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23

이제 10년

얼마 전 화장실 샤워기 꼭지 부분이 망가졌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낡아서 그런 것인지, 혹은 그 둘의 우연한 조합으로 인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물이 나오는 부분과 수도와 연결된 부위에 있던 부속이 깨지면서 꼭지와 호수가 그 오랜 인연을 마감한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샤워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위에서 떨어지는 방식의 별도로 부착된 천정형 샤워기를 쓰는 것이 훨씬 더 좋아서 그렇다. 하지만 나와 달리 아내는 오직 그 샤워기만 쓴다. 낮에 일어난 사건이니 아내는 퇴근 후에나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려고 한 순간에 말이다. 낮에 일어났지만 나는 이미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씻으러 가는 아내에게 딱히 언급하지 않았고..

나의 이야기 2021.12.11

삶은 주어진다

나도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삶은 참 의문이 많이 드는 대상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식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다들 모두 매일 행복하길 원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실패해도 또 다시 도전한다. 매일 도전하고, 매일 실패하고, 매일 소수가 성공한다. 마치 로또가 매주 팔리고, 매주 꽝이고, 아주 소수가 당첨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 다시 로또를 산다. 그렇게 다들 '혹시나' 하면서 살아간다. 그냥 처음부터 다들 행복하면 좋지 않은가? 그냥 모두 다 로또에 당첨되면 좋지 않을까? 삶의 본질이 그런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신을 믿는 사람들이 강한 회의감이 들 때가 그 점 때문이다. 정말로..

나의 이야기 2021.11.05

놓치고 있는 것들

최근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가 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생존 게임을 주제로 한 드라마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연히 스포가 있으니 보실 계획이 있는 분들은 보신 후에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분에게 스포를 당해서!)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다음 게임을 알아내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때 더 유리할 수 있기에, 아니 있다고 믿기에 그렇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설정이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최측은 입으로는 끝없이 '공정함'을 외치며 게임을 시키는데, 대부분의 게임이 그것을 얼마나 잘하느냐의 문제로 승부가 결..

나의 이야기 2021.10.05

쓸데없는 일

'물수제비' 라고 불리는 놀이가 있다. 돌을 던져서 최대한 많이, 오래 튕기게 하는 놀이인데, 아주 잘하는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잘해서 그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단 한 번조차 튕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보통 어렸을 때 던지기 놀이를 거의 해 보지 못한 여자들이 잘 못하는 편이고, 야구라도 한번 해 본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잘하는 편이다. 호수와 같은 넓고 잔잔한 물이 있는 곳에 가면 꽤나 자주 돌을 던지는 남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옆에서 신기해 하며 잘한다고 박수치는 여자들의 모습과 그깟 '돌 던지기'에 목숨을 걸듯 열심히 던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이다. 사실 여자가 관심이 없어져서 다른 곳으로 간 후에도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열심히 ..

나의 이야기 2021.09.28

내 안의 그물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그물을 가지고 있다. 이 그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는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다. 우리 안에 그물이 있다는 증거는 확실히 존재한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살다가 보면 언제나 '남는 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일 수 많은 상황에서 수 많은 말들을 듣게 되지만 남는 말들은 매번 비슷하다. 다른 말들은 모두 걸리지 않고 통과된 반면 몇몇의 남는 말들은 늘 비슷하게 걸려서 밤 늦게 자기 직전에 떠오른다. 아침에 아내나 남편이 했던 말들이 걸린다. 누군가 집을 샀다는 말이나, 진급을 했다는 말이나, 주식이 올랐다는 말에 걸린다. 어떤 집 아이가 1등을 했다는 말이나,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말이나, 영재 고등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에 걸린다. 회사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이 ..

나의 이야기 2021.09.22

묵은 감정

어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그런 감정들을 보통 ‘묵은 감정’이라고 한다.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이 날 때도 있고, 감정은 존재하지만 도대체 왜 이 감정이 생겼는지조차 잘 모를 때도 있다. 우연히 가끔 남의 일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떨 때 마치 그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강렬하게 다시 체험할 때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꽤나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은 그저 오래 전에 겪었다는 이유로 그 원인이 전혀 다른 두 가지 형태의 감정을 '묵은 감정'으로 묶었기 때문에 생겨난다. 묵은 감정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전혀 다른 원인으로 생겨난다. 그렇기에 그것이 생겨난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전혀 다르다. 기본적으로 묵은 감정은 과거에 어떤 이..

나의 이야기 2021.08.19

표현의 착각

누군가 나에게 '너는 나에게 참 이용가치가 높은 사람이야' 라고 한다면, 결코 그 내용이 나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기분이 좋을 수도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들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 내가 호구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물건이냐, 이용하게? 그런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표현을 조금 바꿔서 '너는 나에게 참 귀한 사람이야' 라고 하면 어떨까? 이 역시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될까? 아니다. 속이 엄청 꼬여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말하는 사람이 이죽거리면서 하는 말이 아닌 한, 그 말은 우리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표현만 다를 뿐 내용 자체는 완벽히 동일하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아 달라 보인다. 같은..

나의 이야기 2021.08.10

골디락스

생명 탄생에 대한 학설 중 가장 유명한 이론은 바로 '진화론'이다. 사실상 거의 유일한 과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이 이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진화론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체가 어떤 식으로 진화가 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밤을 아주 잘 까는 귀여운 다람쥐나 꽃에서 꿀을 빨아 먹고 사는 벌새 등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정말로 먹이를 잘 먹을 수 있게 진화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몹시 신기하기도 하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저렇게 딱 맞는 신체기관을 갖게 되었을 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 것이다.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다..

나의 이야기 2021.07.20

아이와 어른의 경계

최근 몸이 많이 안 좋아지신 아버지가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입원은 사실상 퇴원이 없는 입원이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셨으니까. 암 진단을 받으신 후로도 병원에 입원하시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셨기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쯤은 이미 하반신은 쓰질 못하셨고, 말도 어눌하고 의식도 오락가락 하셨다. 아버지 당신이 많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를 돌봐드리던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 역시 너무 힘들어 하셔서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기로 하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절차 때문인지, 앰뷸런스 기사가 아버지의 나이를 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나이가 구십 세라 대답했다. 그러자 들것에 실려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어서,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구십 세가 아니고 팔..

나의 이야기 2021.07.05

나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 남은 이야기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상위 1%에 해당되는 확실히 머리가 좋고 확실히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적당히 머리가 좋고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분류상 1번과 5번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의 괴리로 인해서 어쩔 수 없는 좌절감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결코 좌절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매우 활동적이며, 매우 적극적이다. 좌절해서 주저 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복하기 위해서 매우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스스로 패배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고, 남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매우 집중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가장 ..

나의 이야기 202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