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페미니즘

아이루다 2016. 8. 17. 08:53

 

인간 사회엔 아직도 폭력이 존재한다. 물론 폭력이 행사된 후,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은 이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당한 사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폭력 행위는 최대한 벌어지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폭력 행위 중에서 가장 질이 좋지 않은 폭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성폭력이다.

 

요즘 시대엔 남녀뿐만 아니라 남남 관계에서도 발생하기도 하는 성폭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렵고 많이 발생하는 폭력 중 하나이다. 더군다나 이 폭력은 성별에 따라서 다르게 인식되는 것 중 하나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훨씬 더 깊은 공포감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당연한데,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주로 당하는 입장에 놓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각자 성폭력의 원인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성폭력의 원인으로써 여자의 처신을 꼽는 경우도 꽤나 있다. 그런데 이 해석은 성폭력의 공포에 노출된 여자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정확히 말해서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밤 늦은 시간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여자의 처신이 문제가 아니라, 남자의 이성적 판단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즉, 성폭력은 자제력을 잃은 남자의 본능이 일으키는 범죄인 것이다.

 

이 정도까지가 성폭력에 대한 그나마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원인 규명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쎄다면 남자들은 여자를 성폭력 하려고 하다가 맞아 죽었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당하는 폭력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다. 즉,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 더군다나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의 힘을 여자가 감당하긴 힘들다. 그래서 여자들은 성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이 사회가 이 정도로 문명화 되었기에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덜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문명이 무너지고 제대로 된 치안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정말로 숱하게 일어날 사건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딘가 국지적으로 폭동이 발생한 사회에 대한 기사를 읽을 기회가 있다면 약탈, 방화, 강간, 이 세 단어가 늘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약자는 문명의 힘으로 보호 받는다. 즉, 문명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약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옹호하는 의도는 아니다. 모든 종류의 폭력은 사라져야 할 비 인간적인 행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도 과거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 했던 존재들의 후손이란 점이다. 그것도 승리자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잔인했을 것인가?

 

그래서 지금도 대 놓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약탈 전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즉, 강자가 약자를 끝없이 약탈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시대에 강자는 기득권이라고 불리고, 약자는 피 지배층이라고 불린다.

 

남자는 아주 오랫동안 인간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이 이유도 같다. 남자가 힘이 더 셌기 때문이다. 예전에 문명이 덜 발전했던 시절, 개인의 노동력은 바로 돈으로 연결되었다. 즉, 힘이 센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니 남자가 여자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남자는 강자 입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치열했다. 남자들끼리도 엄청나게 싸웠다. 어떤 면에서는 이 싸움이 훨씬 더 치열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남자들은 경쟁 속에서 더 강해졌고 애초부터 경쟁에서 빠진 여자들과는 점점 더 그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즉, 초기엔 작은 차이가 나중엔 훨씬 더 큰 차이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던 아이들은 아주 좋은 대학교에 모여서 더욱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리고 나중에 최고의 기업에 들어가서 훨씬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엔 단지 성적만 조금 차이 나던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한 후에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게 차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이 과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계속 발전했다. 그리고 이젠 노동력의 힘으로 하는 것은 별로 없다. 지금은 모두 기계가 한다. 그리고 기계를 다루는 것은 결코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힘으로 하는 일은 가짜 싸움, 즉 스포츠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는 결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요즘도 기본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이 있긴 한다. 범죄자를 상대해야 하는 경찰이나, 불을 꺼야 하는 소방수나, 건축을 할 때 필요한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많은 직업 중 아주 일부이다. 요즘 세상에 많은 직업들은 컴퓨터 자판을 쓸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

 

이젠 힘이 필요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는 남자만큼 교육을 받고 남자만큼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들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남자 못지 않게 높은 위치로 올라가길 바라고 있다.

 

사람들이 출세를 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은 권력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얼만큼 도덕적인가, 얼만큼 남의 사정을 생각해주는가는 그저 개인적 성격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그런데 과거에 여자는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거대한 기득권이었던 남자에 의해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사실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것이 무시되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엔 많이 바뀌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힘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그 덕분에 여자는 타고난 두뇌 능력만으로 충분히 남자와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뇌 능력에 관해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시대의 여자들의 성공에 대한 욕구는 그 어떤 시절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제약하던 그 많은 불리함이 다 사라진 지금, 오직 타고난 두뇌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이미 엄청난 기득권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경쟁자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벽을 뚫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능력 있는 여자들은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을 느낀다. 이것을 유리 천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투명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천정이다.

 

이 한계를 맞닥뜨린 여자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그 벽을 뚫고 올라가려고 노력을 해야 할까?

 

그런데 여기에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공공 장소에서 우연히 앉게 된 의자를, 자신이 떠날 때까지는 자신의 권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 의자에서 비켜달라고 하면 아주 황당한 얼굴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사실 자신에게 원래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자리이지만, 먼저 와서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득권의 본질임을 기억해 내야 한다.

 

즉, 모든 종류의 기득권은 스스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득권으로부터 얻는 이득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득권을 뺏는 방법은 오직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시작이 된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여성주의' 정도 될까? 아무튼 페미니즘은 그 시작부터 남녀 평등을 원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거대한 기득권을 가진 채 여자들에게 유리 천장을 만들어서 여자들의 성공을 가로 막고 있는 그 모든 종류의 불합리함에 대한 투쟁이다.

 

물론 그 불합리함도 결국 여자 입장일 뿐이다. 남자들은 그것을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기득권은 그 당사자에겐 정당하다. 우연히 먼저 앉게 된 의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아주 불경한 행위가 된다. 남자들끼리도 피 터지게 싸워서 얻은 권리인데, 여자까지 끼어들어서 경쟁을 하자고 하니, 그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특히 남성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저 한 사람의 성공에 대한 의지이며,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이다. 이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공공장소라고 해도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리를 뺏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쫓아 내는 방법뿐이다. 물론 잘 설명해서 자리를 양보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럴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저 자신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자리를 비켜 달라고 했을 때, 과연 누가 그 자리를 비켜 주겠는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한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이다. 그러니 당자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행위는 오직 폭력뿐이다.

 

별것도 아닌 앉는 자리조차도 이러는데, 부와 권력에 관한 것이라면 과연 얼마나 단단하게 지키고, 얼마나 집요하게 뚫으려고 하겠는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기득권을 가진 남자에 대한 능력 있는 여자들의 권력 투쟁이다. 이것은 문명의 힘으로 가능했기에 당연히 폭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힘으로는 남자를 이길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이것은 수 많은 암투로써 이뤄진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여기엔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의 기득권 논리에 순응하는 여자들이다. 이들은 마치 요즘 시대에 기득권에 호응하는 사회 하층민과 비슷한 행동으로써, 남자들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려고 하는 여자들이 바로 그들이 된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다. 이 상황은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에게 잘 선택만 받을 수 있다면, 그 남자만큼의 권력과 부를 쥘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결혼만 잘하면 그 어떤 똑똑한 여자들보다도 더 큰 권력과 부를 움켜쥘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평생을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 여자들보다 타고난 외모로써 남자에게 선택 받은 운에 의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한 여자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기 쉽다. 사실 누가 생각해도 이것은 불공정하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인 남자들은 결코 이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여자들에 비해서 쉽게 얻은 권력과 부를 이용해서 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해서 살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그리고 이 사실은 많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자신의 외모를 가꾸게 만들어 버린다. 즉, 잠재적인 경쟁자 다수를 없애는 아주 영리한 행위이기도 하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뭔가 힘들게 노력해서 성과를 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박수를 친다. 하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뭔가를 이룩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조언을 한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같은 경제적 상황이라면, 전체적으로 일하고 사는 여자들에 대해서 다른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실 훨씬 더 삶이 여유로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자들이 극복해야 할 것이긴 하다. 물론 그 전에 남자들의 외모지상주의 풍조도 없어져야 할 큰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모도 하나의 능력으로 보는 것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타고난 두뇌 능력의 차이가 있듯이, 타고난 외모적 차이도 분명히 개인의 입장에서는 능력으로 환산되어야 옳다. 단지 너무 한쪽으로만 쏠리는 현상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외모로 쏠려 있다.

 

아무튼 페미니즘은 진정한 의미에서 남녀 평등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문제 의식이다. 이후 이름은 다르게 포장될지 모르지만, 그 안에 숨겨진 본질은 하나뿐이다.

 

여자들의 권력과 부를 위한 투쟁이다.

 

그럼에도 사실상 권력과 부에서 멀리 있는 이들도 페미니즘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에 함몰되어서 춤추는 일들이 일어난다. 페미니즘을 남녀 평등 운동으로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남성이란 존재들에 대한 지독한 적개심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상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소위 말해서 잘난 여자들의 도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들의 권력 의지를 아주 우아하게 포장해서 뭔가 그럴 듯하게 말하고는, 그것이 고취되어서 마구 흔들리는 또 다른 피 지배층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럴듯한 말로 끝없이 그들에게 불을 지핀다.

 

하지만 이 모든 투쟁의 달콤한 열매는 이미 여성들 사회에서 기득권인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들의 몫이 될 뿐이다. 그리고 이용당하는 다수의 여성들은 결국 자신의 상처의 원인을 외부로부터 찾았기에 분노만 가득하고, 삶만 더 우울해진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이것이 사실 가장 슬픈 일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라는 존재들이 가진 가장 사악한 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책을 써서 책을 팔아 먹고, 어떤 기득권에서 당당하게 여자의 몫을 내 놓으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에는 바로 다수의 이용당하고 있는 상처 입은 여자들의 피 맺힌 절규를 적은 종이를 흔들면서 말이다. 사실은 그 종이에 적힌 슬픈 사연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그렇게 한다.

 

이들은 스스로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서 철저히 이용한다. 그리고 가끔 자신에게 이용당하는 이들을 위로해주는 말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사악하다가 해서 이들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이렇다. 단지 덜하냐 더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문명을 통해서 분명히 도덕과 인간다움이란 가치를 이뤘지만, 우리는 과거 약한 자를 잡아 먹던 시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조금 우아해진 것이다.

 

우리는 소를 사냥하지 않고 소를 키워서 먹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를 사냥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말하고, 소를 키워 먹는 것은 인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소를 키울 때 먹이를 줬기에 소의 생명을 뺏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소를 사냥하든 키워먹든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맛있고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면 왜 그들이 약하고 상처받는 여자들을 위해 대신 투쟁해주지 않냐고 비난하겠지만, 이것은 페미니즘을 완전히 오해해서 나오는 말이다.

 

또한 당연하게 남자에 대한 역차별을 가지고 그 부당함을 주장할 필요도 없다. 평등 운동이 아니니, 한쪽에서 더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더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는데 왜 멈추겠는가?

 

이것은 부당한 것이 아니라, 손해를 입어서 화가 나야 하는 일이다. 즉, 이것을 바로 잡고 싶다면 다시 예전처럼 여자를 억누르면 된다. 하지만 여자도 남자와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즉, 정치인들은 여자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남자들이 의견을 모아서 여자들에게 대항하는 것도 하나의 흐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그 모든 것은 옳고 그름의 투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그저 지키고자 하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투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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