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사람을 바꾸는 힘

아이루다 2020. 6. 19. 07:54

 

당신에게 지금 현금 백만 원이 있다. 이 돈을 당신에게서 확실하게 내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법을 써야 당신은 그 돈을 나에게 넘겨줄까?

 

여러 가지 방법들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지만, 가장 먼저 시도해 볼만한 것은 바로 설득이다. 그 돈을 내놓을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당신이 그것에 동의를 한다면 그 돈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납득시키는 것, 그것도 꽤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돈을 내놓을 만큼 납득시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사람은 원래 제대로 납득되지 않으면 단돈 10원도 남에게 주기 힘들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에 합당한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다. 백만 원짜리 가치를 가진 전자제품일 수도 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치 있다고 알려진 골동품이나 미술작품일 수도 있고, 비싸긴 하지만 정말로 맛있는 식사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것이 백만 원에 합당한 무엇이라면 당신은 기꺼이 돈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본질적으로 '교환'이다. 그래서 내놓는 것이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

 

그렇다면 세 번째 방법을 생각해보자. 설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법이다. 그것은 바로 당신을 '납득'시키는 것이 아닌 '감동'시키는 방법이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감정을 움직이게 만든다면 당신은 순순히,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한끼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불쌍한 누군가를 돕는다든가, 나라를 위해 옳은 일에 쓴다든가 하는 것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감정이 긍정적으로 움직였다면 당신은 돈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순순히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방법 모두 공통적인 잠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최종 판단 주체가 바로 '당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돈을 내놓게 만들 수 없다. 누가 들어도 확실하게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거나, 백만 원보다 수십 배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교환을 원하거나, 누가 봐도 눈물이 줄줄 흐를만한 슬픈 이야기로 감동을 시켜도 당신이 별로이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 세가지 모두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그 돈을 내놓게 할 수 있은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도 꽤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강압적으로 뺏는 것이다. 꼭 물리적인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협박만으로도 얼마든지 뺏을 수 있다. 당신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면 당신은 살기 위해서라도 돈을 내놓을 것이다. 오히려 살려만 주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방법, 설득, 교환, 감동은 모두 당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결정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해도 당신이 하지 않으면 끝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조금 다르다. 그 주도권은 당신에게 있지 않다. 물론 결국엔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신이기에 이 역시도 당신이 주체이긴 하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모든 생명체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있고, 두려움을 느낀 당사자는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한다. 설령 피같은 백만 원을 뺏기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때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냐에 상관없이 당신을 협박하는 상대가 맨손이냐, 칼을 쥐고 있느냐, 총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가 멀쩡하게 생겼느냐, 험악하게 생겼느냐,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있느냐, 덩치가 크냐, 표정이 무서우냐 등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돈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돈을 내놓는 것을 범죄라고 부르며 그런 행위를 막는다. 하지만 법은 후처리 효과를 가질 뿐이다. 당장 강도가 당신의 돈을 뺏는 순간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당신이 가졌던 백만 원은 무슨 의미일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며 왜 당신에게서 그것을 얻어내려면 설득, 교환, 감동, 협박 등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되지도 않을 질문이지만 일단 생각해보자. 우선 그 돈이 당신의 소유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돈이 어떤 경로로 어떤 이유로 당신에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단 당신의 계좌나 지갑에 들어가게 되면 당신이 돈인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일단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심지어 빌린 돈이라도 일단 당신에게 속하게 되면 당신 돈이다.

 

이런 식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당신에게 소유된 것이면 - 설령 임시적으로 가진 것이라고 해도 - 그것은 당신의 권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기득권'이라고 한다. 이미 득한 권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기득권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그래서 이미 가진 자와 그것을 얻어내려는 자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이미 가진 돈도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 이란 말로 그들을 폄하하며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기득권 세력이 그런 비난을 받았다고 해서 가진 돈을 내놓지는 않는다. 기득권은 생각보다 아주 단단하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처럼 말이다.

 

기득권에 대한 당신의 단단한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단순한 예로 당신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가 아주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누군가 그 자리에 앉은 것이나, 좀 더 나아가서 지하철에서 짐을 위에 올리기 위해서 잠시 일어난 틈에 누군가 그 자리에 앉은 상황을 떠올려 보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싸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이없어 하면서 그냥 포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로 설득할 것이다.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범죄일까? 법적으로 처벌할 가능성 있을까? 분명히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상황이다.

 

그러면 잠시 생각해보자. 공원 벤치나 지하철 자리는 원래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공용석이다. 단지 사회 통념상 먼저 앉은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권리를 주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누군가 앉아 있다면 딱히 그 자리에 앉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자리를 뺏는 일이 실제로도 일어난다.

 

만약에 당신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자리를 내놓을까?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설득하거나 교환하거나 감동을 주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통할 것이다. 앞에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있으니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거나, 만원을 주면서 그 자리를 달라고 하거나, 애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자리를 양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앞에서 말했듯이 판단 주체는 당신이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반드시 일어나게 만드는 유일한 해결책은, 앞에서도 말했던 가장 확실한 방법인 당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종류이든 불쾌한 감정이 든다면 당신은 기분이 나쁘지만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옆에서 토하거나, 팔에 잔뜩 문신을 하고 있거나, 매우 역겨운 냄새를 피운다면,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불쾌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당신은 그 자리를 즉시 떠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공원 벤치나 지하철 자리는 백만 원에 비해서 별로 가치가 없기에 훨씬 빠르게 포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기득권들은 어떨까? 좋은 말로 내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또 다시 두려움을 자극시켜야만 내놓게 될까? 이미 이해했겠지만 결국 두려움밖에 없다.

 

하지만 범죄가 처벌되는 세상이기에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대상에 대해서는 오직 설득, 교환, 감동으로만 그것을 내놓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결코 쉽지가 않다. 사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는 기득권인 것조차 인식하기도 힘들기에 그렇다. 공원 벤치나 지하철 자리를 누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라고 여기겠는가? 자신이 노력으로 얻은 사회적 지위를 누가 기득권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러니 그것을 자발적으로 내놓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결국 이미 가진 사람들에게 그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상대를 두렵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 투쟁이 필요하다. 투쟁이란 힘의 경쟁이며 그 성공여부는 상대를 얼마나 두렵게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렸다. 결국 인간세상은 이미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역사가 된다. 두려움을 느껴야 내놓는 세상이기에 언제나 갈등과 투쟁 그리고 전쟁이 인간세상을 변화시켜왔다.

 

 

하지만 이런 강압적인 방법은 언제나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곤 한다. 설득, 교환, 감동 등을 통해 내놓은 돈을 대부분 그대로 끝나지만 협박으로 인해 뺏긴 돈은 이후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억울함을 느끼게 만들어지에 그렇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느낀 감정 중에서 억울함을 가장 참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복수심이 인간을 가장 의지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20년간 무술을 연마하는 제자처럼 말이다. 그리고 복수를 하는 순간을 볼 때 엄청난 시원함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한번 생겨난 억울함은 결국 복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들은 대부분 그대로 끝나지만 강요에 의해서 일어난 일들은 이후 어떤 식으로든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수천 년 동안 기득권과 비기득권 사이의 투쟁으로 이뤄진 인류역사는 강압과 그것에 대한 복수로 이뤄져 왔다. 물론 중간중간 간디의 무폭력 저항과 같은 부드러운 투쟁을 통해 세상을 감동시켜 변화를 이끌어 낸 적도 있지만, 사실 그 비율을 너무도 작다고 할 수 있다.

 

투쟁이 반드시 피가 튀는 살육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숫자만으로도 이뤄진 적도 있다. 일종의 무혈혁명도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투쟁은 투쟁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촛불시위도 결국엔 투쟁이었으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잠재적 협박이었다. 그곳에 모인 다수의 힘에 의한 협박에 정치권이 백기를 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드러운 협박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반대로 강한 무력을 갖췄다면 소수의 힘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협박을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군부 쿠데타가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군부 쿠데타와 촛불시위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여겨지지만 하지만 그 본질은 똑같은 투쟁이었다. 차이점은 얼마나 다수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달렸고,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다수결의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니 국가 차원에서 보면 다수의 지지를 받은 촛불시위와 소수의 지지를 받은 군부 쿠데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합법과 불법이 경계가 된다.

 

꼭 그런 대단한 규모의 투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이미 수 많은 기득권들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을 갖지 못한 또 다른 사람들은 오늘도 그것을 갖기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투쟁, 돈을 많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투쟁,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투쟁 등등이 매일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앞서고 있던 자들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과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어떻게든 앞선 자들을 추월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자들의 노력이 끝없이 충돌하고 있다. 그것은 가끔 눈에 보일 정도로 가시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면 앞선 자들은 '안정', '번영', '관습' 등의 단어들을 통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정당화시키고 쫓는 자들은 '공존', '변화', '공정' 등의 단어들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싶은 권리를 정당화 시킨다. 결국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되지만 결국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붙여도 그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 될 뿐이다. 그나마 그것을 최대한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명분을 얻어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다.

 

사실 앞선 자들이 말하는 안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적이다. 인간의 욕망이 살아있는 한, 기득권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것도 안정화 될 수 없다. 모두 똑같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수평적인 세상이 되어야만 유일하게 안정이 가능해진다. 컵 속의 물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온전히 수평이 맞춰져야 하는 것과 같다. 그 전까지 컵 속의 물은 안정화가 되기 위해서 끝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앞선 자들은 자신이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끝없이 안정의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불안정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시켜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다.

 

쫓는 자들이 말하는 공정이나 공존도 듣기엔 그럴 싸 하지만 사실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저 그들은 아직 기득권이 되지 못한, 예비 기득권일 뿐이다. 그들이 운 좋게 원하던 것을 얻어 앞선 자들과 비슷한 위치가 되거나 혹은 훨씬 앞서게 되면 그들 역시도 결국엔 기득권이 되고 만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는 나이 먹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없다. '공정한 세상을 꿈꿉니다' 는 젊은이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어떤 순간도 공정해질 수 없다. 그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서로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그저 명분을 얻기 위한 말들이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서로 같은 목적으로 싸우고 있다. 바로 남들보다 더 많은 '기득권'을 갖는 것이다.

 

기득권은 악도 선도 아니다. 그냥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갖게 된 수중의 백만 원이며 내가 앉게 된 공원의 벤치이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내 돈이니까 내 기득권이 된다. 그것을 어떤 용도로 쓰는지는 오직 내 마음이다. 그나마 감동으로 그 돈을 내놓는다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을 싸우는 것 자체를 그리 좋게 보질 않는다. 분명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투쟁조차도 대화로 하지, 잘 넘기지, 서로 이해해주지 하는 등의 생각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시끄럽고 폭력적으로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싸우면 양쪽 모두 욕을 한다. 설득, 교환, 감동을 통해서 이뤄내야지 왜 싸우냐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좋은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싸워서 좋을 것은 없다. 또한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은 또 다른 투쟁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설득하고 감동시키고 거래를 잘해서 내놓게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가진 기득권을 단순한 말로 내놓게 만드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설령 일부는 내놓으려고 해도 나머지 반대가 강하면 내놓고 싶은 사람조차도 멈칫할 수 밖에 없다. 잘못하면 그들 무리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결국 투쟁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오직 두려움만이 전체를 움직이게 한다. 아주 특별하게 감동을 통해서 세상을 잠깐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며 금세 사라지고 만다. 특히 요즘처럼 소시오패스가 성공하기 좋은 세상에서 어쩌면 백만 원을 내놓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투쟁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설득과 감동 그리고 거래가 가진 긍정적인 힘을 믿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효과는 미비할지라도 기분은 좋게 하기에 그것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감동의 힘을 믿고 싶어한다. 그것을 위해서 이미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 등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감동적이긴 하지만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자신이 기득권이 되었는지, 나이를 먹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다양한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 보면 된다. 좋게 좋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늙고 기득권이 된 것이다. 가진자의 입장이다. 반대로 여전히 가지지 못한 자들을 응원하고 싶다면 아직까지는 덜 기득권이 된 것이고 덜 늙은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만들고 싶다면 늙은 사람들을 군대로 보내면 된다. 이미 기득권이 된 그들을 가진 것을 지키고 하고 싶어하기에 전쟁이 나질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직접 싸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젊은이의 목숨을 전쟁터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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