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둔한 사람 증후군

아이루다 2020. 12. 29. 08:52


살다 보면 둔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둔함은 처음부터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후에나 상대가 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둔함은 생각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장점으로 인해 둔함이 쉽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뭐든 잘 먹는 사람은 맛에 둔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해준 요리를 늘 맛나게 먹으면 그것을 둔한 것이 아닌 자신의 요리가 맛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은 같이 식당에 갔다가 맛이 너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대는 여전히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볼 때이다.

 

이런 감각기관의 둔함 말고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둔한 사람은 보통 감정에 둔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정에 둔한 사람들은 좀처럼 감정기복이 없다는 장점과 감정적 반응이 별로 없어서 재미가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둔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감정변화에 둔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 변화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눈치 없게 굴게 된다. 더해서 상대가 자신을 향해 부정적 감정들, 그러니까 은근히 비아냥대거나 비꽈도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들과 살면서 기분이 나빠질 일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정적 감정들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는 편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질투심, 열등감, 자괴감 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을 하다니 너 참 대단하다' 라는 말은 그냥 칭찬같이 들리긴 하지만, 어투에 따라서 비꼼이 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 비꼼에는 질투심이나 열등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둔한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진짜 칭찬과 비꼼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진짜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작 상대는 자신의 비꼼을 칭찬으로 알아듣고 웃는 둔한 사람을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게 된다.

 

아무튼 둔한 사람들은 이런 식의 감정반응으로 인해서 당연히 감정적으로 매우 안정적으로 된다. 우리의 감정은 보통 상대방의 감정에 따라 널뛰는 편인데, 둔하게 되면 상대방이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지루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재미란 수 많은 감정의 교환 과정이다.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수 많은 감정들을 주고 받으면서 재미와 즐거움이 생긴다. 이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상대가 졌을 때 분하다는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심지어 그리 분하지 않더라도 그런 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를 할 때 정말로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어떤 척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읽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는 것,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자랑하면 부러워해주고, 아까워하면 위로해주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지고, 억울해 하면 같이 분노해주고, 기뻐하면 같이 즐거워해 줘야 한다. 별로 안 부럽더라도, 별로 아쉽지 않아 보이더라도, 별로 슬픈 일 같지도 않더라도,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닌 것 같더라도, 딱히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감정들을 대놓고 표현하지 않는다. 특히 자랑할 때 그렇다. 너무 대놓고 자랑을 하면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심을 유발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자랑에 적당히 불만을 섞는다. 우리 남편은 너무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해, 우리 아이는 너무 책만 읽어, 내 얼굴은 너무 하해서 귀신 같다. 나는 머리가 너무 작은 것 같아 등등의 표현을 한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눈치가 빠른 사람은 '요즘은 요리 잘하는 남편에 최고래' 라는 식으로 적당히 부러워해주면서 넘긴다. 그런데 둔한 사람들은 상대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을 그대로 해석하고 만다. 그래서 '그러게, 남편이 너무 집안 일에 끼어들면 불편하지', '그러게, 애들은 밖에서 놀아야 하는데', '그러게, 얼굴이 너무 하야면 피부암에 잘 걸린다던데' 하면서 진짜로 걱정해준다.

 

그리고 그런 진짜 걱정은 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런 식으로 둔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문제를 겪게 된다. 그리고 더해서 자신의 감정에도 무뎌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차곡차곡 쌓인 감정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이다.

 

살아오면서 듣게 되는 수 많은 비아냥과 비꼼 등의 말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다가 어느 날 문득 상대방이 너무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난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 순간 과거에 그 사람이 했던 수 많은 말들이 동시에 밀려오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별일 아닌 것에 갑자기 폭발을 하는 일이 생겨나게 된다.

 

둔한 사람은 감정기복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둔하다고 해서 다 지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둔해도 분명히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둔한 사람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유 역시도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변화을 잘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다.

 

딱히 기분 상할 일이 없으니 혼자서 기분 좋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살아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경우이다. 말이나 행동을 센스있게 잘해서 재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살기 때문에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흥에 겨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삶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매력이다. 특히 외모적 매력이 중요하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혼자 즐겁게 살면 주변 사람들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즐겁게 살아도 다들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외모적 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주로 말이나 행동으로 재미있는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웃길 줄 알아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들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좀 더 본질적인 면을 알아보자. 둔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둔할까?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조차도 잘 모를까?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둔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억누른 경우이다. 여기엔 남자라는 책임감에 억눌린 남자들이나 가족부양의 책임감에 억눌린 장녀가 포함된다자신의 욕망보다 해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끝없이 자신의 감정을 둔하게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된다.

 

책임을 다하려면 뭐든 성공해야 하며, 뭐든 성공하려면 이겨야 한다. 그렇게 세상은 싸워야 하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그런 전쟁터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냉정함이다. 냉정하다는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흥분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며, 최대한 자신을 감정적으로 둔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포커 페이스를 갖는 것이 꿈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 경우는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지만 스스로 무시하는 경우가 된다. 그러다 보니 남의 감정도 쉽게 무시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 세계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민감한 여자들을 만날 때 갈등이 생겨난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남편과 공감이 되질 않는다고 불만을 늘어 놓는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무시하는 남자는 여자의 감정 역시도 자잘하고 별 쓸모 없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여자가 표현하는 대부분의 감정들에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자가 화가 나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로, 처음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행복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돌을 모으는 것에 아주 큰 행복을 느낀다든지, 여행을 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든지, 뭔가라도 인간관계를 넘어서는 행복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엔 딱히 누군가와 어울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생각해 보면 아마도 각자마다 한 명 정도는 생각 날 수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존재하긴 한다. 이들은 스스로 밝아서 주변을 밝혀주는 사람이며, 혼자서도 잘 놀고, 어울려서도 잘 논다. 딱히 뭔가를 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 늘 비슷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뭔가에 확실하게 꽂혀서 그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좀 특이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특유한 밝음으로 인해서 둔한 것이 가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어울리다 보면 상대가 둔한 사람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둔함이 확실히 드러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밝은 분위기가 아니라 어두운 분위기가 되었을 때이다. 이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뿜어내는 부정적 감정들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아니 그 전에 그런 부정적 감정들 자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한다. 사람들 속에서는 밝고 명랑한데, 둘이 있으면 어색해지고 만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정적 감정들이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여러 명이 모인 모임이라고 해도 속마음을 말하기 시작하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을 무릅쓰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밝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꾸준히 연락을 해오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세 번째는 타고난 조건이 좋아서 그렇게 되는 경우이다. 쉽게 말해서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위치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딱히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상대방이 원하는 리액션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랑하면 부러워해주고, 슬퍼하면 위로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대부분 숨겨서 표출되기 때문에 하는 말만 들어서는 좀처럼 알아챌 수 없다. 표정과 말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상대가 원하는 감정반응을 해주려고 노력할까? 상대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해야 상대가 행복해지고, 상대가 행복해질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크다. 쉽게 말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의 감정에 형식적이라도 반응을 해주는 이유는 바로 내 이득과 관련이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만약 내가 딱히 상대방으로부터 얻을만한 것이 없고, 얻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상대방의 감정을 유추하는 것은 눈치를 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름 피곤하다. 그런데 얻고 싶은 것이 없다면 왜 굳이 눈치를 보려고 하겠는가?

 

특히나 어려서부터 잘나게 태어나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유추하려는 노력을 하지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예전에 귀족이나 양반은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종의 감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요즘도 사장님 앞에 선 직원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숨긴다. 그러니 속으로는 사장을 엄청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웃는다.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웃는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더해서 이미 잘나게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들, 질투심, 열등감, 피해의식, 억울함, 자괴감 등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표출할 때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니 공감 그 자체를 하고 싶어도 못하며, 스스로 자신이 공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도 알지 못한다. 사실 상상도 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보통 사람의 둔함은 눈치가 없다는 핀잔을 듣기 마련이지만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타고난 우월적 위치에 가려져서 둔함 조차도 오히려 장점으로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둔함이 쿨하거나, 감정 기복이 없거나, 일관성 있는 성격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거지를 볼 때 사람들은 자신도 운이 나쁘면 저런 거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지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불편함과 혐오감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외면하고 만다. 하지만 너무 잘나게 태어나게 되면 거지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마치 집에서 키우는 개와 같은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혐오감은 별로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것은 오직 연민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과 달리 거지에게 온정을 베풀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잘난 사람의 그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정이 넘치는 사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둔함과 잘남 그리고 그 잘남으로 인해 갖게 된 많은 돈이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그렇게 살다가 떠나게 된다. 그래서 평생 동안 자신이 둔한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자신의 둔함이 자신이 가진 능력과 배경에 의한 것이었음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마지막은 타고난 둔함이다. 그러니까 아예 성격적으로 둔한 사람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말이 아닌 표정, 태도, 말투, 몸짓 등으로 인해서 전달되어 오는 데, 아기들 조차도 그것을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본능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능력치는 차이가 많다. 그래서 매우 민감하게 잘 읽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둔해서 거의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민감한 사람은 너무 과도하게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다. 누군가 자신에게 조금만 부정적으로 행동해도 상대가 자신을 싫어한다든지 하는 해석을 해서 상처를 받고는 연락을 끊어 버린다. 반대로 너무 둔한 사람은 대놓고 비난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연락을 해 온다.

 

이런 둔함을 가진 사람은 주로 자기 자신에게 깊이 빠져 있다. 너무 자신에게 깊게 빠져 있어서 남의 감정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떤 상처를 받게 될까,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하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좋으면 하고, 내가 싫으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특징이 매우 심각해진 수준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아스퍼거증후군' 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이 나타나는 사람은 매우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으며,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이기적인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럴수록 나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증후군이 나타나는 사람은 오히려 반대이다.

 

보통 사람이 이런 증후군을 가진 사람과 만나게 되면 평생 속이 썩게 된다. 딱히 드러나는 단점은 없지만, 같이 살다가 보면 속이 터질 일이 끝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점은 분명히 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주는 말을 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받지 않아서 문제이기도 하다. 시키는 일은 고분고분하게 잘 하며, 꾸준하다. 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서 쓸데없이 인정받으려고 하거나,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일은 없다.

 

첫 번째 스스로 감정을 억누른 둔함은 후천적인 결과라서 인식하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두 번째 밝음의 둔함은 딱히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다. 그냥 속 마음을 말하는 모임엔 안가는 것이 최선이다. 세 번째 잘남의 둔함은 대부분의 경우 그 잘남에 의한 우월적 지위가 유지되기 때문에 거의 문제가 없다. 단지 그 사람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 좀 힘들 뿐이다. 네 번째 성격적 둔함 역시도 주변 사람만 잘 만나게 되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남자들 중에서는 첫 번째와 네 번째를 동시에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주변에 남자인 친구들이 다들 첫 번째에 해당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둔한 성격으로 태어나서 둔하게 사는 것이 괜히 남자라서 둔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둔한 사람보다 낫다. 적어도 왜곡된 성격은 아니라서 그렇다.

 

단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첫 번째의 유형은 특정한 기회를 만나 자신이 억지로 억눌렀던 감정을 해방시켜 원래 민감한 성격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하지만 네 번째 유형은 아예 타고나기를 둔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둔함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그 방법은 간접적으로 끝없이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없으니 끝없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 그것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써야 한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둔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살면서 가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본인이 둔한 것이 분명하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갑자기 화를 낼까? 저 사람은 왜 갑자기 나를 피할까? 저 사람은 왜 갑자기 나를 비난할까? 저 사람은 왜 갑자기 다른 사람 편을 들까? 이런 의문이 들어 본 적이 있다면 본인이 둔한 사람이 맞다. 보통 사람들은 당장은 혼란스러워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지만 둔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의문이다.

 

자신의 둔함을 인지했다면 이후로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가능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려고 노력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만, 꾸준한 노력을 하면 적어도 보통 사람 수준의 민감함을 가질 수는 있다.

 

민감함이 양날의 검이듯 둔함도 역시 전혀 다른 이유로 양날의 검이다. 표면이 거칠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미끄러지지는 않지만, 가끔 움직이게 되면 누군가를 심하게 할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거친 면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 길이 둔함이 가진 장점은 최대한 보존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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