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타인의 삶에 대해 평가를 하는 사람들

아이루다 2019. 9. 11. 08:14

 

최근 나가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한 분이 경험한 과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은 평소 공정함, 정의로움, 예의 등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인데, 실제로 삶 속에서도 그것을 곧잘 실천을 하고 사는 분이다. 아니그런 분인 듯 하다.

 

아무튼 대충 들은 얘기를 통해 짐작하건대, 누군가 불법적인 주차를 하면 그 사진을 찍어서 구청과 같은 곳에 민원을 넣기도 하는, 사실상 나 같으면 귀찮아서 절대로 안 하는 모범 시민으로 보인다. 이 표현은 나쁜 뜻이 아니라 그런 분들이 있어야 사회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게 평가한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도덕적 가치관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언급한다는 점이다. 말이 언급이지 사실상 강요이다. 더군다나 보통 그런 말을 할 때 화가 나있거나 짜증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서 그런 분들의 말을 듣고 있는 나처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양심' 들은 상대적으로 양심적 가책을 느끼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 호감을 느끼면서도 그런 분들처럼 행동하지 못함에 대한 자책을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호감은 느끼지만 자책은 하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고, 행동하는 양심은 게으른 나에겐 힘든 일임을 충분히 인정해서 그렇다.

 

아무튼 이 분이 평소처럼 도덕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날 충격적인 말을 들었나 보다. 그것은 그분의 친척 되는 분이 한 말인데, '너는 그나마 먹고 살만하니까 그런 것 신경 쓰지. 누군가는 사진 찍어서 구청에 가 신고할 시간도 없어'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그 말을 들은 그 분은 꽤나 충격을 받은 듯 하다. ,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담담하게 얘기를 했지만 아마도 당시엔 꽤나 그랬을 듯 보인다. 나 같아도 충격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당시 그 분은 자신의 친척분을 통해서 '살고 있는 삶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평가 받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먹고 살만한 삶이란 평가를 받았다.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은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도덕적인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그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본인이 한 행동들은 딱히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다르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나이만큼이 쌓인 총합이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닌 담에야 절대로 그것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알 수가 없다. 그나마 평생 같이 산 부분의 경우, 수십 년을 통해서 배우자의 삶을 일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 친척분한테서 자신의 삶을 평가 받은 것이다. '먹고 살만한 삶'으로 말이다.

 

물론 실제로 먹고 살만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먹고 살만하다' 라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겠는가? 과연 누가 그것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삶 자체를 평가 받고 말았다.

 

최근에 나 개인적으로 두 번에 걸쳐서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오프라인 상에서가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 글로 받았다.

 

한 경우는 내가 가끔 방문하던 분의 블로그에서 댓글로 받았는데,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못하는 온라인 특성상 주로 쓴 글을 통해 생각을 공유했었는데, 몇 차례 그 분이 내 삶에 대해서 평가를 했다. 딱히 기분이 나쁜 내용도 아니고, 그 평가가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삶의 단편적인 영역에 한정된, 최근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대한 부분으로 나의 전체적인 삶을 평가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거의 모른 채, 내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생각 자체로만 나를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역시도 몇 차례 거기에 대해서 변명 비슷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 분이 내린 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이렇게 불필요한 변명과도 같은 설명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 블로그를 방문하는 것을 끊기로 했다. , 그때가 오래되지도 않았고 내가 원래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도 아니어서 그 분은 지금 나의 생각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딱히 나의 이런 변화에 관심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른 하나의 경우는 며칠 전 일어난 일인데, 오래 전부터 꾸준히 내 블로그에 가끔 글을 남기던 분이 내가 쓴 글에 댓글을 달면서 뜬금없이 그 내용이 아닌 '내 삶'을 평가했다. 그리고 내 삶의 조건이 상대적으로 무르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물론 그렇게 표현을 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분은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기에 내 삶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 아침 문득 나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평가를 했었는지 생각을 해봤다.

 

나도 과거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한 사람이다. 내가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라서 그랬다. 그런데도 내 기억을 더듬어봐도 나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 삶을 평가한 적은 거의 없다. 아니, 평가는 꾸준히 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평가였다. 당연히 한 개인에 대한 평가는 했지만 그것을 직접 그 사람 앞에서 표현한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했다면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다정도의 표현은 하지만 '너는 어떤 사람이다', '너는 이런 상황이다', '너는 어떻다등등의 표현들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하지 못한다. 도대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비난이든 칭찬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사람인 이상 타인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오히려 안 하면 그것이 문제이다. 문제는 그것을 그 사람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정보로 쓰는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가한 내용을 상대방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태도이다.

 

상대가 '내 삶이 어때' 라고 물었을 때는 답을 해줘야 할 것이다. 그것도 대단히 조심해서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 삶은 이렇소' 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실제로 '너는 참 잘 살고 있다' 라는 좋은 표현일지라도 그렇다.

 

그리고 좀 더 과거로 돌아가보니 살아오면서 가끔 누군가 나를 뜬금없이 평가하거나 정의하는 순간들이 있어왔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허약해서 나쁜 평가의 경우엔 크게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물론 그 충격이 극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나름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가하는 행위' 그 자체가 합리화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까? 아니, '요즘 사람들을 다들 너무 이기적이야' 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사람들 전체를 대상으로 모호한 평가할 수 있지만, 한 개인에 대한 '너는 너무 이기적이야' 라는 식의 그런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입장에서 보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의 차이로 보인다. 내가 가진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타인을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확신이 부족했기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도 그것에 대해 스스로 신뢰할 수 없으니 말을 못한 것이다.

 

분명히 평가는 했지만, 내가 본 관점이 옳을지 틀릴지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 그 평가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하고, 그 평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 사람 앞에서조차 별다른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화가 나서 마음 속에 담아 둔 말이 얼떨결에 튀어나온 경우일 수도 있다. 보통은 그런 식으로 평가가 나오니까 말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무척 놀라운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 글을 내가 언급한 두 분이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두 사람에 대해서 명백하게 평가했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 평가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과거의 나와는 달리 지금 화가 나서 하는 평가는 아니다. 그냥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서 그렇다.

 

나는 요즘 오직 심심해서 사람들과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어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즐겁게 시간을 때우려고 만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다른 누군가를 공감해주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받을 필요성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만남의 목적은 공감이 아닌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많아서 할 얘기가 많은 사람보다 그저 긍정적이고 유머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좋다. 물론 그 둘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다면 최고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과는 즐겁게 지낼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딱히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이런 경우는 안 보는 것이 최선이다. 소금이 물을 만나면 녹는데 딱히 소금이 물과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그 어떤 종류의 확신도 최대한 버리고자 한다. 나는 내 위로도, 내 밑으로도 사람이 없길 바란다. 나는 그 누군가를 대단하다고 인정하지도, 그 누군가는 별볼일 없다고 무시하지도 않길 바란다. 나는 그들이 잘났든 못났든 상관없이 그들과 그저 다른 것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길 바란다. 나는 궁극적으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자 한다.

 

나는 지금은 사회 정의나 철학 등에 거의 관심이 없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그리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삶을 거울 삼아서 내 삶을 바라보고 싶어서 관심을 가질 뿐이다. 나는 오직 내 삶에만 관심이 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그 분에게 먹고 살만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 친척분은 정말로 자신이 먹고 살만할 때가 되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갈까? 사실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모아야 먹고 살만할 것이며, 실제로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불법 주차 사진을 찍어서 구청에 가져다 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친척분의 말은 그저 찔린 양심으로 인해서 반발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훌륭하게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