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쓸데없는 일

아이루다 2021. 9. 28. 08:30


'
물수제비' 라고 불리는 놀이가 있다. 돌을 던져서 최대한 많이, 오래 튕기게 하는 놀이인데, 아주 잘하는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잘해서 그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단 한 번조차 튕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보통 어렸을 때 던지기 놀이를 거의 해 보지 못한 여자들이 잘 못하는 편이고, 야구라도 한번 해 본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잘하는 편이다.

 

호수와 같은 넓고 잔잔한 물이 있는 곳에 가면 꽤나 자주 돌을 던지는 남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옆에서 신기해 하며 잘한다고 박수치는 여자들의 모습과 그깟 '돌 던지기'에 목숨을 걸듯 열심히 던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이다. 사실 여자가 관심이 없어져서 다른 곳으로 간 후에도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열심히 던지기도 한다.

 

이 놀이는 납작한 돌만 있으면 되고, 나름대로 보는 재미도 있으며, 아주 잘하면 신기하기도 하니 해서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단지 참 쓸데없는 짓이긴 하다.

 

물론 이 놀이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놀이들이 딱히 쓸데없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쓸데없지는 않다. 어떤 종류의 놀이이든 신체적인 영역이나 지적인 영역에 도움이 되기에 그렇다. 그 자체는 아무런 쓸데없다고 해도 그것을 하는 과정 속에서 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머리를 쓰게 됨으로써 두뇌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한 시간 동안 돌을 던질 필요는 없을 뿐이다.

 

물론 한 시간 동안이나 물수제비를 던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 시간 이상 골프는 치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그 뿐인가? 수 많은 다른 놀이들은 대부분 시간 단위로 이뤄진다. 아예 밤을 새는 낚시도 있다. 낚시는 그래도 물고기라는 수확이 있으니 괜찮지만, 사실 그 노력과 시간이면 그냥 사 먹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강태공들은 신선한 자연산을 강조하며 반대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골프는 한 시간 이상 치는데 물수제비는 왜 한 시간 이상 하질 못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재미의 문제일 듯 하다. 하지만 왜 둘 사이에는 재미의 차이가 생겨날까? 골프채를 휘둘러서 공을 멀리 보낸 후 그 공을 어딘가 구멍에 넣는 행동과 납작한 돌을 잘 던져서 최대한 많이 튕김 현상을 만들어 내는 행동이 그렇게나 많은 '재미'의 차이가 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단순함과 복잡함의 차이일까? 호수와 돌멩이만 있으면 되는 물수제비와 일단 골프장이 있어야 하고, 골프채와 골프공 그리고 도우미와 이동 수단까지 필요한 골프 사이의 복잡함 차이는 엄청나긴 하다. 하지만 이것도 좀 이상하다.

 

사실 단순하기로 따지면 축구만한 것도 없다. 사람들과 공만 있으면 된다. 반대로 복잡하기로 따지면 야구만한 것도 별로 없다. 야구장이 필요하고, 배트와 글러브가 있어야 한다. 축구에 비하면 야구는 규칙도 아주 복잡하다. 그러니 복잡함으로 인해 차이가 난다면 야구가 축구보다 수 배 이상 인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국제적으로 보면 축구가 야구에 비해서 훨씬 더 인기가 많다.

 

재미나 복잡함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진 하겠지만, 단순히 그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그렇다면 도대체 둘은 왜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둘 사이의 차이가 생겨나는 원인은 사람들의 '평가'이다. 그러니까 물수제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골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경우 물수제비를 낮게 보고 골프를 높게 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일반적으로 골프의 가치가 물수제비의 가치보다 높다는 뜻이다.

 

물수제비보다 골프를 훨씬 더 오래 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골프를 좀 더 가치 있게 평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갑자기 골프를 정말로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골프를 한 시간 이상 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똑같은 '쓸데없는 짓'이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자라서 상대적으로 '덜 쓸데없는 짓'이 되고, 더욱 더 많은 관심을 먹게 되면 '가치 있는 행동'이 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만약 국제 물수제비 던지기 경기가 열리고, 그 상금이 수백 억에 다다른다면 수 많은 사람들이 물수제비를 던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골프는 다르다. 엄청나게 많은 경기가 열리고 정말로 많은 돈이 오간다. 그러니 골프를 잘 치는 것이 중요해지고, 한 시간 이상을 칠 수 있게 된다. 심한 경우 하루 종일 칠 수도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돈을 부르고, 그렇게 불려진 돈이 '쓸데없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서 결국 가치가 있는 일이 만들어 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을 꽤나 한심하게 보는 일은 흔했다. 인생낭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엔 게임을 잘하는 것은 아예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한때 인생 패배자들이나 보는 만화는 이제 웹튠이라는 날개를 달고 고소득을 보장하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변화되었다. 사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만화시장만 봐도 관심과 돈이 어떻게 '쓸데없는 일' '무척 가치가 있는 일'로 바꾸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도대체 '쓸데없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아서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결국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정의하게 되면 씨름 등과 같이 과거엔 관심이 많았던 것들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조선시대엔 분명히 많은 관심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관심'을 기준으로 쓸데없는 일을 정의하게 되면 매우 혼란스럽게 되고 만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쓸데 있는 일과 쓸데없는 일을 구분한다는 것은 참 애매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그것을 구분한다. 단지 사람들마다 구분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골프이고, 누군가는 독서이다. 누군가는 운동이고, 누군가는 공부이다.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고, 누군가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각자마다 고유하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있고 쓸데없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

 

이런 차이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왜 관심과 돈이 쓸데없는 일과 있는 일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될까?

 

거기엔 '생존'에 대한 각자만의 고유한 해결책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생존에 도움이 되면 그것은 쓸데 있는 일이 되고 반대로 오히려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면 정말로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악의 쓸데없는 짓은 아마도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일 것이다. 열심히 돌을 굴려 정상에 올리는 순간 그 돌은 반대편으로 굴러가고 만다. 그러면 반대편으로 가서 또 다시 돌을 굴려 산 위로 올려야 한다. 잠시 생각해봐도 정말로 쓸데없는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 행위는 형벌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 십 년 하면 아주 튼튼한 몸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주말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사람들 역시도 꽤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위험하기도 하고 오토바이 엔진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공해물질도 배출한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서 그들이 얻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삶의 활력을 얻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집에서 뒹굴거릴 주말을 밖에 나와서 자연을 보며 마음껏 달릴 수 있다.

 

우리의 생존이 아주 단순하게 잘 먹고 잘 싸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겨난다.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건강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생존은 단순히 몸이 건강해지는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

 

결국 이 세상엔 '쓸데없는 짓'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나한테는 쓸데없는 짓이라도 남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가치라는 것 자체가 각자마다 고유한 생존의 비법이기 때문에 만약 스스로를 채찍으로 때리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반대로 이 세상엔 '의미가 있거나', 가치가 있는' 것도 없어지고 만다. 당연하다. 좌가 없어지면 우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쓸데 있는 것들은 쓸데없는 것들과 비교를 통해서 생겨난다. 그러니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그 모든 행위는 쓸데없지도, 쓸데 있지도 않다. 그저 내 생존을 위한 나만의 결정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끝없이 '가치'를 기준으로 한 저울질이 계속된다. 그렇게 해서 쓸데없는 짓과 쓸데 있는 짓이 구분이 되어 간다.

 

내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위에 대한 판단이 이뤄진다

 

내가 오늘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나, 아픈 사람들 돕는 것이나, 인류사에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과 물수제비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입에서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이 나오질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자학이나 혹은 우월감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거기엔 어떤 정답도 어떤 오답도 존재할 수 없다

 

단지 하나는 꼭 알아야 한다. 오늘 내가 매달리고 있는 그 무엇인가는 나만의 생존 해결책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나의 생존 해결책일까? 도대체 왜 그것이 나의 생존 해결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게임을 하는 것이, 낚시를 하는 것이 왜 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게 된 것일까?

 

도대체 그것들이 왜 내 행복이 된 것일까?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결국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집착엔 어떤 이유로 갖게 된 나만의 어떤 특별한 부족함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내가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내가 행복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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