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2

아이루다 2020. 1. 7. 09:31

 

 

2. 새로운 일자리

 

솔직히 말해서 알량한 자존심만 무시하면 이런 처지에서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다르게 말투는 스스로 목소리가 낯설게 느낄 있을 정도로 퉁명스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이 알량한 자존심 문제만은 아닌 같았다. 왕따로 2, 혼자서 3년을 보낸 나는 이상 5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과거에 내가 가졌었던 친절함, 상냥함, 배려심 같은 긍정적 성향하고는 거리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존재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의 의미 없는 마디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세게 되받아 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 파탄자이며, 주문한 음식을 배달해오는 사람이 조금만 늦게 잔돈을 거슬러줘도 머릿속에서 '잔돈 정도는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아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같이 화가 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화를 표현할 용기조차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불행한 만큼 누군가에게 불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결국 몸에서만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체에서 결코 옆에 있고 싶지 않는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자존심을 넘어서는 것도 작은 문제는 아니었다. 이른바 SKY급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인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나였다. 그리고 대학 다니는 동안 장학금도 여러 받았고 비록 규모는 작지만 탄탄하고 높은 연봉을 주는 견실한 중소기업에도 취직했었다. 그런 이상한 병이 찾아오지만 않았다면 지금쯤이면 아마도 지금쯤 나는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한둘 정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앞으로 해야 일이 간병인이라니... 아무리 내가 돈이 아쉬운 상태라고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만한 일이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뻔했다. 나는 그냥 죽던지 그런 일이라도 해야 처지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 죽을 용기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삶의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집고 넘어갈 것은 집어야 했다. 몸에서 나는 악취는, 아무리 상대가 똥오줌을 가리는 환자라고 해도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는 내가 정도로까지 뻔뻔해지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것에 대해 걱정하자 사장은 이미 답을 준비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하지만 순간 나는 목소리에 근거 없는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 순간 마음 구석이 급격히 서늘해졌다. 기대가 배신감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다가왔던 지난 5년의 세월이 나를 과거와는 다르게 기대와 희망이란 단어를 믿기 두려워하는 인간으로 바꿔놓고 말았던 것이다.

 

 

과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는 행복이 가진 진짜 의미를 전혀 몰랐다. 신을 신어서 발이 아파 봐야 평소에 자신이 신발을 신고 다녔음을 알게 되듯이, 나는 불행해진 후에 행복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행복하다는 것은 행복 자체도 좋지만, 행복이 진짜 좋은 점은 새로운 행복이 찾아올 별다른 걱정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행복은 언제나 이미 도착한 행복들이 다듬어 놓은 평평한 길을 타고 굴러온다. 하지만 나처럼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인해 길에 틈이라도 생기게 되면 상대적으로 작은 행복들은 굴러 오다가 거기에 빠진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나마 틈보다 훨씬 행복들이 나에게 굴러 오지만, 속에서 그런 행운은 많이 드물다. 사이에 불운만 자주 오면서 길은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패이기만 했다.

 

내가 계속 부정적으로 나오자 사장은 나를 계속 설득하려고 했다. 앞으로 내가 돌봐야 환자는 현재 이미 본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도 이미 충분히 심각해서 정도는 충분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말을 들을 나는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호기심도 들었다. 나는 나와 비슷하거나 심한 냄새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남들이 나를 느끼게 되는 감각적 혐오감일까? 아니면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에 대한 희미한 동정심일까?

 

얼마나 받을 있는지를 묻자,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닌데 아마도 최소한 회사 다니는 수준의 월급은 받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해서 환자가 죽기 전까지는 충분히 안정적으로 근무할 있는 직장이라고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는데 간병을 하는 동안 집에서 숙식을 해야 하며 1회만 외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집에서 숙식을 하는 것은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사는 집의 월세를 계속 형편도 아니었으니까. 덧붙어 있는 외출 조건은 나에게 무의미했지만 그래도 하루 있음은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사장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아마도 환자가 죽게 되면 그때 어느 정도 위로금도 받을 있을 것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퇴직금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듣고 보니 환자라는 사람이 너무 빨리 죽지만 않는다면 입장에서는 꽤나 좋은 조건이었다. 서서히 욕망이 커져가자 자연스럽게 처음 느꼈던 반발심이 수그러들었다. 나는 대충이라도 사람이 언제쯤 죽을지를 아니, 내가 얼마만큼이나 근무하게 될지를 물었다. 하지만 사장은 자신도 전혀 없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만나 봤는데 정신이 가끔 오락가락 하긴 하고, 아주 가끔 대소변을 제대로 가려는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많이 아파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환자의 나이가 육십 초반이니 어쩌면 년은 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서 사장은 묻지도 않았는데 환자와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환자는 자신의 거래처 사장님이었었는데 20 이상 알아온 친밀한 사이이며, 직원 수가 수백에 이르는 건실한 중견 기업을 운영했던 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작년 초부터 조금씩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더니 후로 점점 문제가 심각해져서 이제는 아들에게 모든 사업을 물려주고는 시골에 있는 별장에서 요양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혹시 치매냐고 묻자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치매는 아니고 뇌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는데, 병명을 듣긴 했지만 기억이 난다고 했다. ,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그냥 넘겼다. 그리고 거기까지 상황을 듣자 마음도 어느 정도 정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일할 있냐고 묻었다. 그러자 사장은 오늘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서 문자로 주소와 그쪽 연락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난 10분쯤 지나서 문자가 왔다. 내가 가야 곳은 양평의 장소였다. 나는 일단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다. 통화음이 정도 울린 굵직하고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어느 지방인지는 모를 사투리가 섞인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장님 이름을 말하면서 그분의 소개를 받아서 전화라고 설명하자 상대는 알아듣는 했다. 그리고 제법 친절한 말투로 언제든 오면 된다고 했다. 아니,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와줬으면 했다. 원래 일하던 사람이 전에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일이나 모레쯤 가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느껴야 했다. 이미 쓸모없는 차는 팔아버렸기에 이동 방법이 가장 문제였다. 대중교통도 이용할 없었다. 그렇다면 택시를 대절해야 할까? 양평이면 왕복으로 요금을 지불해도 그리 많은 돈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는 내내 좁은 공간에서 택시 운전사는 무슨 죄란 말인가?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내가 있는 위치와 내가 가야 위치를 연결시킨 경로를 보았다. 그러자 차로는 40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이 서울 남동쪽이라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 했다. 잠시 고민 가는 방법을 도보로 바꿔보았다. 그러자 12시간이 넘는 시간과 함께 걸어갈 있는 경로가 나타났다. 12시간이라.. 지난 3년간 집에서만 지내서 몸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걸을만한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레까지 가기로 했으니 너무 힘들면 중간에 하루 쉬었다가 가면 된다.

 

잠시 자전거를 타고 생각도 하긴 했지만 그러려면 자전거를 사야 했다. 돈도 문제였지만 왠지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걸어가면 중간에 하루를 자야 하긴 하지만, 요즘엔 사람이 아예 없는 무인 모텔들이 제법 있어서 잘만한 잠자리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작은 운도 따랐다. 오늘이 10 23일이니 날씨가 한참 좋을 때였다. 걸을 그리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춥지도 않을 날씨일 것이다. 나는 일단 화장실로 갔다. 뜬금없긴 하지만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그간 미용실도 한번 가서 한없이 지저분한 머리가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 머리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머리가 길다 보니 전체적으로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집에만 있는 동안 매번 인터넷으로 주문한 즉석식이나 혹은 배달 음식만 시켜 먹다 보니 건강도 많이 상했고 그로 인해서 머릿결이 철사 줄처럼 빳빳해졌다. 잘못하면 뚝뚝 끊어질 같은 머리를 정리하는 내내 마음 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지금 나에게서 분리된 몸의 일부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힘들지만 최대한 단정하게 잘라보았다. 하지만 당연히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 전의 모습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면도도 정성스럽게 했다. 피부도 심하게 거칠었지만 당장은 해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서 그런지 살은 그리 찌지 않았다. 오히려 체중은 조금 줄었다. 물론 배가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3 전까지 입었던 옷을 입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머리를 정리하고 정말로 오랜만에 외출복을 꺼내 입어봤다. 과거 회사를 다니던 모습하고 비교하면 많이 초라하지만, 정도면 초면이라고 해도 그리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나는 다시 옷을 집어넣고는 오랜만에 다음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봤다. 내일 아침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집에서 10시쯤 출발하면 같았다. 가는 동안 식당에 들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긴 힘들듯 하니 그냥 가는 동안 먹을 것은 집에서 최대한 준비해서 가야 것이다. 중간에 라면이라도 끓여먹게 버너라도 챙겨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다. 컵라면은 이미 집에 넘쳐나니 챙겨 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확실치 않지만 가는 경로에 가끔 식수대가 있을 테니 물은 거기에서 조달하면 것이다. 만약 예상과 달리 식수대가 없다면 정도는 편의점에서 사면된다.

 

오래 걷다가 보면 지칠 있으니 초콜릿도 준비해야 것이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으려면 커피도 준비해야 것이다. 걷는 동안 지루할 테니 휴대폰에 음악도 잔뜩 준비해야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있는 이어폰도 찾아야 했다. 예전에 사두었던 제법 괜찮은 이어폰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가는 동안 돈도 필요할 테니 출발 전에 은행에 들러 얼마 남지 않은 돈도 찾아야 것이다. 뭐를 준비해야 할까? 약간의 걱정이 되긴 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 준비할 것을 생각만 하는 과정이지만, 오랜만에 낯설고도 그리운 감정 하나가 찾아왔다. 기대감라고 해야 할까? 흥분감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감정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다니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불안감도 함께 하고 있었다.

 

결국 간밤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비몽사몽 하는 사이에 새벽이 찾아왔고 나는 결국 6시쯤 견디다 못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떤 날보다도 오랫동안 열심히 몸을 씻었다. 아마도 뜨거운 물로 시간을 넘게 샤워를 모양이다. 그렇게 씻고 났더니 몸에서 열이 났다. 그리고 은근한 근육통과 함께 견디기 힘든 나른함이 밀려왔다. 지금 순간만큼은 때려치우고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어제 계획을 한대로 열심히 준비를 했다. 구석에 처박아 놓은 배낭을 꺼내서 내린 커피를 담고 냉장고에 있던 오래된 초콜릿을 챙겼다. 그리고 컵라면과 휴대용 버너 그리고 가스도 집어넣었다. 기왕에 이렇게 작은 돗자리도 하나 챙겼으면 했는데 예전에 쓰던 것이 눈에 띄질 않았다. 들을 음악은 어제 미리 준비해뒀고 이어폰도 이미 챙겼으니 이제는 출발만 하면 된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계를 보자 이미 9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이제 집의 앞에 섰다. 하지만 문을 쉽게 수가 없었다. 순간 원인 모를, 아니 사실은 알지만 모르는 하고 싶은 불안감이 나를 몸통을 휘감은 얼굴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저 잡고 있는 문손잡이를 밑으로 살짝 내리기면 하면 되는데, 내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쉬이 되질 않았다. 가늠할 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분이었을까? 분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이라도 지난 것일까? 사이 그리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났고 지금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짙은 두려움의 크기가 커져 여전히 혀를 날름거리는 불안함을 보이지 않게 완전히 덮어버렸을 때야 비로소 나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문을 있었다. 순간 눈을 찌를 듯한 아침의 밝은 햇살이 열린 문틈으로 들어와 집안 안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밝음이 어둠을 몰아내자 나는 그제야 조금 용기가 났다. 나는 혹시라도 누가 있을까봐 조심스럽게 밖을 살핀 후에 나에겐 금지된 엘리베이터를 애써 외면하고는 옆의 비상계단을 통해 1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얼마 만일까? 해가 있는 시간에 밖에 나온 것이. 나는 나도 모르게 잠시 멈춰 서서 팔을 들어서 손으로 해를 가려보았다. 그리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최대한 펼쳤다. 그러자 손의 떨림에 따라 햇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상태로 멍하게 한참을 있다가 뒤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팔을 거두고는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내가 방금 내려온 12층의 계단을 다시 거꾸로 올라갈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순간 내가 연어도 아니고 이곳에 다시 거꾸로 올라야 하지? 하는 실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예 처음부터 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을 이용해서 이동하기로 계획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대통령이 나라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은 덕에 그것이 가능했다. 사람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어떻게든 한강까지만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양평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자전거 길을 이용할 있었다. 당연히 힘들긴 하겠지만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쉬다가 배고프면 먹으면 된다. 사실 어제 하루 종일 그것만을 생각했다.

어제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은 그간 불행들로 인해서 이미 심하게 패이고 무너진 길을 모두 무사히 통과해서 나에게 도착할 있는 행운일까? 아니면 완전히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깊은 바닥이 있다는 절망을 깨닫게 되는 불운일까? 제발 행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대만큼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소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두삼씨 이야기 - 4  (0) 2020.01.13
김두삼씨 이야기 - 3  (0) 2020.01.10
김두삼씨 이야기 - 1  (0) 2020.01.04
죽음경험자 - 5  (0) 2019.06.27
죽음경험자 - 4  (0)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