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8

아이루다 2019. 3. 27. 08:13

 

"여보, 와이셔츠 다려 놓은 것 없어?"

 

잠시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어와 있는 사이에 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을 한지 12년이 넘었는데, 남편은 매일 아침마다 자기가 입고 갈 와이셔츠 하나 제대로 찾아 입지 못한다. 아니, 남혜영의 오랜 관찰 결과에 의하면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챙겨줘야 한다.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데다가, 회사까지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상은 소요되는 거리이기에 매일 아침마다 최소 6시에는 출발을 해야 하는 남편이었다. 그래서 혜영은 어쩔 수 없이 그야말로 똥싸다가 만 느낌으로 나와야만 했다.

 

재작년까지 자신이 전업주부였기에 그나마 이런 아침이 상황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는데작년부터 일을 다시 시작한 후로는 점점 짜증이 더해지고 있었다.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을 담당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분명히 같이 맞벌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여전히 혼자만 돈을 버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그리고 그 이유는 지난 십 년 이상의 시간 동안 남편을 잘못 교육 시킨 탓이라고 주변 친구들이 얘기하고, 그 말을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서 현실에서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를 이해하는 듯 말할 때의 너그러운 우아함과 그 문제로 인해 직접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실제적인 반응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으니까 말이다.

 

"그 변호사, 요즘도 그 사건 하고 있지?"

 

남편은 혜영이 찾아 준 하얀 색 와이셔츠를 입고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면서 물었다. 한 때는 슬림한 몸매에 나름대로 멋이 있었던 적이 있었던 남편이었지만, 밤이고 낮이고 술만 먹어대는 영업부에서 한 십 수년 구르고 나더니 어느새 배가 나오고 머리도 살짝 밀리는 느낌이 나는, 흔하디 흔한 중년의 뻔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마다 10분 정도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살피는 것은 잊지 않았다그래 봐야 별로 바뀌는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버릇처럼 하는 행동이었다.

 

"하고 있지, 얼마나 큰 사건인데."

 

혜영은 자신의 목소리에 최대한 짜증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대꾸했다. 비록 정확하게 똥을 싸다가 만 기분이라고 해도 아침부터 서로 싸울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뭐 좀 새로 이야기 없어? 요즘 고객들 만날 때 그 사건 얘기해주면 그냥 좋아하거든."

 

영업직을 하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서 늘 대화거리를 찾는 남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혜영의 사무실에서 요즘 집중하고 있는 신데렐라 살인사건에 관한 최신 소식은 그야말로 좋은 가십거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없어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살인사건이잖아. 너무 그렇게 재미로만 보지는 말라고 내가 말을 했어 안 했어?"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랫배의 불쾌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자 혜영의 말투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숨길 수 없는 감정들이 슬쩍 드러났다.

 

", 뭐 꼭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지."

 

남편은 혜영의 목소리가 살짝 변한 것을 느낀 듯 본능적으로 눈치를 살폈다.

 

"궁금하긴 개뿔, 그냥 남이 일이니 뒷담화 하기 딱 좋지."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혜영은 약간 당황해 하는 남편을 보고는 그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쯤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 그것은 지난 12년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얻는 귀한 노하우였다. 물론 여전히 가끔은 실패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번엔 진급 대상에 오르긴 했어? 올해 초부터 애들 학원비도 올라서 그나마 힘든 살림이 더욱 더 빡빡한데."

 

"진급?"

 

갑자기 남편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동작을 멈추고는 옆에 놓인 양복 상의를 입으려고 했다. 분명히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나갈 생각인 듯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혜영도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벌써 몇 년째 기다림인가?

 

"아니, 진급대상에 오르긴 했는지 말이나 하고 나가라고."

 

"당연히 올랐지."

 

남편은 대답은 했지만 마치 남의 일 말하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이번에 될 가능성은 어떤데?"

 

"모르지. 그야말로 윗사람들 결정이니까."

 

"그래도 이젠 차장 자리에 오를 때가 된 것 아니에요? 당신 입사 동기들 다 차장 달았잖아."

 

"아니야. 과장 한 명 더 있어."

 

"정과장? 그 사람이야 아파서 병가를 2년이나 낸 사람이잖아. 그러니 당신이랑은 다르지."

 

"아무튼 뭐 되겠지."

 

여전히 성의 없는 말투였다. 혜영은 뭔가 더 캐물으려다가 이내 포기를 했다. 어차피 제대로 답을 해 줄 인간도 아니었고, 남편의 성격상 진급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제법 공부를 잘했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잘 믿기지 않긴 하지만, 석차가 전교에서 상위권이었고 그래서 서울에 있는 일류 급 대학교를 충분히 들어갈 만 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험 운이 없어서 결국 재수를 하고도 원하던 대학교에는 못 들어가고 그보다 살짝 쳐지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말았다그리고 그 당시 남편의 할머니 그러니까 혜영의 입장에서 보면 시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분은 그 예전 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까지 나온 엘리트였으며 그래서 남다르게 지혜로운 면이 있었는데, 그 분이 어느 날 자신의 실력 대비 결국 낮은 점수를 받게 되어 좌절하고 있는 남편을 붙잡고는 뭔가를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주고는 오백 원이라고 써져 있는 면을 행운으로, 반대 편에 있는 학이 그려진 면을 불운이라고 하면서 꼭 백 번을 던져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남편은 할머니 말에 따라 꼭 백 번을 던졌는데 행운으로 정한 면이 53, 불운으로 정한 면이 47번 나온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는 삶은 마치 동전 던지기와 같아서 행운이 찾아오는 만큼 불운도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최근 남편에게 일어난 불운으로 인해서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재수까지 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을 받아 든 손주가 혹시나 자책감이나 심한 경우 자괴감을 겪게 될까 봐 나름 신경 써서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날 일어난 그 일은 할머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남편이 좋은 말로 운명론자, 제대로 말하자면 팔자 탓만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은 그 후로로 계속 자신에게 불운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자 어느 날부터 그것들을 모두 그냥 자신의 팔자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가르침처럼 어차피 행운이나 불운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최선이다, 이것이 남편의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혜영이 보기엔 그것은 그저 도망치는 것에 불과했다. 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나서 그것을 좋게 받아들인 척 하고 사는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나 진급이 느려지는 것이다. 꼭 진급을 하겠다고 죽어라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세상에 해주면 좋고, 안 해주면 어쩔 수 없고 라는 태도로 있으면 누가 진급을 시켜주겠는가? 뭐 남다른 타고난 재능이나 있으면 모르는데, 혜영이 보기엔 남편은 영업적 수완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것이 좋다는 개똥철학으로 술이나 잔뜩 퍼 마시는 능력만 가지고 있는 남편이었으니까 말이다.

 

결혼 후 지난 십 수년간 그런 남편의 태도로 인해서 속이 뒤집어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그래도 나이도 먹고 해서 멈출 때를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일단 승진 대상에 올랐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기다려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결정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더해서 지금 맡고 있는 신데렐라 살인사건만 잘 처리되면 서변호사가 특별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을 했으니 그것도 남편이 진급을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할만한 또 다른 희망이었다.

 

"그런데 당신, 그 살인사건에 대해서 요즘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얘기 알아?"

 

"그게 뭔데?"

 

남편은 고객과의 대화거리를 찾기 위해서 틈만 나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락날락 했다그래서 나이에 비해서 시사나 유행어 그리고 최신 이슈를 아주 빠르게 아는 재주가 있었다그런데 거기에서 뭔가 새로운 이슈거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신데렐라 살인사건에 관련해서, 그 오명수 있잖아. 죽은 한은서 남편."

 

"그래, 오명수.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익명으로 글을 올렸는데, 자신의 여동생이 오명수 때문에 죽었다고 쓴 글이 올라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어."

 

"무슨 쓸데 없는 소리야. 사건이 유명하니까 또 어디에서 관심 병 환자가 나타났나 보지."

 

",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데 나도 읽어 봤는데 그 사건 묘사가 생각보다 디테일 해. 글만 보면 정말로 일어난 사건처럼 말이야."

 

"그럼 누가 또 소설 썼나 보지. 그런 일 인터넷 상에서 한두 번이야? 아무튼 또 수사 들어가서 잡히면 눈물 뚝뚝 흘리면서 장난으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렇겠습니다그러고 말겠지. 생각해봐. 천하의 오명수가 뭐가 아쉽다고 사람을 죽여."

 

"어허, 이 사람이 순진하기는. 원래 큰 사업하려면 뒤가 구린 법이야. 그래서 그런 일 전담으로 처리하는 조폭들도 다 연줄이 있다고. 그리고 오명수가 직접 사람을 죽였겠어? 당연히 그 밑에 있는 애들이 한 짓이지."

 

"하여간 영화가 사람 다 망쳐놨어. 생각해봐, 오명수가 누구야? 옛날에 한은서랑 결혼하려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려고 했던 사람 아냐? 그 당시 나도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데.. 정말로 나도 그런 남자 만나고 싶었다고. 아침마다 똥싸다 말고 나와서 와이셔츠나 챙겨줘야 하는 남자 말고."

 

잘 참고 있던 남혜영이 뜬끔없이 폭발했다. 20년 전 한은서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생겨났을 때 그녀 역시도 막 20대가 된 나이였다. 그때 그녀 역시도 다른 여자들처럼 한은서의 그런 삶이 무척 부러웠다. 꼭 돈이 많은 재벌과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재벌의 후계자라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남자와의 운명이 부러웠던 것이다그녀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친한 친구들도 모두 그랬다. 심한 경우엔 질투심으로 인해서 한은서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드러내는 친구들도 있었을 정도로 당시에 그 사건은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아주 큰 이슈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젊은 날에 느꼈던 부러움의 감정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과 지금 눈 앞에 있는 배 나오고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남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갑자기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아니, 그게.."

 

하지만 눈치 없는 남편은 여전히 자기가 본 흥미로운 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혜영의 미묘하게 변한 말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 자기 생각에 빠지면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 혜영이 경험한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느끼는 공통점이었다. 물론 오명수와 같은 사람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물론 그녀 역시도 며칠 전 사무실에 들은 얘기가 있으니 완벽히 예전과 같은 시선만으로 오명수를 볼 수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오명수는 여전히 백마 탄 왕자였다.

 

'아무리 이 세상이 그지 같아도 정말로 그럴듯한 남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 실컷 남편 욕을 한 후 푸념처럼 한 말이었다. 그때 모인 친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남편의 욕을 했었는데, 참 그 주제도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주말마다 낚시를 가서 힘들다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집안 살림을 감시한다고 짜증내고, 누군가는 형광등 하나 제대로 갈 줄 모른다고 어처구니 없어 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월급을 타면 용돈 주듯이 생활비를 준다고 했고, 누군가는 같이 맞벌이를 하는데 절대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 끝에 결국 남자들은 제대로 성숙하질 못해서 절대적으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엔 단 한 명이라도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남자 하나쯤은 정말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주고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뽑은 후보들 중에서 가장 그 조건에 근접한 인물이 바로 오명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신데렐라 살인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결론이 오명수와 관련되지 않았으면 하는 남 모를 바램도 있었다.

 

"아니, 그냥 한번 그 글을 보기나 해봐. 어떻게 알아? 그것이 숨겨진 흑막을 벗겨내는 단초가 될지."

 

남편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까지 그 나름대로 신신당부를 하면서 집을 나섰다. 남편이 꽤나 진지한 얼굴로 마지막까지 그렇게 당부를 했지만 혜영의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이 유명해지니 별 인간이 다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6 30분이었다. 이제는 그녀도 씻고 나서 밥 준비를 한 후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랬던 그녀가 그 이야기를 또 다시 듣게 된 것은 사무실에 출근을 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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