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죽음경험자 - 3

아이루다 2019. 6. 15. 16:29


3. 뜻밖의 목격자

 

멀리서 희미하게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가끔 이름 모를 새가 내고 있는 아름다운 지저귐 소리도 들렸다하지만 눈으로는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고 그저 뭔가 환하게 밝은 느낌만 들었다. 꿈속인 듯 하면서도 현실 같기도 했다이 와중에 뇌는 무의식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소리로 들렸던 아이들이 소리를 내던 새를 타고 날라 다녔다. 그러다가 그 새들 중 하나가 갑자기 자신을 공격했다. 현수는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자신을 향해 날라오는 날카로운 새의 발톱을 보고는 공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를 공격하던 새는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 땅에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현수는 자신을 공격한 새가 흔히 보던 비둘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뒤뚱거리면서 걷고 있던 비둘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온 몸이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 그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눈빛으로 봐서는 뭔가 말하는 듯싶었지만 도대체 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참치 캔이 떠올랐다이어서 자신이 좋아하던 참치김치찌개를 먹었던 맛도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모든 흐름이 끊겼다. 그가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일단 눈을 뜨자 우선 현실감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두 눈 가득히 맑은 파랑 빛이 들어왔다. 하지만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한 의식 탓에 그 빛의 존재가 자신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늘의 색임을 연결하는 과정은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연결해내자 그제서야 자신이 하늘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누워있다는 사실도 판단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을 인식하자 마자 뒤통수부터 등을 따라 뒤꿈치까지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전체적으로 딱딱했다. 그가 뭔가 딱딱한 물체 위에 누워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수가 여섯 번째로 되살아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결코 그리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 되살아나는 순간은 과거와 달리 그리 끔찍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순간에 그의 머리 속에 들어오는 첫 번째 느낌은 바로 죽음의 순간에 느꼈던 마지막 감각들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결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죽음 순간 느꼈던 마지막 감정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은 꽤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것은 비록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평소에 경험할 수 있는 고통의 수준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그래도 이번엔 백사장 준비해 준 약 덕분에 잠자듯이 죽을 수 있어서 별다른 기억이 남지 않았나 보다. 덕분에 살아나는 순간에 죽음 당시 느꼈던 끔찍한 고통들이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비싸고 좋은 양주를 마시면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지 않는다.


청각과 시각 그리고 촉각이 차례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렇게 감각기관들이 정상 작동을 하기 시작하자 현수의 의식은 이후 빠르게 회복되었다의식이 확실해질수록 잊혀졌던 기억들도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바로 그가 이번 죽음 직전 몇 달간 있었던 몇 가지 특이한 경험들이었다. 처음 백사장을 찾아 갔던 일, 그에게 1억짜리 제안을 받았던 일, 그의 지시대로 진술서를 외우고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했던 일이 후 유치장에 갇혔다가 곧 구치소로 넘겨진 일, 파란 죄수복을 입고는 402호라고 적인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던 일, 처음 먹어 본 구치소 밥과 흔히 사식 넣어 준다는, 농담으로만 했던 실제 사식을 받아서 먹었던 일, 그리고 이후 짧았지만 지루하게 진행되던 재판과정까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차로 선명해졌다.

 

지난 재판 과정이 다 부드럽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현수의 진범 여부를 의심하는 피해자 측의 주장으로 인해서 얼마간의 실랑이가 있었기는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범인이 스스로 자수를 한데다가 경찰에 설명한 빈틈없는 사건 진술서까지 더해지니 그런 재판을 오래 끌 판사는 없었다. 더군다나 재판을 빨리 끝낼 목적으로 온 현수 측 변호사는 처음부터 유죄는 인정하되, 최대한 형량을 줄여보려고만 애썼다. 그러니 재판이 늦춰질 까닭이 없었다.


현수가 자수를 한 후부터 법원의 선고까지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항소도 하지 않은 탓에 그는 바로 기결수가 되어서 서울에 있는 한 교도소로 옮겨졌다. 그리고 옮겨진 후 정확히 일주일 만에 백사장이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현수는 어느 날 밤에 얼굴도 처음 보는 다른 재소자를 통해 약물 하나를 건네 받을 수 있었다. 약의 이름은 펜토바르비탈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약을 현수에게 건넨 사람은 이 약물이 일종의 강력한 마취제라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해주었다. 아마도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그로써는 백사장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그 약이 무엇인지 알기에 비록 처음 보는 사이라고 해도 조금은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현수 입장에서는 상대의 그런 표정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현수는 이 약품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는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죽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찾아 본 그가 이 약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그래서 그 자신도 과거에 이 약품을 구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자살을 한번이라도 제법 진지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약품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약품은 원래 안락사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약물로써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듣기로는 국내에서도 이 약품을 불법으로 유통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수와 같은 일반인의 인맥 망으로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현수는 그렇게 구하기 힘든 약품을 받아 들면서 도대체 백사장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가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아무튼 그 약품 덕분에 현수는 자신의 여섯 번째 죽음을 아주 편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이미 자살 시나리오도 다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는 정해진 순서대로 행동했다하지만 한 가지만은 예정에 없던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친필로 또박또박 유서까지 써 놓은 일이었다. 자신의 뜬금없는 자살로 인해서 괜히 같이 감방을 쓰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비록 그들이 범죄자라고 해도 괜히 자신을 괴롭혀서 자신이 자살한 것처럼 되면 안되었기에 그랬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신입으로 들어온 자신을 전혀 괴롭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이 죽을 만큼 괴롭힌 것은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여섯 번째 죽음이 공식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백사장을 만나 처음 이 일에 대해 제안을 받은 때가 5월 마지막 날이었고 자수를 하고 재판을 마무리한 것이 7월 중순 경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피부에 닫는 싸늘한 느낌을 주는 공기로 보아 이미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 듯 보였다. 최소한 10월 정도는 되어 보였다. 봄에 시작한 일이 가을에 최종 마무리가 된 것이다. 물론 마무리라고 해도 그것은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이제 1억이란 돈도 생겼으니 제대로 된 조사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보여준 태도와 실행 능력으로 보아 적어도 장사꾼으로써의 신뢰 정도는 보여준 백사장이 추천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뭔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높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오직 그것을 위해서 대리 자수라는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을 겪은 것이 아닌가?

 

현수는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자수라는 것을 해보고, 취조도 받고, 재판도 받아 보았다. 처음엔 꽤나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그를 범인으로 믿고 자신을 원망하면서 눈물 흘리는 피해자의 아내와 마주하는 일과 매번 볼 때마다 그를 죽일 듯 노려보던 여자의 남동생의 시선을 맨 정신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그것은 오히려 생각하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그리고 현수는 재판을 받는 중 조금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피고로써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데자뷰 현상을 겪은 일이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분명히 단 한번도 범죄를 저질러 피고로 있어 본 적도 없고, 재판정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적도 없으며, 최근에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으로 뽑힌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재판정의 풍경이 이상하게 익숙했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몇 번 났었는데 처음엔 법정 드라마를 너무 많이 받나 싶었지만 그렇기엔 그 느낌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아무래도 몇 차례 죽음과 되살아남을 경험하면서 머리의 기억 구조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하기야 여섯 번이나 죽었으니 머리가 정상적인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기시감 덕분에라도 재판 과정과 감옥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꿈 속에서 군대를 다시 갔지만 신병답지 않게 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그것은 끔찍하면서도 익숙한 일이었다.

 

사고의 흐름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쯤 현수는 잠시 끝없이 이어지던 과거의 생각을 강제로 멈추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장 빨리 확인해야 할 현재의 일들이 떠올라서 그랬다그는 일단 자신이 입고 있는 옷부터 확인했다. 그 동안 경험 상으로는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면 보통 죽을 당시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죽을 때는 죄수복을 입은 상태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지금도 자신은 죄수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문제였다. 누가 봐도 탈옥범으로 오해 받기 아주 쉬운 상황이니까 말이다. 만약 그렇게 돼서 다시 경찰에라도 잡히게 되면 문제가 아주 복잡해질 수 있다. 탈옥범으로 오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죄수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신 자신이 처음 죄수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교도소에 맡겨놨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누군가 그 옷을 찾아다가 입힌 모양이었다. 도대체 자신을 누가 살려내고 있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분명했다. 갑자기 그 존재에 대한 해묵은 궁금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빠르게 궁금증을 포기하고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확인했다옷이 있다면 그 옷을 입고 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소지품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소지품이 그대로 있다면 계속 써왔던 스마트폰도 있을 것이다다행이 예상했던 대로 옷 안주머니에서 납작하고 단단한 물체가 잡혔다.

 

스마트폰을 꺼냈지만 전원은 꺼져있었다. 현수는 전원 버튼을 꾹 눌러써 폰을 켰다. 그리고 곧 익숙한 화면이 떴다. 놀랍게도 100% 충전 상태였다. 누군지 몰라도 참 세심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자신을 왜 자꾸 되살려 놓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옷이며 소지품이며 챙겨 놓는 꼴이 그랬다. 도대체 사람을 되살리는 것을 어떻게 해내는 것인지가 가장 궁금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은 그런 작은 일들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영혼이 개 안으로 옮겨졌을 때 가장 궁금한 점이 영혼 자체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혼이 몸에서 몸으로 옮겨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상황에 놓이면 개가 되고 나면 성별이 다른 개를 볼 때 호감을 느끼는지 여전히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는지가 여부가 궁금해진다.

 

폰을 켜고 화면을 보고 날짜를 확인하니 11 3일 토요일 오후 2 24분이었다. 10월쯤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지만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있었다. 허무한 느낌보다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인 여름이 훌쩍 지나간 것은 좋았다. 앞으로 죽을 때는 늦은 봄 쯤에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아마도 여름이 지나고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안 살아나면 더 좋을 것이다.

 

"토요일이네."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회사를 그만둔지가 3년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토요일에 대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하긴 평생 놀고 먹는 백수들도 월요병이 있다고 하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현수는 폰이 화면을 눌러서 문자함을 열었다. 만약 백사장이 원래 자신과 한 약속을 제대로 지켰다면 자신에게 약속한 것들에 대한 정보가 문자로 들어와 있을 것이다. 현수에게는 당장 새로운 신분, 새로운 계좌 정보,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에 대한 것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다행이 백사장으로부터 온 읽지 않는 문자 몇 통 있었다. 받은지 이미 몇 달이나 지난 문자였다. 대충 보낸 시기를 따져보니 자신이 교도소에서 죽은 후 보낸 문자인 듯 싶었다.

 

첫 번째 문자에 의하면 현수의 새로운 이름은 '오연수' 였다. 그리고 처음 그 이름을 접하는 순간 든 생각은 오연수는 여자의 이름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어져 있는 주민등록 번호는 분명히 뒷자리 첫 자가 '1'로 시작하고 있으니 남자 이름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확실히 남자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을 골랐을까 싶었다. 그런데 문자 뒤편으로 백사장이 붙인 사족을 읽고 나니 일단 이해는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실종자들 중에서 최대한 나이대가 비슷한 남자를 골랐으며, 최대한 같은 채씨로 맞추려고 했지만 채씨가 그리 흔한 성은 아니라서 불가능했고 그나마 끝 자라도 같은 사람으로 골랐다는 것이다. 현수와 연수, 사실 비슷한 이름이긴 한데 이상하게 한쪽은 남자, 한쪽은 여자 이름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뇌는 도대체 어떻게 이것을 구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오연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알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것 같기도 했고 그렇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오연수와 자신과 같은 36세였다. 하지만 4월 생인 자신과는 달리 가을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10 13, 그러니까 현수의 새로운 생일은 가을이었다. 백사장의 부연 설명으로는 10년 전 실종된 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주민등록증도 새로 발급받아 놨으니 되살아나게 되면 찾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장소는 백사장의 사무실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충남 공주시 시작하는 장소로 되어 있는데 어떤 사무실의 주소였다. 그리고 상호로 보아서 아무래도 전당포 같았다. 왜 갑자기 공주시로 찾아 갈 장소를 정해놨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맡겨 놓은 곳이 전당포라니 참 백사장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가서 적혀져 있는 보관 번호와 정해진 비밀번호를 말하면 신분증과 약속한 돈을 넣어 놓은 통장과 도장 줄 것이라고 써져 있었다. 문자 한 통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현수는 다음 문자를 눌렀다. 거기엔 뜬금없이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는데 그 역시도 충청북도 공주시로 시작되는 주소였다. 그리고 딱히 사람 이름은 없었고 그 주소지에 있는 집을 찾아가면 본인이 원하던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 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시작되는 1억짜리 의뢰에는 백사장은 관여되지 않은 듯 보였다돈도 가서 직접 지불하라고 써놓고 문자가 마무리가 되었다. 분명히 죽기 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뭔가 죽어있는 동안 상황이 바뀐 것일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 외의 몇 개의 문자들이 있었는데 단순한 스팸 광고 문자였다. 현수는 광고 문자들을 꼼꼼히 다 지웠다. 그리고 폰의 아이콘 위에 떠 있는 숫자 표시는 다 하나 하나 눌러서 없앴다그의 강박관념 중 하나였다. 그는 그 작업을 하면서 머리를 정리했다.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우선 공주에 있다는 전당포를 가는 일이었다무엇보다도 먼저 신분증하고 돈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서 같은 공주 주소지인 장소를 찾아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백사장이 굳지나 공주에 있는 전당포에 자신에게 건 낼 신분증을 맡겨 놓은 이유가 바로 한 장소에도 일 처리를 다 끝내라는 배려인 듯 싶었다. 번거롭게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느니 그 편이 훨씬 편하긴 했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찾아갈 장소에 만날 사람들이었다. 1억을 주고 일을 맡길 정도의 사람들이니 적어도 백사장보다도 훨씬 더 전문가들일 것이란 예상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마저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막막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러다가 늙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까지 되었다. 진시황제가 되살아난다면 자신의 왕국과 바꾸자고 제안을 할 일이었지만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는 그에게는 그저 최악의 저주에 불과한 일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제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살아난 곳은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꽤나 넓은 공원이었다. 그는 그 공원에 있는 벤치 중 하나에서 누운 채 깨어난 것이다. 그래서 깨어날 무렵 비몽사몽간에 멀리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새 소리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 살아나는 장소는 죽은 장소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는 과거에 서울을 포함해 부산, 전주, 안양, 철원에서 되살아났었다물론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면 금세 알 수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맵만 켜도 금세 현재 위치를 잡아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런 것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현수가 가장 좋아했던 가을이 깊어진 날이었다.

 

11월 초는 그리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았다. 햇빛은 여전히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아마도 그늘에 있으면 금세 서늘함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살짝 난 땀은 바람과 함께 게눈 감추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현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구름 한 점도 없는 전형적인 파란 하늘이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으로 시야를 돌리자 멀리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보였다. 아마도 은행나무인 듯싶었다. 가을에 저렇게 맑은 노란색을 보여주는 나무는 은행나무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되살아나기에 좋은 날이다현수는 그 순간만큼은 반복되는 우울한 죽음과 상관없이 가을이 온 세상에 빠져들어갔다. 자신도 가을을 좋아했지만 특히 하나뿐인 동생 민서가 참 좋아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가을은 늘 옳은 계절이었다. 단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시작된 또 다른 삶의 이질감만 제외한다면 참 좋은 시절이라고 까지 할만했다현수는 갑자기 자신은 왜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지구가 태양 주변의 공전을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중단되지 않는 수십 억년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삶이 죽음이 되고, 그 죽음 속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은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현수는 그 흐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누군가가 그를 자연의 이단자로 만들어 버렸다.

 

"저기, 아저씨."

 

현수가 한참 가을 상념 속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로 보아 여자였다. 현수는 순간 깜짝 놀라긴 했지만 표정은 별다른 변화 없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을 바라보자 거기엔 확실이 여자로 보이는 사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바로 보는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느껴졌다.

 

머리를 뒤로 묶었지만 풀면 꽤나 긴 생머리일 듯싶었다.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고 귀여운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얼굴도 동그랗고 두 눈도 둥글둥글해서 착한 느낌을 주었고 한국 사람 전형적인 뭉툭한 코로 이어졌다피부가 하얀 편이라서 전체적인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목 밑으로 이어지는 옷을 입은 꼬락서니는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어디에서 주어 입었는지 모를 자신의 몸에 비해 한참 커보이는 베이지색 바바리코드를 걸치고 있었고 안쪽으로는 더러운 느낌이 나는 분홍색 티를 걸치고 바지는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딱 보이기에 통통한 체질이라서 찢어진 부분이 더 찢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괜찮아요?"

 

"뭐가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갑자기 괜찮냐고 묻는옷을 참 못 입고 있는 이 여자는 분명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현수는 순간적으로 그냥 무시할 걸 괜히 답을 해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누군가 말을 들어준다 싶으면 계속 치근덕대면서 말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니, 아까부터 저쪽에서 쭉 보고 있었는데, 조금 이상해서요."

 

현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가 한 말의 의미가 결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었다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되살아나는 순간을 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자신이 무슨 공간 이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자신을 이곳에 놓고 간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이 여자가 그 광경을 본 최초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뭔가 보셨어요?"

 

현수의 목소리가 급격히 변했다. 그리고 다급함으로 인해서 떨려 나왔다.

 

"보긴 봤죠. 아까 커다란 검은 색 차량이 멈추고, 거기에서 몇 사람이 내린 후 그쪽을 들어서 여기에 놓고 떠났거든요. 저는 처음엔 무슨 시체를 두고 가는 사람들인 줄 알고 놀라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보다시피 조금 있다가 깨어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말을 걸어 본 것이에요."

 

확실했다. 자신을 여기에 두고 간 사람들을 존재했고 그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이 죽어도 자꾸 되살려 놓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자신 조차도 완벽히 믿지 못하고 있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마지막 의구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더해서 이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풀어낼 실마리도 생겼다. 갑자기 눈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 사람들 제대로 봤어요?"

 

", 보긴 했죠. 그런데 좀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어요."

 

"혹시 어떤 차량을 타고 있는지 봤어요?"

 

"아까 말했잖아요. 검고 큰 차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그 차 차종이 뭐였냐고요..”

 

"차종이요?"

 

현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국내 브랜드 중 9인승 이상인 차량 브랜드를 연달아서 대고는 그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차량 브랜드 자체를 잘 모르는 듯싶었다.

 

"아니, 그걸 왜 몰라요.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형 승합차 종류가 몇 가지나 된다고.."

 

"아니, 제가 왜 차량 브랜드를 알아야 하는데요. 그리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렇게 멀리서 어떻게 알아요."

 

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볼 맨 소리를 하자 여자는 갑자기 화가 난 듯 소리쳤다그리고 그 순간 현수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여자에게 큰 소리 칠 입장이 아니었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차에 관심이 없더라도 유명한 차량 브랜드 정도는 알고 지내는 편이지만 여자들의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그 순간 생각해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서 순간적으로 마음이 급해졌네요."

 

", 뭐에요! 도대체.. 애써 걱정해줬더니 느닷없이 짜증이나 내고."

 

"정말로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밥이나 사요. 그러면 돼요."

 

"?"

 

"밥이나 한번 사라고요."

 

여자가 뜬금없이 밥을 사라고 했다그리고 현수는 왜 대화의 흐름이 그렇게 이어지는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이 여자를 통해서 자꾸 죽은 자신을 되살려 내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아주 작은 단서라서 발견할 수 있다면 그깟 밥이 문제겠는가?

 

"밥은 거하게 살게요. 그럼 혹시 차량 번호는 봤어요?"

 

이번엔 별 기대 없이 물었다.

 

"보긴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요. 사실 제가 그때 무서워서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그 사람들 다 검은색 양복을 빼 입고 하나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뭔가 조폭들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혹시라도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는 저를 알아챌까 봐 겁이 나서 의자 뒤에 숨어서 봤어요."

 



여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덩치가 큰 남자들이 모두 같은 복장에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이미 죽은 듯 보이는 남자 하나를 들고 와서 벤치에 버리고 가는 광경을 목격한 여자가 느낄 공포심은 꽤나 심각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들을 바라본 여자는 꽤나 강심장이라고 할 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나자 이렇게 와서 자신이 본 장면까지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랬군요. 아무튼 저는 그래도 처음으로 목격자를 찾았네요."

 

"목격자요?"

 

", 뭐 그런 것이 있어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일단 목격자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튼 저도 미안해요. 제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으면 차량 종류나 번호판 같은 것들 봤을텐데 말이에요."

 

여자가 꾸밈없는 어투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수는 눈 앞에 있는 여자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 좀 이상한 사람 같긴 하지만 결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기도 하겠죠. 그런데 이름이 뭐에요?

 

여자는 현수가 이름을 물어보자 갑자기 당황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현수는 속으로 작업을 거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면 저렇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제 이름은 아마도 김희원인 것 같아요."

 

"?"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추측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눈 앞에 있는 여자가 나쁜 사람이 아닐 몰라도 확실이 이상한 여자임이 분명했다.

 

"자기 이름을 몰라요?"

 

"그게.. 이름만이 아니라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무슨 기억상실증이에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어디까지 기억이 나는데요?"

 

"오늘부터 만 기억이 나요. 제가 오늘 오전부터 여기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기억이 나고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이름도, 사는 곳도, 나이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냥 하루 종일 여기에 있어야 했어요. 갈 데도 모르겠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몰라서요."

 

"아무 것도 안하고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 그냥 있었죠."

 

도대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상한 설명이었지만 그렇다고 여자의 표정을 보니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김희원이란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게.. 이 코트에 적혀 있더라고요."

 

여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촌스러운 코트 뒤집어서 안쪽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정말로 김희원이란 세 글자가 단정하게 실로 박혀 있었다. 옷을 잊어먹을까 봐 박아 놓은 것일까? 지금 눈 앞에 기억을 잃은 여자도 이상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옷에 새겨 놓은 김희원이란 여자도 그만큼이나 이상한 여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면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 그쪽도 나보다는 못해도 꽤나 심각하네요이름도 잘 모르고, 갈 곳도 없고. 그럼 돈은 있어요?"

 

"돈도 없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굶었어요."

 

여자는 그 순간 누가 봐도 밥 한끼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허기진다는 표정을 지은 채 현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현수는 아까 여자가 대화 도중에 뜬금없이 밥을 사달라고 말했던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지금 벌써 세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니 하루 종일 굶었을 그녀가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부터 머리는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위장은 결코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밥을 먹긴 해야겠군요. 아무튼 제 이름은 채.. 아니, 오연수에요."

 

현수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 반가워요저는 일단 희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알았어요. 아무튼 자기 나이도 모르겠네요?"

 

희원이란 여자는 대충 보기에 20 후반쯤으로 보였지만 요즘 시대엔 워낙 다들 젊어 보여서 그보다 더 나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자신의 동생 민서도 만약 살아있다면 지금쯤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겠지만, 그냥 봐서는 20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난 후 4년이나 지났지만 현수의 기억 속에 동생은 언제나 20대의 발랄했던 아가씨였다.

 

"그렇죠."

 

"아무튼 요즘 세상은 워낙 좋아져서 사람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곧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일단 밥부터 먹고 나서 같이 찾아보죠."

 

"!"

 

밥을 먹자는 소리에 희원의 목소리가 무척 밝아졌다. 낯선 여자와의 만남은 전혀 예정에 없는 일이긴 했지만 현수도 속이 출출하긴 했으니 같이 밥을 먹는 것은 좋은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 인줄은 알아요?"

 

"여기 서산이라고 하던데요?"

 

"서산이요?"

 

", 오전에 여기 놀던 애들한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전 서산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잘 몰라요."


여자는 자신의 짧은 지리 정보가 부끄럽다는 듯 베시시 웃었다.

 

"서산이면 충남이겠네요. 그러면 공주까지도 가깝겠구나."

 

"?"

 

",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아무튼 저쪽에 식당 있어요. 아까 제가 봐뒀어요."

 

희원은 신나서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현수는 갑자기 자신의 지갑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또 다시 손을 집어 넣어 안쪽 반대편 주머니를 훑자 지갑이 손에 잡혔다. 꺼내서 보니 만 원짜리가 몇 장 보였고 자신이 쓰던 카드도 있었다이 정도면 당장 먹고 자는 문제는 큰 문제 없을 것이다. 오늘은 일단 밥을 먹은 후 이 근처에서 하루를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드디어 1억짜리 의뢰를 맡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조그만 희망이 느껴졌다. 이제는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밥 맛을 더 좋게 해줬다. 그로 인해서 그는 공기밥을 하나 추가했고 희원 역시도 공기밥을 추가했다. 사실 희원은 그것도 다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 놓지 않고 째작거리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밥 한 공기를 더 추가하고 싶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런 그녀가 뭔가 좀 창피하기도 하고 남은 반찬도 없어서 그냥 모른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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