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후세계에 대한 몇가지 질문들

아이루다 2019. 9. 21. 07:36

 

일단 사후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는 따지지 않기로 한다. 일단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처럼 영생을 하게 되는 천국과 지옥도 있다고 가정하자.

 

* * *

 

1. 두 번 결혼한 여자, 그리고 두 번의 결혼 생활 동안 모두 각각 남편을 너무도 많이 사랑한 여자는 죽은 후 천국에 갔을 때 과연 누구와 함께 영생을 살아가야 할까? 단순히 흥미로운 질문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 답을 내기가 무척 까다로운 문제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살아 생전에 각자 자신만의 소중한 사람이란 존재를 갖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소중한 존재가 먼저 죽게 되면 평생 동안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사후에 다시 그 사람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한 명이 아닌 두 사람 이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결코 동시에 유지할 수 없는 관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사람에게 소중한 존재는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 아이일 수도 있다특히 아이가 어려서 죽거나 혹은 아이가 어릴 때 자신이 죽게 되면 죄책감과 회한이 겹치면서 더욱 더 강렬하게 아이와 함께 하기를 바랄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먼저 죽었고, 그 후 아이가 한참 나이를 먹고 늙어서 죽었다면 천국에 도착한 아이는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존재일 것이다. 또한 그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배우자와 아이들 그리고 손주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지막 기억 속의 아이는 포동포동한 몸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예쁜 아이이지만, 천국에 도착한 아이는 자신보다도 한참 더 나이를 먹은 노인이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아이이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래 산 노인이다. 사실상 자신보다 한참 어른인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아니, 노인이 된 아이는 젊은 엄마를 보고 반갑긴 하겠지만, 그녀가 자신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자신은 남편이나 아내 혹은 또 다른 자신의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2.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이도 있고 120살까지 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될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사실 많은 영화들에서 보면 죽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억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냥 죽을 때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젊어서 요절한 것이 아주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기껏해야 100년을 사는 삶에서 남들보다 80년 먼저 죽은 것은 영생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또한 이렇게 가정하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는 평생 그 핏덩어리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경험도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영생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영생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기에 좋겠지만, 그 아이는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할까?

 

이승에서 못생기게 태어난 사람은 영생 동안 못생겨야 한다. 이승에서 머리가 나쁜 사람은 영생 동안 머리가 나빠야 한다. 이승에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사람은 영생 동안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외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워하던 할머니를 만났는데 젊은 20대 아가씨이거나 심지어 꼬마 아이나 남자 아저씨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라고 해도 여전히 할머니를 할머니로 볼 수 있을까? 또한 그 할머니가 자신이 알던 자신을 무척 사랑해주던 인자한 할머니일까? 사실 많은 노인들이 손주를 아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늙은 자신의 고립감과 어쩔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인데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충분히 빛을 낼 수 있는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여전히 손주를 사랑할지는 몰라도 생전만큼 그렇게 손주에게 많은 시간을 내기가 힘들 것이다. 자신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보통 손주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친구들과 노는 것이다.

 

 

3. 영생을 하는 천국은 죽음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은 원래 부족함에서 나온다. , 고통과 두려움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족함도 없고 고통도 두려움도 없는 천국에서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었을 때 행복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돈이 충분히 많다면 돈을 버는 행복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배가 고프니 밥을 먹을 때 행복한 것이다.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오히려 고통이 되고 만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더 이상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행복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1분만 사라져도 목숨의 위협을 받는 공기는 너무도 중요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공기가 있다는 이유로 행복할 수는 없다.

 

신선한 공기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유일하게 그것이 사라져서 엄청난 고통을 겪 후여야 한다. 마치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날들이 지나고 어느 날 너무도 청명한 날씨가 된 때처럼 말이다. 늘 청명한 날씨라면 그 누구도 날씨가 맑은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100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영생을 해야 할 때 행복은 도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고 어떤 고통도 없으며 그래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세상에서 과연 행복은 어떻게 생겨날까? 마약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것일까?



 

 

4. 사실 위에 가정한 세 가지 질문은 모두 죽은 후 사후 세계에 갔을 때 현재의 삶이 유지된다는 가정을 했기에 생겨나는 질문들이다. 그래서 만약 죽은 후 거기에서 새로운 존재로 - 상상도 하기 힘든 어떤 초월적 존재 - 다시 태어나서 이승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모두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된다.

 

, 이승에서 맺은 소중한 관계나 외모적인 것들의 가치 그리고 행복을 얻는 과정 등이 모두 이승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현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초월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대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승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야 한다. 혹은 지우지는 않더라도 그것들로부터 오는 감정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아니, 진정한 완벽한 행복을 위해서는 감정 그 자체가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분노, 질투, 열등감, 억울함 등의 감정들은 사람을 불행하게도 만드니까 말이다. 그래서 기억이 남아 있더라도 어떤 종류의 감정을 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가정은 사후 세계가 가진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 더 이상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있을까?

 

사람은 기억으로 정의가 된다. 기억의 연속성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어제까지 너무도 사랑했던 누군가라고 해도 모든 기억을 잃게 되면 그 즉시 남이 되어 버리고 만다. 기억의 연속성, 이것이 사람의 유일한 정체성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때부터 ''의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은 이상하거나 나쁜 것은 아닌데 그런 내가 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영생일까?

 

심지어 이승에서도 병에 걸린 나 대신 외모와 기억을 모두 똑같이 가진 건강한 존재를 복제한다고 해도 그 존재를 나의 연속성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든 것이 우리들인데, 나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과연 쉬운 일일까?

 

내가 연속성있게 존재해야 한다면 1, 2, 3번 문제가 애매해지고, 내가 사라진 후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뀐다면 4번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4번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여길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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