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아이루다 2019. 9. 26. 07:54

 

예전에 이 책이 나왔다는 말도 들었고, 가끔 서점에서 눈에 잘 띄기도 했지만 실제로 읽은 것은 결국 또 독서모임에서 선택된 덕분이다. 사실 요즘 나는 책을 자의적으로 거의 읽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고른 두 권의 책을 일년 내내 읽고 있는데 아직도 다 못 읽었다.

 

작가는 유명한 유시민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예전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된 분이다. 그리고 당연히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했으니 모르면 간첩일 것이다. 요즘은 TV나 유튜브 쪽에서 많아 나오는 듯 하지만 내가 그쪽을 거의 접하지 않고 있기에 간간히 기사로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듣고 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글 쓰는 요령을 적은 책까지 낸 분인지라 개인적으로 좀 부럽기도 한 분이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유시민씨는 글을 잘 쓰는 분이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그리 글을 잘 쓰는 분이 아니다. 아마도 기존의 책들은 스스로 표현하기를 '지식 소매상' 이기에 논리적인 전개와 쉬운 설명으로 인해서 글을 잘 쓰는 것으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일인칭 시점이라서 그런지 글쓰기 능력이 제대로 드러난 느낌이다.

 

그래도 이해를 해 준다면, 스스로 표현하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에 좀 힘들었나 보다. 서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쓰고 고쳤다고 하는데 결국 내용 자체는 좋더라도 흐름이 혼란스럽게 이어졌다. 아무래도 글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절제'가 제대로 동작되지 않는 듯 하다.

 

글은 제대로 절제가 되지 않으면 금세 삼천포로 빠진다. 나도 그것 많이 경험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글의 흐름이 독자에 맞춰지지 않고 글쓰는 사람의 머리 속에 맞춰졌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결국 읽는 사람들은 작가의 머리 속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이해력이 떨어지고 집중도가 하락한다. 이런 실수가 좋은 글이 망쳐지는 원인이다.

 

나도 글을 쓰기에 그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는 간다. 단지 그 대상이 글을 잘 쓴다고 알고 있었던 유시민씨이였기에 다소 의외였던 것뿐이다. 아무튼 그로 인해서 끝까지 다 읽기가 그리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80년대 학번, 60년대 생, 과거엔 30대여서 과거에 386세대로 불렸던 세대에 속한 분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까지 그리고 3김 시대를 다 뚫고 온, 그것도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써 뚫고 온 분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히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다.

 

나는 지금도 그가 노대통령 서거 후 보여줬던 그 절망과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기억한다. 지금은 정계에서 물러나 본인이 원하는 자유로운 삶으로 살면서 사람 좋게 웃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그날의 표정은 그의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유시민이 절대로 자유롭게 살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 일종의 끝없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 분이 좀 더 부드럽게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좋은 머리로 쌓은 지식의 한계를 뚫고, 그래서 가진 지식을 모두 내려 놓고서 좀 더 본질적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이다. 지식이라는 함정에 자주 빠진다. 그래서 평생 지식과 팩트 그리고 논리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간다.




 

유시민씨는 책을 통해서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 라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답이다. 책은 몇 백 페이지를 통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한 구절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각주에 불과하다.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면 이 책이 말하는 삶의 조건을 충분히 채운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책에서는 자유로운 밴드인 크라잉넛과 유명한 소설가 까뮈에 대한 예를 들었다. 그들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대해서 말했다. 아마도 유시민씨 본인이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가 없었던 삶을 살았기에 그런 삶이 더욱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하나가 있다. 사람이 뭔가에 미칠 정도로 하려면 그것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시민씨는 마음에 드는 재능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재능으로 먹고 사는 일은 문제가 없는 분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옆길로 샜다가도 금세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불량 학생이었다가 고3이 되어서 정신차리고 미친 듯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다는 신화는 노력의 중점이 아니라 지능이 중점이다.

 

까뮈는 태생적으로 불운한 환경에 태어났지만 두 가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자는 열정적 에너지를 가진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재능이다. 이 둘이 맞물리면서 그가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된 것이다.

 

노력, 열정 등은 모두 타고나는 성향이다. 그것들을 노력해서 가질 수는 없다. 또한 각자가 타고난 재능 역시도 타고난다.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타고난 것으로 성공하는 것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 성공한 본인들도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을 한 것을 더욱 더 중요하게 강조한다. 마치 재벌 자녀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임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국 유학의 기회나 국내에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자본과 인맥이 없었다면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이 책을 쓰면 모두 타고난 것들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자신의 힘들었던 좌절의 시간들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힘든 노력의 시간들로만 채운다.

 

그렇게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중요성은 뒷전으로 미뤄지고 오직 노력의 강도만이 강조된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것에 노력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남들은 10분이면 하는 것을 하루 종일 해도 안될 때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노력은 무조건 재능을 기반으로 한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잘해야 그것에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면 오히려 주변에서 불쌍하게 볼 뿐이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잘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을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인정받아야 하기에 노력의 가치만을 부각하고 재능의 중요도는 낮춘다. 그래야 자신의 성공이 더욱 더 빛이 나기 때문이다.

 

재능은 그냥 타고나지만 노력은 진정한 잘남의 상징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노력 자체가 이미 타고난 재능으로 가능했음을 못 본채 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잘난 사람들의 조언이 문제다. 그런데 잘난 사람들만 책을 쓴다. 결국 대부분의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잘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책을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재능이나 환경은 무시하고 오직 노력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들은 조금만 더 나가면 자기계발서가 될 수도 있는 책이다. 단지 이 책의 경우는 그 내용이 사회적 성공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고 살라는 책이 뭐가 그리 다를 것인가?

 

독서모임 중에 잠시 물어보니 '책이 잘 쓴 것은 아니다'라는 나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실제로 다들 그런 식으로 느꼈나 보다.

 

아무튼 좋은 책이지만 내가 딱히 읽을 볼만한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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