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10

아이루다 2019. 4. 13. 07:46

 

구정 연휴가 끝나고 얼마 후인 2 15일은 한 사람과 그 사람이 벌인 어처구니 없는 행위에 대해서 인간 사회가 그 죄를 묻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처음엔 연말의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킬 만큼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던 조세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두어 달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다가 재판이 다가옴에 따라 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그리고 당연히 그 배경엔 매스컴들의 놀라운 기자정신이 있었다.

 

어차피 이미 자극의 시대가 된지 오래였다. 그러니 곧 시작될 재판을 앞두고 스스로를 언론이라고 칭하는 매체들은 조세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돈의 팔촌까지라도 취재할 기세로 굴었고그 덕에 조세나의 초등학교 친구대학교 친구, 동네 아는 사람, 어린 시절 근방에 살았던 가게 아저씨, 조세나의 담임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는 사람의 인터뷰까지도 기사 타이틀로 올라왔다.

 

TV에서는 정신과 전문의라고 하는 의사들이 차례로 나와서 조세나의 정신 상태를 진단하면서 그런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병든 면을 지적하기도 했다그 덕에 사건이 일어난 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나 이제 자극의 대상에서 빠질법한 조세나가 저지른 사건은 첫 공판 소식이라는 바람을 타고는 또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서 재판 당일 날엔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이 재판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방청권을 얻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피켓을 만들어서 조세나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 옆에서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각종 불평들을 없애야 이런 극단적 범죄를 멈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고, 제양그룹 내에 만연하고 있는 노조 와해 정책을 폭로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 진지한 태도로 자신이 믿는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을 실행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조세나의 미모 덕분에 생겨난 인터넷 카페인 조사모, 그러니까 조세나를 사랑하는 모임의 사람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나오지 않는 듯 했다. 아니 아마 그 표시를 냈다가는 정의로움이 가득한 공간에서 정의의 주먹에 의해 집단 폭행이라도 당할 기세였으니, 나왔더라도 그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민국은 아침 10시로 예정된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서 두 시간 정도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언론에서 엄청 크게 떠들긴 했지만, 사실 1심의 첫 재판은 대부분 그저 재판을 진행할 세 축, 그러니까 판사와 검사 그리고 그 자신인 변호사가 서로를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로 끝나는 것이 보통의 절차이다. 그리고 아마도 조세나 사건도 역시 같은 절차로 다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사실상 오늘은 그저 탐색전 수준이란 뜻이다.

 

물론 서민국은 이미 이 재판에 판사에는 누가 배정되었는지담당 검사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건이 세간이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사건인 만큼 1심임에도 불구하고 판사에는 10년차에 접어들고 과거 굵직굵직한 국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담당해왔던 인물이 배정되었고, 서민국과 반대편에 서서 조세나의 유죄를 주장할 검사 역시도 베테랑 급이었다.

 

특히 해당 검사는 서민국이 이미 한번 법정에서 겨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서민국은 자신이 소속된 로펌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서 가까스로 피고인의 무죄를 끌어내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공소장 속의 검사 이름을 보고는 이번 재판이 여러 가지 면에서 꽤나 난코스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욱 안 좋은 점은 그 정도 급의 검사에게 조세나 사건을 맡긴 것을 보면 검찰 쪽에서 이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언론과 여론이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사건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변호사 쪽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옛날 대형 로펌에 근무할 때만 해도 회사 명이 새겨진 명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이렇게 홀로 사무실을 열고 처음으로 맡게 된 대형 사건 앞에서 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주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 나아가야 할 때였다. 그야말로 그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탔다. 그러니 지금부터 할 일은 정신 제대로 차리고 호랑이 등의 털을 꽉 붙잡고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라고 서민국은 화장실에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재판 시작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넥타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착석을 해야 한다.

 

원래 재판 전에 잠깐이라도 조세나를 보고 들어갈까 했다. 하지만 그녀 쪽에서 거절을 했다딱히 할 얘기가 없다는 이유였다. ,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서민국은 그 사이 몇 차례 조세나를 만나서 변호 진행 상황을 전달하긴 했지만 그녀는 늘 한결같이 남의 일 대하듯 굴었다.

 

오히려 자주 서민국의 아내와의 일, 아이와의 관계 등의 개인적인 문제를 물어서 그를 곤란스럽게 하기 일수였다. 그로 인해서 둘 사이의 대화는 늘 겉돌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접견 시간이 30분을 넘기기도 힘들었다그럼에도 서민국은 그저 재판정에 처음 들어가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용기가 될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상황이면 이젠 모두 그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재판정에서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적개심을 경험하게 될 때 그때도 그렇게 남 일 보는 듯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 그녀의 그런 태도는 나름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그녀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재판이 끝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비록 한 나라의 법은 분명히 이성과 논리 그리고 합리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법을 다루는 존재는 결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판사도 사람이었기에 여론 재판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판사의 최종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래서 서민국은 예전에 잠시 이 사건을 국민 참여재판으로 치를까도 생각해봤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론에서 그것은 스스로 자살 골을 넣는 짓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다.

 

"변호사님~"

 

넥타이를 만지며 예전에 봤던 법정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서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멋진 연기를 선보였던 제임스 스페이더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떠올리고 있던 서민국은 자신을 부르는 남혜영의 목소리를 듣고는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 역시도 언젠가는 그런 법정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멋진 승부를 겨루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자신이 이겨야 멋진 승부이겠지만 말이다.




 

"혜영씨 왔군요."

 

"아까부터 와 있었어요. 법원 사무처에 처리할 서류가 좀 있어서 그거 좀 하느라 고요."

 

"그런데 내가 화장실에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큰 재판 앞두면 화장실에서 몇 십 분씩 넥타이 만지고 있는 버릇, 설마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에요?"

 

"제가 그 동안 그랬어요? 저도 모르는 버릇을 어떻게 다들 알고 있군요."

 

"사람들은 모두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척 객관적일 수 있잖아요."

 

혜영이 객관적이란 단어를 강조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을 보자 서민국도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팀장님은 어디 있어요?"

 

", 팀장님은 오늘 법원 안 오신다고 했어요. 지난번에 말씀 드린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쓴 사람과 연락 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간다고 했어요. 변호사님에게 연락 한다고 했는데 안 왔어요?"

 

".. 그렇군요."

 

서민국은 그 순간 아침에 김팀장으로부터 카톡이 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겼는데,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니 방금 혜영이 말한 내용일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어차피 김팀장은 재판 자체에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주일 이상 밤이고 낮이고 찾아온 인물과 연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일단 이성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김팀장이라도 함께 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서민국은 자신이 요즘 너무 나약해졌다는 느낌이 들면서 살짝 마음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죠."

 

두 사람은 천천히 재판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엔 이미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그리 흔하지 않는 풍경이기에 서민국의 긴장감은 좀 더 고조되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혜영이 그의 양복 팔 뒤쪽을 살짝 끌면서 조그맣게 입 모양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녀 역시 긴장된 표정이긴 했지만, 그녀가 느낀 서민국의 긴장감은 자신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검사 측도 재판정으로 들어서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검사와 서민국은 잠시 눈으로 재회의 인사를 나누면서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것은 일종의 기세싸움이기도 했으며 각자가 현재 감당하고 있을 무게감의 발현이기도 했다. 잠시 후 판사가 온다는 통보가 들리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 재판을 주재할 판사를 맞았다. 그리고 나서 모두 착석을 했다.

 

재판정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는 바로 조세나였다. 그녀는 법원의 판단에 의해서 서민국의 걱정과 달리 수갑을 차고 있지는 않았지만, 수형복을 입은 채 가냘픈 몸으로 억센 남자 둘에게 끌려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만큼은 평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의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 쌓이면 충분히 주눅이 들만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마치 신기한 장소에 구경을 온 듯한 표정으로 재판정 속의 사람들을 하나 하나씩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민국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기까지 했다. 서민국은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짓긴 했지만 속으로는 '이거 좋지 않는 징조인데..' 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희대의 살인마인 그녀였다. 그러니 첫 재판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였다. 법정 내에서는 다행히 사진 촬영을 못하긴 하지만 만약에 저렇게 웃는 모습이 신문에라도 나게 된다면 그 타이틀은 분명히 "악마의 미소" 가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미 불이 타고 있는 여론에 그 사진은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 재판 전에 만나서 그녀를 응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를 줬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하지만 생각 한 편으로는 오히려 저런 그녀의 태도를 이용해 그녀의 정신적 문제를 주장할 근거로 쓸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모든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민국의 머리 속에서는 일단 행복 회로가 작동 중이었다.

 

"웃지 마세요."

 

서민국은 조세나가 피고석에 와서 앉자 조그맣게 가장 먼저 그것을 말해줬다. 그러자 조세나는 잠시 '' 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번 더 씽긋 웃고는 갑자기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꾸었다가 또 다시 뭔가를 후회하고 뉘우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바로 서민국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이렇게요?' 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서민국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서민국의 머리 속에는 이 여자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과연 과거 배우 지망생다운 연기력이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곧 시작된 재판은 서민국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판사는 자신을 포함한 재판에 참석하는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차례로 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정의롭게 사건을 판결해 나갈지 말했다. 그렇게 재판은 시작한 후 30분도 채 안돼서 마무리 되었고 처음 재판에 참관한 사람들은 별 일도 없이 끝난 재판 내용에 불만을 가지고 웅성거리긴 했지만 어디에서 들은 것이 있는지 크게 그것에 대해서 대 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민국은 재판이 끝나고 남혜영을 먼저 사무실로 돌아가라고 한 후 접견실에서 조세나에게 잠시 이야기를 할 시간을 요청했고 조세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민국은 오늘 재판정의 경험이 그녀를 조금이라도 바꿔 놓은 것일까 하는 기대가 잠시 생겨났다.

 

"오늘 어땠어요?"

 

"뭐가요?"

 

"당연히 세나씨 재판이죠."

 

"재미있었어요."

 

역시 조세나 다운 대답이긴 했지만 서민국은 조금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진지함이 없는 상대와 대화를 하는 것은 마치 허공에 한 손으로 박수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떤 상황에 놓여야 진지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연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뭐가 재미있었는데요?"

 

", 근엄한 얼굴을 한 판사님, 정의를 실현하고자 마음을 굳게 먹고 저를 노려보던 검사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를 힐끗힐끗 바라보던 법원 사람들, 얼굴 가득 분노를 담고 허용만 되면 저를 금방이라도 죽이려고 하던 방청객 표정 등등, 그리고 그런 시선의 주인공이 된 저에게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서변호사님의 표정까지, 감방에서 늘 심심하게 보내던 제가 그 상황이 재미가 없을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정말로 환하게 웃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조세나는 분명히 사이코패스일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게 재미있어요?"

 

"당연히 재미있죠."

 

"그러다가 사형 판결이라도 당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형이요? 정말로 사형이 판결될 수도 있나요?"

 

당연히 사형이 구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서민국이 지금까지 준비한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했다.

 

". 그럴 수도 있죠."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형 집행이 멈춘 지가 한참 되었잖아요. 사형 판결이 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의미가 있죠. 이 세상 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사형 구형이 되면 오직 죽어서만 교도소를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죠?"

 

"그런가요? 그럼 적어도 죽으면 자유가 되는군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조세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서민국은 무슨 득도한 고승과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점점 조세나의 그런 태도에 짜증이 느껴졌다.

 

"허세인가요?"

 

"뭐가요?"

 

"지금 그런 태도요. 자신의 목숨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요."

 

"설마요. 제가 왜 허세를 떨어요."

 

"그럼 정말로 자신의 목숨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서 그런가요?"

 

조세나는 갑자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변호사님이 보기엔 어때요? 제가 제 목숨에 대해서 그리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나요?"

 

"일단 표면적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이네요. 그렇게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런가요? 하지만 틀렸어요. 저는 제 목숨에 관심이 많답니다."

 

"그럼 저에게 아직 말하지 않는 숨겨둔 비장의 숨겨둔 비장의 카드라도 있나요?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상황을 한 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증거 같은 거 말이에요."

 

서민국은 혹시나 싶어서 살짝 찔러봤다

 

"숨겨둔 카드요? .. 그런데 있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숨겨둔 카드가 아닌 거잖아요."

 

"자신의 담당 변호사에게는 말을 해줘야죠."

 

"정말로 그래야 해요?"

 

", 당연하죠. 아니면 그걸 누구한테 말해야겠어요."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생각이 좀 바뀌긴 하네요."

 

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화 중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이긴 하지만 잘하면 오늘 조세나의 입을 통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날 일어난 모든 진실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 숨겨 둔 뭔가가 있나요?"

 

서민국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물었다.

 

"그런데 어쩌죠사실 그런 숨겨둔 카든 같은 건 없는 걸요."

 

"?"

 

서민국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분노가 치민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변호사님 화났어요?"

 

"아니요. 아니에요. 조금 당황해서 그래요."

 

고개를 숙여 표정 변화는 숨겼지만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서민국은 스스로 듣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로부터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있다고 한 적도 없잖아요."

 

", 그렇지요. 그런데 정말로 마지막으로 물을게요진짜로 없습니까?"

 

", 없어요."

 

조세나는 이번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도대체 뭘 믿고 그리 천하태평이죠?"

 

"당연히 변호사님 믿고 그러죠."

 

".. 그런데 정말로 한은서씨를 죽인 것만큼은 확실한가요?"

 

", 죽였어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죠."

 

"그러면 지금 세나씨의 여유로움의 근원은 비록 죄는 지었지만 저의 변호를 통해서 큰 죄값을 치르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 덕분인가요?"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죠. 사실 그런 면도 좀 있고요."

 

"그럼 또 뭔가가 더 있긴 한가요? 방금 전 숨겨둔 카드는 분명히 없다면서요."

 

"소설의 결말을 알고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 결말에 비록 변호사님이 원하시는 숨겨둔 카드와 같은 짜릿한 것이 등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더 있긴 하겠죠. 늘 그렇듯 세상 일이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끝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조세나는 알듯 모를 듯한 말을 여전히 남의 말을 하듯 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서민국은 급격히 피로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비록 별 일 없는 첫 재판이긴 했지만 아침부터 쭉 긴장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 지금 이 순간 조세나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깨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피곤해 보이세요. 그만 가서 쉬세요."

 

", 그러려고요."

 

뭔가 더 물어 볼 것도, 말할 것도 있긴 했지만 그 순간 서민국은 그냥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조세나와 같이 있지만 않을 수 있다면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물론 지금 밖에는 그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대기 중일 것이다. 유명한 사건인 만큼 기자들이 그를 그냥 보내 줄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정신 상태로 기자들의 질문에 재대로 대답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그런 걱정을 유지할 만큼의 기운조차 없었다. 걱정도 체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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