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들

사랑의 두 얼굴

아이루다 2020. 5. 8. 10:20

플라테네스: 선생님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통해 수 많은 사유를 하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을 얻으셨는지요?

 

테베스: 다행히도 얻었다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것이지.

 

플라테네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요?

 

테베스: 내 결론에 의문이 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사랑은 오래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간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는 것이 나의 마지막 깨달음이라네. 처음 만난 전혀 모르는 젊은 남녀에서도, 아무런 혈연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는 노인과 소년에게서도, 심지어 전쟁터와 같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잔혹한 곳에서도 피어나는 것이 바로 사랑이지. 아마도 인간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이미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네.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베스: 그렇다네. 그런데 그런 사랑 중에서도 최고의 사랑이 있다네.

 

플라테네스: 그게 뭐죠?

 

테베스: 자네도 이미 경험한 사랑이지. 자네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대부분 경험한다네. 그리고 그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정말로 멸망했을 것이야.

 

플라테네스: 그런 위대한 사랑을 제가 이미 경험했다고요?

 

테베스: 그렇다네.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도 아니네. 잠시 스스로 생각해보게.

 

플라테네스: .. 그렇군요. 지금 선생님은 제 부모님의 사랑을 말씀하는군요.

 

테베스: 정답이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 물론 아버지의 사랑도 충분히 위대하다네. 하지만 10달을 품고 낳아서 젖을 먹이는 모성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지. 아무튼 모성애야 말로 인간의 궁극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네. 그래서 모성애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언제나 희망이 있지.

 

플라테네스: .. 그렇군요. 저도 그 모정에 대한 멋진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위대한 어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에요.

 

테베스: 그렇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소수의 어떤 사람들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 대부분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다행히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그런 운 나쁜 기회가 없었던 것이야. 그렇게 자식에 대한 그 순수한 사랑은 살고 싶다는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본능인 생존조차도 뛰어 넘게 만들고 있네.

 

플라테네스: 듣고 보니 정말로 그렇군요. 자신의 생존본능을 뛰어 넘게 만드는 사랑이라.. 갑자기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집니다.

 

테베스: 모성애가 그 중에서 최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지극히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모두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 놓을 수 있게 만들거든. 생존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사랑의 힘을 통해 그 한계를 뛰어 넘게 만들지.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저는 아직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남녀의 사랑도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테베스: 그렇다네. 뜨겁기로 다지면 남녀의 사랑만큼 대단한 것도 없지. 그래서 과거로부터 많은 창작물들이 있어왔네. 자네도 로미오와쥴리엣 정도는 읽어 봤을 것이 아닌가?

 

플라테네스: 읽어 봤습니다. 안타깝고,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였어요.

 

테베스: 그렇지.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있다네. 사실 인간의 창작물 중에서 사랑이 빠진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 종류만 다를 뿐, 인간은 언제나 사랑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그래서 제가 그런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뭔가 설명하기 힘든 깊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군요.

 

테베스: 그런 셈일세. 사랑이야 말로 가장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이기에 그렇다네. 그리고 더해서 우리가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위대한 가치이기에 그렇게 많은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네. 사랑의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될수록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아낄 수 있기에 그렇지. 우리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잊어 버린다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그렇다면 미래에 나올 수 많은 창작물 속에서도 사랑의 가치는 늘 존재하겠군요. 우리가 단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 존재가 아님을 아는, 서로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이타적 존재임을 증명하는 가장 최고의 증거물로써 말이에요.

 

테베스: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네.

 

플라테네스: ? 그렇다면 사랑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테베스: 있다네. 그리고 아주 심각하지.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사랑이 아닌 듯 취급되고 있기에 오히려 사랑의 반대말로 사용되기도 한다네. 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지. 그것은 그저 사랑의 어두운 면일 뿐일세.

 

플라테네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사랑에 관해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테베스: 너무 불안해 하지는 말게. 물론 알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 그래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지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사랑의 진실, 그것을 우리와 같은 사람들만이라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지. 그런 태도가 바로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아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어.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 저는 견뎌내고 듣겠습니다. 도대체 제가 사랑에 관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테베스: 듣고 나면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 행위라는 점에서 출발한다네. 그러니까 사랑은 분명히 내가 아닌 남을 향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이타적인 것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지.

 

플라테네스: ? 아니 선생님도 방금 전에 모성애의 가치와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존본능조차 뛰어 넘는 위대한 사랑에 대해서 칭송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완전히 반대 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방금 전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도 듣고 본 것이 있는데 어떻게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엄마의 사랑을 가장 이기적인 행위라고 폄하할 수 있습니까?

 

테베스: 지금 자네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나도 젊은 시절에 내 스승님으로부터 같은 말을 듣고 화를 냈지. 나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기까지 했다네. 그런 면에서 자네는 나보다는 훨씬 분별력과 자제력이 좋다고 보여지네.

 

플라테네스: 제가 지금 그런 칭찬에 기분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시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스스로 정의한,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치를 훼손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테베스: 미안하네. 할 수가 없다네. 뻔히 존재하는 진실을 내가 부정하다고 해도 사라질 수는 없지.

 

플라테네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선생님의 변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 저를 제발 납득시켜 주세요.

 

테베스: 알았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결국 나를 위한 것,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표현하기로 이기적 행동이기에 그렇다네. 그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세. 예를 들어서 자네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자네 어머니의 사랑은 어떤가? 그 사랑의 범위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세.

 

플라테네스: 사랑의 범위라고요?

 

테베스: 그렇다네. 자네뿐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를 무척 사랑하지. 하지만 그 엄마가 옆집 아이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는다네. 물론 그 아이와 자신의 아이와 친구라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 이유조차도 옆집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지. 결국 자신의 아이와 "친한" 아이라서 그렇다네. 그렇기에 자신의 아이와 싸운 아이는 사랑할 수 없지. 오히려 자신의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는 사랑이 아닌 미움을 갖게 된다네. 엄마는 아무 아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이"를 사랑하지.

 

플라테네스: .. 그런 면도 있군요.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테베스: 그렇네. 어쩔 수 없는 것이네. 엄마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식에게 한정적으로만 동작되는 것이네. 그것이 대단하고 위대한 것이며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어떤 경우에도 보편적 진실이 될 수는 없지. 그런데 아이의 엄마는 왜 아이를 사랑하겠나?

 

플라테네스: 소중하니까요.

 

테베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너무 피상적인 표현일세. 그래서 그 피층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보면 결국 거기엔 아이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엄마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네.

 

플라테네스: 그게 뭔가요?

 

테베스: 바로 엄마 자신의 행복이라네. 아이를 통해서 자신히 행복하기에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라네. 그래서 설령 자신의 아이라고 해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언제든 버림을 받게 되네.

 

플라테네스: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를 사랑한다고요? 그렇다면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죠? 스스로 가장 불행한 것을 선택했는데요.

 

테베스: 좋은 지적이네. 하지만 자네는 지금 육체적 죽음을 가장 불행한 것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네. 지금 다른 죽음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세. 자네 입장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 같나? 그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지? 그들은 가장 큰 불행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인가?

 

플라테네스: .. 많은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살기가 힘들어서 자살을 했을 것입니다.

 

테베스: 그렇지. 다르게 표현하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절망감 때문에 그런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네. 앞으로 더 살아도 별다른 희망이 없다면 왜 살고 싶겠는가? 현재가 고통스럽기만 하고 미래에도 이 고통이 사라질 것 같지 않으면 왜 힘들게 살고 싶겠는가? 그러니 아예 고통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파괴시켜버리는 것이지. 그래서 자살이 노년층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세. 나이를 먹을수록 희망이란 단어가 점점 더 멀어지기에 그렇지. 반면에 젊은이들은 대부분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네. 그 순간이 너무 견디기 힘드니 역시나 마찬가지도 그런 힘든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감정을 느끼는 자기자신을 파괴하고 있지.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그런데 자살과 엄마의 희생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죠?

 

테베스: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은 결코 죽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세. 물론 객관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하지만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가장 행복할 수 없듯이 몸이 죽는다고 해서 가장 불행할 수는 없는 것이야. 행복과 불행은 분명히 육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결국 정신활동에 속하지.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고, 몸이 건강해도 불행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네. 물론 건강한 몸은 행복의 기본 조건 중 하나이지만 사실 돈과 비슷하네. 돈도 많으면 좋지만 없다고 무조건 불행하거나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네.

 

플라테네스: ..

 

테베스: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위대한 행위이지만, 사실 거기엔 아이를 잃고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다네. 결국 아이를 잃었을 때 느낄 두려움이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 넘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만약에 아이가 자신의 행복의 첫 번째가 아니라면 아마도 그 부모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네. 그래서 실제로 아이를 낳고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굶어 죽이는 부모도 있다네. 자신을 팔아먹는 부모도 있고, 심지어 자식을 성폭행하는 부모조차도 있지. 그런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파렴치한 행위로 비난을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부모의 사랑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자식을 위하는 그런 이타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가 되지.

 

플라테네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소수가 아닌가요?

 

테베스: 소수이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게. 자네는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나?

 

플라테네스: .. 스스로 부끄럽지만 그런 생각을 몇 번 했습니다.

 

테베스: 아닐세.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생각이 아니네. 오히려 안 했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살인을 실제로 한 것은 아니지. 그리고 또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네. 그럼에도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살인을 하지. 그것은 분명히 나쁜 짓이지만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 교육을 받아도 결국 우리 안에 살인충동과 같은 폭력적인 본능이 숨겨져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지.

 

플라테네스: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것과 엄마의 희생의 무슨 상관이죠?

 

테베스: , 생각해보게. 어떤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한번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 않았겠나? 그럼에도 참지. 왜냐하면 참으면 언제가 더 큰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으니까.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게 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인충동을 느끼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살인을 실제로 하듯,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지만 실제로 소수만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살인자나 아이를 버리는 부모의 존재는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성의 힘으로 제어되고 있는 악마와도 같은 본능을 알려주고 있는 셈일세.

 

플라테네스: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리 인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테베스: 또 하나의 예가 있다네. 요즘 사회에서 흔히 엄마를 비하하는 단어인 맘충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그들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플라테네스: ..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하긴 하지만 뭔가 비정상적인 것이겠죠.

 

테베스: 그렇지. 그런데 사랑하는 것 자체는 맞는다고 할 수 있어. 단지 그 사랑이 너무 이기적인 것일세. 다른 사람들이 어떤 손해를 보든 자기 아이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국 그것도 대단한 모성애가 아닌가? 자신의 아이가 중요한 시험에 합격하라고 매일 정한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하는 엄마와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그 엄마의 자식이 합격을 하는 순간 또 다른 엄마의 자식은 분명히 불합격할 텐데 말일세. 결국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 밖에 없어. 그리고 더해서 그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이기적이 되는 것이지. 단지 그 이기심이 타인에게 얼마나 구체적으로 손해를 입히게 될지 여부에 따라서 맘충이라고 비난을 받게 될지 아니면 위대한 모성애라고 칭송을 받게 될지 구분되는 것 뿐일세.

 

플라테네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모성애가 강하면 강할수록 극단적인 이기적 행위로 이어지는데, 왜 이 사회가 모성애를 그렇게 위대한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죠?

 

테베스: 아까도 말했듯이 보편적 공감을 얻기 쉬우니까 그렇다네. 누구나 엄마에 대한 아련한 감정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자네가 조금 전에 느꼈듯이 말일세. 그리고 사회적으로 봐도 모성애가 잘 동작하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미래가 밝다네. 아이들은 미래사회의 주역이야. 그래서 아이를 잘 키우는 사회가 미래의 희망이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 1 차적인 책임자가 누군가? 바로 부모라네. 그 중에서 엄마의 몫이 매우 크지. 그러니 우리가 속한 사회는 모성애에 대한 가치를 늘 강조하게 된다네. 마치 애국자들을 칭송하듯이 말일세. 그래야 나중에 전쟁이 나면 국민들이 도망가지 않고 총을 들고 싸울 것 아닌가?

 

플라테네스: 그렇군요.. 모성애조차도 결국 사회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군요.

 

테베스: 원래 처음부터 가치라는 것이 다 그렇다네. 원래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아무런 가치가 없지.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그것들에 가치를 부여하여 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지. 나쁜 것은 아니네.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니까.

 

플라테네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테베스: 자네가 언제가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저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네. 내가 뭔가 어떤 존재 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그것이 잘 되고 있지 않는 것이지. 물론 아직 한참 젊기에 별 문제는 아니네. 단지 자네의 미래의 어느 날엔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네. 그것이 자네를 구원해줄 것이야.

 

플라테네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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