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텃밭 가꾸기

아이루다 2020. 6. 20. 10:53

사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큰 규모이다. 200평은 될 듯 하니까. 그래서 텃밭이긴 한데 노동의 강도가 좀 있다. 특히 봄철에 처음 밭을 갈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할 때 그렇다.

 

몇 년간의 고생과 그리고 몇 년간의 공백 그리고 올해부터 다시 시작한 텃밭에서 나는 가장 먼저 강력한 나의 도우미를 하나 구했다. 바로 관리기이다.

 

 

바로 이 녀석이다. 얀마에서 만든 YK300QT이다.

 

나름 고가인데다가 사놓고도 생전 처음으로 써보는 관리기라서 꽤나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땅을 갈아보니 그리 썩 시원치는 않았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하니 땅이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나중에 골과 이랑을 내어보니 제법 그럴 듯 하기도 했다. 꽤나 힘들긴 했지만 노력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오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급하게 텃밭을 일궈야 했기에 예전처럼 다양한 것들을 심지는 못했다. 옥수수, 고추, 대파 그리고 상추를 심었지만 심은 다음날 고라니 씨가 다 먹어 버렸다. 그래서 상추는 포기하기로 했다.

 

영월 고라니들은 착했는데 이쪽 횡성 고라니는 별로 안 착하다. 이 녀석들은 심지어 옥수수 입도 먹는다! 그래도 처음 심은 애들이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곳엔 예전 집과 달리 새로운 먹거리들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딸기와 오디이다. 딸기는 요즘 한참 한철이고 오디는 검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딸기는 너무 잘고 시다. 그래서 따는 족족 그냥 잼을 만들고 있다. 지난 주엔 방문한 지인 가족에게 한 병 선물로 주었고 오늘은 우리가 먹을 딸기잼을 만드는 중이다. 만들고 나면 대충 조리법이라도 올릴 생각이다.

 

오디는 아직 다 익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먼저 한번 먹어본 아내는 너무 달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먹을 것에 대해서 보통 사람 수준을 넘는 집착을 가진 아내가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맛나긴 한가 보다.

 

엄청 많이 열어서 다 먹지는 못하고 아마도 오디도 잼을 만들어야 할 듯 하다. 그래서 며칠 전 쿠팡에서 잼통을 여러 개, 여러 종류로 주문을 했다. 다음 주부터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잼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시골의 삶은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재미난 것은 바로 뭔가를 가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햇빛과 물 그리고 땅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잘 자라 그 결실을 맺었을 때, 그것을 먹는 행복은 참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다.

 

나는 관리기를 사고 땅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잡초를 제거해주는 노력을 하긴 하지만 사실 그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별 의미는 없지만, 굳이나 따지자면 그들이 자란 것에 내가 한 일의 권리는 1%도 채 되질 않을 것이다. 그저 난 살포시 숟가락 하나 얹고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자연 속에서 어울려 사는 법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배부른 소리이다. 내가 생계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밤에 찾아와 상추를 뜯어 먹는 고라니를 쫓아야 할 것이고, 수 많은 벌레들과 일명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을 죽여야 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생계로 하지도 않는데도 잡초는 뽑고 제초제를 쳐서 죽인다.

 

나는 나 나름대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입장에서는 몇 가지 노력이지만 어떤 생물들에게는 생과 사를 결정짓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참혹하기도 하다. 그리고 잔인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명체는 원래 경쟁을 하는 존재이다. 어떤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서만 내가 살아갈 수 있다. 잔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단지 생존에 별로 지장이 없는, 사실상 불필요한 욕망은 나를 위해서도 나를 둘러싼 자연을 위해서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소화 될 때 나는 비로소 내 나름대로의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서로 죽고 죽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삶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살아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죽어야 하는 삶이 된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내 존재의 의미가 된다. 나는 그들 중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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