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5

아이루다 2020. 1. 16. 09:22

 

 

5. 별빛 속에서

 

장씨 아저씨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장씨 아저씨의 입가에 있던 웃음기가 서서히 사그라져서는 결국엔 굳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도 떨림이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로 바둑을 두는지 묻는지를 되물었다. 하지만 장씨 아저씨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한결 다급해진 음성으로 나에게 여기를 소개시켜 오사장님한테서 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리고 당연히 들은 기억이 없던 나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장씨 아저씨는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하더니, 그렇더라도 혹시라도 바둑을 모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기대를 품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절차상 마지막 확인인 같았다. 그로 인해서 한층 불안해진 나였지만, 없는 바둑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거짓말을 이유도, 해서도 되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황당하긴 하지만 어렴풋하게 바둑을 있는 조건이 필요한지가 약간은 추측되는 부분도 있었다. 확실히 그래도 확인은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바둑을 알아야 하는데요?내가 묻자 그는 실망한 음성으로 회장님 간병인을 맡을 사람의 조건 중에서 바둑을 알아야 하는 것이 번째라고 했다. 그것도 꽤나 둬야 하는데, 적어도 회장님과 적절하게 승부를 겨룰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회장님 젊은 시절부터 바둑 애호가인데,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루 중에서 오전 시간엔 시간 이상 바둑을 두고 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상대가 없어서 바둑 방송만 보고 있는 상황인데, 아무튼 간병인으로 일하는 조건 하나가 바로 회장님의 바둑 상대가 되어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둑 두는 능력은 다른 모든 조건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장씨 아저씨의 그런 설명을 듣고 나니 예상이 대충 맞았음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장씨 아저씨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오사장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바둑을 아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상황인데 오사장은 나에게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평소에 아는 오사장은 이렇게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역시도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무리한 수를 것일까? 비록 그가 나에게 시킨 것은 아니지만, 나를 이틀이나 힘들게 40km 넘게 걷게 만들었던 것일까? 생각할수록 답은 찾기 힘들고 점점 답답해지기만 했다. 그때 옆에 있던 장씨 아저씨는 아무튼 바둑을 모르면 여기에 있을 없다고 하면서 자세한 내용은 오사장님과 통화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포기한 했다. 역시도 이미 많이 궁금했기에 말을 듣자마자 즉시 전화기를 꺼내서 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오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미 답답한 상태에서 통화마저 실패하자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이 장씨 아저씨는 크게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몸을 돌려서 아까 주방 쪽으로 사라져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순간 나는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로 인해서 깜짝 놀랐다. 전화를 사람은 바로 오사장이었다. 나는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고는 일단 예의상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익숙한 오사장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여기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밝은 목소리로 도착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 김회장이란 사람의 집에 도착은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곳 상황을 전혀 모르는 오사장은 웃으며 아주 잘됐다고 연거푸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고르다가 최대한 차분한 음성으로 질문을 했다. 도대체 바둑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사장은 오히려 자신이 놀랐다는 되물었다. 이대리가 예전에 자신의 회사 다닐 바둑 둔다고 소문났었던 사람 아니었냐고 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일까? 내가 회사에 다닐 바둑을 사람이었다고?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코너에 몰리니까 저런 헛소리를 하면서 빠져나가려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 오사장의 말투를 들어보니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같지는 않았다. 순간 갑자기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사장님, 제가 두는 것은 바둑이 아니고 장기죠. 장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랬다. 나는 바둑은 전혀 두지만 장기는 제법 두는 편이다. 어렸을 장기를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실력이 꽤나 괜찮은 편이어서 장기만큼은 어디 가서도 쉽게 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회사에 들어와서는 다른 직원들과 장기를 기회는 당연히 거의 없었고 주된 상대는 퇴직을 남겨 놓고 있었던 나이 많이 먹은 이사였다. 그는 평생 장기를 사람으로 내가 회사 입사 면접 장기를 안다는 것을 말한 사실을 알아낸 내가 입사를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에게 장기를 보자고 했었다. 일개 신참 직원이었던 나에게 퇴직이 얼마 남지 않는 이사의 부탁은 쉽게 거절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서 나는 그와 자주 장기를 두곤 했는데 실력이 엇비슷해서 역시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게임을 즐겼다. 물론 이사가 업무 시간에 조차 나를 불러서 장기를 두는 바람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퇴직을 하면서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퇴직 후에도 차례 회사를 찾아와 나와 장기를 두기도 했었는데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나중엔 아예 오질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 역시도 몸에서 냄새가 나는 문제로 인해서 사람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서 어쩔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일들에 대해서 오사장은 장기가 아닌 바둑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사장은 내가 바둑이 아닌 장기라고 소리치자 갑자기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더니 "바둑이 아니라 장기였어?" 라고 다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그래, 그의 말처럼 실수는 맞다. 하지만 단순한 실수로 돌리기엔 그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 너무 컸다. 그런데 오사장은 갑자기 목소리가 거의 우는 목소리로 바뀌더니 어떻게 달만이라도 거기에서 버텨줄 있냐고 물었다. 회사의 미래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화가 나면서도 궁금해졌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과 오사장 회사의 미래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모든 해프닝의 시작점은 바로 집의 주인인 김회장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회장의 유일한 자식이며 현재는 김회장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는 아들 김사장이었다. 김회장이 아들인 김사장에게 연락해서 빨리 어떻게든 바둑을 아는 간병인을 구해오라고 엄청나게 압력을 넣은 모양이었다. 물론 돈이 넘쳐나는 집안이었기에 간병인을 구하는 것은 자체는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웠다. 김회장의 간병인 조건은, 가능하면 30대의 젊은 사람이면서, 김회장과 대화가 만큼의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하면서, 비록 간단한 일이긴 하지만 간병인 일까지도 맡아서 알아야 하면서, 무엇보다도 바둑을 알아야 했다. 그것도 아마 1 수준 이상으로 두는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다.

 

각각의 조건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그저 그렇지만, 조합을 갖춘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을 구하는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래서 아주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시골에서 근무해야 하고, 아무런 경력도 쌓을 없는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니 아주 힘들게 사람을 구해 놓아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지루함과 김회장의 불편한 성격으로 인해서 달이면 도망치듯 그만 둬버리고 마는 상황이 차례 반복된 했다. 대목에서 나는 도망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자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게 김사장은 결국 자신의 회사에 납품을 하는 거래처 사장들에게까지 압력을 넣은 모양이었다. 이번에 자신의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신제품의 부품의 납품처를 정할 간병인을 구해오는 회사에 가산점을 크게 주겠다고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갑질이었지만, 신제품이 시장의 반응도 매우 좋고 규모도 커서 오사장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반드시 따내야 계약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사장은 바둑을 아는 젊은 간병인을 구해야 대목에서 내가 떠오른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내가 바둑이 아닌 장기를 뒀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계약을 따내야 상황에 몰리니 무의시적으로 모른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자마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약이 되기까지 달을 버티라고?

 

아마도 내가 바둑만 뒀다면 오사장의 생각대로 만큼 적임자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간병인의 조건을 거의 갖춘 상태인데다가 나는 따로 곳도 없으니 여기에서 최대한 오래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김회장이 아무리 불편한 성격이라고 해도 어쩔 없이 버텼을 것이다. 솔직히 동안 나는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만 되면 서울의 도심 집이든 여기 양평의 속의 집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나만큼이나 확실한 적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한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오사장의 말을 듣고 보니 사람의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갔다. 회사 사장 입장으로 그만큼이나 절실했을 것이다. 내가 사람의 사정을 이해해줘야 하는지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냥 납득이 되었다. 그러자 나는 이제 이상 화를 기운조차 나질 않았다. 그리고 분노가 떠난 자리엔 여느 때처럼 허탈함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래, 꼬이기만 삶에서 이런 행운은 처음부터 말도 되는 것이었다. 지금이 여름이 아니라서 한여름 밤의 꿈은 없었지만, 한가을 밤의 꿈은 충분이 했다. 갑자기 오는 도중 봤던 한강의 물이 떠올랐다. 어쩌면 비루한 삶을 마감하기에 괜찮은 장소였다. 그런데 나는 순간 죽음의 고통보다 오히려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는 일이 두렵게 느껴졌다.

 

"아무튼 무슨 수를 쓰더라도 거기에서 달만 버텨 . 그러면 계약이 완료된다고. 그리고 달만 버티고 그만 두면 여기 김사장도 아버지 때문에 그만 뒀다고 여길 거야. 그러니까 이대리, 내가 무릎 꿇고 부탁할게. 그리고 어떻게든 달만 버티면 내가 나중에 크게 보상을 할게." 오사장은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막무가내 식으로 부탁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말도 되는 소리이지만 생각해 보니 달만 버티면 돈도 따로 챙겨 준다니 괜찮은 조건이기도 했다. 오사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본질적 문제는 여전했다. 나는 어떻게 달을 버틸 것인가?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김회장이란 사람이 결코 만만하지 않는 듯한데 바둑도 두질 못하면서 내가 어떻게 그것을 감당할 있겠는가? 내일이라도 당장 김회장이 바둑을 두자고 하면 도대체 무슨 핑계로 피할 있을까? 내가 솔직하게 바둑을 두지 못한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난리를 것이다. 그렇다면 바둑을 두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문제는 명확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할 있는 방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대충 통화 내용 들었구만. 내가 회장님한테는 간병인이 왔다는 소리를 아예 허질 않을라고. 아무튼 여까지 오느라 힘들었은께 오늘은 여서 하루 자고 내일 아침나절에나 돌아가도록 하도록 ." 그사이 다시 돌아 장씨 아저씨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어쩔 없었기에 일단은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실제로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어디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일단 아까 방이라고 알려 2층으로 이동을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따뜻한 물로 씻고 싶었다.

 

욕실로 들어가 깨끗이 씻고 나서는 방에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웠다. 열린 커튼을 사이로 멀리 굽이치는 산세가 보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새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몹시 피곤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의 공기가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순식간에 밀려 들어왔다. 물기를 머금은 젖은 머리에 밖의 공기가 닿자 피부가 얼얼할 만큼 차가웠다. 하지만 나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사실 집이 너무 덥기도 했다. 하루 종일 저렇게 난로를 피우고 있으니 덥지 않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더운 공기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따뜻함과 차가움이 만나는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막연하게 있었다.

 

지금 나에게 벌어진 복잡한 상황들을 떠나서 평소와는 반대로 사람의 고요함과 자연의 수다스러움 사이에 있다 보니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돈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아야 이런 곳에 이렇게 집을 지을 있었을까? 주변엔 다른 집은 전혀 보이질 않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잡을만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잠시 나는 창문을 닫고 침대 위에 누웠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너무 피곤한 탓에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금세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장씨 아저씨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1층에서 나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잠이 상태로 천천히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식탁 위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나물류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도라지 무침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각을 자극한 것은 바로 식탁의 중간에 놓인 커다란 찌개그릇에서 나는 냄새였다. 동태찌개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아이고, 오늘도 맛나겄네." 장씨 아저씨는 밝은 음성으로 말하고는 자기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처음 봤을 서먹하게 느껴졌던 아주머니는 아까와는 달리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빨리 앉아서 먹으라고 했다. 아마도 장씨 아저씨에게 이쪽 사정을 들었을 테니 어차피 내일 떠날 사람에게 잘해주려는 같기도 했다.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저녁 식사가 주는 따뜻함이 좋았다. 장씨 아저씨는 이미 먹기 시작했고 같이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잠시 기도를 국그릇에 커다란 동태 토막 하나와 익은 그리고 벌건 국물을 넘치듯 담아서 건네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손으로 받아서 밥그릇 옆에 두고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서 동태 살을 발라내어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끝내주는 동태찌개였다. 나는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맛나게 먹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집에서 먹어 제대로 밥일까? 나는 맛에 빠져서 땀이 흐르는 몸에서 얼마나 심한 냄새가 나고 있는지조차 잠시 잊고 말았다.

 

밥을 먹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하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손을 휘휘 저으며 나를 보냈다. 얻어먹기만 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니 이미 어두워져서 커다란 창으로 밖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8 30분이 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여기가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밥을 먹는 동안 더워서 땀도 많이 났다. 그래서 나는 땀을 식히고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몸의 땀을 식혀야 그나마 냄새가 덜할 것이다.

 

바깥문을 열자마자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이때다 싶은 빠르게 들이닥쳤다. 틈을 타고 이름 모를 벌레 마리도 따뜻하고 빛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최대한 빠르게 문을 닫았다. 빛을 따라온 벌레가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운명은 뻔한 것이다. 사람의 손에 맞아 죽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창문에 있는 방충망에 붙어 있어야 한다. 모두 그리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년간 해봐서 안다.

 

문을 닫고 밖을 나와 집을 등지자 밖은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멀리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것이 멀리 있는 가로등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기엔 너무 어둡고 너무 낮았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낮게 있는 밝은 별이었다. 갑자기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고개를 위로 했다. 그러자 거기엔 많은 별들이 이미 있었다. , 그래 하늘엔 별이 있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때는 자주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하늘에서 별을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라서 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별을 보는 자체를 까마득하게 잊은 것일까? 아마도 것이다. 별이 보이지 않으니 별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별을 생각이 없으니 별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이는 별들이 점점 늘어났다. 내가 천천히 걸어서 집쪽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별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걸음을 앞으로 디딜 때마다 별의 수십 개씩 늘어나는 느껴졌다. 갑자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게 나타난 별들은 원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있게 것일까? 이런 현상을 뭐라고 했더라... 학교 다닐 분명히 배웠던 같았는데, 도대체 용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내용만큼은 기억이 난다. 사람의 눈은 어둠 속에 오래 있을수록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둠 속에서 오래 있을수록 점점 많은 별들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근처에서 유일하게 빛이 흘러나고 있는 집에서 멀어질수록 눈은 인공적인 빛으로부터 해방되어 어둠 속에 더욱 적응할 있을 것이다.

 

별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높낮이가 변하는 풀벌레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쉬운 ,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제발 짝짓기를 주세요' 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해석되어 들리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귀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가득히 채워진 밤하늘의 별들은 까마득히 오래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 주는 듯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밤하늘의 별을 순수의 시인 윤동주는 헤는 밤이란 시를 남기고, 고독한 영혼의 예술가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이란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을밤의 정취가 나를 잠시나마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의 어느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었다.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De sterrennacht), 1889>

 

중학교 시절 한때 화가를 꿈꾸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독서 동아리에 들어가 많은 시와 많은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길을 걷고도 싶었었다. 하지만 소년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다른 이들처럼 쉬이 길을 포기해 버리고는 평범하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한때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이지만 어느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비관주의자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감성주의자가 있었다. 어쩌면 그때 포기하지 않고 화가의 길을 계속 갔다면, 아니면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도 살만하지 않았을까?

 

지나간 과거에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하는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이런 곳에서 혼자가 아닌 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창작이란 과정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몸에서 이렇게 망할 냄새가 나더라도 홀로 행복하게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순간 최선이라고 선택한 길이 정말로 마지막에 최선의 길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에게 마찬가지로 삶이란 것은 이토록 지독하게도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고 끝없이 던져지는 주사위 같은 것이 분명했다. 단지 나는 지금 주사위 개를 던져 가장 높은 수가 나와야만 이길 있는 경기에서 연속 여섯 번이나 2 나온 사람이 분명했다.

 

'바스락', 별빛에 취해 시간을 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귀에 들린 낯선 소리 하나로 인해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 하나로 인해서 허약한 낭만은 금세 사라지고 두려운 현실이 바로 자리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쪽에서 들린 소리 같았다. 그렇게 한번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연속적으로 반복되었고 그리고 쪽으로 다가오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정체를 없지만, 어떤 동물이 나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리의 방향으로 최대한 시선을 집중시켜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둠에 적응되었다고 해도 눈으로 그것을 구분하기엔 너무 깜깜했다. 나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서 점점 긴장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한 몸의 방향만큼은 바꾸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미지의 어떤 존재가 등뒤에서 나를 덮치기라도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아까 장씨 아저씨가 말한 고라니일까? 아니면 그보다 무서운 멧돼지일까? 아니면 다른 야생동물일까?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무서워해야 하는 야생동물이 뭐가 있을까? 설마 지리산에 풀어 놨다는 반달곰이 여기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어딘가 산양도 산다고 했지만 산양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면 결국 고라니나 멧돼지인 것인가? 고라니라면 그리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멧돼지라면 무서워해야 것이다. 그렇지만 듣기로는 멧돼지는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사냥꾼은 아니더라도 지금 귀에 들려오고 있는 소리는 여러 마리가 동시에 이동하는 소리는 아닌 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엔 몰랐는데 지금 들려오고 있는 소리는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존재가 사이를 통과하면서 결국 풀이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는 소리의 정체는 바로 고라니일 것이란 판단을 했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면서, 제발 그랬으면 하는 판단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는 것을 멈추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뭔가 흐릿하고 커다란 형체가 나타났다. 그리고 점점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적어도 고라니는 아니었다. 내가 고라니를 직접 정확히 본적은 없었지만 대충 사슴처럼 생긴 동물임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다가오고 있는 존재는 사슴보다는 오히려 늑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늑대는 일제 강점기 이미 멸종되었다. 나쁜 일본 놈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지금 늑대처럼 보이는 존재는 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개였다. 존재가 나에게 다가오자 품종도 있었다. 일반 개들보다 훨씬 덩치가 골든리트리버였다. 더군다나 나타난 녀석은 일반적인 골든리트리버보다도 보였다.

 

개라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러자 개가 여기를 돌아다니고 있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낮에 장씨 아저씨가 스치듯 말이 떠올랐다. 고라니를 쫓지 못했던 뭐라고 했었던 존재에 대한 비난, 하지만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땡땡이? 땡칠이? 비슷하게 촌스러운 이름들이 안을 맴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름이 뭐가 중요하랴. 내가 이름을 열심히 떠올리려고 하는 동안 상대는 이미 나에게 다가와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와 나타난 개는 각자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성과는 개가 좋았다. 나는 나를 향해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개의 모습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런 개의 모습을 보니 개가 고라니를 쫓는 것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 낯선 존재를 보면 사납게 짖으면서 쫓아야 텐데 좋다고 지금처럼 꼬리를 흔들며 것이 뻔히 보였다. 물론 그래도 고라니는 본능적으로 도망가긴 것이다. 하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지내자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개를 보고는 ' 뭐야' 하는 표정일 같았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처음부터 골든리트리버를 집을 지키거나 야생 동물을 쫓는 용도로 데리고 사람이 잘못한 일이다. 품종은 덩치만 컸지 원래부터 순한 종이니까.

 

앞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는 개는 그냥 행복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목에 목줄을 흔적도 없었고 그래서 하루 종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했다. 사방이 자연 속이니 위험할 것도 없었다. 도심 속에서 개를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사람도 위험하지만 역시도 매우 위험해지고 만다. 아무리 친화력이 좋은 개라도 이렇게 개가 갑자기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겁할 것이 분명했다. 특히 개의 의도와 상관없이 개가 몸이 작은 아이들에게 갑자기 다가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놀라서 울게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도심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목줄에다가 입마개까지 해야 한다. 그뿐이랴? 까딱 잘못해서 차가 다니는 길에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언제라도 차에 치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고를 운전자 본인이라고 멀쩡할까? 아무리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해도 뭔가를 죽이는 것은 그리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뭔가를 죽일 기분이 좋은 것은 귀에서 앵앵거리던 모기뿐이다. 바퀴벌레조차도 죽일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생명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징그러워서 그렇긴 하지만.

 

이런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개의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처지가 새삼스럽게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바둑을 두지 못해서 여기에서 떠나야 하지만 개는 자신이 해야 일인 고라니를 쫓지 못해도 이곳에서 계속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진심으로 개가 부러웠다. 그러자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순간부터 가을 밤하늘로 인해서 오랜만에 찾아온 감성의 시간은 어느새 멀리 사라져 버리고 내일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삶의 허탈한 미래만이 우두커니 남았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개도 불행한 순간이 있긴 것이다. 고라니를 쫓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장씨 아저씨에게 가끔 구박을 당하긴 테니까. 하지만 개가 그것을 신경 같지는 않았다. 꾸지람을 듣는 순간에도 꼬리를 흔들고 있을 같으니까. 그럼에도 행복한 개도 나와 가지는 닮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외진 곳에서 홀로 있는 개라면 아무리 자유로워도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처음 보고도 마치 수십 년을 알아온 사이처럼 이토록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한편으로 이런 곳에서 개를 키우면서 마리를 키우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설마 사료 값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돈도 많은 집안에서 그런 이유로 개를 외롭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개도 나처럼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개와 잠시 놀아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의 인연일 뿐이다. 내일이면 개도 여기 있는 사람들도 공간 자체도 짧은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추억이 되기는 힘들 같았다. 기억은 행복이 더해질 때만 유일하게 추억이 된다. 그렇지 못한 기억은 그저 정보나 지식의 역할로써 뇌에 저장될 뿐이다. 그렇게 저장된 정보나 알게 지식은 삶을 사는데 꽤나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자체로 행복이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무척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한때나마 존재했던 행복했던 추억들조차도 현재의 불행으로 인해 꺼낼 엄두를 내질 못하고 있으니까.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결국 지금이 행복한 자들만이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별빛이 가득 내리는 경험한 이런 좋은 기억들도 결국 나에겐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래도 아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같은 원리로 미래의 모습에 따라 기억은 언제든 추억으로 바뀔 있으니까. 그래서 만약 좋게 행복해졌다면 추억이 것이고, 지금과 비슷하거나 불행해졌다면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워서 머릿속의 깊고 깊은 곳에 봉인된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것이 되어 잊히고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제법 추위가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나와 놀아달라는 개의 요청을 외면하고는 다시 쪽으로 걸어와서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계속 쫓아오던 개는 차례 혼난 적이 있는지 문을 열러 두어도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런 개의 모습에 약간 미안하기도 했다. 문을 닫고 안쪽을 보았지만 밥을 같이 먹었던 사람 모두 어디에 갔는지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나는 빠르게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서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무선 랜을 찾으니 개의 신호가 잡혔다. 하나를 연결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런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았다. 나는 이후 한참 동안 인터넷을 하면서 놀았다. 매일 가던 커뮤니티 사이트에 방문해서 지난 이틀간 보지 못한 막대한 양의 글들을 읽었다. 가끔 바둑에 관한, 그러니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와 바둑 기사 이세돌씨에 관한 글들도 보였다. 과거에 봤던 반복적인 내용이지만 바둑에 관한 일을 하나 겪고 나니 그런 글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낸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불을 껐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아까 낮잠을 자서 그런 것일까? 그런 만은 아닌 했다. 잠에 들지 못하자 애써 외면했던 걱정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40km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서울 집의 방을 빼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떠나왔는데,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계속 살아갈 있을까? 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해도 돈도 떨어져서 있는 방법도 없는 처지였다. 노트북이나 집에 있는 그나마 만한 물건들을 중고로 팔면 정도는 버틸 있을 것이다. 그러면 후엔?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미래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래도 낮에 잠깐 했던 강물에 빠져 죽는 결론만큼은 피하기로 했다. 나는 평소에도 만약 물에 빠져 자살을 해야 한다면 여름에 해야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지금처럼 추운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살아서도 힘들었는데 죽음 직전까지 고통을 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왕 여기까지 김에 걸어서 가볼까? 그래서 아예 동해까지 걸어가 볼까? 수중의 돈을 털면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 잤던 모텔처럼 곳만 찾으면 가능할 같기도 했다. 되면 중간에 노트북이라도 팔면 된다. 일단 여기까지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희망이 있다. 내가 떠나온 집은 이미 오래 전에 지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나는 그곳을 떠나온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잠이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창문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이 떠오르면서 바로 우울해졌다. 그래도 아침이라도 얻어먹고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식사를 챙겨준 것을 보면 아침을 굶겨서 내보낼 사람들은 아닌 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쪽 벽면에 붙박이 형태로 설치되어 있는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정신이 없어서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계획을 해서 만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칸마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가득히 꽂혀 있었다.

 

책장은 집과 어울리게 나뭇결무늬가 선명하게 보이는 원목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정사각형 모양의 격자로, 가로방향으로는 , 세로방향으로는 7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정사각형 형태의 격자 모양의 책장을 보다 보니 갑자기 바둑판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바둑을 배우면 얼마나 빨리 배울 있을 지가 궁금해졌다. 장기는 제법 뒀으니 바둑도 배우면 있지 않을까?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런 말도 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만큼이나 내가 절실하기도 했다.

 

갑자기 어제 알파고와의 승부에서 마지막으로 인간의 승리를 이뤄 이세돌씨의 사진 장이 기억났다. 원래 그는 알파고에게 4:1 패한 인간이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것이다라는 말을 했지만, 사람들이 재미있게도 이세돌씨가 유일하게 이긴 , 그러니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승부에서 인간이 이긴 마지막 승부로 기록될 승리 내가 이긴 것이지 인간이 이긴 것이 아니다라고 자막을 붙여 놓은 것으로, 그의 미소가 유난히 아름답게도 그리고 장난스럽게도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머리 속에 뭔가 갑자기 내가 집에 계속 있을 있는 가지 가능성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알파고님. 그래, 가장 뛰어난 인간 바둑 기사를 꺾은 알파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해결책이 수도 있었다. 단지 절차가 복잡했다. 일단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해결책이 생각나자 나는 순간 적극적으로 돌변했다. 절망의 골이 깊은 만큼 한줌의 희망만으로도 거대한 에너지가 만들어 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있느냐의 여부였다. 그런데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랍게도 삶에 정도 운은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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