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바쁜 하루..

아이루다 2020. 8. 29. 16:26

 

오후부터 소나기가 온다고 하더니 3시가 넘어가자 정말로 비가 온다. 비록 아침엔 해가 쨍해서 오랜 늦장마로 인해 한참 보기 힘들었던 햇빛에 말릴 생각으로 널어 놓은 빨래들은 아쉽지만, 비가 오니 하던 것들을 멈추고 그냥 집 안에 들어와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소파에 누워서 창 밖을 보니 지붕에 떨어진 빗물들이 무리를 지어 한 줄기로 떨어져 내리고 있고, 두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나무에 떨어진 빗방울들은 연속으로 나뭇잎을 치면서 묘한 리듬감을 일으키고 있다.

 

어떨 땐 하나만, 어떨 땐 둘, 어떨 땐 연속으로 셋이 움직인다. 너무 빨라서 그 잎들을 치고 내려간 빗방울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지만, 나뭇잎의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보일 듯 하다.

 

 

빗소리와 음악 소리는 왜 이렇게 잘 어울리냐고 좋아하던 아내의 말소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보지 않아도 잠이 든 것이 확실하다. 오후 3시, 아내의 비공식적인 낮잠 시간이다. 저렇게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그냥 갔음으로 인해 아쉬워하겠지만, 지금 아내의 눈꺼풀은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 와도 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비가 내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한 없이 여유로운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는 나름 바빴다. 

 

오늘 아침엔 5시쯤 눈이 떠졌는데 동쪽으로 난 창으로 너무도 밝은 별 하나가 보였다. 어제 저녁에도 비가 와서 별구경은 전혀 못할 것 같았는데, 그 별 때문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 보았었다. 하지만 하늘엔 그 별 하나만 보였다. 금성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동쪽 하늘만 잠시 열린 듯 했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컴퓨터를 켜고 지난 일주일이 넘게 미루던 일을 했다. 강의 자료를 녹음 하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힘이 없다. 부드럽게도 느껴지지만 너무 맥이 없는 느낌이다. 하고 나서 듣다가 포기를 했다. 스크립트를 써 놓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수정을 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되어 있었고 밖은 어느 정도 밝아져 있었다. 밖에 나가서 옥수수를 따왔다. 옥수수는 삶는 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 걸려서 일찍 삶기 시작해야 아침에 커피와 함께 먹기가 수월할 것이다.

 

 

옥수수 6개를 냄비에 넣고 삶기 시작하고는 다시 녹음을 했다. 이번엔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목소리가 낫다. 여전히 고질적인 발음의 문제가 느껴지지만 새벽의 첫 녹음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편이다.

 

녹음을 끝내고 그 내용을 정리를 하고 나니 훌쩍 8시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옥수수는 이미 다 삶아져 있었고 이제는 커피만 내리면 된다. 이젠 여전히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시끄러운 새소리가 났다. 그래서 창 밖을 보니 어치 무리가 근처에 있는 꽃사과 나무에 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어치다. 아내를 깨워서 빨리 내려와서 어치를 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왔을 땐 어치 무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나에게 괜한 원망을 했다.

 

내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중에 삶아 놓은 옥수수를 먹어 본 아내는 너무 맛이 있다고 호들갑이다. 좀 물러서 나에겐 이른 느낌이 드는 옥수수인데 아내는 그 정도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이보다 일주일 정도 더 익은 상태가 좋다. 그 정도가 되어야 찰옥수수 특유의 찰기가 느껴져서 맛이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지금 낌새를 보기에 지금 익고 있는 옥수수들은 오늘 정도로만 익은 상태에서 다 아내의 배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한담을 나누다가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옥수수도 보고 고추도 보고 지난 장마 내내 누웠던 대파들이 다시 일어난 모습도 보았다. 고추 몇 개를 따서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지난 주에 바르다 만 실리콘 바르기를 계속 했다. 큰 일은 아니어서 한 시간이 되지 않아서 끝이 났다. 그리고 난 후 요즘 삐걱거리는 소리를 많이 내는 문 밑을 끌로 갈아서 부드럽게 해주고 경첩 부분도 기름을 발라 줘서 소리가 덜 나도록 했다.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나니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치즈오븐 스파게티.

 

어제 산 양송이 버섯이 보이질 않아서 그것을 빼고 양파, 마늘, 베이컨을 올리뷰 기름에 볶다가 토마토 소스를 부었다. 그리고 삶은 스파게티 면에 섞은 후 오븐 전용 그릇에 넣고는 위에 치즈로 토핑을 했다. 그리고 난 후 오븐에 넣어서 200도 정도로 20분을 돌렸다. 그러자 맛나게 갈색 빛이 군데 군데 나는 스파게티가 완성 되었다.

 

안보다 밖이 시원해서 밖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엔 시원했지만 뜨거운 것을 먹다 보니 땀이 났다. 아내는 중간에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나는 귀찮아서 그냥 먹자고 했다. 이왕 땀이 났으니 어차피 샤워를 해야 할 것이다.

 

양이 꽤 많은 듯 했지만 먹성이 좋은 우리 둘은 바닥까지 긁어 먹었고 결국 과식을 한 상태에서 마무리 했다. 그 후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미뤄 놓은 관리기 정비를 했다. 별 것 아니고 장시간 쓰지 않기에 기름을 빼 놓은 작업을 해야 했다. 올해 처음 사서 아직 뭔가 많이 미숙하다.

 

다 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내가 냉커피를 내려 놓았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약간 더웠는데 찬 음료를 먹으면서 있어서 그런지 곧 시원해졌다. 잠시 또 오후 한담을 나누다가 아내가 갑자기 이번에 오면 머리를 깎자고 했던 일정을 생각해 냈다. 우리는 곧 머리를 깎기 위해서 준비를 했다.

 

아내가 내 머리를 깎아주기 시작한 것은 벌써 4년째이다. 처음엔 벌벌 떨더니 요즘은 나름대로 익숙하게 한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직접 깎지 못하는 뒷머리만 책임진다. 그리고 옆머리와 앞머리는 내 몫이다.

 

많이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내 머리 깎는 일을 끝냈다. 그런데 또 땀이 났다. 그래서 머리도 감아야 해서 겸사겸사 오랫만에 등목을 했다. 등목을 하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집에 나오는 물이 지하수인지라 제법 찼지만 시원했다. 아내는 긴 호수로 등목을 해주면서 세차를 하는 느낌이라고 하면서 깔깔댔다. 그 동안 세차를 한번도 안했으면서 그런다.

 

머리까지 다 정리하고 나서 잠시 한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비를 막는 천막 얘기가 나와서 같이 집으로 돌아와 쇼핑몰에서 검색을 했다. 그런 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급히 밖에 널어 놓은 빨래를 집 안으로 들여야 했다. 아마도 오늘 검색한 비가리개를 사서 설치하면 조금 덜 수고로울 것 같다.

 

몇 가지 더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그냥 안하기로 했다. 너무 할 일이 많다. 늘 그렇다. 그러니 비도 오고 하니 그냥 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머리 속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나니 급 마음이 편해졌다. 빗소리에 맞춰 음악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제 4시이다. 앞으로 잘 때까지 한참 더 남았다. 그 사이 뭘 더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옥수수를 한번 더 쪄야 할 듯 하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밤 시간엔 영화나 한편 볼까 한다.

 

내일은 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아직은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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