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남과 녀, 좌절과 차별의 경험

아이루다 2016. 8. 21. 10:21


우리들의 인식 속에서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은 크게 남과 녀, 두 가지 종의 나뉜다.

 

굳이 종으로까지 나뉜다는 표현을 한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그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그렇게나 크게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같은 문화권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남녀가 단지 성별의 차이로 인해서 종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답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그 답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원래 남녀를 나누는 이유, 즉 바로 성의 차이로 인해서 그렇다.

 

그런데 왜 성의 차이가 그렇게나 심한 차이를 만들어 낼까? 단지 남성과 여성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보다 이 차이는 크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는 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아이를 만드는데 있어서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것을 심각한 차이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섹스를 임신의 수단보다는 쾌락의 역할로써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섹스는 원래 아이를 낳는 과정이었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간의 몇 안 되는 중요한 쾌락적 수단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니 남자나 여자나 모두 섹스를 즐기기 위해서 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원래 완전히 다르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 기관을 가지고 있기에 아이를 낳는 역할에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주체이다. 반면에 남자는 정말로 작은 역할을 한다. 남자의 유일한 역할은 정자를 통해서 유전자의 반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임신과 육아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그것을 거의 책임져야 하는 여자는 짝을 찾는데 매우 까다롭게 굴 수 밖에 없다. 이것을 까다롭다고 표현하기도 좀 그런데, 어떤 의미로는 신중하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남자는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대신 남자는 끝없는 성적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남자의 성적 욕망은 남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남자를 언제나 얽메는 보이지 않는 그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짝을 고르는 일에 있어서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남자는 적극적이고 여자는 소극적이다. 남자는 시도를 통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해봐야 좌절만 겪는다. 하지만 여자는 임신과 육아라는 거대한 부담감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끝없이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는 능동적 선택을 하는 편이고, 여자는 수동적 선택을 하는 편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남녀에게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예외는 있다. 하지만 이 근본적 차이는 변함이 없다. 여자는 임신을 하고 남자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에는 분명히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게 간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하나 더 고르라면, 그것은 바로 남자의 충성심이다. 신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충성심의 가치는, 임신과 출산 후 육아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여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남자의 심성이다.

 

반면에 남자가 여자를 고르는 조건은 주로 외모로 한정된다. 물론 남자도 여자의 성격을 중요하게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남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 경제력은 나름대로 남자의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반면에 외모는 거의 타고난다. 물론 요즘은 이것도 수술로 극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타고남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성형 수술을 한다고 해서 이미 어느 정도 고정된 성격까지도 고쳐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여자는 성형 수술을 통해 예뻐질 수는 있지만, 남자의 두 번째 조건, 즉 성격부분에서 탈락하게 된다.

 

성형까지 할 정도로 외모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 여자는 당연히 그 동안 외모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 상처가 바로 성형까지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여자의 성격이 남자들이 흔히 좋아하는 너그러운 성격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남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런 성적 역할로 인해 생겨난 차이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이 차이점은 남녀의 성격 형성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다른 남자들과 경쟁한다. 여자 역시도 다른 여자들과 경쟁한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모든 종류의 경쟁은 승자와 패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즉, 남자나 여자 모두 승자가 패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경쟁 종목도 다르고, 경쟁 방식도 다르고, 그 결과를 처리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점은 바로 성적 역할에 의해서 발생한다. 선택하려는 남자와 선택 당하려는 여자의 입장 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남자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능력과 이후 벌어지는 노력의 경쟁이다. 이것은 매우 직접적이다. 그래서 경쟁에서 지게 되면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타고난 능력과 노력을 다해 한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면, 좌절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들은 거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다음 경쟁에서조차 이길 희망이 없다. 그러니 좌절을 할 때마다 큰 상처를 입긴 하지만, 끝없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분야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남자의 삶은 여자에 비해서 매우 다양하게 펼쳐진다. 어떤 식이든지 먹고 살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승자가 되면 여자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여자의 경쟁은 남자와는 사뭇 다르다. 여자의 경쟁은 선택을 하는 경쟁이 아니라, 선택을 받는 경쟁이다. 이것은 은밀하고 간접적이다. 남자들이 경쟁자에 대해서 대 놓고 적개심을 드러내고 경쟁한다면, 여자들은 교묘하게 숨기면서 경쟁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승패는 결정된다.

 

그런데 여자가 졌을 경우에 남자와는 다른 경험을 한다. 그것은 좌절이 아니다. 그것은 차별이란 감정으로 경험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승복하거나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데 결론이 그렇게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을 받는 입장은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고 단지 선택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경쟁에서 질 경우, 그것을 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경쟁에서 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조건은 바로 객관적 공정함이다. 이것이 없을 때 우리는 경쟁의 결과를 쉽게 승복할 수 없다. 진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것이 불공정하게 이뤄진 차별의 결과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여자는 경쟁에서의 패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경쟁의 결과가 시작부터 선택자의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관적이며 편파적이다.

 

이렇게 좌절과 차별로 경험되는 패배는 이후 남자와 여자의 삶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흘러가게 한다.

 

남자든 여자든 패배를 경험하는 사람은 크게 상심을 하게 된다.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들 중에서 패배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패배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그 패배가 좌절이라면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좌절은 결코 쉽게 합리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좌절은 성적표에 적힌 점수와 같다. 아무리 보지 않으려고 해도 그 점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좌절은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아무리 스스로 합리화를 해도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서서히 회복이 된다. 그리고 보통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노력을 하게 된다.

 

이때 가능하다면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서 하려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 좌절을 경험했다면, 또 다시 그 분야에서 도전한 후 실패하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분야에 가서 성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적성이란 분야가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좌절을 통해 힘들지만 어느 정도 까지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남자들은 원래 자신이 좌절한 영역에서 성공하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좌절한 후 대안으로 선택한 영역에서는 살긴 하지만 행복하긴 힘들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한 남자들이 갑자기 젊은 시절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도전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뒤 늦은 공부를 한다든지, 갑자기 산에 오르고 싶어한다든지, 힘든 경기에 나가려고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행위들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이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잘 먹고 잘 살면 끝이지 뭐하고 나이 먹고 그런 힘든 도전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남자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물론 포장된 이미지이긴 하지만, 첫사랑은 남자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면 남자는 좌절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것을 평생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그것을 그리워한다.

 

이에 반해서 여자는 전혀 다르다. 이미 말했듯이 여자는 패배를 했을 때, 그것을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좌절은 부정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임에 반해서 차별은 부당하게 판단되기에 충분히 합리화를 할 수 있다. 자신이 경기에서 진 이유가 심판의 편파적 판정이라면, 합리화는 당연하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이 좌절을 통해 경험하는 그런 것들을 경험하긴 힘들다. 여자들은 그저 자신이 차별을 당했다고 느끼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선택자의 공정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마무리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여자들이 남자를 선택할 때 경제적 능력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남자들이 여자를 선택할 때 외모만을 보는 풍조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그러는 것은 차별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쁜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전혀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쁜 외모로 인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여자들은 그 차별을 인정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그래서 통용된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는 적다. 그리고 패배한 다수의 여자들은 차별을 분노로 확산 시킨다.

 

이것은 당장엔 좌절보다는 좋은 것이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을 낮추지 못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좌절을 통해 강제로 자신의 눈높이를 낮춘다면, 여자는 차별을 통해서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지 못한다.

 

어떤 여자든 간에 백마 탄 왕자의 존재를 기다리는 것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왕자는 자신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조건은 필요하다.

 

보통 좌절을 경험한 남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점점 현실적으로 변하게 된다. 즉, 자신이 가진 것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좌절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일반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차별을 경험한 여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최초의 환상이 유지가 된다. 그래서 냉정히 말하면 현실 파악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점점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여자가 나이를 먹으면 더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도 좋아하지만, 젊은 여자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자는 점점 자주 차별을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서 화를 내게 된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다른 여자들에게 뺏겼다고 느끼거나,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는 남자들이 가진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서 다양한 형태의 분노를 느끼게 된다.

 

사실 여자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잘난 외모를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다. 즉,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그것은 누군가 그것이 틀렸으니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이런 좌절과 차별이 가진 근본적 차이점은 이후 삶의 방향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좌절은 성적표와 같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래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의 원인을 분석하고,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할 때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공부를 하게 된다. 적어도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객관적인 논리와 이성적으로 그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반면에 차별은 주관적 판단이다. 무엇인가를 차별당했다고 느끼는 것에는 성적표와 같은 명백한 증거가 없다. 그것은 그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을 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회복하는 노력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실 차별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 받는다. 그러니 그것을 딱히 더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좌절을 경험한 남자들은 친구들에게 그것을 이야기 하고 공감받으려고 할 때, 공감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자들은 자신의 차별을 분개하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 할 때, 오직 공감만이 필요하다. 차별을 당한 사람에게 무슨 해결책이 있겠는가? 차별을 한 사람을 같이 씹어줌으로써 감정적 문제가 해결된다.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남자들이 자꾸 판단을 하려는 태도와 단지 공감만 해줬으면 하는 여자들의 바램이 이런 이유로 생겨난다. 둘이 결혼을 하면 이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나마 좌절과 차별을 긍정적으로 경험하는 경우이다. 만약 좌절과 차별이 부정적으로 경험될 때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좌절을 부정적으로 경험하는 남자는 기본적으로 찌질해진다. 왜냐하면 이미 눈 앞에 있는 증거를 어떤 식으로든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좌절을 좌절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노력을 통해 극복하려면 당연히 힘이 든다. 그런데 그럴 의지가 없다. 그래도 좌절을 해결은 해야 하니 그냥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안다. 자신이 틀린 길을 선택했음을 말이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남자들은 지속적으로 찌질해진다.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려니 어쩔 수 없다. 더해서 억지 논리까지도 만들어 낸다. 자신이 좌절한 원인을 자신의 문제가 아닌 어떤 식으로든 외부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차별을 부정적으로 경험하는 여자는 분노를 넘어서 증오심을 품게 된다. 그나마 운이 좋은 여자들은 그 와중에도 남자를 만나서 잘 살 수 있지만, 그럴 행운도 없던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점점 더 증오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흔히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자신의 좌절을 합리화 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증오를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그런 여자들이 모여서 서로 대화를 하다가 보면, 공통 경험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느끼는 증오심을 옳다고 믿게 된다.

 

사실 그 어떤 근거도, 그 어떤 객관적 사실도, 그 어떤 이성적 논리도 없지만, 서로 공통으로 경험했기에 그것이 사실이 되고 진실이 된다.

 

이 두 경우가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경쟁에서 진 것은 큰 상처이다. 그것을 좌절로 경험하든 차별로써 경험하는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큰 상처가 난 것은 동일하다.

 

그리고 보통 루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더욱 크게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부정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찌질하고 증오심이 가득 찬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사실 이런 사람들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보기에 짜증나고 인간 같지도 않지만, 그들 안에는 슬픈 상처가 숨겨져 있다.

 

우리 사회가 조그만 더 너그러워 지고,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경쟁 구조에서 벗어난다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삶은 아니라도 행복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다면, 너무도 예리하게 상대를 후벼 파는 공격은 좀 멈출 수 있을까 한다.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전체적인 이야기는 승자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좌절을 경험하지 않는 남자나 차별을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자는 이미 어디에서인가 승자의 미소로 행복한 삶을 산다. 그들에게는 그들끼리의 또 다른 경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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