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감정의 가격

아이루다 2019. 12. 24. 08:56

 

 

최근에 미국에서 한 유명한 야구선수가 사용했던 나무 배트가 한 경매장에서 12억이란 가격으로 낙찰 되었다. 그 유명한 야구선수는 '베이브 루스' 이며경매된 배트는 그가 통산 500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사용했던 것이다. 그 일은 100년 전쯤인 1929년도 8 11일날 일어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배트는 원가로 따지면 지금 시세로 10만원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록을 세운 배트이기에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그 배트는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게 된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무의미해 보인다. 야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베이브 루스라는 선수가 얼마나 대단하며그런 그가 특별한 기록을 세웠던 순간에 쓰인 배트의 가격이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가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런 오래된 나무 배트 따위를 12억에 사다니 진짜 돈지랄이다, 라고 비하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12억을 줘도 아깝 않는 배트가 누군가에겐 천원도 아까운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경매가 된 배트는 기본적으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그 배트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끼리 매겨진 가치라는 뜻이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물건들이 이런 식으로 가격이 부여되곤 한다. 아무리 비싼 미술작품이나 골동품 등도 결국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가격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이 붙으면서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배트의 가격이 12억이 되는 이유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확하지는 않다. 그런 배트에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는데,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가치를 느끼는 것일까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가치를 왜 그들만 느끼는 것일까?

 

베이브 루스가 위대한 선수라서? 500홈런의 기록이 대단한 것이라서? 물론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은 자신이 대상에 대해서 특별한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가치화 시키며, 그 가치가 바로 대상에 대한 가격으로 매겨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결국 감정의 가치인 셈이다.

 

그리고 그럴 때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소중함'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그것의 값어치를 높인다. 듣고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잠시만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꽤나 애매한 흐름이다.

 

감정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을 기반으로 해서 대상 물건의 값을 정한 것이기에 그렇다. 원래 가격은 누구나 그럴 만 하다고 느껴지는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 , 어떤 물건의 가격은 객관적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너무도 주관적인 기준점인 감정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한다. 그리고 운이 없다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여기는데 너는 왜 그렇게 느끼지 못하냐고 따진다. 혹은 너는 왜 내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냐고 서운해 한다그럴 때마다 마음 속에서 상대에 대한 서운함, 분노억울함과 같은 감정들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너무도 주관적인 감정은 당연하게도 개인의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누군가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은 그 당사자에게만 의미 있다는 뜻이다. 운이 좋게도 다른 누군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저 운이다.

 

어떤 집의 아이는 그 집에서 너무도 소중한 아이이지만 그 아이의 소중함은 그 집에서만 유효하다. 그 아이를 통해서 행복한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운 좋게 그 아이를 예뻐하는 이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웃에게는 오히려 경쟁자이거나 귀찮은 존재일 수 있다.

 

비슷하게 어린 시절부터 자라서 오래된 집에 대한 소중함,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반지, 평생을 써 온 일기장, 평생을 함꼐 한 배우자 등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만약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된다면 바로 홈런을 친 배트와 같은 가격이 매겨질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해당 물건을 가진 당사자가 베이브 루스처럼 엄청나게 유명인사가 된다면 모를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원리는 비단 500홈런을 친 배트나 피카소가 그린 그림, 오래된 고려 청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화장지나 비누 그리고 냉장고와 같은 생필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값어치를 인정하기에 꽤나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생필품의 가격이 정해지는 원리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그때는 단지 가격을 결정하는 주된 감정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돈으로 어떤 제품을 산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돈과 제품을 맞교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행위 자체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아주 오래된 착각이다. 그 누구도 돈과 제품을 맞바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돈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바로 '만족감' 이다.

 

, 나무 배트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소중함' 이라면 냉장고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만족감' 이다. 그리고 이 둘 모두 공통적으로 '감정의 가격'을 통해서 가치가 매겨지고 있다. , 소중함이 클수록, 만족감이 높을수록 대상의 가격은 높아져도 된다.

 

또한 소중함이란 감정도 넓게 보면 만족감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크게 보면 행복이 된다. , 사람들은 돈과 행복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만약 돈을 썼음에도 제대로 된 행복을 얻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매우 단순하다. 불만족스럽게 되고, 만약 그것을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매우 심기가 불편하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특히 지불한 돈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그렇게 된다.

 

이 원리로 인해서 돈과 행복이 완벽한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은 많지만 불행한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 진짜로 행복한 사람은 가지 돈을 쉽게 행복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의 조건은 돈이 기본이긴 하지만 가진 돈을 쓰고 싶은 곳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그 순간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 한번 돈을 쓸 때 충분한 시간만큼 행복할 수 있어야 돈이 버텨나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돈을 쓰는 순간만 행복한 사람은 제대로 행복하기가 힘들다. 돈을 쓰는 것 자체도 일종의 노동이기에 때문에 돈을 쓰는 행복만 추구하다가는 지쳐서 쓰러질 수도 있다. 한번 돈을 쓸 때마다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돈으로 제품을 산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제품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이 바로 '가격'이다. , 싸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믿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무의식적으로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왜 이런 착각이 일어날까? 도대체 처음부터 돈으로 만족감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얼마나 싸게 해당 제품을 샀는지 여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일까?

 

물론 싸게 산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같은 제품이라면 싸게 사는 편이 만족감을 얻기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산 제품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사실 가격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가격만을 이야기 한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중함이든 만족감이든, 그것들은 모두 각자 개인적인 입장에서 느낀 감정이기에 그렇다. , 누군가 12억에 나무 배트를 샀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큼 그 나무 배트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만약 반대라면 축하보다는 오히려 '도대체 왜 그런 것을 사지?' 라는 표정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만족감을 이야기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집에 값비싼 가구를 들여놨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만족감은 다르기에 아무리 여행의 만족감과 가구에 대한 만족감을 이야기 해봐야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똑같은 여행을 꼭 가보고 싶었던 사람이나 똑같은 가구를 꼭 사고 싶었던 사람에게만 그 만족감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에는 '왜 그런 것을 했어.. 돈 낭비한 것 같다' 라는 표정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다행히 그것을 대 놓고 표정 짓는 사람들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그런 표정을 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그 자신도 여행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이야기 하거나 가구를 사서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말하지 못하고 얼마나 싸게 그것을 샀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게 된다. 원래 백만 원이었지만 운 좋게 세일기간에 가서 50만원에 샀다고 하면 다들 잘 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제품을 사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지는 아무리 설명해봐야 제대로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기계적으로 끄덕이는 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가격만 얘기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놀랍게도 실제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 원인은 원래부터 그 제품을 자신이 꼭 사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뭔가를 사면 만족감을 얻는다는 공식 때문에 만족감이 아닌 소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생겨난 이유이다.

 

필요한 이유가 없는데 그저 행복하기 위해서 산 것이다. 그러니 결국 실제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싸게 샀다는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런 소비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샀을 때도 똑같은 시선으로 본다. 그 사람이 산 제품이 필요해서 샀다고 여기지 않고 싸서 샀다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가격만 물어본다.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면 얼마에 갔는지, 뭔가 먹었다고 하면 얼마에 먹었는지, 어떤 제품을 샀다고 하면 얼마나 싸게 샀는지만 묻는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결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돈으로 제품을 산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돈으로 사는 것이 어떤 제품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감정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단순한 진실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돈으로 물건을 사고 있다고 믿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격을 객관적 진실이라고 여긴다. 결국 자신의 감정을 통해서 매겨진 가격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통해서 그 가격을 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집안에 있는 가장 고가의 제품과 가장 유요한 제품은 서로 다르다. 가장 많이 쓴다고 가장 많이 비싼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가장 비싸다고 해서 가장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진짜로 돈을 제품을 산다면 제품의 가격은 오직 유용성으로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세탁기나 냉장고 등이 가장 비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별로 유용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나 명품 가방 그리고 손목에 찬 시계가 가장 비싸다. 훨씬 쓸모 있는 마늘 빻는 방망이보다 베이브 루스의 배트가 비싼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어떤 제품의 가격에 대한 판단 기준점은 오직 내 감정인데, 그렇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잣대를 상대방에게도 동일하게 들이 댄다.

 

이런 일로 인해서 가치에 대한 충돌이 일어난다. 누군가 자전거를 사는데 천만 원을 쓰든지, 누군가 명품 가방을 사는데 천만 원을 쓰든, 누군가 여행을 하는데 가진 돈을 거의 다 쓰든, 누군가 좋은 주방기구에 수천 만원을 들이든, 누군가 오직 맛난 것을 먹기 위해서 해외여행을 하고 오든 모두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만족감과 바꾼 것인데 그것을 나의 기준점으로 판별한다.

 

그래 놓고는 너는 쓸데없는 돈을 썼다, 너는 참 알뜰하게 돈을 썼다 라고 한다.

 

마약을 하는 등의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데 돈을 썼다면 모를까 그 외의 경우에 자신이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하든 왜 상관을 해야 할까? 그저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만족감과 바꾼 것인데 말이다.

 

이때 조언을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하나뿐이다. 그 돈을 들여서 맞바꾼 만족감이 충분히 행복한 수준인가? 라는 것이다. 사실 개인이 가진 욕망이 너무도 뒤틀린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것만큼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써도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 외엔 자신의 돈으로 자신만의 만족감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도 할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 공유하려고 해도 딱히 재판관이 되어서 돈을 제대로 썼는지 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당사자가 만족스러워 하면 박수를 쳐주면 될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물건의 가격인 어떤 경우에도 객관적일 수 없다. 오직 주관적인 감정으로만 가격이 매겨진다. 그런데 이 말은 모든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라는 말의 조금 다른 표현일 뿐이다. 돈으로 소중함과 만족감을 사고, 그 감정들이 바로 행복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의 종류는 서로 각자마다 다르다, 모두 같은 것을 가지고 행복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돈의 쓰임새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저 각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돈을 쓰면 된다.

 

이것만 확실히 알고 이해하면서 살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싸게 쌌는지 남들 앞에서 말하거나, 남이 구매했다고 말하는 제품에 대한 괜한 참견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참견을 하려고 하는가? 사실 해서 좋을 것도 없다. 이미 돈과 교환이 끝난 후엔 그냥 축하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그 사람은 행복하려고 샀고, 행복해졌으니 그 행복을 기뻐해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그야말로 떡이라도 하나 더 얻어 먹을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저 그 사람이 얻은 행복에 질투심을 느끼고 있는 것뿐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0) 2021.02.25
둔한 사람 증후군  (0) 2020.12.29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람들  (0) 2019.12.09
민감함이란 것 - 센서티브  (0) 2019.11.11
감정 민감성  (0)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