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주말에 뭐했니?

아이루다 2019. 8. 16. 10:02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 모든 프리랜서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나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나와 달리 일반 회사를 다니고 있는 아내는 주 5일 회사에 가서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도 자주 일어나곤 한다. 나 역시 지금의 프리랜서를 하기 전 40대 초반까지 회사생활을 했었기에 그것이 어떤 일들인지  얼마간은 짐작을 한다.

 

아무튼 아내는 나와는 달리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하지만 아내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한 것이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하면 사람들은 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그런 주말을 가장 좋아한다.

 

집안 행사가 있거나, 만날 약속이 있거나, 경조사가 있거나 하는 등의 불가피한 일정이 있으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런 일정도 없이 집에 있다가 그날 그날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제일 좋다.

 

일반적으로 주말의 첫 날인 토요일엔 나는 6시쯤 일어난다. 사실 매일 그렇게 일어나서 주말이라고 해서 더 오래 자지는 않는다. 대신 아내는 평소 6시에 일어나다가 주말에만 8시까지 잔다. 그것도 내가 깨워서 일어나는 것이지 아마도 놔두면 12시까지라도 잘 듯 하다.

 

나는 6시에 일어나 보통 글을 쓴다. 이것은 매일 하는 일이다. 블로그 글을 쓰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하고, 요즘은 조금 다른 글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8시가 되면 아내를 깨운다. 그리고 커피를 내려서 둘이 마주 앉는다.

 

그때부터 대충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한다. 대화 주제는 매일 달라지긴 하지만 주로 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내가 6시에 일어나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아내에게 말하기도 하고 아내는 듣다가 자신도 비슷한 것을 느낀 경험 등을 이야기 하곤 한다.

 

어떨 때는 아내는 이때다 싶은지 내가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자신이 회사에서 겪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아내는 나에게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 하고, 나는 보통 그것에 대한 나름 친절히 설명을 해주는 편이다.

 

그러다가 등이 뻐근해질 무렵이 되면 대략 10시가 되어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오늘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한다. 주로 아내의 고민이다. 잠깐 서로 의견이 교환되다가 결국 아내가 먹고 싶다는 메뉴로 결정이 된다. 크게는 집에서 요리를 해 먹을지, 나가서 사 먹을지를 결정하고, 그 후로 최종 메뉴가 결정이 된다. 물론 집에서 하게 되면 내가 요리를 한다.


 

만약 나가기로 결정이 되면 그때부터 나갈 준비를 한다. 우리는 주말에 잠깐 나갈 때도 평소처럼 준비를 한다. 물론 남자인 나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아내는 머리를 감고 말리고 고대기로 앞머리를 정돈하는 것까지 모두 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 화장도 하고 옷도 너무 불편하지 않게 그리고 예쁘게 입는다. 코 앞에 있는 짜장집에 가는 길이라도 그렇게 하고 나간다.

 

예전에 아내는 동네 근처는 그냥 얼굴만 씻고 모자를 쓴 채 슬리퍼를 신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를 만나든지 얼굴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참견이었다. 나는 잘 꾸민 아내와 함께 밖에 나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강요는 아니었고 아내가 그 참견을 서서히 받아들이더니 결국 그렇게 변했다. 우리는 무척 게으르지만 나갈 때는 부지런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일정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진다. 노래방에 가서 둘이서 두 시간 이상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는 목이 쉬어서 오기도 하고, 집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날씨에 따라서는 커피를 내려서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기도 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가든 파이브에 가서 아내의 옷을 사기도 한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 옷 고를 때 따라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리 귀찮지는 않다. 그리고 실제로 아내의 옷은 거의 대부분 내가 골라준다.

 

아무튼 오후는 그런 식으로 지나간다. 딱히 갈 데가 없으면 집에 와서 보던 넷플릭스를 켜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천천히 오후가 지나간다오후 4시가 넘어가면 또 다시 저녁 먹을 것을 고민한다. 점심과 동일한 과정이 반복된다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저녁을 해결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주말 밤이 된다. 우리는 밤에는 거의 밖에 나가질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 밤에 밖에 나가면 뭔가 매우 어색하다. 대신 집에서 주로 영화를 본다. 가장 많이 보는 장르가 공포영화이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에어컨을 틀어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공포 영화 한편 보는 것이 제일 행복한 피서가 된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지나면서 10시가 되기도 전에 나는 꾸벅꾸벅 존다. 아내는 공포영화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서 혼자 못 본다. 그래서 내가 졸면 영화를 끈다. 그리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아내는 같이 들어와 나를 재워준 후 주말이 아까워서 혼자 나가 뭐라도 한편 더 보고 잔다. 요즘은 빅뱅이론에 한참 빠져있다.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이다. 토요일만큼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쉬는 날이다. 그리고 또 다시 토요일 오전이 반복된다. 대신 일요일의 오후는 주로 가족들에게 쓰여지는 편이다. 특히 아내는 근처에 부모님이 사시기에 자주 그곳에 다녀온다처갓집은 딸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아내가 가질 않으면 따로 올 가족이 없는 분들이다.

 

가끔은 친가로 가기도 한다. 친가는 산본에 있어서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가면 한끼 식사를 얻어 먹고 어머니가 싸주시는 이런저런 반찬을 얻어온다. 어머니가 워낙 음식을 잘 하셔서 아내는 처갓댁보다 본가 가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아무리 외부 활동을 줄여도 한 달에 온전히 이틀을 다 쉬는 것은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 이번 주도 본가에 다녀와야 한다. 그래도 토요일인 내일은 딱히 일이 없어서 그냥 집에서 쉬면 될 듯 하다.

 

누군가 주말에 뭐 했는지를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누가 이런 별 일 없는 것들에 대해서 듣고 싶어하겠는가? 아무튼 그래도 우리는 남들에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나름대로는 주말을 잘 보내고 있는 편이다.

 

하긴 누가 정말로 궁금해서 주말에 뭐했는지 물어보겠는가?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묻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한 일이 딱히 없다고 하면 그 사람도 좀 황당하긴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이 나와야 대화가 이어질 텐데.. 아무튼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우리 두 사람의 특징으로 인해서 주말에 어딘가를 가는 것은 정말로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다녀왔던 곳들 중에서 그리 만족한 적도 별로 없다. 우리는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그냥 평일에 휴가를 내서 간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낫다.

 

예전에 시골에 집이 있을 때는 주말마다 그곳에 갔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집안에서 지금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차이라면 텃밭 농사 일을 하고, 집을 가꾸는 일도 해야 했기에 좀 더 할 일이 많았던 것뿐이다. 아마도 또 다시 집을 짓게 되면 주말은 또 다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주말에 뭐 했는지 제대로 답을 하긴 힘들 것 같다.




 

태풍이 지나가고 여름이 거의 끝이 난다. 가을이 되면 주말이 좀 더 바빠진다. 가을빛 물든 자연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주변 구경을 간다. 가서 보고 사진 찍고 커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고 온다. 이제 곧 그때가 온다. 그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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