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안의 그물

아이루다 2021. 9. 22. 07:43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그물을 가지고 있다. 이 그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는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다

 

우리 안에 그물이 있다는 증거는 확실히 존재한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살다가 보면 언제나 '남는 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일 수 많은 상황에서 수 많은 말들을 듣게 되지만 남는 말들은 매번 비슷하다. 다른 말들은 모두 걸리지 않고 통과된 반면 몇몇의 남는 말들은 늘 비슷하게 걸려서 밤 늦게 자기 직전에 떠오른다.

 

아침에 아내나 남편이 했던 말들이 걸린다. 누군가 집을 샀다는 말이나, 진급을 했다는 말이나, 주식이 올랐다는 말에 걸린다. 어떤 집 아이가 1등을 했다는 말이나,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말이나, 영재 고등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에 걸린다.

 

회사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이 걸린다. 직장 상사의 일을 좀 똑바로 하라는 말이,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자료 만들 때 좀 실수하지 말라는 말이, 새로 입사한 스펙 좋은 대리가 나보다 연봉이 더 높다는 말이 걸린다.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걸린다. 어릴 때는 나보다 다른 친구와 놀고 싶어 한다는 말이, 누가 더 인기가 있다는 말이, 너는 재미가 없다는 말이, 너는 못생겼다는 말이 걸린다. 나이를 먹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이성에게 건넨 다정한 말이,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친구의 자랑이, 새로운 기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친구의 도전이 걸린다.

 

매일 수 많은 말들이 걸린다. 시어머니의 한 마디가, 시누이의 한 마디가, 장인의 한 마디가, 친구의 한 마디가, 동료의 한 마디가, 상사의 한 마디가, 밑의 직원의 한 마디가, 사장의 한 마디가 걸린다. 그렇다고 해서 다 걸리는 것은 아니다. 많은 말들이 걸리지 않고 그냥 통과되어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날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잊고 싶어도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우리 안의 그물은 사람에 따라서 촘촘하기도 하고 성성하기도 하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전체가 똑같이 촘촘하거나 똑같이 성성하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촘촘하고, 어떤 부분은 성성하다. 그래서 걸리는 말이 있고, 걸리지 않은 말이 존재하게 된다.

 

 

보통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촘촘하고, 자신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성성하다. 그러니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촘촘한 부분이 많아서 매일 많은 것이 걸리게 되고, 반대로 충분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대부분의 영역이 성성해서 아주 가끔만 걸리는 삶을 살게 된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에 관한 영역이 촘촘하다. 그래서 누군가 돈에 연관된 말을 하면 반드시 걸린다. 집값 얘기, 주식 얘기, 비트코인 얘기가 걸린다. 뭔가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은 얘기만 들리면 그것이 걸린다.

 

애정이 결핍된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한 말을 하면 걸린다. 말 뿐만이 아니라 태도로도 걸린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듯싶으면 바로 걸리고 만다.

 

무엇인가가 잘 걸린다는 것은 오직 단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촘촘한 영역이 운 좋게 성성해질 때는 반드시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 돈이 생기면 그렇게 행복해진다. 주식을 하고 부동산을 사서 돈을 벌면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그러니 거기에 빠져든다. 애정이 결핍된 사람에게 누군가가 애정을 주면 그렇게 행복해진다. 무엇이든 부족한 점을 채울 때 행복은 그야말로 '극대화' 된다.

 

만약 운 좋게도 그런 기회를 통해 촘촘했던 부분이 넓어져 성성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많은 돈을 벌고, 애정이 부족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과 사귐으로써 더 이상 사람들이 하는 말에 걸리지 않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 돈을 벌었다는 말이나, 누군가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것 같아도 과거처럼 그렇게 남지 않는다. 삶이 평온해진다.

 

여기에서 문제는, 단지 이론적으로만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원래 그물의 촘촘했던 부분이 충분히 채워지면 성성해져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변화를 스스로 거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에 채울 때 느꼈던 행복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그렇게 이미 십 수년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채울 때마다 느꼈던 행복감에 너무 깊게 '중독'이 되어 버린 상태이다.

 

그로 인해서 돈이 없다가 충분히 많이 가지게 되었어도 여전히 더 많은 돈을 추구하고, 애정이 결핍되었다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더 많은 관심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미 충분히 권력을 얻었어도 더 높은 지위를 바라고, 누가 봐도 충분한 성공을 거뒀어도 더욱 더 큰 성공을 원한다.

 

과거의 문제점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집착'이었다면, 해결된 후의 문제점은 바로 행복을 얻기 위한 '중독'으로 바뀐다. 이 둘은 사실상 그리 서로 다르지 않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그런 채움의 경험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채우지 못한 그것에 평생 집착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이후 삶에 대한 생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집착의 시대가 끝나면 중독의 시대가 올 것임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이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촘촘한 그물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해결 방법은 있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자꾸 걸린다면 그것은 거기에 자꾸 걸리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촘촘한 그물 그 자체의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왜 돈이, 애정이, 인정이, 권력이, 지식이 자신에게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돈을, 애정을, 인정을, 권력을, 지식을 얻기 위해서 집착한다.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것들을 충분히 얻어도 결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촘촘한 그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오히려 더욱 더 촘촘해진다.

 

단지, 주변에서 자신의 마음에 남을 만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서 그 그물이 없어진 듯 느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99명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을 받았던 사람이라도 단 한 명의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그렇게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 그저 평소에는 99명 중 한 명을 만나기 때문에 자신이 그럴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내 안에 있는 촘촘한 그물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나 자신 뿐이다. 내 안에 있으니 나만이 해결 가능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안에 존재하는 촘촘한 부분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아무런 의심조차 들지 않는 것들도 아주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아는 방법은 단순하다. 하면 좋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면 성성한 부분이다. 하면 좋지만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으면 촘촘한 부분이다. 선택적이냐 필수적이냐 여부가 성성한 부분인지 촘촘한 부분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것이 선택적이라면 성성한 사람이며, 아무 것도 걸리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모든 것이 필수적인 사람이라면 촘촘한 사람이며, 모든 것이 다 걸린다.

 

일단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촘촘한 부분을 파악했다면 두 번째로 그 부분에서 왜 촘촘해졌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보통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어떤 것이나,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들어 온 어른들의 말이 그 원인이 된다. 만약 어느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촘촘하다면 반드시 그 원인은 존재한다. 그러니 노력하면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만약 운 좋게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때부터 그것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이 과정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는 편이 낫다. 노력한 후에도 여전히 똑같이 집착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알고 하는 집착과 모르고 하는 집착은 이후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그렇다.

 

이유를 알고 하는 집착은 어느 순간에 제어가 된다. 스스로 그것이 집착임을 알기 때문에 억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착임을 알지 못하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무런 제어가 되질 않는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순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도박장에 가질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서 '따고 나면 그만 둬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쓸데 없는 행동이다. 자신이 무엇에 집착하는지 아는 사람은 가능하다면 그것을 시작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하는 순간부터 집착이 엄청날 것인데 왜 그것을 시작할 것인가?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주식을 시작하는 순간 9시부터 3시까지 주식 시세만 들여다 보게 된다. 그로 인해 일상이 망가지게 된다. 처음엔 모르고 그렇게 몇 년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자신의 집착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주식을 하지 않게 된다.

 

더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집착 대상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보면 점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바라보면 볼수록 그것의 무의미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던 어느 날 촘촘했던 부분은 여느 다른 부분처럼 성성해지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는 일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너무도 많아서 그렇다.

 

집착이 사라질 때 비로소 넓은 시야가 생겨난다. 원래 집착이나 중독은 우리의 시야를 아주 좁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삶의 답이 오직 그것 하나만 있는 것 같아서 평생 그것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훨씬 더 많은, 사실상 무한대의 대상이 있음을 알게 되는 삶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어쩌면 그물을 성성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변화이다

 

모든 부분이 성성해지면 우리는 그 어느 부분에도 불필요하게 과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자유로워진다. 내 안에 모든 부분이 똑같이 성성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아무 것이나 선택이 가능해진다. 그것이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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