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놓치고 있는 것들

아이루다 2021. 10. 5. 09:00


최근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가 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생존 게임을 주제로 한 드라마이다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연히 스포가 있으니 보실 계획이 있는 분들은 보신 후에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분에게 스포를 당해서!)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다음 게임을 알아내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때 더 유리할 수 있기에, 아니 있다고 믿기에 그렇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설정이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최측은 입으로는 끝없이 '공정함'을 외치며 게임을 시키는데, 대부분의 게임이 그것을 얼마나 잘하느냐의 문제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얼마나 줄을 잘 서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만다. (제작진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패러디하고 싶었던 것일까?)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빼고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누구를 같은 편으로 고르느냐, 어떤 모양을 선택하느냐, 참가 순서를 몇 번으로 하느냐에 따라 사실상 승부가 갈리고 만다. 아이러니하다. 좀 더 냉정히 말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차도 그 게임을 잘하는 것 여부와 상관없이 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갑작스러운 총격에 의해 누군가가 죽는 상황에서 겪게 되는 엄청난 멘붕 상태를 얼마나 견뎌내느냐 여부로 승부가 갈리고 말았다.

 

아무튼 설정으로 인해 게임 그 자체보다 게임 전 선택이 더욱 더 중요했으니 미리 다음 게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졌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다음 게임에 대해 알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마지막 게임쯤 가면 실내 공간이 다 정리가 되면서 숨겨져 있던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엔 앞으로 치를 게임에 대한 그림이 커다랗고 깔끔하게 정확히 순서에 맞춰져서 그려져 있다.

 

이쯤에서 그 벽의 그림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한방 먹는다.

 

'그래, 다 저렇게 있었어. 조금만 주변을 돌아볼 줄 알면 보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못해서 목숨을 걸고 알아내려고 했지. 그러다가 죽기도 했고. 삶이란 얼마나 아이러니 한 것일까? 우린 삶에서 도대체 어떤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저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 감독 대단하다.'

 

그나마 스스로 알아 낸 사람들은 좀 낫다.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가 다 끝나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있다가 누군가 그것을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다시 드라마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조금은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꽤나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답답하면서도 뿌듯하다.

 

답답한 것은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이고, 뿌듯한 것은 '이제라도 그것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가 더 숨겨져 있다.

 

그 순간 그 그림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 그리고 생각해 봐야 한다. 거기 참가자들처럼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시청자라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그림들을 봤을 때 과연 '다음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알아낼 수 있었을까

 

특히나 어떤 모양을 선택하는지가 너무도 중요했던 '달고나 게임'은 그 그림만 봐서는 그것이 달고나 게임인지를 알 방법이 전혀 없어 보인다. 순서가 가장 중요했던 다리 건너기 역시도 그저 아이가 계단 같은 것을 뛰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 그림에서 그렇게 중요한 '순서'에 관한 힌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총으로 쏘기 시작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은 그저 사람들의 놀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을 뿐, 총을 맞고 빨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그림으로 뭔가를 알 수 있는 게임은 줄다리기 하나뿐이었다. 짝을 맺은 상대와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해야 하는 구슬치기도 그저 구술치기만 존재했을 뿐이다. 특히 마지막 게임은 그림으로는 그것이 '오징어 게임' 이란 상상은 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도 위에 나타난 문제와 연관이 된다. 게임이 게임 실력 그 자체로 승부가 났다면 그나마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게임 외적인 요소로 인해 승부가 났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려나 봐야 그것이 힌트가 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게임이 게임 그 자체로 승부가 났다면 미리 알 필요도 없었다. 전혀 모르고 했다고 해도 그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게임을 잘하면 끝이었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스포를 당해 그림이 나온다는 내용을 알고 봤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신경을 써서 벽을 보려고 해도 그림이 잘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단 세 명만 살아남은 상황에서 내부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난 후에야 그 그림이 보였다. 그러니 사실상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 내의 주인공들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우리 역시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여긴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뒤통수를 세게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 말을 읽거나 듣는다. 삶에 관한 깊은 사유나 숨겨진 비극적 진실을 들을 때 그렇다. 그래서 그런 말들은 소위 '명언'으로 묶이게 된다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 마라

 

이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반성도 된다. 그리고 좀 더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남을 불행하기까지 하면서 내 행복을 추구하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리하면 조금 배우고, 실패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의 실패에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실패는 그것이 실패라고 인정할 때만 실패가 될 뿐이다. 우리가 최대한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가장 낮게 몸을 웅크려야 한다.

 

'가장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부족함이 용서가 된다. 더 많이 가지려고 힘들게 노력한 과거들에 대한 후회가 일어나며 그렇게 허겁지겁 욕망만을 쫓던 삶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앞으로는 못 가진 것들을 가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만 스스로 자문해보자. 이런 말들을 듣고 나서 우리는 과연 변했을까?

 

우리가 변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이런 명언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뒤통수를 띵하고 맞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그 동안 수 많은 명언을 들어왔다. 그런데 의문이다. 그렇게나 많은 명언을 접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거의 변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오징어 게임에서 찾아 보자.

 

우리는 평소 주변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의 순서를 그렇게 알고 싶어 하면서도 주변에 이미 그려져 있는 그 순서를 보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오징어 게임을 보듯 비슷하게 아주 가끔 명언을 들으며 주변을 환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을 보듯 수 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는 복잡한 감정 상태가 된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구나. 나는 그 동안 어떤 삶을 산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두 눈 부릅뜨고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어. 내가 그 동안 욕망했던 것들은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었어. 삶에 관한 진짜 진실은 이 벽의 그림처럼 따로 있었어.

 

그런데 슬프게도 그 순간조차 우리는 그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비록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를 표현해주고 있지만, 사실은 그 그림으로는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기도 힘들뿐 아니라, 알더라도 거기에서 과연 어떤 조건이 중요할지 알 방법이 없다.

 

'구슬치기'를 두 명씩 조를 짤 때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짝을 같은 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가 짝을 맺고, 그나마 친했던 사람들끼리 짝을 맺고, 믿을만한 사람과 짝을 맺는다. 그런데 게임 내용은 짝을 맺은 상대와 일대 일 대결을 해서 지는 편이 죽는 것이었다.

 

부부 중 한 명이 죽고, 친구를 죽여야 하고, 믿었던 사람을 배신해야 했다

 

사실상 그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명언도 마찬가지다. 명언을 듣고 나서 뭔가 머릿속에서 충격이 생겨나지만, 실제로 그 충격의 의미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때 느끼게 되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수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만다. 여기에서는 그것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이성'이 동작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자극된 '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힌 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 이어간다.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스스로 삶의 숨겨진 비밀을 보았음을 자책을 통해 은밀히 자랑한다.

 

어떤 순간에도 '이성적으로' 그림이 정말로 도움이 될지 여부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이성적'으로 방금 들었던 명언이 가진 진짜 의미 역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저 평소와는 다른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런 자신에 대한 만족을 하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고 말 뿐이다.

 

우리는 어떤 좋은 말을 들어도 결코 '변화' 할 수 없다.

 

사실 삶에 관한 숨겨진 진실은 살아오면서 이미 충분히 많이 들었다. 듣지 못해서 문제가 될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에 배웠던 도덕 교육과 같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을 해치지 말아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지 그런 말들은 그저 언제나 '객관적' 사실로만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나에게는 절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남을 비판하고, 자신을 용서한다.

 

우린 살면서 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뭔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순간 조차 복잡해진 감정으로 인해서 정말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평생 반복되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무뎌져서 결국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귀찮게 된다.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괜한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 그 동안 충분히 많이 삶의 숨겨진 진실로 인해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단 한번도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적이 없다

 

그저 우리가 한때 그랬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10년  (0) 2021.12.11
삶은 주어진다  (0) 2021.11.05
쓸데없는 일  (0) 2021.09.28
내 안의 그물  (0) 2021.09.22
묵은 감정  (0)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