹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기에 그랬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먹다가 보니 몸에 땀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냄새는 땀이 나면 더욱 심해지고 만다.

 

순간 갑자기 뒤쪽으로 다가온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긴장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뒤를 돌아볼 없었다. 내가 돌아보면 아주머니가 잔뜩 인상을 쓰고는 이렇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지 나에게 따져 물을 같았다. 이어지던 발소리는 바로 옆에서 멈췄다. 발소리가 멈추는 순간 심장도 멈출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미 비운 국밥 그릇에 뭔가가 부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공기와 깍두기 역시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순간 내가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아주머니는 "서비스야, 총각이 너무 맛나게 먹어서 보기 좋아서 그래." 그러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아무 없다는 되돌아갔다.

 

나는 잠시 동안 최소한의 인사치례조차 생각도 못한 멍하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국밥 그릇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처음 시켰을 때보다 오히려 고기가 많다는 생각과 함께, 이것을 먹을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갑자기 국물만큼이나 뜨거운 어떤 것이 뒤늦게 밀려 올라왔다.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호의, 동안 호의는 고사하고 멸시나 혐오의 눈길만 받지 않아도 다행인 나에게 이런 경험은 낯섦 자체였다. 오랜 시간 눌려 있던 감정이 갑자기 요동을 치자 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이런 식의 호의를 받아서는 되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런 따뜻함에 익숙해지게 되면 다가 추위에 얼어 죽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추위를 대비해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 순간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안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감정의 요동을 빠르게 진압하는 일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예전에 사무실에서 일했던 시절을 상기시키려고 애썼다. 그러자 금세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냉담하고 불쾌한 눈길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씨발. 나도 모르게 욕설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욕설 때문에 오히려 내가 놀라고 말았다. 나는 욕설을 제발 아주머니가 듣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번째 국밥은 배가 고파서 먹었고, 번째 국밥은 아무 것도 남기면 되기에 먹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추가해 국밥도, 그리고 같이 국밥과 함께 누군가의 따뜻함도 남겨서는 안됐다.

 

힘들게 식사를 마치고 나가기 위해서 계산대 앞에 섰을 때도 감정이 여전했다. 나는 괜히 어색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원짜리를 내고는 거슬러 주는 잔돈을 받았다. 마음속에서는 잔돈 같은 것은 받지 않고 그냥 나오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면 괜히 같았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의 호의를 돈으로 계산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문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들릴락 말락 하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아주머니가 말을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잠시 동안 이어진 머물지 않을 자와 머물지 않을 것을 아는 사이의 짧은 인연은 가게 문이 흔들리다 결국 완전히 닫히면서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자 해가 보일 정도로 날이 밝아졌고 식당에 들어가기 전과는 달리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제법 눈의 띄었다. 나는 재빠르게 다시 자전거 길로 되돌아 와서는 어제 가다만 길을 계속 걷기 시작했다. 아침을 국밥을 그릇이나 배터지게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감정을 경험해서 그런지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기분은 한결 나았다. 나는 계속해서 열심히 걸었고 오후 3시쯤이 되자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떤 지점에 도착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점심을 먹은 후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버스라도 탈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넘치도록 땀을 흘리고 후의 몸으로 버스를 용기를 내는 것은 무리였다. 처음부터 이틀 동안 40km 넘게 걸을 계획을 세운 것은 미친 짓이었다.

 

스마트 폰에 있는 네비게이션앱을 이용해서 내가 가야 장소까지 길을 보니 지금부터는 2차선을 벗어나 작은 다리를 건너 구불구불한 시골 길을 따라 걸어야 상황이었다. 좁은 길은 비록 포장은 되어 있었지만 한대 정도 겨우 통과 가능한 농로 비슷한 시골 길이었다. 길옆으로는 계곡물이 따라 흐르고 있었는데, 제법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 보여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함을 느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곳은 서울보다 가을이 깊게 들어와 있어서 그런지 단풍잎의 붉은 빛도 훨씬 예뻤다.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지만 주변 풍경들을 보고 걷는 맛으로 버틸 했다. 그리고 이제 최종 목적지까지는 2km 정도 남았다. 아마도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내가 도착해야 장소가 나오는 했다.

 

하지만 길을 따라가면서 내심 마음속에 의구심이 점점 커졌다. 가는 내내 사람이 사는 인가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무슨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의구심은 점점 불안함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그나마 그런 나를 안심시켜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봇대였다. 지금 걷고 있는 포장된 그리고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전선을 지탱하고 있는 전봇대, 둘은 내가 여전히 문명 속에 있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었다. 그렇게 전봇대를 믿고 가다가 보니 갑자기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어떤 장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어떤 영역을 표시하는 담이었다. 하지만 내가 동안 흔히 봐왔던 담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경계를 표시하는 낮은 펜스였는데 그게 뭐든지 반가웠다. 나는 펜스를 따라 오른 편으로 돌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거기엔 아주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앞쪽으로는 낮은 높이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끝엔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채가 아니었다.

 

좁은 길이 끝나고 갑자기 넓어진 공간으로 펼쳐진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나는 잠시 멍하게 있기만 했다. 나는 네비게이션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메시지를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있었다. 드디어 이틀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가 휘청거려서 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에 겨우 일어나 천천히 낮은 나무 사이에 깔려 있는 돌들을 밟으며 걸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갈수록 내가 봤던 건물들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50평은 훌쩍 넘어 보이는, 2 구조로 건물 채와 주변에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크기가 층짜리 건물 채도 보였다. 건물들은 오래 되어 보이면서도 깨끗했는데, 누군가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는 같았다. 진한 청색 계열의 지붕에 하얀색 벽면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면서 건물 자체가 무척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주인이 회사 회장님이라고 들었는데, 문외한인 내가 봐도 확실히 비싸고 제대로 지어진 집처럼 보였다.

 

천천히 걸어서 가장 보이는 2 건물 앞에 섰다. 발걸음을 멈추자 귀엔 새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소심하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크게 두드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갑자기 그제 받았던 연락처 정보가 떠올랐다. 그렇다. 일단 전화를 해보면 일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서 그제 통화를 했었던 번호로 연락을 했다. 내가 제대로 찾아왔다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안에 있을 것이다.

 

잠시 동안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대가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소리는 건물 뒤쪽에서부터 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소리가 커지고 선명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졌다. 놀란 내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자 거기엔 사람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소리는 바로 사람의 손에 전화기에서 나고 있었다. 사람은 다른 손으로는 낫을 들고 있었는데 때문에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순간 머릿속에 장기적출, 새우잡이 배와 같은 단어들이 맴돌았다. 낯선 상대는 아직까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들고 있는 전화기를 들어서 자신의 귀에 대고는 여보세요라고 했고, 1 후쯤 귀에 같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메아리처럼 반복되었다. 내가 전화를 상대가 바로 눈앞의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순간 상대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고개를 돌려 어정쩡하게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는 뭐여?' 하는 표정으로 빤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때문이 아니라, 혹시라도 조그만 오해라도 있을까봐 나는 그제 통화했던 사람이라고, 그리고 묻지도 않은 지금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지난 이틀간의 일정을 서둘러 설명했다. 그제야 상대는 의심의 표정을 풀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상대의 손에 들려 있는 낫으로부터 시선을 떼어 상대를 살필 여유를 얻을 있었다. 대충 50 중반쯤 돼보였다. 아니, 머리가 빠졌으면 생각보다 젊을 지도 모른다. 그는 군인들이나 입는 얼룩무늬 바지와 낡아서 목이 늘어진 고동색 티를 입고 있었고 목엔 땀을 닦는 용도로 보이는 누런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눈에 봐도 전형적인 농부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64 용띠 장순용이라고 ." 그가 갑자기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는 저는 86 호랑이띠 이성범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내가 자신을 소개하자 상대는 오른 손에 쥐고 있던 낫을 한쪽으로 던지더니 다가와서는 악수를 청했다. 그가 들고 있던 낫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나이들의 약수가 끝나자 그는 갑자기 텃밭의 하우스 안에서 키우던 상추를 고라니가 뜯어 먹었다고 하면서 고라니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요즘 고라니들은 겁이 없어졌다면 혀를 찼다. 그리고는 별다른 대꾸도 했는데 이야기 흐름은 갑자기 땡구라는 존재에 대한 욕으로 이어졌다. 밥만 축내는 쓸데없는 녀석이라고 했다.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그가 말을 종합해 보니, 대충 땡구가 집에서 키우는 개라는 정도는 추측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나를 당황시킨 것은 바로 고라니가 나타났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양평이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고라니가 나타날 정도로 시골인 것인가? 그래서 정말로 여기에 고라니가 나타나는지를 묻자 장순용씨는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라니 뿐이당가, 멧돼지도 심심하면 나타나는디?" 나는 대답을 듣고 더욱 놀라고 말았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상시로 출몰하는 이곳에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질 시간이 없었다. 장순용씨가 갑자기 다가와서는 내가 머뭇거리던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을 돌려서 마디를 덧붙였다. 자신을 장씨 아저씨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후끈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나는 밖이 꽤나 추웠다는 사실을 깨달을 있었다. 그렇게 장씨 아저씨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서서 내가 처음 느낀 것은 따뜻한 온기였고 다음으로 느낀 것은 생전 처음 거실의 압도적 크기였다. 천정 자체가 2 높이로 엄청 높았다.

 

일단 기둥 역할을 하는 역할을 하는 커다란 통나무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고, 위쪽 끝부분엔 통나무들을 서로 이어주는 굵은 각진 나무들이 가로 방향으로 얹혀있었다. 그리고 사이엔 나무 재질의 마감재들이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굵은 나무가 주는 독특한 느낌으로 인해서 전체가 뭔가 아늑해 보였는데, 중에서 가장 눈에 것은 바로 한쪽 구석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벽난로와 거기에서 이어져서 높은 천정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기다란 연통이었다. 거무튀튀한 빛깔의 난로와 연통의 연갈색 톤은 전체 공간과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그리고 나는 집안의 따뜻함의 시작점이 바로 벽난로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있었다. 하지만 난로를 벌써 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원래 벽난로는 겨울의 상징이 아닌가? 아직은 가을이다. 11월도 오지 않은 지금부터 벌써 저렇게 벽난로를 때야 하는 상황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따뜻해서 좋긴 했지만 약간 답답한 느낌도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분이 요리를 하다 나온 앞치마를 걸치고는 손엔 젓가락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힐끗 훑은 장씨 아저씨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씨 아저씨는 이번에 새로 간병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다시 시선을 나에게 돌려서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는 사람이 오사장이 추천한 사람이냐고 다시 물었고 장씨 아저씨는 맞는다고 대꾸했다. "생긴 착실하게 생겼네... 그런데 얼마나 가겠어..." 라고 안타깝다는 혼잣말을 하더니 나를 보고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이내 몸을 돌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순간 나는 아주머니의 말로 인해서 더할 나위 없이 찝찝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해석될 수는 없는 말이었다. 갑자기 불안함이 엄습했다.

 

"원래 좋은 사람인디, 다들 오래 버티고 떠나서 금세 저러는 .", 장순용씨는 인상이 구겨진 모습을 보더니 애써 나를 위로하려 했다. 그리고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나를 끌고 가서는 방문 하나를 열어서 내가 방이라고 설명해줬다. 방금 아주머니의 반응으로 인해서 여기에 계속 머무르게 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지친 몸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담하고 정리가 되어 있는 방을 보자 그냥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일단 등에 지고 있던 가방을 벗어서 한쪽에 놓았다. 가방을 등에서 분리하자 땀이 등으로 인해서 나의 비릿한 체향이 공기 중에 강하게 퍼져 나왔다. 나는 순간 몹시 당황스러워서 장씨 아저씨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냄새 때문에 그려?그는 당황해 하는 표정을 보고 뭔가 이미 들은 바가 있는 물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냄새가 많은 곳에서 일을 하는 처지라서 원래 냄새에 둔하니까 아무런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이미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도 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러더니 갑자기 닭장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낫지만 한여름엔 너무 냄새가 심해서 코가 둔한 자신조차도 닭장 근처에 다가가면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닭들이 매일 낳는 달걀을 먹는 맛은 도심 사람들은 절대로 모를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여기 닭들이 낳은 계란은 따로 청란이라고 불리는데, 서울에서는 알에 원씩 한다고 했다. 나는 순간 아저씨가 인상과는 달리 사람은 착하고 좋은데 말이 자주 엉뚱한 곳으로 빠지고 뻥도 심한 단점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저씨의 말에 제일 걱정되던 하나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순간 가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안에는 나보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종류는 달랐지만 나만큼이나 특이했다. 아무래도 나를 여기에 소개시켜준 오사장님이 걱정 말라고 했던 근거가 냄새에 있었던 같았다. 그것을 딱히 어떤 냄새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내가 기존에 맡아 냄새는 분명히 아니었다. 일단 다른 것은 몰라도 향초 냄새 같은 것이 가장 진하게 났고, 냄새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히 어떤 종류의 고릿한 냄새도 났다. 아마도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별도의 강한 같은 것을 피우고 있는 했다. 그리고 다른 편으로 희미하게 음식 냄새도 났는데 그것만큼은 좋았다. 아마도 아까 나에게 혀를 차고 아주머니가 만들고 있는 요리에서 나는 맛난 음식 냄새인 했다.

 

장씨 아저씨는 이후로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방을 소개했다. 그리고 중에서 하나는 문을 열지 않았는데 안에는 내가 앞으로 돌봐야 하는 회장님이 계신다고 했다. 지금은 자고 있으니 깨면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추가적으로 내가 화장실과 아까 나와 만났던 아주머니에 대한 간단한 신상명세도 들었다. 그분은 61 소띠 조남순이라고 했다. 자신보다 3 위이긴 한데, 오래 같이 지내서 거의 친구처럼 지낸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은 집이 지어진 처음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집을 처음 봤을 받았던, 관리가 되어 있다는 느낌은 모두 장씨 아저씨의 손길 덕분인 했다. 집을 지은 지가 벌써 15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은 거의 새집 같은 느낌이 정도로 깔끔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내가 간병해야 회장님이란 존재에 대해서 물어봤다. 사실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장씨 아저씨는 갑자기 낮아진 목소리로, 회장님은 58 개띠라고 했다. 이름은 '' '' ''자로 김지영이고, 여자 이름 같긴 하지만 분명히 남자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장님의 호는 두삼이라고 나름 진지하게 덧붙였다. 뜬금없는 호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내가 황당해 하면서 요즘도 호를 쓰는 사람이 있냐고 되묻자 장씨 아저씨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리고는 한결 더욱 진지해진 어투로 예전에 도력이 높으신 스님께서 회장님을 좋게 보시고 직접 지어 주신 호라고 했다. 그래서 회장님이 호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예 자신을 부를 그렇게 부르라고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혹시라도 회장님의 이름을 부를 때가 있다면 김지영이 아니라 반드시 김두삼이라고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만약 실수로라도 김지영이라고 부르게 되면 그날 부로 집에서 쫓겨 것이라고 괜한 엄포도 놓았다.

 

나는 방금 말한 내용이 별로 이해는 되질 않았지만, 사실 누군가를 김지영이라고 부르거나 김두삼이라는 훨씬 촌스러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냥 불러달라는 대로 부르면 된다. 또한 내가 회장이란 존재의 이름을 직접 부를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한민국에서는 퇴직 직급이 죽을 때까지 사회적 호칭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김회장님이라고 직접 이름을 부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그렇게 장관 자리라도 한번 해보고 싶어 난리가 아닌가? 달이라도 장관을 하고 나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장관님이다. 그래서 장씨 아저씨의 마지막 당부는 대충 귀로 흘러들었다. 장씨 아저씨는 이어서 마지막으로 가지 질문을 했는데, 질문으로 인해서 나는 갑자기 커다란 당황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런디 바둑은 올매나 두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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