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5

아이루다 2019. 2. 22. 08:20

 

출근 길은 늘 사람이 많았다. 아니, 많다는 표현을 한참이나 넘어선 수준이었다. 원래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최근 한달 동안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는 중인 서민국이기에 그것을 특히 심하게 느꼈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장 최단 경로가 바로 9호선이었기에 더욱 더 그랬다.

 

원래 출근시간 대의 서울 지하철은 사람으로 메어터지기 마련이지만, 9호선의 밀집도는 그 중 최고 수준이었다그러다 보니 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탔음에도 도저히 그 지옥철을 적응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적응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타고나서 내릴 때쯤이 되면 당연하게도 옷은 구겨지고, 심할 때는 양복의 소매에 달린 단추가 뜯겨 있을 때도 있었다. 내려야 하는데도 가방이 끼어서 내리지 못할 경우도 있었고, 평소엔 절대로 근처에도 가질 못할 여성의 몸 바로 뒤에 몸이 붙어서 아주 불편한 자세로 수 십분 이상을 보내야 할 경우도 흔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방송에서 나오는 지하철 성 추행범에 대한 뉴스가 떠오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최대한 몸을 뒤쪽으로 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 회사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놀라운 점 하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데, 의도치 않는 신체적 접촉이 이뤄지더라도 폰에 정신이 팔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밀착된 지하철 안에서도 큰 소리가 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출근 길 지하철 안은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놀라울 정도의 침묵 상태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서민국의 입장에서 솔직히 표현하면 어떤 면에서는 기괴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낯설기도 했다.

 

서민국은 지하철 게이트에 지갑을 대고 소리가 난 후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지하철 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린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지만 시원하다고 느꼈다. 지하철 안은 그 많은 사람들이 몸에서 나는 열로 인해서 딱히 난방을 하지 않아도 더웠기에 살짝 땀이 났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시원함이었다이제부터는 걸어서 사무실까지만 가면 된다.

 

"변호사님 오셨어요?"

 

계속된 외근으로 인해 며칠 만에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미 출근을 마친 두 사람 중 한 명이 문 쪽을 바라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서민국의 사무실에서 주로 재무 업무를 담당하고 부수적으로 일종의 비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남혜영씨였다. 혜영씨는 젊은 시절부터 이쪽 계통에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애를 낳고 쉬고 있던 사람인데, 작년에 서민국이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새롭게 사무실을 차리면서 과거의 인연으로 불러들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제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첫째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의 학원비를 벌어야 하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서민국의 제안에 응했다.

 

둘 중 나머지 한 명은 김연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처음 그의 이름을 들으면 매우 부드러운 느낌이었지만, 정작 그 이름을 가진 당사자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지녔다. 그리고 쭉 찢어진 눈으로 인해 웃지 않으면 화난 것처럼 생긴 얼굴을 지녔기에 길에서 접촉사고라도 나면 화가 나서 내렸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게 되는 인상을 가졌다. 아무튼 그는 사무실 내에서는 김팀장이라고 불렸고 주로 사건 조사 담당을 맡았다.

 

김팀장은 원래 경찰 출신이었는데, 운 없게도 조직 내의 불법적인 사건에 엮여서 몇 년 전에 옷을 벗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후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일종의 사설 탐정 같은 것을 했는데, 그저 타이틀이 탐정일 뿐이고 실제로 하는 일은 심부름 센터와 비슷했다. 일의 거의 대부분의 누군가의 뒷조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은 나름대로 잘하는 편이어서 서민국은 그를 사무실 창립 멤버로 끌어들였다제안을 받은 김연우 역시도 서민국과 예전부터 좀 막역한 사이이기도 했고, 최근에 혼자 키우는 딸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안정적인 돈벌이가 필요해서 이 사무실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주로 돈이지만 - 모인 사무실이었기에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일년 만에 서민국은 자신이 가진 밑천이 거의 다 들어났고 이제는 사람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은행에 돈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에게 들어온 신데렐라 살인사건은 어떤 면에서 보면 서민국의 사무실의 미래를 결정할 운명적 사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뿐만이 아니라 김연우와 남헤영 역시도 이 사건에 꽤나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요즘 오랜만에 사무실에 활기로 가득 찼다.

 

출입구 쪽으로 앉아 있던 남혜영이 먼저 인사를 하자 그 반대편에 있던 김연우 역시 고개를 돌려 살짝 일어나 서민국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서민국은 그들을 바라보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세 사람은 비록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입장이긴 해도 거의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응대였다. 서민국 역시도 평소 불필요한 예의는 따지지 않는 편이라서 그럴 수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아침부터 왜 그렇게 심각해요?"

 

서민국은 입고 온 진한 회색 빛이 감도는 두꺼운 외투를 옷걸이 걸면서 물었다.

 

", 변호사님이 알아보라고 지시하신 것들에 대해서 얘기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김연우가 대답했다.

 

", 그럼 조사 결과가 좀 나왔나요?"

 

서민국은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 머신 쪽으로 가서 작동을 시켰다. 아침엔 꼭 원두 커피 한잔은 먹어줘야 머리가 맑아진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 빈속이라도 말이다.

 

"혜영씨는 그 정신과 의사로부터 상담 내역을 받아왔답니다."

 

", 그래요? 그 인간이 순순히 주던가요?"

 

"당연히 아니죠 의사가 제가 조세나씨가 사인한 동의서를 내밀었는데도 불구하고 환자 진료 기록은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우겨서 한참 애먹었어요."

 

남혜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그럴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받아왔어요?"

 

서민국이 역시 따라 웃으면서 물었다이미 결과를 알았기에 나올 수 있는 웃음이었다.

 

"당연히 사전 조사를 좀 했죠."

 

"사전 조사요?"

 

"여기 김팀장님이 도와줬어요.

 

남혜영은 약간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김연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또?"

 

",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런 일은 원래 제 전문 아닙니까?"

 

김연우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서민국은 그가 웃는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상황상 그가 웃고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할 뿐이었다. 아마도 김연우는 자신의 타고난 외모 덕분에 평생 오해를 받고 살아왔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또 뭘 잡았어요?"

 

", 그 병원 원장, 조금 알아 보니까 세금 엄청 탈세하고 있더라고요. 이 인간이 자식들 다 병원 직원으로 등록시켜 놓은 것은 기본이고 아예 이중 장부를 만들어서 비자금을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

 

"하여간, 이 나라는 제대로 된 인간이 없어."

 

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도대체 그런 생각으로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는 것도 신기 할 정도였다니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 정도 하려면 뭔가 좀 남다른 면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남혜영이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직업하고 사람의 인격은 별개이긴 하니까요."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서민국 역시도 뭔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순간 지난 번에 자신이 직접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병원 원장의 독특한 표정이 떠올랐는데, 그 표정은 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병원 윤리라든가 아니면 환자의 사생활 보호와 같은 단어들과 이상하게 따로 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직업과 인격은 별개라는 점은 기본적으로 인정을 해야 하긴 하지만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사, 손님이 오는 것이 탐탁지 않는 점원, 나라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 등은 뭔가 좀 이상한 것은 분명했다.

 

"아무튼 그런데 그 인간 여간내기는 아니던데요? 슬쩍 탈세 얘기를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배째라는 듯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두 번째 방법을 썼죠."

 

남혜영은 승리의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떤 방법이요?"

 

"지나 번에 변호사님이 말씀해준 방법을 썼어요이 사건을 통해서 조세나의 정신 상태에 대한 법정 증언을 할 수 있다면 병원이 더욱 더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니까 그 순간부터 바로 표정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서민국은 그제서야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순순히 이 자료들을 넘겼어요?"

 

", 그냥 파일 복사만 해주면 되는데, 그것을 다 인쇄까지 해서 넘겨줬어요."

 

남혜영은 손끝으로 받아 온 서류 뭉치를 가리켰다. 서민국의 그녀의 손끝을 따라서 시선을 옮겼을 때는 라면 상자 만한 크기의 서류 뭉치가 최소 네 개 이상 쌓여 있었다.

 

"저 것이 그 상담 기록이에요?"

 

", 삼 년 동안 진행된 것이라서 그런지 엄청나더라고요. 다 뽑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니까요. 그냥 파일로만 줘도 되는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뽑아 주더라고요. 들고 오는 데만 해도 엄청 고생했어요."

 

남혜영은 자료를 가져왔던 날의 고생스러움이 떠오르는지 자신의 두 팔을 주물럭거렸다.

 

"혜영씨가 고생이 많았네요."

 

"뭘요. 아무튼 시키신 일을 제대로 해서 기분은 좋아요. 오늘 맛난 것 사주시나요?"

 

남혜영은 갑자기 뭔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점심은 혜영씨 좋아하는 초밥 집으로 가요. 제가 쏠게요."

 

"초밥좋아요. "

 

남혜영은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변호사님.. 저도 초밥 좋아하는데요."

 

비록 생긴 모습은 매일 순대국같은 종류만 먹게 생겼지만 스스로 초밥은 좋아한다고 밝힌 김연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럼 제가 시킨 일은 다 하셨어요?"

 

".. 그게.. 하고 있기는 한데쉽지가 않네요."

 

"제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요? 아무래도 대기업 회장님 정도 되니까 그런가요?"

 

", 일단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최소 넷은 붙고, 이동은 언제나 자동차로만 하는데다가, 기본이 세 대가 함께 가요. 무슨 대통령 경호 같다니까요."

 

"그럼 미행을 할 때 좀 더 힘들어요?"

 

"뭐 그것은 아닌데, 어딘가 건물 안에 들어갈 때 따라 들어 갈 방법이 없어요. 또 그리고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오명수가 외관상 일단 회사 건물로는 보이지 않는 장소로 들어간 곳은 거의 간판이 없어요. 분명히 들어간 후에 몇 시간이나 있다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더라고요. 간호 술이 취해서 나오기도 하던데.."

 

"아 그러면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술집에 가는 것인가요?"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예전에 얼핏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

 

"어떤 얘기요?"

 

"대한민국의 최상위급만 다니는 술집들이 있다고요. 거기에서는 유명한 여자 연예인들이 술시중을 든다고 하더라고요. 하룻밤에 수천 만원은 기본이고, 억 단위의 돈이 움직인다고도 하던데.. 하지만 저 역시 들은 풍문에 불과해요."

 

"그래요있는 놈들은 대단하네. 남들은 TV에서 보는 연예인들을 옆구리에 끼고 술이나 쳐 마시고 있고."

 

서민국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아마도 그가 좋아하던 여자 연예인들도 그런 술자리에 갈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자신과 사귀는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그녀들은 자신을 전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괜히 그녀들을 뺏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것은 아마도 과거에 외국남자들과 함께 다니는 여자들을 기분 나쁜 시선을 바라보면서 시비를 걸던 이 땅에 살았던 남자들이 가졌던 열등감과 같은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긴 하네요. 오명수가 정말로 그런 술집이나 드나드는 그런 사람인가요? 제가 아는 오명수는 정말로 따뜻하고 가정적인 사람인데.."

 

김연우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알아보라고 부탁 드린 거에요. 아무래도 오명수의 숨겨진 모습을 밝혀 낼 수 있다면, 조세나가 한은서를 살해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오명수의 사생활과 한은서의 살해 이유가 무슨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제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그게.. 현재로써는 그냥 감이라고 해둘게요."

 

서민국은 의도적으로 불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충 넘겼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말을 얼버무리자 눈치가 빠른 김연우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일단 혜영씨는 가져 온 자료 좀 살펴봐줘요. 많아서 다 보긴 힘들 것 같고, 대충 보면서 중요하다 싶은 내용들만 추려서 저한테 전달해주시면 돼요."

 

순간 남혜영의 표정은 천국에서 지옥을 오갔다. 그녀는 초밥을 먹을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다가 서민국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저 많은 서류를 다 읽으려면 아무래도 한참을 고생해야 할 듯싶었다.

 

".. .."

 

"김팀장님은 계속 수고 좀 해주시고, 저는 오늘 점심 먹고 일산에 좀 다녀올게요. 조세나를 오랫동안 상담했다는 사람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네요."

 

김연우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

 

"이번에 오명수 건에 대해서 아무래도 그 놈을 불러야 할 듯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놈이요?"

 

", 불독이요. 불독."

 

"불독? .."

 

"아무래도 제 능력으로는 한계가 좀 있어서요그래서 불독한테 맡겨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드네요."

 

".."

 

서민국의 표정엔 살짝 난처함이 드러났다. 김연우의 말처럼 불독이란 인물은 이런 류의 뒷조사에 아주 특화된 사람이긴 했다. 독특한 별명처럼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서민국은 불독이란 존재를 안지가 10년이 넘었지만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랬다. 하지만 누구하나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꼭 필요할 때가 있지만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필요악이라고 정의될만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가진 능력만큼이나 그를 이용하려면 비용이 꽤나 많이 들었다.


", 비용 부담이 되시는 것은 알겠지만, 오명수 뒷조사가 그리 중요하다면 그 정도 투자를 하셔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서민국의 재정상태로 보아 불독에게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은 사실 좀 무리였다. 하지만 김연우의 판단이 그렇다면 그것은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쪽 분야는 그가 전문가이니까 말이다.

 

"그래요. , 좋은 결과를 기대하려면 투자를 해야죠. 그런데 사무실에 부르지는 말아요. 전 이상하게 그 인간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하긴, 그렇긴 하죠."

 

김연우가 웃었다. 아니, 웃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 그럼 일단 할 얘기는 다 끝났죠? 그럼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서민국은 의도적으로 크게 소리를 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하지만 사실 조세나의 정신과 상담 일지에는 별로 기대가 없었다. 그것은 그저 법정 증언으로써 그녀의 심심미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준의 자료이면 충분하다. 또한 그 많은 서류 뭉치보다 담당 의사의 증언 한마디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니 그 의사가 증언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쪽은 충분히 준비가 된 것이다. 또한 오명수의 사생활도 그리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 제계 서열 2위의 실질적 지배자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역풍으로 자신이 한 순간에 쪽박을 찰 수 있는 것이기에 그랬다. 그들과 척이 진다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이미 한번 쫓겨난 회사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교육을 받은 그였다.

 

대신 조사 자체는 필요했다. 그것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조세나에 대해서 오명수가 어떤 입장으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둘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떤 면에서 이번 재판의 결과는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법적 논리 싸움과 그것에 관해 최종적으로 판결하는 판사의 재량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오명수의 의도가 더욱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분명히 오명수 측에서 조세나를 안고 가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떼어서 버리는 것이 더 나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재판에 아주 크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핱테니까 말이다. 그 동안 열심히 쌓아 온 돈을 기반으로 한 권력이란 강력한 힘은 바로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결코 그냥 떠도는 얘기가 아니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 관여된 사건일수록 그것은 훨씬 더 정교하고 은밀하게 작동했다. 그래서 친구인 장유정의 순진한 바램도 있었지만, 서민국 입장에서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후 유사시 좋은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단지 그 카드를 쓸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산에 있다는 조세나의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막연하지만 그 상담사를 만나 조세나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 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자신 역시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뢰인에 대한 당연한 조사 활동인지, 아니면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인해 그러는 것인지, 혹은 조세나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인지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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