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들

[상담] 중년의 행복

아이루다 2019. 5. 28. 08:12

 

선영: 요즘 사는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좀 우울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 안 떠오르고, 그런 날이 많다 보니 가끔은 왜 사는지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 우울증이 걸린 것 같아요.

 

상담사: 그건 아니에요.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좀 다르거든요. 하지만 아무튼 우울함을 느낀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신호이긴 해요그런데 왜 사는 재미가 없어요? 원래부터 그랬어요?

 

선영: 아니요. 젊었을 때는 안 그랬어요.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어요그 시절엔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 문제였죠.

 

상담사: 그러면 언제부터 지금 증상이 나타났나요?

 

선영: 아마도 몇 년 된 것 같아요. 처음엔 그냥 잠시 그러다가 말 것 같았는데, 요즘은 점점 더 심해지네요.

 

상담사: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선영: 한국 나이로 45살이에요.

 

상담사: 그러면 대략 40대 들어서면서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이네요?

 

선영: , 맞아요. 갱년기가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저 왜 이럴까요?

 

상담사젊은 시절엔 주로 무엇을 했는데요?

 

선영뭔가 많이 했죠. 자전거도 탔고, 수영도 배웠어요. 여행도 자주 갔고, 돈이 허락하는 한 공연도 최대한 자주 가려고 했어요. 멀리까지 맛난 것도 먹으로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어요. 가끔 클럽에 가서 춤을 추기도 했고.. 그렇다고 논 것만은 아니에요.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을 했죠. 돈의 여유가 있으면 쇼핑을 하는 것도 좋아했고.. 생각해보니 요가랑 댄스도 했었네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서 자주 영화관에 갔고, 책도 참 많이 읽었어요.

 

상담사: 오우.. 참 많은 것을 하고 살았네요. 행복하셨겠어요.

 

선영: 당연하죠. 하루가 짧았고,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TV를 볼 시간도 부족했죠. 그런데 지금은 하루가 길어요. 주말은 더욱 더 길고요.

 

상담사: 그럼 중간에 뭔가 환경의 변화가 있었나요?

 

선영: .. 아마도 아이를 키우느라고 한 십 몇 년 간 정도의 공백이 있었던 것이 변화라면 변화일 듯 싶네요.

 

상담사: , 그러니까 십 몇 년의 공백이 있은 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된다는 뜻인가요?

 

선영: , 대충 그렇겠네요. ..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상담사: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네요.

 

선영: 뭐가 쉽고, 뭐가 어려운데요?

 

상담사: 그렇게 된 원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은 쉬운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어렵다는 뜻이에요.

 

선영: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나 좀 알려주세요.

 

상담사: 충격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얘기할게요. 나이를 먹어서 그래요. 몸이 늙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선영: ? 제가 늙어서 그렇다고요?

 

상담사: 그렇죠. 그런데 지금 늙었다는 말의 의미는 할머니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단지 젊은 시절만큼의 강렬한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죠.

 

선영: 저는 별로 그때랑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요?

 

상담사: ,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본인이 잘 못 느끼는 한 가지 큰 변화가 있어요.

 

선영: 그게 뭔데요?

 

상담사: 선영씨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내면의 두려움이 줄었어요. 그러니까 예전보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덜 두려워졌다는 뜻이에요.

 

선영: ? 제가 두려움이 줄었다고요?

 

상담사: . 선영씨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에요. 나이를 먹을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줄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과거보다 확실히 더 살았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미래 자체가 줄었으니까요. 매우 당연한 일이에요. 100살까지 살 수 있을 때 10살이라면 90년의 세월을 걱정해야 하지만, 90살이 되었다면 이제는 10년의 시간만 두려워하면 되잖아요. 사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암에 걸렸어도 별 일 아닐 수 있어요. 아픈 것이 문제일 뿐이죠.

 

선영: ..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긴 한데, 그래도 저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데요?


상담사: 요즘은 어떤 두려움을 주로 느끼는데요?


선영: 아마도 노후? 그리고 건강을 잃는 것?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 것들이요.


상담사: 그렇겠죠. 그럼 제가 설명을 조금 바꿀게요. 두려움이 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종류가 바뀌었어요.


선영: 아.. 두려움의 종류가 바뀐 것이라고요?


상담사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큰 일도 아닌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어른들 하고 두려움의 종류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른들이 보기엔 어처구니가 없지만, 친구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이유로,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부모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살을 하기도 해요. 더해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일수록 자신에 일어난 불운을 크게 해석하게 돼요. 사실 착각도 아니에요. 어린 시절에 일어난 작은 사건이 어른이 될수록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흔하게 일어나니까요. 어린 시절에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도 있잖아요그 점들이 어른들과 다르죠.

 

선영: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그런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제가 두려움이 줄어든 것과, 아니 제가 두려움의 종류가 달라진 것과 제가 요즘 의욕도 별로 없고 삶이 우울한 것과 무슨 상관이죠?

 

상담사: 처음부터 두려움이 의욕 자체를 만들어주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삶의 방향은 끝없이 두려움을 없애는 쪽으로 흘러가려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큰 두려움일수록 그것을 없애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이에요.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잘하고 싶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고 싶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해요. 이것들이 모두 각자가 가진 두려움을 줄이는 역할을 해요. 반대로 뭐든 잘하면 잘하고 싶은 것이 없고, 뭐든 풍족하면 채우고 싶은 것이 없죠. 그리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해결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두려움의 종류가 바뀌었다면 과거의 해결책들은 전혀 쓸모가 없죠. 지금은 건강이 가장 큰 두려움인데 예전처럼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했던 행동들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해결이 될리가 있어요?

 

선영: .. 그러면 제가 두려움의 종류가 달라져서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는 뜻인가요?

 

상담사: 맞아요. 젊은 시절에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만 쳐다봐도 행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돈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통장을 봐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 돈이 어느 정도 되니까 두려움이 줄고, 그러니 돈이 늘어나는 것이 더 이상 두려움을 줄여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족감도 떨어져요.

 

선영: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네요. 그러면 제가 다시 예전처럼 살고 싶으면 다시 예전에 가졌던 두려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요?

  

상담사: (웃음) 그렇지는 않죠. 아니 못하죠. 그것은 남자들이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는 라면을 경험하고 싶다는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결코 다시는 그 맛을 경험할 수 없죠그것을 집에서 흉내 내봐야 절대로 같은 맛을 느낄 수 없어요. 오직 군대를 다시 가서 그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몰래 먹어야만 경험 가능한 행복이에요. 나이 먹은 어른들이 자신들의 고생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떠올리는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면 고달프기만 하겠죠. 물론 돌아갈 방법도 없고요.

 

선영: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상담사: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원인 분석은 쉬운데 해결책은 어렵다, 라고 말이에요.

 

선영: 그럼 그냥 포기해요? 이대로 우울하게 살아요?

 

상담사: 아니죠. 절대로 그렇지는 않아요. 어렵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선영: 그럼 좀 말씀해주세요.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상담사: 사실 할 것은 많지 않아요. 좀 어렵다 뿐이지.

 

선영: 그러니까 얘기 좀 해달라고요.

 

상담사: 일단 가장 먼저 선영씨가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행복은 모두 머리 속에서 날려버려야 해요. 그것들은 더 이상 선영씨가 경험 가능한 행복이 아니에요. 그것은 온전히 젊고 경험이 부족했기에 누릴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행복이에요. 그러니 이제는 포기해요.

 

선영: 그러고 나면요?

 

상담사: 이제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야죠. 지금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행복 말이에요.

 

선영: 그것이 따로 있어요? 저는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요?

 

상담사: 하고 싶은 것을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찾으니 없는 것이에요.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찾아 봐야 해요.

 

선영: 그게 뭔데요?

 

상담사: 일단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설명해드릴 것이 있어요.

 

선영: , 해보세요.

 

상담사: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경험하는 행복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자기증명이란 목적을 가져요. 그러니까 나를 증명하는 것이 매우 행복한 일이란 뜻이에요. 뭔가 잘하는 나,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큰 나, 남들보다 잘나 보이는 나, 남들과 다른 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 등을 채우는 과정에서 아주 큰 행복을 경험하죠. 그래서 그때는 남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그것이 잘 안되면 질투나 열등감과 같은 나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일도 많죠. 그래서 상처도 많이 입고요.




 

선영: 그렇긴 하네요. 저도 그랬었어요.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요.

 

상담사: 그런데 왜 다들 젊은 시절엔 그렇게 자기증명을 하려고 할까요?

 

선영: .. 삶을 성공하고 싶어서?

 

상담사: 대충 맞는 말인데 좀 더 명확히 말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잘날수록 우두머리에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쫓겨날 가능성이 줄어들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가장 행복해 해요. 그러니까 어릴수록 친구 관계에 목숨을 걸죠.

 

선영: 아.. 그렇군요.

 

상담사: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으면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스스로 무리에서 벗어나 살기도 하죠. 영원한 내편인 자기 가족도 생겼으니까요.

 

선영: 결국 그러면 자기증명 욕구가 많이 줄었겠네요.

 

상담사: 맞아요. 그러니 젊은 시절처럼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요. 더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도 그리 행복하지 않고요.

 

선영: 참 어려운 문제네요.

 

상담사: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에요. 아까도 설명했듯이 어떤 행위가 오직 자기증명의 목적만 가지지 않거든요. 사실 행위 그 자체를 통해 누리는 행복도 매우 커요. 자기증명의 행복에 가려서 잘 안보일 때가 많지만요.

 

선영: 그 부분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상담사그럴게요. 예를 들어서 맛난 음식을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음식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올려서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행복하죠. 여행을 떠나는 것도 행복하지만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혹은 그 얘기를 함으로써 부러움이나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해요. 이것도 일종의 자기증명을 통한 행복이죠. 영화를 보는 것도 행복해요. 그런데 영화를 본 내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설명하는 것도 행복해요. 뭔가 멋진 말로 하면 할수록, 남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면 할수록 행복하죠.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리고 운동을 해서 멋진 몸을 가진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행복해져요. 사실 세상에 모든 일이 다 그래요. 글을 쓰는 것도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훨씬 더 행복해요.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잘 받는 것일수록 점점 더 목적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옮겨가게 되어 있어요. 심한 경우엔 오직 평가를 받기 위해서만 어떤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선영: .. 그것이 문제가 되나요?

 

상담사: 문제가 될 것은 없죠.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이를 먹게 되면 자기증명에 대한 욕구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돼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관성적으로 그런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죠. 예전부터 그랬으니 버릇처럼 계속 그러는 것이에요. 이것이 문제에요.

 

선영: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상담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에서 자기증명을 빼고 판단해야죠. 정말로 그 행위 자체가 좋아서 하고 있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것을 하고 있느냐를 따져야죠. 그래서 만약 인정을 받고 싶은 목적이 훨씬 더 크다면 그것은 과감히 포기해야 해요. 결코 젊은 시절만큼 얻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젊은 시절에도 제대로 못 얻는 인정을 나이 먹고 추구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기도 해요. 나이를 먹었다면 현명해져야죠.

 

선영: 그것들을 다 빼도 행복할 수 있어요?

 

상담사: 행위 그 자체로 행복한 것들만 남게 되니까 당연히 행복하긴 하죠. 단지 자기증명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강렬한 행복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만 빼면 훨씬 더 낫다고 볼 수도 있어요. 자기증명의 행복은 아주 강렬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는 심각한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행위 그 자체로 행복하게 되면 그런 경험을 할 필요가 없죠.

 

선영: 그런 좋은 면도 있겠군요.

 

상담사: 더해서 괜한 집착도 사라져요.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게 되면 안 해도 되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자기증명에 얽혀서 살게 되면 거기에 집착이 장난이 아니죠. 그것을 통해 행복을 얻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 아주 강한 분노에 휩싸이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젊을수록 쉽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이에요.

 

선영: ..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면이 있었네요.

 

상담사: 맞아요. 그리고 젊은 시절엔 그래야 해요. 오히려 에너지가 없고 아무 것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죠. 하지만 지금 선영씨 나이 정도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건 것들로부터 졸업을 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행위 자체로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해요.

 

선영: .. 그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겠네요.

 

상담사: 뻔하지만 시도 해볼만한 방법 설명을 해드릴까요?

 

선영: 그런 것이 있어요?

 

상담사: 있죠. 가장 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이죠. 주변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는 모임들에 참석해 보는 것이에요. 물론 당연히 본인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을 해야겠죠. 책을 좋아하셨으면 독서모임 같은 것 나가는 것도 좋고요, 요리나 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아요. 그것이 무엇이든 잘하는 것으로 골라서 하면 돼요. 그런데 목적은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에요.

 

선영: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요?

 

상담사: .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지거든요. 사람이 원래 그래요. 젊은 시절엔 홀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두려움이 크니 뭔가 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니까요. 그리고 시간도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니 더욱 더 별 일 아닌 것에 행복하죠. 그냥 비싼 뷔페 한번만 가도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지는 시기에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것들은 다 사라지죠. 부족한 것도 줄어서 뭘 해도 그 시절만큼 행복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에도 무엇을 해도 친구들이랑 하면 훨씬 더 행복했잖아요. 그러니까 나이를 제법 먹은 지금은 과거의 부족함이 없어서 그런 행복은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했기에 느꼈던 행복은 경험할 수 있어요.

 

선영: 그런데 전 사람 만나는 일이 그리 즐겁지 않는데요. 좋기도 했지만 기분 나쁜 일들도 너무 많아서 힘들었거든요.

 

상담사: 그것은 예전 젊은 시절의 선영씨고요. 자기증명의 욕구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경쟁자로 느끼고 그래서 상처를 입었던 선영씨라서 그런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다 경쟁자로 느낄 필요가 없어요. 사실 두려움이 줄었다는 말이 가진 의미가 그것이에요. 또한 나이를 어느 정도 먹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처지라는 것이 생겨요. 젊은 시절엔 같이 어울리던 친구라고 해도 미래에 누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지만, 지금 나이쯤 되면 거의 다 결정되어 있어요.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현재 상태로 살다가 죽겠죠. 그러니 지금 상태에서 어울린 만한 사람들을 찾으면 돼요.

 

선영: 그럼 지금 새로운 관계를 찾아보라는 말씀인가요?

 

상담사: 그렇죠. 물론 예전의 관계들도 유지하시는 것이 좋고, 하지만 지금의 선영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별 문제가 없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세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런 관계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별로 경제적 상황이 어느 정도 유사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고 방식이나 삶의 패턴이 겹치는 면이 있어요. 그러면 공통 화제를 만들어내기가 좋아서 서로 통하기가 쉽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까워서 좋아요. 거리가 생각보다 아주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선영: .. 일리는 있네요.

 

상담사: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선영: 뭔데요?

 

상담사: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계는 절대로 깊게 가지 마세요. , 좋은 사람을 만났다 싶으면 깊게 가고 싶어서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아무튼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잘 조절하셔야 해요. 지금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는 오직 행복의 영역에서만 맺어야 하거든요. 절대로 불행의 영역까지 확대시키지 마세요.

 

선영: 그게 무슨 뜻이에요?

 

상담사: 인간의 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행복을 위한 관계, 다른 하나는 불행을 대비하는 관계죠. 그리고 행복의 관계는 불행하며 끊겨요. 하지만 불행의 관계는 불행해도 유지가 되죠. 더해서 행복할 수도 있고요.

 

선영: 그럼 어떤 관계가 불행의 관계에요?

 

상담사: 가족이죠. 가족만이 유일하게 불행의 관계로 맺어질 수 있어요. 그리고 냉정히 말하면 부부만이 유일하게 불행의 관계에요. 물론 부모 자식간에도 가능하긴 한데, 부모는 자식의 불행을 감당해주지만 자식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불균형하죠. 그래도 다른 관계에서 비해서는 훨씬 나아요. 그 다음으로 형제관계가 있는데 부부나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비하면 훨씬 부족하죠. 그리고 친척, 이웃, 친구, 회사 관계 등으로 갈수록 점점 더 줄어들게 돼요. 당연하죠. 하지만 그래도 행복의 관계로는 얼마든지 맺어질 수 있죠.

 

선영: .. 그러면 행복한 관계만을 맺으라는 뜻인가요?

 

상담사: . 그것도 최대한 철저하게 노력해야 해요. 그냥 맺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엮여 들어갈 수 있거든요.

 

선영: 왜요? 그것이 좋은 것도 아닌데요.

 

상담사: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미래에 닥칠 불행에 대해서 보험을 들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불행할 때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죠. 이 심리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신경 쓰고 보살펴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더해서 나중에 자신의 불행할 때 돌려받지 못하면서 상처로 이어지고 말아요. 그러면 결국 관계가 끊기죠.

 

선영: .. 어려운 일이네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모두 남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요.

 

상담사: 그럴 수는 없죠. 그러면 관계가 다 끊기니까요. 일단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요. 하지만 그 목적이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영씨 자신을 위해서요. 그 사람의 불행을 보살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행복해져야 선영씨와의 관계가 유지되니까요. 그러니 오직 선영씨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대처하세요.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해요. 마음 속에 기대치를 품는 순간 무조건 배신감의 상처가 생겨나거든요.

 

선영: 그게 쉽게 될까요?

 

상담사: 당연히 쉽게 안되죠. 하지만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진실은, 선영씨가 100의 도움을 줬다고 해서 상대가 결코 100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실제로 평균적으로 상대는 50정도를 받는다고 느껴요. 그래서 나중에 선영씨가 도움을 받을 상황에 놓이면 50을 돌려주게 되죠. 하지만 선영씨는 100을 기대하기에 도움을 받아도 실망하게 되어 있어요.  원리를 잊지 마세요.

 

선영: .. 그런 면이 있군요.

 

상담사: 정리해드릴게요. 관계를 맺지만 기대를 가지는 관계를 맺지는 마세요. 그저 관계로부터 행복만을 목적으로 하시면 됩니다. 원리는 단순해요. 나의 행복을 위해서 관계를 맺는 것이지 관계가 소중하거나 관계를 통해 불행을 대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내 행복이 소중한 만큼 남들에게 잘하세요. 선영씨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선영씨가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지극히 자신이 행복하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그러는 것이에요. 그리고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수록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가 줄 수 밖에 없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믿기에 상처가 생겨나는 것이죠. 하지만 이타적인 사람은 없어요. 그저 모두 뭔가를 바라기에 이타적으로 구는 것 뿐이죠.

 

선영: 그 얘기는 예전에 자주 들었었네요. , 씁쓸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상담사: 하나 더 해결책을 말씀 드리면바로 운동을 하는 것이에요.

 

선영: 운동이요?

 

상담사: , 매우 중요해요. 몸이 건강해야 행복하거든요. 사실 몸 컨디션만 좋으면 그냥 맑은 날씨에 걷기만 해도 엄청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데 몸이 아프면 나갈 생각도 안 나고 우울해지고 말죠. 그러니 꾸준히 운동을 하세요. 사람은 생각보다 육체적 존재에요. 단순히 몸이 아프면 신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선영: 그래요. 운동은 해야죠.

 

상담사: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에요. 선택할 것이 아니에요.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금의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해야죠. 단지 어떤 운동을 할 때 선영씨의 성격에 잘 맞는 것을 고르세요. 혹시 잘하는 운동이 있으면 그것을 고르고요. 무엇이든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골라야 해요.

 

선영: .. 그렇군요. 하기야 즐거워야 계속 하겠죠.

 

상담사: 매우 중요합니다. 못하는 운동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삶은 극기가 아니라 행복이에요. 삶은 의지력으로 어렵게 사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에요. 두려움이 컸던 젊은 시절엔 의지력으로 힘들게 강을 거꾸로 올라야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이제는 그럴 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삶은 어느 정도 이미 고정되었고 뭔가 새롭게 도전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 것들은 모두 두려워서 그런 것뿐이니까요. 그러니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해요.

 

선영: 쉬운 말 같으면서도 어렵네요.

 

상담사: 사실 당연히 어려운 일이어야 해요. 사람들에게 행복이 얼마나 중요해요.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그냥 쉽게 얻을 수는 없죠. 그러니 끝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해요. 어떤 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어떤 것이 자신에게 억지스러운 것인지 따져봐야죠.

 

선영: 혹시 비법 같은 것이 있나요?

 

상담사: 비법이요? .. 뭐 있긴 한데 실천이 어려워요.

 

선영: 뭔데요?

 

상담사: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행복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복사를 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내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따라 하는 꼴이죠. 그러니 행복하기가 쉽지 않죠. 사람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 달라서 행복 그 자체도 모두 다르거든요.

 

선영: 그럼 어떤 것이 내 행복인지 남의 행복인지 어떻게 구분하죠?

 

상담사: 방법은 단순해요. 외부 자극을 최소화 시키는 방법을 쓰면 돼요.

 

선영: 어떻게요?

 

상담사: 일단 각종 SNS를 끊어야 하죠. 서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지 각축을 벌이는 곳이니 자극 덩어리에요. 그래서 자주 그런 곳을 들락거리다 보면 자꾸 남의 행복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어요. 생각도 안 했던 여행지에 가고 싶고, 뭔가를 먹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죠. 하지만 모두 남의 것이에요. 그래서 따라 해봐야 그 사람의 반의 행복도 못 얻죠.

 

선영: 그리고요? 또 있어요?

 

상담사: TV 보는 시간을 줄어야 해요. TV 역시도 자극 덩어리거든요. 사실 SNS랑 다를 바가 없어요. 좀 더 명확히 잘 포장이 되어 있어서 속기가 쉽다는 점만 다르죠.

 

선영: 그럼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TV도 안보고 SNS도 안 하면 할 것이 없잖아요.

 

상담사: 그 시간이 중요해요. 할 것이 없어지면 이제 찾고 싶거든요. 그래서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하죠. 남의 해답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힘들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서 진짜로 나를 행복하게 해줄 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때 삶의 후반부가 풍요로워질 수 있어요. 사실 이 해결책은 지금 이 순간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후 삶에서 아주 큰 전환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 이 시기를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하게 되면 남은 삶은 지금보다 더 못할 수도 있어요.

 

선영: 듣고 보니 좀 무섭네요.

 

상담사: , 복잡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정리가 가능해요.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해라, 이것이죠. 남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고, 남이 행복한 일을 할 필요도 없어요.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면 되는 것이에요. 단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점만 잊지 마세요. 그러니 주변 사람들의 행운을 질투할 필요도 없어요. 좋은 일이죠. 예전에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행운이 나 자신의 두려움을 자극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두려움이 줄었으니 훨씬 덜 자극이 되겠죠. 그러니 누군가의 행운은 좋은 일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선영: , 잘 알겠어요.

 

상담사: 마지막으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에 따라서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부분 젊은 시절에 자기증명을 실패한 경우이죠. 하지만 그들은 젊은 시절과 달리 매우 뒤틀려 있어요. 결국 자신이 자기증명을 실패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찾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끝없이 자기를 비하하거나 혹은 타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살아요. 그러니까 자신을 상처입히거나 타인을 상처입히게 되죠. 결국 질투, 열등감,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전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옆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자꾸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이런 분들과 엮이지 마세요. 삶이 매우 피곤해지게 되어 있어요. 가능하다면 밝고 에너지가 있는 분들과 어울리세요. 가끔 자신이 가진 어두운 영역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진 어둡고 뒤틀린 것에 끌리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조심하셔야 해요.

 

선영: .. 그럴게요.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해요.

 

상담사: 조심해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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