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감정 민감성

아이루다 2019. 10. 13. 08:10

 

손원평씨가 쓴 아몬드』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한 권 있다그리고 이 소설은 알렉시티미아라는 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다. 알렉시티마미아라는 이름을 가진 증상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감정표현 불능증' 인데, 아동기에 어떤 문제로 인해서 편도체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해서 특정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특정한 감정이 바로 공포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된 해석을 했다.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알렉시티미아라는 증상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이해한 문제이며, 작가 자신이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인지를 하지 못한 것만이 문제일 뿐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 증상을 편도체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특정한 감정만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는데 사실 공포는 특정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감정의 뿌리이다.

 

공포는 두려움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그러니까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단지 두려움만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다.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두려움이 모든 감정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기에 분노하고, 짜증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질투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두려움이 없다면 처음부터 이 모든 감정은 생겨날 수 없다. 사실 소설 속 주인공도 실제로 그런 식으로 묘사가 된다. 작가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증상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은 정말로 거의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가 된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한글로 해석된 문구 그 자체이다. 이 증상은 '감정표현 불능증'이 아니다. 이것은 '감정생성 불능증' 이다. 그러니까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성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표현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표현 불능증은 느끼지만 어떤 문제로 인해서 제대로 표현이 안 되는 증상이다. 그렇지만 이 증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기에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못 쓰는 사람과 돈이 있지만 안 쓰는 사람의 차이이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은 감정에 대한 민감성이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무척 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둔한 수준을 한참 넘어서서 없는 수준이라서 문제가 된다. 사실 둔하기만 해도 그냥 살아갈 만 하다. 더해서 가끔은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들은 감정이 너무 민감해서 생겨날 수 있다. 별 일 아닌 일에도 자꾸 나쁜 감정들이 생겨나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 그 자체가 생겨나지 않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영화 AI 속의 아이처럼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이다. 그래서 로봇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소설 속 아이처럼 신체적 문제가 생겨서 감정이 둔감해진 경우 말고 사람들마다 감정 민감성이 모두 다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일까? 왜 감정적으로 둔한 사람이 있으며, 감정적으로 아주 예민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민감하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둔하거나 민감한 것은 서로 뻔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미각이 민감하면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한다그렇지만 맛난 음식을 정말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반대로 미각이 둔하면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지만 맛없는 음식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비슷하게 느끼기에 먹는 행복을 경험하기가 힘들다.

 

감정도 동일하다. 둔하면 좋은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없지만 나쁜 감정도 많이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많이 행복하지는 못해도 덜 힘들게 살 수 있다. 예민하면 아주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금부터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감정 민감성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너무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그것을 모두 제대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아주 큰 요소들만을 고려해서 생각해보자.

 



 

::능력과 성격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

 

위의 그림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민감도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도식화를 한 것이다. 가로축은 타고난 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같이 써 놓은 외모, 지적능력, 신체능력은 상호 보완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을 도식화 시켜서 그릴 방법은 없다. 그리고 더해서 다른 능력들, 예를 들어서 음악적 재능, 미술적 재능과 같은 것들도 얼마나 잘 타고 났느냐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것까지 다 고려할 수는 없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능력 수치가 높아진다.

 

세로축은 타고난 기질과 자라난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성격을 의미한다. 주로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얼만큼이나 감당할 수 있느냐 여부를 표시한 것이다. 두려움을 감당하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감당하는, 욕망의 실현을 통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감당하는, 책임감에 의한 방법이다이 둘을 구분해야 하긴 하는데 이 또한 구분해서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위쪽으로 갈수록 자신의 두려움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다.

 

이런 가정 하에서 나타나는 네 가지 유형을 알아보자.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유형들이 나타나지만 그것을 다 고려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1) 무기력한 삶: 두려움을 감당하고 살긴 하는데 그것을 주로 책임감으로 감당하는 유형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을 강하게 갖게 되었기에 생겨나는 유형인 셈이다. 그래서 힘들긴 하지만 자신의 몫 정도는 감당하고 살아간다.

 

문제는 딱 거기 까지란 점이다. 자신과 지신이 책임질 몫까지는 하고 살지만 그것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에 한다. 그래서 삶이 기본적으로 우울하다. 책임감에 억눌려 있어서 내가 행복한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맡은 일을 잘 해내려고만 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하고 삶 자체가 일종의 고난의 행군이 되고 만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감정 자체가 둔화된다. 왜냐하면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서 주로 참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만약 감정이 계속 민감할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결코 견뎌낼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바뀌어 버리고 만다. 물론 참다 참다 못하고 터질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시장에 내 놓은 강아지처럼 그렇게 멍하게 살아가게 된다.

 

자기 몫은 하고 살지만 매력도 별로 없고 존재감도 거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서 딱히 그 삶을 칭찬하지도 않는다이 상황이 심각해지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며 평소에도 특정한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야말로 아침마다 눈을 뜨니 꾸역꾸역 살아가는 유형이다.

 

 

(2) 생동감 있는 : 네 가지 중에서 가장 행복하며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삶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그에 못지 않는 성격을 가진 유형이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며 무엇을 해도 즐겁고 에너지 넘치게 해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삶이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하면서 사는 것에 비해서 동일한 해야 할 일조차도 하고 싶은 일로 바꿔서 즐겁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의 기본엔 타고난 능력치가 크게 작용한다. 뭘 해도 남들보다 잘하니까 해야 할 일조차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난이도가 높을수록 더 그럴 수 있는데, 그런 일을 제대로 잘 해낼 경우 주변에서 많은 찬사를 얻을 수 있어서 그렇다.

 

어디에서나 존재감이 충만하며 그 에너지로 인한 밝음으로 인해서 매력도 충분하다. 특히 그 능력치가 높은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그런 경향이 강해지지만 운이 나쁘게 특정 능력 하나가 심하게 나쁠 경우 오히려 정반대의 삶을 살아갈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좋은 머리를 타고났지만 외모가 너무 좋지 않거나 운동능력이 너무 부족한 경우가 그렇다. 이것은 남녀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데, 남자는 주로 운동능력이 여자는 주로 외모가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여기에 속할 수도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나지 못한 능력 문제로 인해서 오히려 가장 최악의 경우엔 (3)번 유형으로 떨어지게 된다.

 

 

(3) 피해의식이 가득 찬 삶: (2) 유형이 최고의 삶이라면 (3)번은 최악의 삶이 된다. 스스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다는 욕구는 가득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책임감이 부족하고 당연히 타고난 능력 자체가 부족하다. 그래서 삶이 매우 부정적인 형태가 되고 만다.

 

그로 인해서 감정 민감성이 가장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주로 나쁜 감정에 대해서 그렇게 된다. 자기 혐오가 심하고 타인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최대치로 발달하게 된다. 그러니까 삶의 매 순간마다 누군가를 탓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뭔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반성하고 더 노력해서 나갈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나를 탓하거나 남을 탓하면서 살아간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속해있는 유형이다.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해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누군가가 감정이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고 할 때 여기에 속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그런 면으로 인해서 장점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불행을 아주 빠르게 감지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 불행의 일을 겪는 모습을 보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 중 일부에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서 상대적 행복을 즐기는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엔 그래서 더욱 더 민감하기도 하다.

 

 

(4) 명랑한 삶: 흔히 말하는 밝은 사람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 부족하기에 철이 없다. 그리니까 (2)의 경우와 같이 밝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의 밝음이다. 그래서 언제라도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금세 뒤로 물러서서 울고 만다. 그럼에도 조건만 되면 매우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특히나 능력치 중에서 다른 능력치들은 좋으나 지적능력이 떨어질 경우 생겨나는 유형으로, 여자의 경우 예쁘지만 백치미를 가졌거나, 남자의 경우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졌지만 머리 속에 든 것이 하나도 없는 깡통 같은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유형이 여기에 속한다. 그럼에도 예쁘거나 운동을 잘해서 인기가 많긴 하다.

 

기본적으로 성격 자체가 끈기가 부족하고 의지력도 약하며 겁이 많아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두려움을 결코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해서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처럼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갖지 못한 밝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동경이 대상이 되며 (3)번처럼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 능력은 부족한데 단순하게 외모가 좋거나 운동을 잘해서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비난이나 혹은 무시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그래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3)유형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여자의 경우엔 운이 좋게 부모와 같은 남자를 만나서 살게 되면 평생 남자의 그늘 아래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남자의 경우엔 자신이 타고난 운동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 그러니까 운동선수가 되어서 살 수 있다면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감정 민감도::

 

위의 그림은 네 가지 영역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속하는지를 표현해주고 있다. 순서적으로 보면 (3), (1), (4), (2)가 된다. , 이 세상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적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더 좋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이유가 된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심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부정적으로 대한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스스로를 함부로 대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남을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극단적인 사람들, 심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결국 그 안에 자신에 대한 깊은 분노와 미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다른 사람에 대한 악의에 가득 차 댓글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대하듯 남을 대한다. 그러니 남에게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결코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 민감성 관점에서 보면 그 순서가 (3), (1), (2), (4)이 된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사람들이 감정 민감성이 가장 높고명랑한 사람들이 감정 민감성이 가장 낮다. 일명 둔한 사람이 된다하지만 겉으로만 보면 (1)번 유형인 책임감으로 사는 사람이 가장 감정 민감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느끼지만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감정표현 불능증에 가까운 사람들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이유로 강한 압박감에 의해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게 막혀버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보통 주로 장녀나 장남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 받고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것을 장남이나 장녀라는 이유로 억지로 차단당했기 때문에 나타난다. , 감정을 느꼈지만 가장 중요한 존재인 부모로부터 부정을 당한 것이다. 그러니 상처를 받고, 상처를 받기 싫으니 알아서 미리 자신의 감정을 차단시켜 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4)번 유형인 머리는 나쁘지만 다른 장점이 많아서 명랑한 사람들은 주로 밝은 감정을 많이 느껴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해도 공부를 통해 알 수 있는 방법도 있긴 한데 운 없게도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 책도 잘 읽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타인에 대한 감정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게 된다.

 

(2)번 유형도 (4)번과 비슷하긴 한데, 이들은 지적능력이 충분히 되어서 간접적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장점이면서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 어떤 문제로 인해서 고민을 하고 있으면 그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의문이 생긴다.

 

'왜 저러고 있지?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서 노력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다. 자기 자신은 그럴 수 있기에 그렇다. 자신은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능력도 되고 성격도 되니까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그런 부정적 태도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노력해서 처리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회피해놓고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 (3)번 유형의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말 그대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더해서 속상해서 한 얘기를 듣고는 그냥 듣고 넘기면 되는데 자꾸 해결책을 제시하는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의도에는 맞지 않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들 세계에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면 여자 무리로부터 왕따을 당할 수도 있다.

 

결국 부정적 감정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 민감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것일까? 사실 여기엔 아주 커다란 착각 하나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만 공감을 받으려고 하기에 긍정적 감정에 대한 민감성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생겨난 착각이다.

 


 

::감정 민감도의 진실::

 

위의 그림에서 네 가지 유형의 좌우 길이는 감정 민감도를 상징한다. , (2)번과 (3)번이 가장 감정 민감도가 높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3)번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3)번은 부정적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것이고 (2)은 긍정적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것이다.

 

부정적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것은 쉽게 불행해지는 사람이다. 반대로 긍정적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 한쪽은 조금만 나쁜 일이 일어나도 크게 한숨을 쉬고 불안해 한다면 다른 한쪽은 아주 작은 좋은 일에도 크게 즐거워한다. 또한 반대로 한쪽은 크게 좋은 일이 일어나도 언제 또 불행이 닥칠지 몰라서 걱정을 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큰 불행이 일어나도 힘들지만 극복할 생각만 가득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주로 나쁜 감정을 말하면서 공감해주길 원하기에 나쁜 감정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2)의 유형을 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다. (2)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긍정적 감정 영역에서 매우 민감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결국 좌우 길이가 계속 늘어나 부정적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 인격적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3)에 속한 사람들은 평생 그 늪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아주 큰 계기가 없는 한 점점 더 쪼그라들어서 결국 못되게 늙게 된다.

 

(1)번 유형의 사람들은 살아가 보면 결국 한번쯤 터지게 되어 있다. 평생 책임감만 다하다가 끝없이 배신을 당하기 때문이다. 보통 책임감을 어느 정도 다한 50대쯤 일어나는데, 그 시기만 잘 견뎌내면 그 후의 삶은 나름대로 괜찮을 수도 있다.

 

마지막 (4)유형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운 좋게 좋은 사람을 잘 만나 살면 평생 철들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특히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경제적으로만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단지 운이 나쁘게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견디지 못하고 삶 그 자체가 망가져서 어느 날 갑자기 극단적으로 (3)번 유형이 되기도 한다. 사실 (3)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는 다 (4)에 속해 있었다.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한계를 넘어보기::

 

위에서는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지만, 사실 사람들을 이렇게 단순하게 유형별로 나눌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서 이타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강하냐 여부도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자신이 자라난 문화적 환경도 매우 크게 작용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3)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4)의 유형의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강한 사회일수록 이기적인 성향이 더 잘 나타나고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더 자주 느낄 수 밖에 없다. 끝없이 비교와 경쟁을 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에 (3)의 유형에 속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이다. 단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을 핑계 삼아서 살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결국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 유형별로 어떻게 해야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정도를 이야기하고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1)번 유형은 자신을 짓누르는 과도한 책임감에서 최대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단 한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사람도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이다. 우리는 모두 오직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책임은 다하되 자신을 억누르는 수준까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사실 자신이 책임감을 다하려는 이유는 책임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그저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런 것뿐이다. 그러니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을 단순히 칭찬으로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변화는 거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2)번 유형은 타인의 감정을 잘 공감해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자신이 그리 잘난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을 때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살펴야 할 것이다. 사실 누군가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운 좋게 많은 것들을 타고나서 그런 것뿐이다.

 

만약 얼굴에 크게 상처를 입어서 외모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머리를 다쳐서 예전처럼 머리가 좋지 못해도 여전히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저렇게 살지'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 운 좋게 그런 이해를 할 수 있는 능력도 타고 났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3)번 유형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실은 남을 비난하는 모든 말은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매일 매 순간 남들을 헐뜯고 뒷담화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흔한 말로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한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결코 남을 보지 않는다. 늘 남을 통해서 나를 본다.



 


다 떠나서 평생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고 살아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운 나쁘게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있겠지만, 그것들 때문에 자신이 가진 다른 장점들을 모두 아무렇게나 방치할 필요가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사실 크게 뛰어나지 않을 뿐, 누구나 괜찮은 장점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무리에 속해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괜히 잘 하지도 못하는데 잘난 무리에 속하고 싶어서 용꼬리가 되어서 불행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뱀머리가 되어서 사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나마 젊은 시절엔 노력이라도 하면 좋지만 나이를 먹고도 계속 그렇게 살면 안 된다나이를 먹을수록 남은 삶도 점점 줄어드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남을 평가하는데 쓰는 것은 너무 아깝다.

 

(4)번 유형은 딱히 해줄 조언이 없다. 그리고 이런 글을 읽을 일도 없으니 조언을 해줄 필요도 없다. 단지 평생 (4)번으로 살다가 나이를 먹고 외모가 떨어지고 운동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서 삶이 점점 불안하고 우울해졌다면, 자신이 이제 서서히 (3)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긴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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