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11

아이루다 2019. 4. 23. 09:30

 

"장수철씨라고요?"

 

두꺼운 검은색 뿔 테 안경, 겨울의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바싹 마르다 못해 찢어져서 약간의 핏자국까지 남아 있는 입술, 병약한 느낌을 주는 허연 피부, 요즘 같은 겨울 철이면 흔하디 흔하게 보이는 검은색 패딩을 입은 채 꾸부정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가 바로 장수철인 듯 했다.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이런 커피 가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었고 그 옆에는 마시는 것이라면 커피보다는 술이 훨씬 더 어울려 보이는 얼굴을 가진 김팀장의 최선을 다해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맞습니다."

 

장수철은 엉덩이를 살짝 뗀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서민국 역시 간단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빈 자리에 앉았다. 사실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 악수를 위해서 손을 내밀 만도 한데 둘 모두 그럴 생각까지는 나질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한은서를 살해한 조세나의 담당 변호사이죠."

 

"이미 들었습니다."

 

서민국은 장수철의 목소리가 외모가 주는 느낌, 그러니까 삶의 무게에 완전히 눌려서 찌그러진 듯 보이는 분위기에 비해서는 맑고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말이 다 사실인지는 앞으로 확인해야겠지만 적어도 사기를 칠만한 사람은 아니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변호사 생활 십 수년에 뒤통수 맞은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존재였다.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이 뭔가요?"

 

"?"

 

"몇 년 동안 여동생을 찾으러 다니신다고 하던데, 그럼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이 질문은 서민국이 사기꾼을 검증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보통 사기꾼들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주로 그럴듯한 직함을 내놓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명함도 하나쯤 가지고 있기도 했다. 신뢰를 얻기 위한 흔한 수작이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그럴듯할수록 오히려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동생이 실종되기 전까지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파주에 있는 골판지 만드는 공장이었죠."

 

"그러면 지금은?"

 

"동생을 찾아 다녀야 해서 회사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회사도 처음엔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줬는데, 제가 너무 자주 휴가를 내니 결국 사직을 권고하더라고요. 말은 다 해결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돌아 오라고 해도 면목이 없어서 할 수 지경이네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잠도 거의 못 자고 나오셨겠군요."

 

서민국은 손목 시계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지금 시간이 10 10, 약속 시간이 아침 10시였으니 장수철이 야간 알바를 하고 왔다면 지금 거의 잠을 못 자고 나온 셈이 된다. 서민국은 순간 김팀장이 왜 이 시간에 약속을 잡아왔는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여기 수철씨가 먼저 이 시간을 원했습니다."

 

서민국은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치가 빠른 김팀장은 그의 표정을 보고는 서둘러서 약속 시간을 이렇게 정한 연유를 변명했다.

 

"맞습니다. 제가 정했어요. 피곤하긴 해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보다 아예 할 일을 다하고 들어가서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보통 때도 일이 있을 때 그렇게 하곤 합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시군요."

 

서민국은 그제서야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풀렸다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장수철은 음모론에 빠진 미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뭔가를 노리는 사기꾼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의심의 벽이 무너지자 그제서야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초라한 행색이었다. 그리고 무슨 병이라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마르고 창백했다. 하지만 그럴 만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밤새 일을 해서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몇 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한가지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피붙이 동생이라고 해도 어떻게 자신의 삶을 모두 포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 자식간이라면 모를까 형제간에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절실함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아마도 자신은 아무리 아끼는 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삶을 이 정도로 바꿀 결정은 결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 둘 밖에 없었으니까요. 저희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둘이서 의지하고 살아온 사이에요."

 

"?"

 

"변호사님이 물어보고 싶은 그 질문, 왜 그렇게 자신의 삶을 망쳐가면서까지 동생을 찾아 다니는가에 대한 답 말이에요. 동생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대 놓고 말은 안 해도 그런 표정 자주 보게 됩니다. 안쓰럽다는 표정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저를 한심하게 보는 마음도 섞여 있지요. 지금 딱 변호사님 표정처럼 말이에요."

 

".."

 

서민국은 순간 당황스럽고 약간의 부끄러움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수철의 얼굴에 그를 향한 어떤 비웃음이나 질책과 같은 표정이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피곤하고 아파 보이긴 했지만 표정 자체는 편안해 보였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동생이 없는 세상은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뜻이죠. 더군다나 동생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음모로 인해서 희생을 당했다면 그 진실을 반드시 세상에 밝혀야 동생의 원한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시군요. 아무튼 동생 분에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깝네요."

 

서민국은 의도적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는 김팀장에게 눈치를 주면서 대화 주제를 바꾸라는 신호를 보냈다.

 

"수철씨."

 

"."

 

"저한테 대충 설명했던 것, 다시 한번 우리 변호사님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저도 다시 한번 더 들어보고 싶네요."

 

", 그렇게 하죠."

 

장수철은 잠시 멍한 시선으로 커피 가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커피 잔으로 옮겼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서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도 따뜻한 것이 몸으로 들어가니 조금 나은 모양이었다. 하염없이 창백했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스몄다.

 

"여동생은 저와 달리 공부를 곧잘 했어요. 저는 겨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쭉 공장에서 일했지만, 동생은 그래도 간호대학교까지 진학해서 큰 병원에 취직했거든요."

 

"둘 밖에 없었으면 수철씨가 거의 동생을 키우다시피 하셨겠네요."

 

", 그런 셈이었죠. 국가에서 돈이 나오긴 했지만 나오는 돈도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제가 조금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지요."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고생이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아요. 한 달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동생에게 맛난 것 사 먹이고, 옷도 사주고, 그런 것들이 저의 유일한 행복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동생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큰 병원에 취직을 한 후로는 경제적으로도 많이 좋아져서 비록 해외여행은 한번 못 갔다 왔더라도 남들만큼은 행복하게 살았지요."

 

"혹시 결혼은 하셨나요?"

 

"결혼이요? 아니요. 못했죠. 지금 제 처지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요."

 

"아니 지금 말고, 예전에 동생분이 실종되기 전에는 결혼 정도는 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나요?"

 

장수철은 40살이 멀지 않은 나이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결혼도 하고 아이 한 둘은 키우고 있을 나이이기도 했다.

 

"그때도 상황이 지금이랑 그리 차이는 없었어요.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모아 놓은 돈도 거의 없었고, 제가 뭐 외모가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직장 역시도 여자분들이 그리 좋아하는 곳이 아니었죠. 결혼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렇군요."

 

그 순간 장수철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해서 오분 이상 기침을 계속 해댔다. 서민국과 김팀장은 처음엔 그냥 바라보고 있다가 기침을 시작한 지 일분이 넘게 지나가자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장수철은 계속 손바닥을 펴서 앞쪽으로 내밀어 보이면서 괜찮다고,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보다 못한 김팀장은 가서 물이라도 한잔 담아와서 장수철에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가끔 이렇게 기침이 좀 심하게 나네요잠깐 약을 좀 먹을게요."

 

장수철은 패딩 안쪽 품에서 하얀색 약봉지를 꺼내서 입구 부분을 찢은 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김팀장이 가져 온 물을 쭉 들이켜 마시고는 잠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안 좋으신가 바요?"

 

"아니에요. 요즘 감기에 걸려서.."

 

서민국은 기침이 너무 격렬했기에 감기라는 상대의 말이 그리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누구나 말하기 싫은 속사정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저는 원래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어요. 보시다시피 처음부터 타고나길 키도 작고 말랐으니까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잔병치레도 참 많아서 나영이가 고생 좀 했었죠. 그래도 성인이 되면서 잘 먹고 해서 많이 건강해졌는데 최근 삼 년 넘게 몸을 좀 혹사 시켰더니 다시 예전처럼 몸이 약해진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장수철의 과거 이야기를 듣던 김팀장은, 아니 김연우는 장수철의 타고난 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자신의 타고난 외모에 관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 순순히 외모로만 따지면 자신에 비해 장수철은 현재 상태라고 해도 매우 준수한 외모라고 평가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담배를 사러 가도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던 김연우의 외모였다타고난 노안에 눈매가 양 옆으로 찢어져서는 가만히 있어도 화난 듯한 표정이었고 더해서 또래에 비해 한 뼘 이상 큰 키로 인해서 어디를 가든지 그를 보고 시비를 걸어오는 다른 학생들은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김연우의 원래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시와 문학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그런 감성적이지만 소심한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경찰이란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조차 그만 둔 후 지금도 사람의 뒷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히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교내 선도부를 뽑는 과정에서 교내의 학생들 중에서 키가 170이 넘는 학생들만 모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김연우 역시 키는 175cm 정도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그때 앞에 선 선생님은 선도부 활동을 하고 싶은 학생은 앞으로 자발적으로 나서라고 했다김연우는 당연히 그런 활동을 전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 옆에 선 친구가 장난으로 그의 등을 떠밀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제일 먼저 장난으로 떠밀려 나왔으나 타고난 소심함 때문에 친구 장난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변명도 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그는 팔자에도 없는 선도부에 뽑혀서 결국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도부 활동은 다른 학생들의 복장, 태도 등을 관찰하고 지적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의 타고난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고 일단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잘 이뤄졌는데 그때 그가 가진 외모가 아주 큰 몫을 했다.

 

이미 성인 정도로 대접받을 수 있는 노안을 가진데다가 양 눈가가 찢어져서는 웃지 않고 무표정할 때는 거의 프로 격투기 선수 급의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였다. 거기에 당시에도 키도 컸고 몸무게도 80kg을 넘고 있는 체구였기에 사실 일반 성인들이 그를 봐도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할 정도의 외모였던 것이다그러니 당시 같은 또래의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느꼈겠는가?

 

덕분에 그의 활동은 딱히 다른 학생들에게 복장 지적을 하거나 선도 활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의 이마에 약간의 주름이라도 지면 그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은 서둘러서 복장을 다듬었고, 그가 상대방을 집중해서 바라보기라도 하면 상대는 당황하면서 태도를 똑바로 하곤 했다. 실제로 김연우는 얼굴 하나만으로 학교 짱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졸업 후에 그에 관해서 학교에 한 가지 소문이 돌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김연우가 어딘가 거대한 조직에서 스카웃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소문이었는데, 그것이 많은 학생이 꽤나 신빙성 있게 믿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당시 선도부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더군다나 김연우 자신은 그런 외모와 달리 선하고 착실한 학생이었기에 선생님들도 그런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김연우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제로 그가 싸움엔 잼병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싸워본 적도 없어서 자신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조차 몰랐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가끔 누군가와 싸울 생각만 하면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긴장감으로 인해서 온 몸이 경직되어서 상대를 향해 제대로 주먹을 날릴 수 있을지조차 걱정될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가 싸움을 잘할 것이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자신의 철벽과 같은 외모를 뚫고 싸움을 걸어 온다면 그의 실체가 모두 드러나서 그 이후로 그가 의도하지 않게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질 지도 몰랐다. 그것도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김연우는 남몰래 싸움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동내의 잘 알려지지 않는 허름한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외로 잘 적응해서 꾸준히 몇 년간 운동을 하다가 결국 5년 후 전국 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최종적으로 경찰이란 직업까지 이어지고 만 것이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 옆에 있던 친구의 장난 한 번이 그의 삶의 궤도 자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지금은 180cm의 키에 100kg이 육박하는 몸 그리고 오랜 시간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과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험악한 얼굴로 인해서 그는 다른 직업을 찾기가 오히려 힘든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김연우가 지금 눈 앞에 있는 소심하고 허름해 보이는 장수철에서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와 자신은 분명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단지 눈 앞에 있는 자신과 달리 장수철은 덩치도 작고 약하고 자신과는 달리 선해 보이는 얼굴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니 그는 결코 자신과는 비슷한 삶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다른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학창 시절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연우는 아직 장수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동정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타고난 육체의 껍질이라는 한계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크게 좌지우지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만약 장수철이 자신과 같은 외모를 타고 났다면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만약 장수철의 외모를 타고 났다면 지금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언뜻 스쳤다.

 

장수철에 대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여동생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따지고 보면 능력적으로 못할 것도 없었다. 그에겐 여전히 경찰서에 남겨진 인맥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가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동생 분도 미혼이었나요?"

 

"네 그랬죠. 하지만 사귀던 남자는 있었어요. 지금은 뭐 다 끊겨 버렸지만요."

 

"아 그럼 사귀던 남자 분은 더 이상 동생분을 찾지 않고 있나요?"

 

", 처음엔 저랑 같이 좀 찾아 다녔었는데, 점점 지쳐가는 듯 보이더니 결국 1년도 채 안 되서 포기하더라고요."

 

".."

 

"이해는 해요. 더군다나 제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갈수록 뭔가 조금씩 무서워지기도 했으니까요."

 

"무서웠다고요?"

 

", 글에 썼다시피 여동생은 음모로 인해서 희생된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것은 어떻게 알아내셨죠?"

 

서민국이 가장 궁금한 질문이었다.

 

"그 병원에 다녔던 다른 간호사에게 들었죠여동생이 실종된 당시에 제가 물어 봤을 땐 다들 아무 것도 모른다고 발뺌을 했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그 병원을 그만 둔 동생과 친했던 친구 하나가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면서 저에게 털어 놓은 사실이에요."

 

"그러면 그 친구라는 간호사가 글에서 말한 이상한 약품이 유통되고 있고, 그 약품을 제약그룹 쪽에서 가져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비용이 병원 원장의 개인 통장으로 입금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려 준 것인가요?"

 

"아니요. 그것은 아니고, 그 간호사는 저에게 약품 유통에 관련된 것만 알려줬어요. 그리고 제 여동생 나영이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자기 생각엔 나영이는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어요. 왜냐하면 나영이는 원장에게 능력을 인정을 받아서 원장의 개인 비서 역할도 했었거든요."

 

".. 그렇군요. 그러면 수철씨는 어떻게 나머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죠?"

서민국의 질문에 장수철은 힘들었던 과거가 떠오르는 듯 눈가가 붉게 충혈되었다.

 

"고생 좀 했죠. 특히 병원 원장 개인 통장으로 일정한 거액이 매달 입금되는 것을 알아낸 것은 거의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어떻게 했는데요?"

 

"동생이 실종되기 전에 저에게 지나가듯 한 말이 있어요. 자신이 요즘 원장님 개인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버는 돈에 비해서 씀씀이가 너무 크다고요. 아무리 큰 병원의 원장이라고 해도 연봉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닌데, 쓰는 돈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금수저로 태어났다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그 병원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가 보니 그 사람이 그리 금수저는 아니더군요. 지방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교에 들어가 자수성가를 한 사람인데, 병원의 원장이긴 하지만 소유자가 아니라 그냥 월급쟁이더라고요. 그러니 그런 큰 돈을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죠."

 

"거기에서부터 단서를 찾으셨군요."

 

김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형사였던 그로써 장수철의 접근법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건이든지 돈의 흐름을 쫒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한 일이 바로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진 것이죠. 특히나 문서 분쇄기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살폈죠."

 

"? 그 가루가 된 문서를 살펴봤다고요?"

 

". 다행히 그 병원에 쓰는 분쇄기는 구형이라서 요즘처럼 그렇게 심하게 가루를 내지는 않고 세로 형태로만 잘려서 나왔거든요. 그러니 시간만 투자하면 대충이라도 원본을 추측할 수 있었죠. 그리고 몇 달 그렇게 해보니 종이의 질만 보고도 이 문서의 출처가 어디인지 감이 잡히더라고요. 특히 원장실에서 나온 문서들은 다른 부서와는 다른 용지를 쓰고 있었거든요."

 

"운이 좋았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운이 좋은 것인가요? 아무튼 그렇게 한 일년 정도 추적하다가 어느 날 원장의 통장 거래 내력으로 보이는 문서가 파쇄된 조각을 찾았죠. 그리고 그 문서를 한달 이상 노력해서 최대한 복원해보니 원장 개인 통장으로 한 달마다 오천 만원의 돈이 특정한 회사 이름으로 입금되고 있었어요."

 

"회사 명의로요?"

 

", '오영의료시스템' 이란 명을 가졌는데, 그 회사를 추적해보니 결국 페이퍼 컴퍼니더라구요. 그러니까 법인이 등록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딱히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이 회사는 유령 같은 매출과 매입이 존재하더라고요. 당연히 주식 상장 같은 것은 되어 있지 않았고요."

 

"유령 회사군요. 대기업에서 흔히 비자금 조성할 때 많이 쓰는 수법이죠."

 

김팀장이 부연 설명을 했다.

 

", 맞아요. 유령회사. 그리고 그 뒤를 더 파보니 그 회사 배경에 제양그룹이 있었어요. 그러니 결국 제양그룹에서 매달 오천만 원을 그 병원의 원장에게 주고 있는 셈이잖아요."

 

"그런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의심이 되긴 하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이 그 병원에서 수입하고 있는 그 정체 모를 약품의 대가라고 보기엔 근거가 약한데요?"

 

"그것도 제가 조사해서 알아낸 일이에요."

 

"그런 정보는 꽤나 중요한 기밀이라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 일도 꽤나 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은 상세히 설명드릴 수가 없네요. 제가 정보를 얻은 분과 한 약속이 있어서.."

 

장수철은 병원의 약품 관리자에게 어떻게 접근을 했고, 어떻게 뇌물을 건 냈으며, 그래서 어떻게 그 자료들을 얻을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냥 믿으라는 것인가요?"

 

"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죠. 아무튼 제가 구한 자료가 꽤나 방대한데, 몇 달 동안 몇 년 간 그 병원에서 수입했던 약품들과 그것들이 자체 소비가 된 것 그리고 외부로 제공된 것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랬더니 한가지 특이한 항목이 있더라고요. 일본 쪽 회사에서 수입을 하는 약품인데, 소량이긴 하지만 도대체 인터넷에서도 전혀 검색이 안 되는 약품 명이고, 또한 제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그 일본 쪽 회사 역시도 일종의 유령회사 같은 존재였어요. 그리고 그 약품은 병원 내 자체 소비된 기록도 없고 더해서 외부로 제공된 내역도 없었죠. 그러니까 그야말로 증발해 버린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약품이 어디로 갔겠어요?"

 

장수철의 말에 두 사람은 그의 집요함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런 큰 병원에서 취급되는 약품의 숫자가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그것의 입 출입을 모두 크로스 체크를 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분석을 했어요?"

 

"제가 그것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배웠어요.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해보니 그나마 할 만했죠."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서민국은 장수철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이 달라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분명히 병약하고 초라한 행색만 눈에 들어왔지만 그런 그가 어떻게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을 꼭 찾고 싶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최종 결론이 그 의문의 약품이 제양그룹에 제공되고 있었고, 그 대가로 병원 원장이 거액의 돈을 매달 지급받고 있으며,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의문을 품게 된 장수철씨의 동생분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서 사라진 것이란 말이죠?"

 

", 전체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빠진 고리는 있죠. 동생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없고 더해서 제양그룹이라고 해도 그것이 오명수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럼 왜 오명수와 엮은 것이죠?"

 

"한번 떠 본 것이에요. 사실 저의 마지막 베팅이기도 했고요."

 

"떠보다니요?"

 

"변호사님이 판단하기에 제가 인터넷에 그런 글이 올리면 제양그룹에서 어떻게 나올까요?"

 

"아마도 명예훼손이나 그런 것으로 고발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예 무시하든가요."

 

", 그렇죠. 그것들이 보통 정상적인 반응이죠. 그런데 일단 고발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실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해도 제가 미친 놈 취급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요. 그냥 무시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글에 오명수의 이름을 넣으니 조금 다른 반응이 나오더군요."

 

"뭔데요?"

 

"비 공식적으로 저에게 협박 전화가 왔어요."

 

"협박 전화요?"

 

". 두 번 받았습니다. 글을 내리라고요. 그리고 쉽게 말해서 밤길 조심하라고요."

 

".."

 

"그냥 한번 찔러 봤는데 그런 반응이 나오니 뭔가 감이 오지 않나요?"

 

"그렇군요. 저쪽에서 분명히 뭔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뜻이겠죠."

 

", 맞아요. 그 문제의 약품과 제양그룹 그리고 오명수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어요."

 

"그나저나 글을 여전히 내리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무슨 큰 일 당하시는 것 아닌가요?"

 

"상관없습니다. 이제야 말씀 드리는데, 사실 저 오래 못살아요. 지난 몇 년간 너무 몸을 혹사해서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는 몸이 되었네요. 지금은 겨우 약으로 버티고 있는데, 그것도 몇 달 못 갈 거에요."

 

그 순간 자신의 남은 삶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남 일을 말하듯 하는 장수철의 모습에 서민국도 김팀장도 잠시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은 어차피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고 해볼 것도 더 이상 없었기에 마지막으로 해본 시도였어요. 혹시나 하는 바램으로 올린 글이었는데 이렇게 두 분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그리고 협박 전화도 받았으니 저로써는 이제 모드 것을 다 이룬 셈이네요."

 

"치료가 전혀 불가능하신 건가요?"

 

"제 몸은 신경 쓰지 마시고 제가 조사한 자료 모두 넘겨 드릴 테니 제발 제 동생에게 일어난 진실만 밝혀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뭔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시간도 너무 부족해서 초면에 죄송하지만 무리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 정말로 부탁 드립니다."

 

장수철은 갑자기 일어나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서민국 역시 얼떨결에 일어나 그러지 말라고 그를 말렸다.

 

"변호사님, 여기 수철씨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뭔가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네요. 우리가 그 놈들 다 잡아보죠."

 

김팀장은 이제는 장수철과 완전히 동기화 된 듯 분개하면서 말했다.

 

"김팀장님, 팀장님은 지금 경찰도 아닌데 누굴 잡아요. 우리는 지금 조세나씨 변호를 위해서 여기 이 자리에 온 것이에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방에 온통 구린 냄새가 가득하긴 하네요. 그냥 무시할 내용은 아닌 듯 합니다."


흥분한 김팀장과는 달리 서민국은 최대한 냉정하게 대꾸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그 약물이 마약의 일종이라면 뭔가 연결 고리가 나오지 않겠어요?"


"마약이요?"


"네, 새로 개발된 신종 마약이라면 그 약에 취한 조세나가 환상에 빠져서 그런 살인을 저질렀을 수 있죠. 아니면 오명수가 같이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냥 조세나가 다 뒤집어 쓴 것이죠. 그러니 조세나가 그렇게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김팀장의 말은 물론 엄청난 비약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무한 것도 아니었다. 조세나가 도대체 왜 자신이 한은서를 죽였는지에 대해서 한사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만 보면 분명히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명수와 조세나가 연인이라고 해도 결국 부부도 아닌 불륜의 관계일 뿐이다. 그리고 불륜은 언제라도 배신이 일어날 수 있는 관계이다. 남편에게 현장을 들킨 여자가 상대 불륜남을 성폭행범으로 고발하는 일도 가끔 일어날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니 조세나가 자신의 삶을 모두 걸고 오명수를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은 좀 억지 주장에 가까웠다. 그래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파고 들어가야 할 문제였다.


"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네요.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하니까요. 아무튼 장수철씨가 힘들게 알아낸 정보들을 기반으로 해서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죠."

 

"정말로 감사합니다. 두 분."

 

장수철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거듭해서 감사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그가 눈물을 멈추고 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약물의 이름이 뭔가요?"

 

"보니테임이라고 불리는 약품입니다."

 

"보니테임이요?"

 

", 그런 이름을 가졌어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그것은 저도 전혀 모르겠어요. 어디를 뒤져봐도 그런 발음을 가진 단어를 쓰는 나라가 없는 듯 한데.."

 

장수철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 했다.

 

"아니에요. 그것은 저희가 알아보면 되죠. 그리고 정말로 수고 많으셨어요. 앞으로 이 사건은 잠시 잊고 병 치료에 집중하세요. 어쩔 수 없이 떠날 땐 떠나더라도 적어도 저희가 숨겨진 진실을 다 파악하고 나서 동생분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을 보고 가셔야죠."

 

그저 조세나의 재판에 도움이나 될까 하고 나온 자리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 상대방을 믿고 나온 자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장수철과의 대화를 하고 나서 서민국은 뜻하지 않게 가볍지 않은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야 했다. 지금 당장 그의 말이 다 사실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살다가 보면 어떤 진실들은 꼭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었다. 특히나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 같은 것들은 더욱 더 그런 편이다.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까지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니 장수철의 말처럼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 주어진 상태라면 그가 오늘 한 말들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이 자신이 맡고 있는 조세나와 특별히 연관이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전혀 별개의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서민국이 오늘 장수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머리 속에서만 돌아가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과 다르게 그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겹쳐진 채 혼란스럽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최초에 법을 전공하기로 한 이유, 그가 잘 나가던 로펌에서 쫓겨난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재판과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외면하면 안되는 일 하나 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삶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서민국 스스로 찾아왔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살짝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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