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내 맘대로 살아볼 용기

아이루다 2019. 10. 25. 08:06

 

우리 집은 어머니 말고는 다들 책을 한 권씩은 냈다아버지는 철학서 비슷한 좀 이상한 책을 자비로 내셨고, 큰 누나는 소설 책을 써서 출판을 했었다. 둘째 누나는 선생님이기에 주로 학습서 등을 출간했고, 막내 누나는 영문과 출신이라서 번역서를 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책을 한 권 썼었다.

 

이번에 가족 말고 내 인생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 그렇다고 해서 그리 많이 아는 사이는 아니다. 온라인 상에서 맺어진 작은 인연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듯 건너서 알게된 분이다. 사는 곳도 너무 멀어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꽤나 오래 전부터 써온 글인데 이제야 책으로 나왔다. 모든 것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축하 드리고 싶다. 그리고 책을 내는데 있어서 아주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로 증정용 스탬프가 찍히고 작가의 작은 인사말까지 적힌 책을 받게 되었다.

 

처음 책을 받은 느낌은 참 예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표지 디자인도 예쁘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사진들과 글 배치들도 요즘 나오는 잘 만들어진 책들과 비슷했다. 아무튼 이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쓰신 작가 분은 나와 좀 겹쳐지면서도 전체적인 상황은 정 반대 편에 있는 분이다.

 

나이 대는 나와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질 않지만 일단 여자분이다. 그리고 책 내용에 나와있듯이 비혼주의자로써 혼자 산다. 아니 홀엄마와 같이 산다. 비혼의 부양자인 것이다.

 

나는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이 분과 상황적으로 겹쳐지지만 결혼을 해서 배우자가 있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다나는 원래 개인적으로 비혼주의를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결혼은 물론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그리고 결혼을 잘하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결혼은 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내 대략 예측으로 결혼 성공 가능성은 50%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반인데, 그 성공한 반 중에서도 정말로 결혼 잘했다고 여기는 분들의 비율은 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결혼을 해서 제대로 행복할 가능성은 20% 남짓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는 편이 낫다는 이유는 결국 경제적인 안정성과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 점점 도움이 필요하다는 실제적인 이유이다. 이것은 경제적 종속성 문제나 딱히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등의 흔한 관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사람은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쉬면 낫는다. 그런데 만약 쉴 틈이 없다면 그 감기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게 된다. 며칠만 쉬면 나을 것이 몇 달 가는 것이다. 심지어 폐렴과 같은 병으로 커져서 죽을 수도 있다. 일년 중 단 며칠이라도 그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감기 같은 흔한 병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야생에서 혼자 지내게 되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들짐승들이 습격할지도 모르니 밤새 모닥불을 지켜야 한다. 이때 한 명이 더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바뀐다. 번갈아 가면서 잘 수 있기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혼자 사는 것과 둘이 사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차이보다 훨씬 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스스로를 마취하고 수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머리도 혼자 못 깎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 생존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비혼주의에 대해 반대를 한다. 하지만 꼭 그런 사람을 결혼을 통해서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도 좋고 친구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의 경우 나이 차이로 인해서 정말로 타인이 필요할 때 혼자일 수 있다. 그리고 친구는 변칙성이 강하다. 늦게라도 갑자기 결혼을 할 수도 있기에 그렇다그러니 부부의 연을 맺어서 그런 관계를 만들어 두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개인의 선택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뢰할 사람이 필요하지 행복의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흔드는 것은 결혼보다 오히려 아이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비추천하고 있다그리고 아이가 없는 상황이라면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장점도 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은 자주 나와 빗겨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나와 제법 겹쳐지기도 했다주로 빗나가고 가끔 겹쳐졌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 형식으로 써진 이 책은 내용은 가볍고 쉬우나 나에게는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비혼주의자로 살고 싶거나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분들에게는 나름대로 많은 공감이 될 듯해 보이는 책이다. 특히 혼자 살아갈 삶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미 충분히 그 길을 걸은 후 담담하고 흥미롭게 써진 이 책의 내용들은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이제 천천히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책의 제목에 곁들여져 있는 '관심 좀 꺼 주시죠' 라는 문구만 봐도 비혼에 아이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그것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가 분이 얼마나 많은 참견질을 당했을지 뻔히 짐작이 간다. 나 역시도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왜 낳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봤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빠져 있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일인 가구가 어느 정도 대세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주택 정책이나 세금 정책 등은 전혀 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사실 지금 이 나라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도대체 하나 하나 해결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나라의 정책에 아무런 기대를 하고 살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내용에 깊은 공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무런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지금껏 언제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고 살아오고 있다. 제도에 의해서 내 생존이 결정되는 것을 못 미더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도적으로 어떠한 배려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불만은 없다. 내가 받지 못한 배려는 누군가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이 받았을 것이라는 좋은 의도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것까지 계산하면서 삶을 계획하는 것이 귀찮았다. 그렇게 되면 삶의 계산 공식이 너무 복잡해진다.

 

책을 읽다가 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보고는 '나는 소수자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학비를 못 낼 정도로 궁핍한 것은 아니었고 부모님도 지금껏 두 살아계시며 지금 아이는 없어도 결혼은 했으니 나는 소수자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이 책 내용에 전체적으로 그리 깊은 공감을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소수자로 살아 본 적이 없기에 소수자로 살아 온 분들의 삶을 대충 이해하긴 해도 공감하긴 부족하다. 누군가에 대한 제대로 된 공감은 적어도 그런 비슷한 종류의 삶에 대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예선 탈락이다.

 

나와는 달리 누군가 소수자로써 약자로써 살아가고 있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단순히 신세한탄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문제 제시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살아갈 지에 대한 답이 적혀 있으니 도움도 많이 될 것이다.


그것이 소수이든 다수이듯 상관없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당연히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삶, 이것이 작가 분이 원하는 삶일 것이다. 그 부분은  또한 온전히 동의한다.

 

책은 영화와 노래 그리고 가끔 산책을 간다는 절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와 겹쳐진다완전히는 아니고 부분적으로 그렇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이야기와 김광석과 정태춘의 노래 그리고 한적한 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적어 놓은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주변에 선물해 줄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떠올려 봤다. 일단 큰누나가 생각났다. 오십 중반이 된 큰누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면서 혼자 살고 있다.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살아왔다. 비자발적 독신인 셈이다.

 

아내의 회사에 있는 몇 명의 독신들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아내를 통해 간간히 들었던 분들이다. 나이대도 작자 분과 비슷하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책을 선물로 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리고 찬찬히 내가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 생각해봤다.

 

이 책의 작가 분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여러 가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다닐 수도 있고, 혼자 간판도 보러 다니고,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술을 마실 수도 있는 분이다.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술이 있는 분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누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아내 회사에 있는 분들도 그럴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나이가 이미 50대에 들어선 분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혼자 살려면 어떤 것들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본인들은 해 온 것도 그리고 지금부터 한다고 잘 해낼 것 같지도 않는 것들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위로의 책이 오히려 상처의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힌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말이나 글과 같은 모든 종류의 표현은 양면성을 가진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게 폭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조금 읽기 힘들게 있었고, 누군가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하면서 읽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나는 책의 저자처럼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것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자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 술도 못 먹고, 왜 영화도 볼 줄 모르고, 왜 혼자 여행도 못 다닐까? 다 떠나서 이런 글을 쓸 재주도 없이 태어났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미래가 정해지지 않아서 바꿀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을 떠돌았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나는 수영을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올 초쯤에 수영장에 있는 매점을 운영하는 분과 작은 친분을 맺게 되었다. , 그리 친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인사나 좀 하고 다니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 분이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인지라 나에게 아이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하니 왜 안 낳느냐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내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좋게 해석하면 젊어 보인다는 뜻이다)

 

흔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그리 친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훅 들어오는 것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리 신경이 쓰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녁에 아내와 그 얘기를 하다가 다음에 또 아이 이야기를 하면 내가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돌아서야겠다고 했다. 그 분이 그 다음부터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지 궁금하다고 하면서 아내와 함께 낄낄거렸다.

 

수영장 모임이 가끔 회식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서로 잘 모른다. 특히 신입으로 들어 온 분들은 잘 모르는데, 내 앞에 새롭게 들어 온 40대 초반 여자분이 앉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자리에서 그리 말을 하는 편이 아니라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대화 주제들이 그리 관심이 없어서 대충 들으면서 주로 딴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다가 앞에 앉은 여자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흘려 들고 있던 그 분의 마지막 한 마디가 문득 재해석이 되었다.

 

"아이가 13살였어요." 라는 말이었다. 특히 '였어요' 라는 표현이 화살처럼 꽂혀왔다. 그 순간 나만 그랬겠는가?

 

아마도 누군가 아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말을 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쏟는 순간 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은 결국 그 분이 눈물을 닦고 억지로 웃을 때 겨우 깨졌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호구 조사를 당하고, 조금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자꾸 조언을 가장한 참견을 듣는 것은 원래 짜증이 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결론 낸 것은,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어서 그렇다는 점이다또한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야 말로 그냥 하는 말이다. 예전부터 늘 그래왔으니 관성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딱히 나쁜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마치 과거에 아이를 잃은 듯 굴어 상대를 당황시킬 수도 있고, 실수로 다른 사람의 아픈 과거를 물어서 당황스러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를 치면 화가 나서 싸우든가 아니면 그냥 일어나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때를 노려 최대한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쓰고 절룩거리면서 양보한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앞에서 어슬렁거리면 된다.

 

삶에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할까?

 

사람의 본성을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상식적이라고 믿으면 이 세상은 짜증나서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전혀 그런 존재도 아니다. 그러니 매일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다. 다 정직하면 왜 정직하라고 교육시키겠는가?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못하니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니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들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기보다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잘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깃발의 의도는 아니다. 바람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깃발이 아니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릴지 아니면 가만이 있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외부에서 그 어떤 바람을 불어대도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왜 바람을 부냐고 따져봐야 바람은 늘 불고만 있다. 물론 전체를 위해서 바람 좀 그만 불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대신 그것 때문에 괜히 분노하거나 딱히 기분이 상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이 옳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행복하려고 하는 말이다.


나는 늘 언제나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 좀 그만 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행복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혹은 그렇게 해야 덜 불행하거나 말이다.


인간은 원래 이성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오직 감정 그 자체이다. 이성은 주로 이미 생겨난 감정을 해석하거나 억누르거나 해결하는데 쓰인다. 다들 최대한 좋은 감정이 생기길 원한다. 그래서 좋은 감정이 듬뿍 들어오면 '행복하다' 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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