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남자로 산다는 것

아이루다 2016. 8. 24. 15:06

 

여자 편과 남자 편 중 두 번째 글이다.

 

개인적인 입장으로써, 한 명의 남자로써, 여자로 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많은 부조리함이 있다.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은 여자의 행복 방식을 변화 시켰다. 이것이 변화된 것인지 혹은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는 남자와는 조금 다른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행복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행복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방식의 행복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훨씬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배경엔 여자를 책임지고 있는 남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즉, 남자는 여자에 비해서 미래 지향적이기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긴 힘들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다. 30년 후 타게 될 적금은 미래를 위한 좋은 준비이긴 하지만, 그 적금에 들어가는 돈만큼 지금 현실에서는 돈이 부족하게 된다. 이것은 좀 덜 행복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여자는 여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에 비해서 남자가 감당해야 할 문제는 훨씬 적어 보인다. 사실 여자가 겪는 그 많은 문제점들은 남자에게는 거의 유효하지 않다.

 

물론 남자들도 여자처럼 폭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도소 같은 곳을 가게 되면 경험하게 될 더 강한 남자들의 폭력과 남자끼리 이뤄질 수도 있는 성폭력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사실 강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지만, 남자에게는 좀 덜 현실적일 뿐이다.

 

남자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양심을 가진 남자라면,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래도 여자 입장과 남자 입장은 다르다. 흔한 예로 임신으로 인해 급하게 결혼해야 할 처지에 놓은 연인의 경우, 대부분 여자가 남자를 심하게 쪼아댄다. 불안하기 때문이며, 더 두렵기 때문이다. 이때 남자는 여자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줘야 한다.

 

외모의 차별은 일정 수준 존재한다. 사실 남자는 여자들의 보편적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여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힘들다. 물론 그것을 압도하는 다른 능력으로 아주 예쁜 여자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같이 외모적 비하도 경험한다. 키가 작다거나 대머리라든가 하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서 크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압도적 능력만 있으면 해결 가능하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남자는 대부분의 문제를 자신의 다른 능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강한 권력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해결 차원을 넘어서 군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남자들은 어떤 문제도 없는 듯 싶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방금 언급한 내용, 즉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 된다면 그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거꾸로 타고난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추측 가능하게 해준다.

 

남자는 폭력에 노출되지도, 임신을 하지도, 외모의 차별도 모두 능력으로 극복하지만, 능력이 부족할 경우 그 어떤 것도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여자들의 외모는 성형 수술, 다이어트, 화장 등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틈이 있지만, 아직까지 인류는 타고난 능력을 개조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경쟁에서 진 남자는 감당하기 힘든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남자가 가진 첫 번째 문제점이다. 즉, 좌절은 많은 남자를 무너뜨린다. 물론 좌절은 극복할 수 있기에 가능성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들은 거의 사람 구실을 못한다. 즉, 누군가에게 기생하면서 평생 숨어서 살아가게 된다. 찌질한 삶이 펼쳐진다.

 

같이 능력이 없더라도 여자에 비해서 이런 남자의 숫자가 훨씬 많다. 여자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우기면서 억지라도 그 실패를 부정할 수 있는 반면, 남자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아가 무너진다.

 

남자의 두 번째 문제는 바로 남자가 가져야 할 책임감으로 인해 만들어 진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남자이다. 그래서 남자는 언제나 사회적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교육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남자는 얼굴이 뭔가 비장해져야 했다. 그래서 남자는 지금 현재의 행복을 즐기기가 힘들다. 혹시라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 당장 철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남자가 되기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멀리한 채, 끝없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책임진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늘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낯선 장소에 놀러 가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주변의 자연을 보면서 즐거워하지만, 남자는 경계의 눈빛으로 주변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끝없이 경계한다. 이것은 남자가 그 순간의 행복에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감정을 강제로 억제하도록 만든다. 감정적이란 것은 실수나 패배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실제로 경쟁에서도 그렇고,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장소에서도 그렇다. 남자가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할수록 승부에서 이길 가능성도 높고, 안전함이 보장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역효과가 있다. 남자는 성공을 할 수는 없지만 감정 자체를 거세 당해서 결국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남자는 가족을 통해 행복 하려고 한다. 문제는 자신의 노력이 - 스스로는 헌신이라고 믿는 것이 -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남자의 세 번째 문제점이 바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남자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기 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삶의 가치를 삼고 있다. 그래서 결국 행복한 삶을 살기가 힘들다.

 

그것의 가장 극악한 예는 바로 기러기 아빠일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모두 외국으로 보낸 채, 벌은 돈만 송금하면서 사는 아빠의 삶, 이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평생 일을 하던 남자가 퇴직을 하고 난 후,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꽤나 심각한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매일 집에서 세끼를 먹는 삼식이에 대해서 여자들이 말하는 귀찮음에 대한 볼멘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이것은 혼자서는 놀 줄 모르고, 혼자서는 행복할 줄 모르는 남자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과 너무 달라진 가족과 퇴직 후 갑자기 같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심한 외로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배신감도 느낀다. 그렇지만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전원 주택의 꿈을 꾸게 된다. 시골에 가면 힘을 써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 일이 많을 때, 남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이 생긴다.

 

남자의 네 번째 문제는 무지막지한 경쟁이다. 물론 여자도 경쟁을 경험하지만, 남자만큼 경험하긴 힘들다. 남자의 세계에서 경쟁은 여자의 세계에서 외모만큼이나 살벌하다.

 

남자는 외모로 덜 평가 받는 대신, 능력과 사회적 지위로써 평가 받는다. 즉, 단순화 시키면 연봉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 그러니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정말로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여자의 외모는 딱히 노력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이니 포기하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해봐야 늘 같은 대답이 나온다.

 

당신이 좀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노력을 할 수 있는 것도 타고난 성격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평생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남자를 많이 불행하게 만든다.

 

어울리고 싶지 않은 자리에 가야 하고, 먹기 싫은 술을 먹어야 하며, 강자의 자랑에 적극적으로 박수를 쳐야 한다. 남자의 세계에서 강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그러니 밑의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또한 얼마나 위로 올라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올라가고 싶어하기에 올라가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

 

이런 문제들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강한 근력과 체력을 타고남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짧은 현상을 만들어 낸다.

 

사실 오래 살아야 한다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오래 살아야 맞다. 그럼에도 여자는 10년 정도 더 오래 산다. 이것은 바로 남자들이 살아 생전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 노출이 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증명한다.

 

물론 과도한 음주와 흡연 습관도 한 몫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스트레스로 인해서 발생하는 버릇이다.

 

여자는 현재 만족 중심의 행복을 추구하고, 남자는 가치 중심의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은 타고난 차이점으로 인해서 발생한 결과이다.

 

그래서 여자의 행복은 주로 소비 쪽으로 발생하고, 남자의 행복은 주로 생산 쪽에서 발생한다. 즉, 남자는 만들면서 행복하고, 여자는 사용하면서 행복하다.

 

이것은 서로 조합이 좋다. 누군가 재주를 부리면,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참 잘 맞는 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상대의 삶을 조금만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면, 둘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남자는 재주를 부리고, 여자는 박수를 쳐주면 된다. 물론 반대로 할 수도 있다. 여자든 남자든 꼭 역할이 정해진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상대가 재주를 부릴 때는 정성껏 바라봐 주고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면 된다. 그리고 재주를 부리는 이는, 그것을 힘든 일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책임지는 그 모든 이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가치를 느끼면 된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 남자는 새로운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여성에 대한 배려 혹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주의에 따른 사회적 변화이다.

 

사실 모든 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제대로 기득권을 누렸다면,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 중 많은 사람들 역시도 여자와 마찬가지 입장에 있다. 그런데 사회는 점점 여자를 더 배려하는 쪽으로만 발전하고 있다.

 

이것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 덕분에 많은 남자들이 역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남자의 기득권에 대한 끝없는 견제가 만들어 지고 있다.

 

여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지고, 많은 남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다. 물론 소수의 남자들은 그것에 대해서 반발하기도 하지만, 사실 여자들의 말은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실제로 여자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는 그것이 남자들 개인별 문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싸잡아서 매도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 로 전락한다.

 

남자든 여자든, 여자든 남자든 힘든 세상을 살아갈 때는 모두 힘들다. 힘들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리고 각자마다 다른 고민이 있고, 고통이 일고, 괴로움이 있고, 불안함이 있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덜하다는 말 자체가 이상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녀 갈등에 좀 다른 시간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너무 팽팽하기만 하다. 서로 한 발자국씩만 뒤로 물러서면 정말로 제대로 된 원인이 눈에 보일 것이다.

 

지금 시대엔 여자로 산다거나, 남자로 산다는 것이 문제이기보다는, 그저 인간으로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즉, 우리는 지금 한 명의 인간으로써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야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지적해야 한다.

 

우리가 남자나 여자이기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인간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현재 너무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너무도 많은 위험 요소를 품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인간·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신이 무서운 이유  (0) 2018.01.12
생산 방식의 변화 그리고 생산의 종말  (0) 2016.09.09
여자로 산다는 것  (0) 2016.08.24
남과 녀, 좌절과 차별의 경험  (0) 2016.08.21
페미니즘  (0) 201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