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프레임 - 최인철

아이루다 2019. 11. 15. 07:53

 

 

언제부터 집에 있었는지 모를 책이었다. 몇 번 눈에 들어오긴 했는데 선뜻 읽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유는 아마도 제목에 있을 것이다.

 

"프레임", 제목부터 그 내용이 무엇일지 거의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한편으로는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쉽게 꺼내지지 않는 책,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우연히 어떤 사람이 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스스로 책을 만 권 읽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뽑은 베스트 10 중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그 당시 그 기사를 주의 깊게 본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 이 책인지는 모르겠다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도 맞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그 후로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왔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에서 내가 직접 추천을 했다. 사실 추천할만한 딱히 다른 책이 없어서 했다. 덕분에 결국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첫 느낌은 한 10년쯤 전에 읽었다면 참 좋았을 책이란 생각이었다. 그 내용은 참 좋으나 지금의 나에게는 딱히 어떤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만 했다. 그래도 내가 이론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사람의 심리 구조를 어느 정도 실험적으로 증명해 놓은 사례들을 많이 언급해놨다는 점에서는 참 좋았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계시는 최인철이란 분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온 지가 무려 12년이나 된 책이다. 그리고 책을 싼 띠지를 보니 40만 독자가 선택했다고 광고되어 있다. 그러니 나름대로 한 분야의 스테디셀러인 듯 하다결국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나름대로 좋은 책인가 보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는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라고 정의해 두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창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그런데 책에서는 아쉽게도 왜 우리가 다들 그런 창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래서 잠깐 그 부분을 보강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리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것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아무튼 그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초점' 이다. 두 눈을 대상체에 맞춰서 가장 정확하고 또렷하게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초점이다.

 

초점은 주로 고등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같은 포유류라고 해도 육식성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냥 대상체를 정확하게 목표로 해야 하기에 특정한 대상에게 자신이 가진 시각적 능력을 몰입하는 기능을 갖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두 눈이 앞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는 신체적 특징도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잠깐 생각해봐도 호랑이, 늑대, 사자, , 원숭이와 같은 육식성 동물들은 모두 다 두 눈이 앞쪽을 향하고 있음을 떠올릴 수 있다. 반면에 양, , 말 등은 두 눈이 양 옆으로 퍼져있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두 눈의 정면이 아닌 옆면을 보게 된다.



그렇게 초점은 초식동물일수록, 하등동물일수록 점점 불명확해진다. 대신 그들이 가진 능력은 시각의 넓이이다. 포식자를 경계해야 하는 초식동물에게는 대상에 집중하는 초점보다 오히려 최대한 눈의 사각을 없애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포식자들은 초점 덕분에 한 사냥감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사냥의 성공 가능성을 많이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시야에 들어 온 수 많은 시각 정보 중에서 오직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한 정보만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초점을 맞추는 순간 다른 많은 정보들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진다.

 

프레임이 바로 두 눈의 초점과 같다.

 

우리 인간이 머리가 좋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두뇌는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접하는 모든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정보들을 일정한 틀 안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려고 하는 일, 이것이 바로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니 만약 우리 인간에게 프레임이 없게 되면 살기가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것은 마치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흐리멍덩할 것이다.

 

그런데 초점과 달리 프레임은 잠재적으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시각 정보 중에서 초점의 대상만 둔 채 나머지를 무시하는 것은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반면, 우리에게 매일 도착하는 정보들 중에서 어떤 것에 집중을 하고 어떤 것들을 무시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판단에 의해서 이뤄지는 과정이란 점 때문에 생겨난다.

 

두 눈은 고개만 돌리면 알아서 대상체에 초점을 맞춰준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도착하는 정보들을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 의도적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그 프레임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마치 초점이 엉뚱하게 맞춰지는 눈을 가진 것과 같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는데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눈 앞에 맛난 케이크를 두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맛이 있을지를 봐야 하는데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먹을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혹은 이 케이크가 얼마나 몸에 좋지 않을지를 생각한다. 심한 경우엔 이 케이크가 왜 지금 여기에 있을지에 대한 음모론을 생각한다.

 

물론 그런 '다른 생각' 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모여서 생일 파티를 한 후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가는 오히려 즐겁지 않거나 머리 속 생각으로 밖으로 꺼내서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프레임은 그냥 각자 판단하는 것이고, 서로 달라서 누가 더 맞는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더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할 수도, 몸에 좋지 않을 수도,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한 케이크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저 서로 다르다면 각자 사고방식이 다르다고만 판단할 뿐이다. 물론 싸우기도 하고, 갈등도 생기고, 언쟁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가진 프레임이 바뀌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리는 어느 정도는 머리가 좋은 인간이란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게 된 - 어떤 경로를 통해 가지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는 - 프레임을 최대한 객관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책들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설득될 만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지금부터 이 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런 내용은 잘 쓰지 않는데, 아무튼 이 책은 한번쯤 정리해 둘 필요는 있어 보인다.

 

 

 

1. 질문의 순서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

 

책에 행복한가를 묻고 다음으로 데이트를 몇 번 했는지 묻는 것과 데이트를 몇 번 했는지를 묻고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답변이 나온다는 내용이 나온다. 흥미로운 심리실험이다.

 

첫 번째 순서를 보면 행복과 데이트의 상관관계가 0.1 수준이라고 한다. 행복한가 묻고 다음으로 데이트를 몇 번 했는지 물었을 때 행복과 데이트가 데이트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순서로 물으면 상관계수가 0.6으로 치솟는다. 그러니까 두 번째 순서로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답을 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질문을 순서만 바꿔서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첫 번째 순서는 이미 행복 여부를 답을 했기 때문에 데이트를 한 횟수는 그냥 횟수가 되고 만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순서로 물으면 데이트 여부를 먼저 답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 여부를 데이트라는 '프레임'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 행복한 삶에 미치는 요소는 아주 많은 데 그 중에서 오직 데이트만을 가지고 자신의 행복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 있는 프레임이다.

 

비슷한 예로 참기 힘든 고통을 유발하는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아주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 초반이 힘들고 후반이 편한 치료를 받은 사람은 치료가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하고, 상대적으로 덜 한 고통을 겪지만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낀 사람은 치료가 매우 힘들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는 가장 최근에 느낀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그것을 믿는다. 이 역시도 프레임이다.

 

 

 

2. TV가 프레임에 미치는 영향

 

-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세상이 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사람들을 덜 신뢰한다. -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음모론을 더 신뢰한다. -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물질주의 가치관이 강해진다.

 

사실 TV만큼 프레임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생긴 모양도 네모이고 그 네모 안에서 수 많은 세상이 펼쳐진다. 드라마, 뉴스, 쇼 프로, 개그, 영화, 상담, 다큐 등등, 수 많은 정보들이 흘러 나온다. 그런데 그 정보는 과연 누구의 의도이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거기엔 여러 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TV를 통해 나오는 모든 정보는 바로 시청률이란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TV속에 나오고 있는 정보의 객관성이나 정당성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TV는 시청률을 위한 자극을 파는 곳이지 정보를 파는 곳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조작했다가 구속이 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만 그랬을까? 사실 수 많은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 리얼리티라고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대본이 모두 존재하는 가짜 리얼리티 쇼까지, 시청자들은 끝없이 속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는 TV에 속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재미'가 있어서 TV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다. 사람들이 TV를 보는 이유는, TV보다 더 재미난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며, 사실은 자신의 삶이 지루해서 TV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삶을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게 사는 사람들은 TV도 볼 뿐이다. 그래서 TV가 조금만 재미가 없어도 보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에 대해서 불만은 가지는 사람은 결국 삶이 지루한 것이다. 삶이 지루하니 TV를 볼 수 밖에 없는데 TV에서 재미난 것을 하지 않으니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조작된들 뭔 상관이겠는가? TV는 자극을 팔고 있고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해결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이 TV와 시청자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프레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광고는 최첨단 프레임이다. 너무 대 놓고 프레임을 만들어 내기에 시청자들조차 거부감을 느껴서 잘 속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꾸준히,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결국 광고가 만들어 낸 프레임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을 때 타고 다니는 차로 답을 했다', '침대는 과학이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을 먹여야죠' 라는 등의 유명한 광고문구들이 모두 다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다.

 

그 차를 사야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것, 침대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을 먹이지 못하면 제대로 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등의 프레임을 만든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놀랍게도 그 광고를 실제로 따라 한다.

 

 

 

 

 

 

3. 자기 중심적 프레임

 

재미난 실험 하나가 나온다. 두 사람이 실험에 참가하는데 한 명은 자신이 아는 노래를 입이 아닌 손가락을 두드려서 연주하게 하고 (연주라기 보다는 그냥 박자를 맞추는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노래를 맞추는 실험이다.

 

그런데 연주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한 손가락 연주를 듣고 상대가 맞출 확률이 50%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겨우 2.5%가 나왔다.

 

왜 이런 심한 차이가 나타나게 될까?

 

책에서는 이것을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프레임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이 나타난다. 내가 알고 있으니 네가 모르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고방식, 자신이 세상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자신은 매우 상식 수준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세상 모두가 다 그래야 한다는 신념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자신은 자신의 생각과 맞는 사람들만 만났음을 까맣게 잊게 되면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맞지 않는 상대를 보면, 상대를 '이상한 사람', '사차원', '비상식적인 사람' 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런 자기중심적 착각은 이후 '내가 남을 잘 모른다'는 실제적 사실마저 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치 우리들이 남을 잘 아는 듯 굴게 만든다.

 

나 자신은 주변에서 끝없이 오해를 받으면서도 나는 남들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외모적 특징, 취향적 특징, 행동적 특징을 가지고 상대방을 분류한다.

 

 

 

4. 사람이 착해지는 것은 사람이 아닌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챕터이다. 인간의 선함이 인간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배가 부르기에 온순하고 착한 것이다.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악랄한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설령 본인은 착하게 살고 싶어도 스스로 반드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착한 것은 무능함이 된다. 가족이 굶고 있는데 토끼가 불쌍하다고 해서 잡지 않는 부양자가 인간적으로 이해는 가긴 하지만 비난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한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진 가장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남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행위가 악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는 뜻이다.

 

사실 즐긴다고 해도 크게 차이는 없다. 그것은 그저 그 사람의 행복이 남을 괴롭히는, 그러니까 남들과는 다른 조금 다른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챕터에서는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 철학자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소개 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수족으로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지른 전범에 대한 보고서인데, 이 책에서 그녀는 그를 아주 특별한 악당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쁜 사람 정도로 묘사를 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독일에게 엄청나게 당한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600만명이 넘는 동포를 학살한 독일인이, 그것도 종범도 아니고 주범이라면 반드시 뿔 달린 악마였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악해진 것은 그가 악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그가 악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5. 후견지명 효과

 

이 용어는 선견지명이라는 단어를 약간 바꾼 것인데, 쉽게 말해서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프레임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사실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과거 조선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보냈다는 사실로 인해서 조선을 굴욕적인 나라로 여기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일들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이해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현대를 사는, 그래서 이미 수 많은 정보를 취득한 후 생겨나는 판단 기준점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결국 과도한 실망이나 과도한 칭송이 일어나게 된다.

 

, 어떤 획기적인 시도가 결국 실패했다면 한없이 어리석다고 판단하고 성공하면 대단한 선경지명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실패와 성공의 차이가 그렇게나 큰 차이가 있을까?

 

아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열심히 준비한 것들은 다 성공했어야 했고, 대충 준비한 것들은 다 실패했어야 한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운칠기삼이란 말,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다. 누군가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누군가는 12층에서 떨어져도 멍만 조금 들고 만다.

 

이 세상은 끝없이 운을 통해서 돌아가는데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선택을 판단하는 일은 언제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에 대한 글을 쓴다. 하지만 그런 글들은 성공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 운 좋게 성공했기 때문에 쓴 것이다.

 

이 프레임은 정말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들 중 하나이다. 우리들 자신에 대한 착각은 물론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할 때도 끝없이 일어나는 착각이기에 그렇다.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저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나쁜 사람만 존재한다.

 

머리가 좋게 태어나는 것, 외모가 좋게 태어나는 것, 노력하는 성격을 가진 것, 그 누구도 그런 것들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저 운 좋게 그런 부모와 환경 밑에서 자란 것이다.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순간 운이 실력으로 바뀌고 자서전이 쓰여진다. 그리고 거기엔 그나마 운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노력'만이 강조된다. 하지만 타고난 것이 없다면 노력을 할 수도 없고, 노력을 했다고 해도 노력도 타고난다는 점을 잊어 버린 것이다.

 

노력이 개인의 역량이라는 아주 오래된 프레임에 빠져 있어서 그렇다.

 

 

 

6. 티켓 값

 

책에서 나온 예 중에서 공연 티켓을 잃어 버렸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재구매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 있었다. 그리고 티켓을 재구매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 티켓 값과 동일한 금액의 돈을 잃어버렸을 때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같은 돈인데 동일한 티켓을 반복해서 구매하는 것과 별도의 돈을 잃어버린 채 티켓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서로 다른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날까?

 

사실 이 심리실험은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이성적인 소비에 대한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늘 합리적으로 최대한 제대로 된 제품을 사고 있다는, 그래서 가장 이성적인 태도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우리들의 믿음에 한방 크게 내려치는 것이다.

 

결국 이 실험은 인간은 절대로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 심지어 요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돈에 관한 것도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는 흔히 돈을 주고 물건을 산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만족이다. 만족 여부가 중요하지 돈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싸게 물건을 샀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물건을 싸게 사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었던 행운자신의 잘남 등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 기분은 그 물건을 더 싸게 파는 어딘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끝이 난다.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자신이 산 물건이 갑자기 망가져서 동작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순식간에 바뀐다.

 

그래 놓고도 자신이 늘 이성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프레임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도 그 해석이 다는 아니다. 사실 앞의 예에 관한 티켓 재구매에 대한 진실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그 공연을 정말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여부에 따라 재구매 여부가 달렸다는 숨겨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연을 정말로 '즐겨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약 그 티켓이 일반 공연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고 매일 쫓아다니고 있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 티켓이라면 어땠을까? 당연히 재구매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로 공연을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돈이 아깝다고 말하긴 하지만 오히려 내심 잃어버린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연인 때문에,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러 온 사람들일 경우에 그렇다.

 

결국 그런 이유로 재구매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로 보고 싶다면 같은 액수의 돈을 잃어버린 것이나 티켓을 잃어버린 것이나 상관없이 재구매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 , 정말로 필요하다면 비싸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돈이 넘쳐나도 1원도 기부를 하지 않는 부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지에게 돈을 줄 바에는 차라리 태우는 것이 낫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보는 프레임이 만들어 낸 착각이다. 인간에게는 오직 감정뿐이다. 이성은 그저 감정이 시키는 일을 최대한 잘 해내려고 하는 일만 한다. 그리고 '행복한 감정' 이라는 보상을 얻는다. 물론 잘못하면 즉시 '불행한 감정' 이란 채찍을 맞기도 한다.

 

* * *

 

 

책은 이외에도 다양한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해 놓았다. 읽어보고 생각해보기엔 좋은 것들이 많으니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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