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 없는가

아이루다 2019. 9. 30. 07:11

 

이 책은 서울대 의대 졸업에 서울대 내과학 교수로 재직 중인 분이 쓴 죽음에 관한 책이다. 서점에 갔다가 흔히 보기 힘든, 죽음을 다룬 책이라서 관심이 갔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에서 내가 선택을 했고 2주 후쯤에 관련된 토론을 하게 될 듯 하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과학적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동일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분이 쓴 책이라서 죽음에 관해 좀 폭 넓은 내용들을 다룰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읽다가 보니 그런 내용은 아니었다.

 

과거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미국의 셀리 케이건 교수의 책은 죽음은 끝이고, 죽음 이후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일종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 편에 서 있는 책이다.

 

일단 죽음 후의 세계, 그러니까 사후세계를 인정하고 있기에 그렇다. 물론 그 사후세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라고 정형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죽음은 일종의 전이 현상으로 현실이라는 차원에서 또 다른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니 특정 종교의 교리와 일치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종교 교리를 찾자면 힌두교나 불교 정도가 될 것이다. 환생, 윤회 등의 개념들이 이런 저런 사례들과 함께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MBC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서프라이즈의 사례가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공감을 느꼈다. 나 역시도 유일하게 보는 TV 프로그램이 바로 서프라이즈이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로 서프라이즈엔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나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증언 등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아무튼 저자는 사후세계가 존재하기에 우리는 딱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헛소리로 치부하지도 않는다그야말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오히려 그럴 가능성도 꽤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사실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또 하다가 보면 결국 단 하나의 사실만이 최종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그저 진화된 고등 동물이며 삶에 관한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단순한 생명체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모든 과학적 증거들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이 DNA의 전달 과정 중 일부라는 『이기적 유전자』의 결론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을 알아낸 사람이 오히려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인간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고, 왜 존재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싶어서 애를 써왔는데 그 결론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냈다면 도대체 그 이후로는 무엇을 더 생각할 수 있겠는가?

 

생각을 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책을 쓰는 것도 무의미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노력도 무의미하다.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 품고 있는 가장 무서운 진실이다. 존재가 무의미 하면 그 존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래서 기껏해야 만들어 낸 삶의 이유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삶이다. 그런데 어느 날 커다란 운석이 충돌해서 인류 전체가 사라진다면 그 동안 그렇게 열심히 해온 그 모든 노력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보다도 먼저 왜 인류는 번성해야 할까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대화 조차도 무의미 하기에 질문을 할 필요도 대답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시간 때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 누가 그런 철학적 질문들을 단순히 시간 때우기로 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삶은 무의미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의미가 있다고 믿으니 그렇게 다들 떠들어 대고 있는데 말이다.

 

어떤 대회에 우승하려고 오랜 시간 노력했는데 그 대회가 없어지고 나면 노력한 모든 과정이 무의미해지고 만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경험이라는 값진 것을 얻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지만 아예 삶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나면 그럴 수 있는 여지도 없다.

 

그야말로 미칠 일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다. 살긴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도대체 어떤 의미도 없는데 내가 오늘 왜 힘들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야 할까? 결국 염세주의나 우울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하루 종일 돌멩이 하나를 올려 놓고 또 다시 내려놓고를 반복시키고 돈을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나는 왜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까?

 

그나마 매일 행복하면 그 행복감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왜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유물론적 결론을 낸 사람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이다. 삶을 오직 물질적인 것으로 정의했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삶을 물질적인 것으로 결론을 낸 사람들은 도대체 왜 책을 쓰는 것일까? 그것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결국 그들도 자신의 그런 생각을 읽고 동조해 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단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유물론자들의 명확한 한계점이다.




 

사실 고백하지만 나도 한 때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나 역시도 인간은 동물이고, 그렇기에 나의 모든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무의미함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비웃는 용도로 썼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영화 '파이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은 두 가지로 이야기를 한다. 하나는 호랑이와 함께 한 환상적인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죽이고 먹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이 둘 중 당신은 무엇을 믿고 싶은가?를 묻는다. 나는 반드시 사실을 알아내서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좀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이 나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에게 그리 큰 영향도 없는데 그렇다. 사실이 정말로 중요해서 그럴까?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실에 목메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속을까 봐 두려워서 그렇다. 어려서부터 자꾸 속아서 손해를 입으니 이제는 속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래서 속지 않으려고 뭐든 최대한 의심을 한다. 그러니 파이 이야기에서도 사람끼리 죽이는 이야기가 더 맞는다고 믿는다. 그 아름다운 영상들을 모두 가짜라고 여긴다.

 

사후세계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있다고 믿으면 현생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책에서는 공동묘지를 자주 산책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자주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설명을 했다. 죽음이란 명확한 한계지점이 삶에 대한 감사함을 가져다 줄 수 있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을 품는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이 왜 그렇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살았는지 후회를 한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고 살면 그 욕망의 한계가 생겨난다. 꼭 죽을 상황에 놓이지 않아도 그런 생각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니 사후세계를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죽고 나서 천국을 가려면 지금 당장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사후세계를 믿는 것으로 인해서 감당해야 할 손해가 분명하다. 물론 그조차도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낸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너무 과도한 거부감을 가지고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좋은 점들도 눈에 들어 올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교수님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여긴다. 물론 스스로 믿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사실과 논리만이 허용되는 이과적 세상 속에 살아가는 분이 이런 책을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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