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시간이 흐른다.

아이루다 2020. 5. 27. 07:02

다음에 블로그를 만든 때가 2008년이다. 벌써 12년 전 일이다. 그리고 만든 블로그에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때는 2012년도 1월부터이다. 햇수로만 보면 9년째이다.

 

뭐가 그리 응어리진 것들이 많았는지, 처음엔 글이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쓰이곤 했다. 그것도 꽤나 장문으로.

 

지금은 블로그 기능이 바뀌어서 안 보이는데 예전 다음 블로그엔 월별로 글을 쓴 내역을 보는 기능이 있었다. 대충 봤던 기억이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반부에 한달 동안 30편을 넘게 글을 쓴 기록을 본 일이 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 대단했던 열정이었다.

 

아니, 불안과 불만과 불행이었다.

 

원래 열정은 부족함에서 나온다. 노력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행복은 불행에서 나온다. 그래서 충분히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행복을 추구하기가 힘들다. 지금 이 순간이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왜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과거 내 모습은 결국 '3'의 결과였다.

 

, 그렇다고 해서 지금 뭔가 많이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두렵다. 단지 그런 불안함과 두려움이 불만과 분노로 변화되지 않아서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이상 불안함과 두려움은 단짝처럼 늘 함께 하고 있으니 그것은 이상한 것은 아님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삶에 관한 그런 특징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본질이다.

 

이번 달, 글을 딱 하나 썼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뭔가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그로 인해서 차분히 생각하면서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도 또 하나, 근본적으로 글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사실 글에 대한 열정은 식은 지가 좀 되었다. 1년은 된 듯 하다. 요즘은 글을 쓰고 싶어서 쓴다기 보다는 써야 할 것 같아서 쓰고 있다. 욕망이 아닌 책임과 의무감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감정이긴 하다. 쓰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 개인 블로그인데 혼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아마도 이 블로그에 가끔 찾아오는 몇 분들 - 대부분 단 한 번도 댓글을 남기지 않는 분들이지만 - 그냥 그런 분들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긴 하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그나마 꾸준히 해오던 것을 멈추는 것이 두려워서 본능적 의무감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 글이 완전히 멈추리라는 것을. 사실 이 블로그에 글을 쓴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쯤부터 어렴풋이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영원히 평생 글을 쓸 것 같았지만 언젠가는 글을 멈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입을 통해서 말이 나오고 손끝으로 글이 쓰인다는 것은, 결국 뭐든 그것에 대해 엮여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스스로 엮은 것이다. 세상은, 삶은 사실 나에게 완벽하게 무심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마치 얼음 위에 올라간 썰매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세상 그리고 내가 죽은 후의 세상은 내 존재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나마 인류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사후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것도 결국 인간에게만 한정적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감이다. 그러니 결국 누구나 똑같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의 세상은, 그것은 내 세상이며 내가 존재하는 것이 반드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온 몸에 낚시바늘과 같은 날카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는 그것을 통해 아무런 마찰 없이 미끄러져가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단단히 얽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존재감이라고 부른다. 자기증명이라고 부른다. 인정이라고 부른다. 혹은 성공, 명예, 명성, 평판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무심히 흘러가는 세상에 최대한 날카롭게 가시를 돋구어서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많이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이 삶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신발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스스로 돌멩이를 끌어들이는 것과 같다. 그래야만 발바닥이 불편해져서 신발주인이 신발의 존재를 인식하니까 말이다.

 

 

여기에 적힌 블로그의 모든 글들은 모두 다 내가 만들어 낸 낚시바늘이다. 세상에 나를 얽히게 하고 싶어서, 세상 속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어서 쓰인 글들이다. 많은 글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목적으로 치장되고 있지만, 결국 그것 하나로 귀결되고 만다.

 

그러니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은 결국 영원히 도착하지 못하는 목적지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목적지를 향한 배였던 것이다.

 

그 배는 언젠가는 목적지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이 블로그에 글이 완전히 멈출 것이다. 혹시나 운이 좋다면 블로그의 글을 모두 지우고 폐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한참 먼 일이다. 아마도 한참 동안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글 자체는 줄더라도 꾸준히 쓰긴 할 것 같다. 물론 좀 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글을 쓰겠지만, 또 갑자기 뭔가 떠오르면 기분 좋게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튼 2020 5월은 단 두 편의 글로 끝나게 될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뭔가 약간의 벽을 허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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