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생산 방식의 변화 그리고 생산의 종말

아이루다 2016. 9. 9. 08:00



부제 :『 가치의 종말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한 10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하나씩 개별로 만들어서 썼다. 농사에 중요한 도구였던 낫, 요리에 많이 쓰는 칼, 밥 먹을 때 쓰는 밥상, 언제나 입는 옷 등등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제품은 각자 개별 제작으로 만들어 졌다. 즉, 모두 수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 제품의 품질은 만드는 사람의 그날 컨디션과 원 재료의 상태에 따라 달랐으며, 같은 용도의 제품이긴 하나 조금씩 모양이 달랐다. 물론 장인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제품들은 언제나 일정 수준의 질을 유지하기도 했다. 소위 말해서 명품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요즘 시대의 대량 생산 방식에 비해서 단점이 많았다. 일단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제작 시간도 많이 들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 있는 품질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물론 개별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은 각각 유일한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점이 너무 컸다.

 

그래서 현대에는 대량 생산 체제가 일반화 되어 있다.

 

대량 생산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가격이다. 사실 대량 생산 체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냉장고 하나를 사는데도 수 천 만원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쓰니,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제작 단가가 낮아진 것이다.

 

더해서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소비자를 예측하고 늘 만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품질도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가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대비해서 많은 AS 시스템이 준비 중이다.

 

이렇게만 보면 대량 생산 체제는 개별 생산 체제에 비해서 단점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단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대량 생산 시대를 살면서 가격과 편리함은 얻었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개별 제품의 고유한 가치와 그것을 만드는 노동의 가치를 모두 잃었다.

 

대량 생산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고장이 나면 즉시 대체가 될 수 있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장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개별 생산 체제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하나 하나가 각자 고유하게 제작자에게 가치화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요즘에도 텃밭에서 가꾼 채소와 같다. 자신이 직접 씨를 뿌려서 얻어낸 상추와 시장에서 파는 상추는, 같은 상추이지만 다르다.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존재의 유일성과 노동의 가치이다.

 

현대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사실 원래 우리는 꼭 돈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나 혹은 자기 존재감을 채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목적은 많이 사라지고 거의 돈을 버는 목적만 남아 있다.

 

물론 지금도 자신이 정비한 기차가 사고 없이 잘 다니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든가,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 그런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개별 생산 체제에 비해서는 훨씬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그 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아주 일부만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즉, 대량 생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협력화되고 분업화된 구조가 바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우리는 회사의 일부로써라도 조금씩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도 하고 그것이 남아 있기도 해서 그렇다.

 

이것이 지난 100년간의 변화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더 큰 변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것은 이제 대량 생산 체제에서 가상 생산 체제로 가는 변화이다.

 

갑자기 가상 생산이란 용어를 들으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전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을 하나의 생산품이라고 한다고 가정한다면, 글이 씌어지고 있는 공간 자체가 바로 가상 생산의 현장인 것이다.

 

이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예는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소프트웨어를 생각하면 된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이다. 우리가 매일 컴퓨터를 쓸 때, 스마트 폰을 쓸 때 이용한 것이지만, 우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실행했을 때 보여지는 모습으로 그것을 인식할 뿐이다. 그것은 의자나 자동차나 음식과 같은 실제 제품이 아니다. 자기 디스크 혹은 반도체 내의 저장 장치에 0이나 1의 값으로 존재하다가 실행 후 모니터를 통해서 가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가상의 제품이다.

 

그렇다면 대량 생산과 가상 생산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량 생산은 개별 생산에 비해서 비용이 급속도로 줄긴 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돈이 든다. 생산에 필요한 인건비도 많이 들고 공장과 사무실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더해서 매번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원가가 든다. 그리고 최종 생산된 제품을 팔려면 반드시 창고도 필요하고 더해서 운송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가상의 제품은 이 비용 중에서 많은 부분이 없어진다. 물론 가상 생산도 처음 생산 당시엔 돈이 제법 많이 든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개발해 놓으면 그 후로는 돈이 거의 안 든다. 인건비도 적고, 공장도 필요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유지 비용이 적다. 더해서 원료를 수급해야 하거나, 창고나 재고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유통 자체가 엄청나게 간편하다. 구매 후 네트워크를 통해서 복사를 해주면 끝이기에, 유통 비용은 전 지구적으로 동일하다. 아니, 사실 아예 안 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래서 불법 복제 문제가 생기긴 한다.

 

아무튼 가상 제품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익이 급속도로 증가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실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이익률이 10% 정도라면,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회사의 이익률은 60%가 넘는다. 단순히 비교해도 6배가 넘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 제품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에 진짜가 아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맛있게 생긴 음식을 보거나, 멋지게 생긴 자동차를 몰아도 현실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 그래서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진 실제 제품과 가상 생산으로 만들어진 가짜 제품은 서로 어느 선에서 각자의 시장을 점유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균형이 조금씩 깨지려고 하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가상 현실이다.

 

가상 현실은 한 마디로 가짜 현실이다.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눈과 귀가 가진 한계를 이용해서 마치 가상의 화면이 실제 화면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소리를 내어서 그것이 진짜처럼 느끼게 해준다.

 

가상 현실은 채소를 냉장 저장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청소를 할 수도 없다. 밥을 하거나 머리를 다듬어 줄 수 없다. 이런 생활의 필수적 항목들은 가상 현실의 대상이 아니다.

 

가상 현실이 적용될 곳은 바로 우리의 여유 시간이다. 지금 사람들을 만나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이나, TV 보는 시간이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을 대상으로 한다.

 

가상 현실이 본격화 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접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만족스럽게 해줄 테니까 말이다. 즉,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여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자신이 마음에 드는 가상 세계 중 하나를 골라서 들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TV를 보듯이, 책을 읽듯이, 산책을 하듯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게임을 즐기고, 데이트를 하며, 남극을 탐험하고, 화성에 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가짜인 것이 너무 티가 많이 나서 현실감이 떨어지겠지만, 나중에 지금보다 기술이 훨씬 발달하면, 우리는 몇 가지 보조 장치를 통해서 그것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영화의 CG 기술처럼 말이다.

 

대량 생산 체제는 기존의 개별 생산 체제 중 예술에 관련된 영역에 관해서는 전혀 대체되지 못했다. 비슷한 개념으로 가상 생산 체제는 개별 생산 체제에서 현실적 필수적 삶, 즉 육체를 유지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전혀 대체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가상 세계 안에서 돈을 버는 직업이 생길 지도 모른다.

 

가상 생산 체제는 대량 생산 체제에 비해서 훨씬 싸고,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개별 생산에서 대량 생산으로 변할 때, 우리는 각자의 유일한 가치와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의 가치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러면 가상 생산의 시대에서 우리가 많은 시간을 가상 세계에서 보낸다면,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이것을 예측해 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례를 보면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많이 듣는 음악이다.

 

개별 생산 시대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제로 연주회나 콘서트 등을 갔어야 했다.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매일 공연 때마다 연주는 새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비싸고 번거로웠다. 대신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공연이 매 번 유일했고, 노래나 연주를 하는 사람의 노력에 대한 가치가 있었다.

 

그 후로 음악을 저장하는 기술이 생겼다. 그것도 대량으로 말이다. LP나 테이프, CD 등을 떠올리면 된다. 이것들은 모두 대량 생산 체제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덕분에 언제 어디서라도 동일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무척 싸게 말이다. 여기엔 유일성도 사라지고 노래나 연주를 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없어졌다. 그래서 싼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후 다시 mp3 라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아예 실제적인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즉, 가상 생산이 된 것이다. 이 음원 파일은 이제 네트워크를 통해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듣고 싶을 때만 아주 적은 비용을 내고 감상할 수도 있다. 즉, 임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연주회에 비해서 mp3는 상상도 못할 만큼 편리하고 싸다. 물론 지금도 콘서트는 열리고 있다. 아직도 현장 음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LP를 모으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이들은 비록 대량 생산 체제 아래서 만들어진 것들이긴 해도 가치를 느낀다.

 

하지만 mp3를 모아 놓고 그것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래 가치는 노력과 비용을 통해서 만들어지기에 편하고 싼 것은 가치를 만들 수 없다. 물론 있긴 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서 모았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이 세 가지 경우가 바로 개별, 대량, 가상 생산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거나 잃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상 세계에서는 가격과 편리함의 장점을 잃은 대신 대부분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싸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 사람들의 선택은 당연히 가상 생산으로 몰리게 된다.

 

앞으로 가상 세계가 제대로 열려도 육체적인 몸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물질 세계에서의 삶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류의 발전 방향은 물질 세계는 필요한 만큼만 유지할 것이고 우리들의 남은 대부분의 시간은 가상 세계 속에서 이뤄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심지어 섹스를 하는 것도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보조 장치 충분이 있다면 그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징조는 지금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입으로 나누는 대화 못지않게 스마트 폰 내의 앱을 통해 손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마도 요즘 사람들의 대화 패턴을 조사하면, 입으로 하는 대화보다 손으로 하는 대화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제법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자 대화가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상대가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그 대상이 실제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조차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 폰이 나온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일어난 변화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가상 현실 세계가 서비스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바뀔까? 아마도 급속도로 바뀔지도 모른다.

 

집 안에서 딱히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자신의 외모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을 아니 우주까지 나가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 누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런 시대가 열려도 그것을 거부하고 현실 세계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항도 21세기를 지나면 끝이 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대량 생산 체제에서 조금이나마 유지되던 가치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높은 산을 힘들여서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위험한 도전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 가상 현실 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콘서트를 가고 LP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 시대에서 실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진짜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소수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은 TV 속에 나오는 특별한 사람들로 소개될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가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그 안에서 활을 쏘고 창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듯이 말이다. 이미 필요 없어진 고대의 무기를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런 시절을 살았음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보는 것에 불과하다. 직접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 가상 현실 속에서 활을 쏘고 창을 던지는 원시 시대를 경험해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지금 하는 많은 행위들이 이런 식으로 바뀔 것이다. 대신 그것에 대한 가치는 느끼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단순하지 않다. 제품의 가치가 없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제품에 머물지 않는다. 제품의 가치가 없어지면 제품을 생산하는 인간의 노동 가치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노동의 가치 소멸 이상을 의미한다. 수십 년을 다닌 회사를 퇴직 후 상실감에 헤매는 인간을 떠올리면 된다. 그야말로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가치 자체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즉, 인간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상실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개별 생산에서 대량 생산 시대로 바뀔 때 이미 현대인들이 얻은 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치 부재로 인해서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무엇인가 싸고 쉬워지는 것이 가진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싸고 쉬운 것은 매우 좋지만, 싸고 쉬운 것이 가치까지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든 대체 가능하며, 그래서 소중해질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의 미래는 소중한 가치보다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시작점이 바로 가상 세계가 될 것이다. 지금 그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가상 생산 다음으로 무엇이 나오게 될까? 이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문제점, 즉 육체적 한계를 가진 존재를 벗어나는 일이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생산의 종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육체의 가치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것을 딱히 어떤 용어로 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언젠가 육체를 탈피해서 스스로 완전히 정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엔 한 없이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여기엔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풀기 힘든 것은 바로 영혼의 존재 유무일 것이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증명된 적도, 반대된 적도 없는 그것 말이다.

 

이 문제만 제외한다면, 인간의 기술은 언젠가는 뇌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서 죽음까지도 뛰어 넘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들어가서 살게 될 가상 세계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화 된 에너지는 태양과 같은 항상 에너지를 이용해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 즉, 이것은 아예 별도의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다.

 

물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긴 하지만 실제로 노동을 하는 존재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것은 로봇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즉, 이제 인간은 가상 세계 안에서 24시간을 즐겁고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살면 된다. 지루하면 일 년 이상을 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상 세계가 완벽해져서 매트릭스 속 세계처럼 거의 실제와 다름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아 충족에 대한 욕구는 생각보다 아주 대단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그때까지 살진 못하겠지만, 22세기를 거쳐 이후 인간들의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 아니 더 이상 아이를 낳지도 않겠지만 - 그것을 처음부터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거부감 같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삶이란 개념이 바로 가상 현실일 테니까 말이다.

 

이 시대가 열리기 전 아마도 종교와 과학은 가장 극적인 충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보완적으로 겉으로는 서로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물론 가끔 충돌도 꽤나 있었지만, 그래도 국지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디지털 정보로 변화되는 순간, 과학과 종교는 더 이상의 존중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반드시 누구 하나는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과학과 종교는 각각 어느 정도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인간의 지식은 미약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상관은 없다. 인간이 물질적 존재를 넘어선, 영혼이나 아트만 혹은 진아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있거나 없거나 현재의 삶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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