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말의 수위

아이루다 2019. 8. 9. 10:35

 

지난 주, 매주 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 고등학생 두 명 참가했다. 같이 독서 모임을 하는 분들 중에서 학원 선생님이 있는데 그분의 제자들이었다. 학생들은 학원도 방학을 하기 때문에 잠시 틈이 나서 참가한다고 했다. 그리고 책도 '어린 왕자' 여서 어린 학생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정한 책이기도 하다.

 

독서모임이 시작되고 총 6명이 모였다. 회장을 맡은 분은 개인 사정 때문에 빠졌고 고정 멤버로 오던 두 사람과 아주 가끔 오는 분, 이제 합류한지 한 달도 안 되는 분, 그날만 참가한 고등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모임이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어색한 면이 좀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제일 곤란했던 점은, 나와 한 세대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학생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말의 수위에 대해서 정말로 조심해서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어떤 말을 할지 적절히 조절하는 훈련은 요즘 내 화두이기도 해서, 그리 새로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 앞서서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은 내가 왜 양해를 구했는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노력은 해야 했다.

 

특히 이번 어린 왕자에 관해 말 할 내용이 내가 이 책을 읽었던 세 번의 시기, 그러니까 어릴 때 동화처럼 읽었었고, 30대쯤엔 공감과 치유의 코드로 읽었고, 지금 이제는 결국 어린 왕자의 순수함도 에고의 한계에 막혀 있다는 좀 씁쓸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나처럼 시기별로 자연스럽게 접해야 할 것들을 누군가 미리 듣는 것은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를 듣는 것처럼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내가 평소보다 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간 정신 없이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결국 약간의 찜찜한 기분을 가진 채 모임을 마무리 했다. 아무리 노력했어도 어쩔 수 없는 나이 먹은 사람이 하는 말들이 나갔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주 다시 모임을 했을 때 그래도 다행스럽게 두 학생 모두 모임에 와서 좋았다는 평가를 했다고 했다. 예의상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그간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던 기분을 깔끔히 날릴 수 있었다.

 

말을 할 때 대화 상대에 맞추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하면 할수록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 생활반경이 거의 70이 다된 분들부터 시작해서 우연히 10대 아이들까지 만나는 범위로 넓은 편이다. 보통은 30대에서 40대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양쪽 끝으로는 꽤나 길다.

 

단어적 선택도 다르고, 가진 가치관도 다르고, 세상을 보는 방법도 다르고, 어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보는 뷰도 다르고, 고민도 다르고, 주로 하는 대화 주제가 다르다그럼에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대화가 가능하다.

 

바로 각자의 행복이다.

 

그저 각자가 처한 상황에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그것이 단순히 긍정적인 태도만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한 근거 있는 이야기들 이길 바란다. 물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는 하다. 이때 어떻게 상대방의 말을 받아서 최대한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지가 대화 능력이라면 능력일 수 있다.

 

상대가 말한 여러 가지 고민이나 생각에 대해서 주장이나 강요가 아닌 그저 참고나 조언 수준의 대화, 이것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대화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놓치게 되면 금세 자기 주장으로 변하게 되고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도 한다. 조심하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이렇게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한 글을 쓰는 과정과는 달리 말은 그 순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실수가 일어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 속의 인격과 말을 하고 있는 내 인격은 서로 따로 노는 중인지도 모른다. , 큰 상관이 없긴 하다. 아무튼 나는 결국 이렇게 글을 쓰듯이 말을 해야 한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처럼 말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커다란 중형 급 태풍 두 개가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하나는 중국 동쪽 해안을 따라 올라갈 듯 하고 하나는 남부 쪽으로 이동 중이다. 그 전에 온 태풍 하나는 적당히 비만 뿌려주고 갔는데, 이번 두 태풍들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 걱정스럽다.

 

그래도 여름엔 태풍이 와야 하긴 할 것이다. 그것도 삶의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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