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14

아이루다 2019. 5. 6. 08:00

 

"증인은 먼저 본인의 신분을 먼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그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했던 법정 안의 침묵을 깬 사람은 피의자 조세나의 죄를 물을 권리와 의무를 모두 가진 검사였다. 올해 15년차에 접어든 최종수 검사는 마른 체격을 가졌지만 날카롭고 강해 보이는 인상을 가졌으며 검찰 상부에서도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는 평가를 가진 인물이었다심지어 아직도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검사장 중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서민국은 그런 그를 변호인 석에 앉아서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엉뚱하게도 검사가 몇 년 사이에 생각보다 많이 늙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마주한지가 벌써 몇 년이나 흘렀으니 그 사이 나이를 먹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검사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 깊이가 제법 깊었다. 저 사람도 혹시 요즘에 자신처럼 아내로부터 이혼을 통보 받기라도 했을까 하는 잠시 쓸데없는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다.

 

", 저는 국과수에 근무하고 있는 홍승수 박사라고 합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채 증인석에 앉아 검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이는 남자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밖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도대체 부검과 같은 특이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가 힘들어 보였다단지 둥근 안경 밑으로 숨겨진 날카로운 두 눈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 홍박사님이시군요. 박사님은 이번 한은서씨 살인 사건의 부검을 맡으셨죠?"

 

", 맞습니다. 제가 이번 사건의 부검을 전체적으로 지휘했습니다."

 

",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제가 부검 보고서를 봤는데, 한은서씨가 목숨을 잃은 가장 결정적인 동기는 바로 목 뒤에 나 있는 자상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피해자 시신의 자상은 단 한군데만 있었는데, 아주 치명적인 부위였죠. 그러니까 흔한 말로 급소를 찔린 셈입니다."

 

"목 뒤가 말입니까?"

 

"목 뒤를 찔려서라기 보다는 실제로는 목을 뚫고 들어온 흉기가 기도까지 뚫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그런 식으로 기도가 뚫리면 기도 안으로 피가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결국 숨이 막히게 되죠. 결국 피해자는 자신의 피로 인해서 질식사를 한 셈입니다."

 

"그러니까 이 흉기로 목 뒤를 찌른 것이죠?"

 

검사는 말을 하면서 비닐 봉투에 담긴 여전히 검붉은 피가 굳어져 있는 작은 과도 크기의 칼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려서 확인을 요청했다. 그 순간 방청석에도 탄식이 흘러 나왔다.

 

", 맞습니다. 경찰에서 수거한 증거물을 비교 검증해 본 결과, 해당 흉기가 살해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확인 했습니다.

 

"이 칼에 묻어 있는 피가 피해자의 것이고, 손잡이에서 여기 피의자 지문도 나왔지요?"

 

",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재판장님, 이 증거물을 제출하겠습니다.

 

판사는 짧게 대답을 하며 검사가 제출한 살해 도구를 법정 증거물로 인정해주었다. 그러자 검사는 다시 홍박사에게 시선을 돌려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듣기에 살인 사건에 대한 부검 경험이 풍부하시다고 들었으니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홍박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정확히 급소를 찔러서 한 사람을 살해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꽤나 훈련된 사람의 솜씨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저 부위를 찔렀다면 검사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홍박사님도 이런 급소를 찌르는 행위가 순간적인 분노에 사로잡혀서 우연히 상대를 찔렀다기 보다는 상대를 정말로 완벽히 죽이려는 의도로 사전에 어느 정도 연습을 한 후 찔렀을 것이라는 저의 판단에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 것이죠?"

 

"그것은.."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추측을 설명하고 담당 부검의에게 억지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서민국은 증인이 대답을 하기 전에 재빠르게 제동을 걸었다. 위험할 수 있는 대답이 나올 상황이었다.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의 여부에 대한 여부가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인정합니다. 검사는 강요성 발언은 자제해 주세요. 그리고 방금 전 대화 기록은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판사가 서민국의 요구를 인정해주었다.

 

"그럼 질문 내용을 바꾸겠습니다. 박사님 생각에 어떤 경험도 없는 사람이 우연히 칼로 사람을 찔렀는데 그렇게 급소를 정확히 찌를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 상식적으로 봐서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죠?"

 

검사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나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몸을 돌리는 짧은 순간 서민국과 짧게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변호인, 증인에게 심문할 내용이 있나요?"

 

판사의 질문에 서민국은 짧게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앉아 있었기에 흐트러진 자신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증인석 앞쪽으로 걸어가서 증인석에 앉아 있는 홍박사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증인을 상대할 때는 무엇보다도 기선 제압이 중요하기에 일부로 좀 더 눈에 힘을 줬다. 하지만 증인은 이미 많은 경험이 쌓인 베테랑 부검의라서 그런 지 자신의 그런 시도에 어떤 흔들림도 보이질 않았다. 처음부터 별 기대는 없긴 했지만 기선 제압은 일단 실패했다.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몸 속에서 어떤 특정한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약물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 피해자의 몸에서 바르비투르산염이란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그 약물 성분의 용도가 무엇인가요?"

 

"원래는 간질 치료제 목적으로 개발되었는데 지금은 수면제로써 사용되는 약물입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강해서 마약류로 지정되어 있고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과도하게 주입된 경우 중추신경계와 부교감신경까지 마취가 되어서 최종적으로 호흡부전인한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흔히 수면제 먹고 죽는다에 쓰이는 약물이라는 설명이시죠?"

 

", 맞습니다. 과거에 자살 용도로 많이 이용되던 약물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몸에서 어느 정도의 양이 검출되었나요?"

 

"상당히 치명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 말은 정확히 칼로 목 뒤를 찌르지 않아도 결국 자연적으로 죽을 수준의 양이라는 뜻이죠?"

 

", 맞습니다. 물론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시간만 좀 더 걸렸을 뿐 죽는다는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은서씨가 그 약물을 스스로 먹었다면 타살이 아니라 자살을 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 그렇지요. 변호사님의 가정처럼 만약 본인의 자의지로 약품을 먹었다면 그럴 수 있겠지요."

 

"재판장님, 지금 변호사는 확인되지 않는 근거로 추측성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서민국의 의도는 금세 제지되었다. 그리고 예상한 일이었다하지만 매우 중요한 언급이었다서민국의 입장에서는 그저 조세나가 한은서를 죽였다는 것이 확신만 아니면 되니까 말이다. 판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확신이 없는 판결이다. 그러니 그가 가진 확신에서 미세한 틈만 만들어 내더라도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서민국은 자신이 의도한 목적을 달성했기에 금세 수긍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재판장님."

 

검사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추가적으로 심문할 것이 있나요?"

 

검사가 다시 나섰다. 그리고 그 역시 서민국의 예상대로였다. 검사는 당연히 판사의 확신을 좀 더 굳게 해주려고 할 것이다.

 

"홍박사님의 판단으로 보면 피해자가 칼에 찔린 시점에 피해자는 살아 있었나요?"

 

"네 살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일단 자상에서 튄 피의 흔적을 확인해 보면 되는데, 당시 혈흔이 튄 사진을 보면 피해자의 심장이 뛰고 있었음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죽은 상태라면 심장 박동이 멎었기 때문에 피는 그저 상처에서 흘러 나와서 주변에 고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혈흔은 전혀 그렇지 않고 주변으로 넓게 튄 채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확신한 증거는 바로 폐에 차 있는 피입니다. 아까 설명했다시피 피해자는 자신의 피로 질식사를 했지요. 그래서 익사자들의 폐에 물이 차 있는 것처럼 피가 대신 차 있었던 것이죠. 만약 숨을 쉬지 않은 상태라면 죽었더라도 폐에 피가 차지는 않게 됩니다."




 

"결국 살아 있는 동안 목 뒤를 찔린 셈이네요.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설령 스스로 약을 먹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친한 친구가 그런 상태에 놓였는데 어떤 구호 조치도 하지 않고 오히려 칼을 가지고 목 뒤의 급소를 노려서 찌른 것인데, 이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겠군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검사는 거기까지 심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판사가 서민국을 더 할 것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서민국은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음 증인 있습니까?"

 

", 다음 증인은 피해자의 집에서 일했던 가사 도우미입니다."

 

60대쯤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불안한 눈빛으로 증인석에 섰다. 일반인이 법정 증언대에 선다는 사실이 얼마나 떨리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는 서민국 입장에서 그녀의 모습은 익숙했다. 사실 그 자리에 앉으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더라도 표정이 굳고 말이 떨려 나오기 마련이다.

 

"증인은 피해자의 집에서 일했지요?"

 

".. 30년 넘게 일을 해왔습니다."

 

"그럼 피해자와 아주 잘 아는 사이겠군요."

 

", 사모님과는 오래된 사이죠. 결혼을 해서 집 안에 들어오신 후로 친한 친구처럼 지냈어요."

 

"증인은 오랫동안 피해자와 알아 왔으니 묻습니다. 평소에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냥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증인석에 앉은 여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검사는 이미 준비를 한 듯 천천히 증인석 쪽으로 걸어가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뻔한 광경을 이미 예상했던 서민국조차도 그 순간에는 잠시 감정이 흔들릴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사모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요. 그래요. 사모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셨어요. 같이 지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느낀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죠. 정말로 천사라 따로 없었고 해야 했을 정도였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사모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정말로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요."

 

"그러시군요. 그러면 피해자가 따로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은 아니었군요?"

 

", 당연히. 누가 그런 분에게 원한을 품겠습니까? 그것은 정말로 천벌을 받을 일이죠."

 

"그런데도 그런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습니다."

 

검사는 그 순간 시선을 조세나에게 맞췄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법정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조세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똑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바로 증오였다그 순간 법정에서 조세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서민국과 조세나 본인 뿐이었다서민국은 그 순간 상대 검사가 정말로 심리 싸움에 능하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피해자의 사고를 목격하고 신고도 직접 하셨다고 하셨죠?"

 

", 제가 그날 처리할 일이 많아서 오전에 나갔다가 오후에 시장까지 보고 들어 왔는데.. 거실 바닥에 사모님이 피를 흘린 채 쓰려져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벌벌 떨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증인은 피의자 조세나 씨도 잘 아시죠?"

 

", 잘 알죠. 집에 자주 놀러 왔고 평소에 사모님과 친하게 지내셨어요."

 

"그럼 피해자가 죽은 날 피의자가 집에 왔었나요?"

 

"오전 일찍 오셨기에 오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가 제가 집에 돌아 온 그 시간에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럼 그때 피의자는 뭘 하고 있던가요?"

 

"그냥 근처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요?"

 

",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있었어요."

 

"그때가 몇 시였나요?"

 

"정확한 시간이 기억이 나질 않는데, 오후 두 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경찰에 신고된 기록에 따르면 그때 시간이 정확히 오후 2 23분이었죠. 그리고 부검 보고서에 의하면 피해자의 사망 시간은 대략 그날 오후 한시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 피의자는 자신의 친한 친구의 급소에 칼을 찔러 놓고는 그녀가 죽어가는 동안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쯤에서 피의자의 잔인한 정신 상태가 몹시 의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검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증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증인은 혹시 죽은 피해자가 평소에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사모님은 그런 약 근처에도 가질 않았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평소에 죽은 피해자가 우울증 같은 것을 호소한 적은 있었나요?"

 

"설마요. 사모님은 매일 환한 웃음으로 빛이 나던 분이었어요. 설령 잠시 몸이 좀 힘들어도 어딘가에 가서 누군가를 돕고 오면 어느새 건강해지는 분이셨죠. 정말로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었다니까요."

 

증인은 또 다시 울 기세였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여기까지입니다."

 

검사는 증인 심문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곧 판사가 서민국에게 증인 심문을 하라고 했지만 서민국이 거절을 했다.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심문이 될 것이 뻔했으니까 말이다. 이후 재판은 특별한 일 없이 마무리가 되었고 다음 재판은 2주 후로 잡혔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예상치 못한 일은 없었네요."

 

재판을 마무리 하고 건물 밖으로 나서는 동안 동행한 남혜영이 말했다.

 

"그런 셈이긴 한데, 오늘 검사가 준비를 아주 잘했네요. 법정 분위기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저쪽으로 넘어갔어요. 앞으로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서민국은 벗어 두었던 외투를 입으면서 대답을 했다. 머리가 좀 아팠지만 차가운 바람이 살갗에 스쳐 지나가자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근처에서 식사를 하실래요? 아니면 사무실 쪽으로 같이 가셔서 밥을 드실래요?"

 

이미 오후 한시가 지났으니 지금 먹어도 늦은 점심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는 서민국 입장에서 그다지 음식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남혜영은 몹시 배가 고픈듯 서민국의 눈치를 살폈다.

 

"혜영씨 배가 고픈 듯 하니 근처에서 먹죠. 혜영씨 잘 아는 식당 있나요?"

 

"당연하죠. 묵은지 등갈비뼈 잘하는 집 있어요. 어때요?"

 

남혜영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질문을 하기 전에 이미 어디로 갈 것인지 다 정해 둔 모양이었다. 먹거리 조사하듯 사건 조사를 하면 아주 크게 출세할 수 있는 남혜영이었다.

 

"변호사님, 그 수입했다는 이상한 약품이요."

 

", 네 장수철씨가 말한 그 약품이요?"

 

", 변호사님 말씀대로 제가 좀 알아보고 있는데, 운이 좋게도 예전에 남편과 같이 일을 하다가 일본 쪽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분이 있더라고요. 당연히 거기에서도 제약과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요."

 

", 그래요?"

 

"제가 남편에게 장수철씨가 말한 약품에 대해서 얘기를 했더니 그러면 자신이 일본에 있는 그 분한테 연락을 해서 좀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가능성이 있는 얘기인가요?"

 

평소에 남혜영을 통해 들었던 그녀의 남편 이미지는 뭔가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해놓을 것 같지 않아서 그다지 못미더웠다. 남혜영이 했던 얘기들이 주로 욕이라서 그럴 것이다.

 

"남편이 집안 일이나 육아는 잼병인데, 그런 음모론 같은 것에는 엄청나게 집요해요. 이번에도 자기가 직접 휴가를 내서 일본으로 가서 알아보겠다는 것을 겨우 말려서 아는 지인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 것이에요."

 

남혜영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짜증이 나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든 묘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하, 그렇군요."

 

서민국은 속으로 웃겼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십원 한 푼 얻어지는 것이 없는데 연예인 사생활을 캐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류가 달에 도착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고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어요."

남혜영은 커다란 김치를 찢어서 그 안에 등갈비에서 떼낸 고기를 넣어 돌돌 만 후 입안 가득히 넣었다. 그리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한 표정으로 오물오물 씹었다.

 

"다행이네요. 아무튼 이번 건 잘되면 남편 분에게도 뭔가 보상을 해드려야겠네요."

 

"정말이요?"

 

남혜영의 두 눈이 빛났다. 남편의 엉뚱한 집요함도 보상만 받을 수 있다면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돈만 되면 가치가 생기니까 말이다.

 

"당연하죠. 그리고 그 약물의 정체가 어쩌면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그런 감이 와요."

 

"변호사님도 김팀장처럼 감을 믿으세요?"

 

",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살다가 보면 그럴 때가 있죠. 그나저나 김팀장은 오늘 불독 만나러 간다고 하더니 아직 연락이 없죠?"

 

", 뭐 얘기로는 큰 기대는 없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불독은 불독이니 뭔가 알아내긴 했겠죠."

 

"그러면 좋고요."

 

"아무튼 우리는 다음 재판이 정말로 중요해요. 이번 주 내로 그 병원 원장 면담을 한번 해야겠네요. 그래야 증인석에 앉았을 때 최대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죠."

 

", 그럼 제가 약속 잡아 볼게요."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남은 묵은지와 등갈비를 먹는 것에 집중했다. 서민국은 음식 먹는 것을 아주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드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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