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3

아이루다 2019. 1. 30. 08:10

 

이번 겨울 들어서 제일 춥다는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더군다나 눈까지 펑펑 내린 상태에서 갑자기 추워져서 온 도시가 며칠 째 하얀 눈빛으로 뒤 덮여 있었다. 그나마 큰 도로들은 부지런한 제설 작업을 통해서 적어도 차들은 문제 없이 다니고 있었지만, 도시 곳곳에 있는 이면 도로엔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눈이 있었기에 차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꽤나 성가셨다.

 

서민국은 원래 타고 다니던 차를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아내에게 뺏긴 상태였기에 자연스럽게 뚜벅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점은 이런 시기에 얼어붙은 도심을 운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대신 미어 터지는 지하철을 타야 했지만 말이다. 특히 금요일 저녁에 도심 번화가 쪽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출근시간 때의 번잡함과 그리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춥거나 눈이 많이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종로 근처의 역에서 사람들을 뚫고 겨우 내린 서민국은 지상으로 올라와 크게 숨을 쉬었다. 그러자 도심 속 겨울 밤의 차갑고 답답한 공기가 그의 폐 안으로 가득 찼다. 그럼에도 지하철 속에서 겪은 그 공기와는 질이 달랐다. 사람은 사람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물리적으로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살기가 가장 힘들어진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이자 아주 오래 된 여사친인 장유정을 만나는 날이었다. 그녀는 서민국을 조세나에게 연결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고, 이제는 죽은 한은서와 그녀를 죽인 조세나까지 해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삼총사 중에 하나였다. 그들의 우정은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은 정도였는데, 실제로 처음 만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촛불을 켜고 손가락을 그어 피를 낸 후 의자매를 맺는, 십대에나 할 법한 촌스러운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모든 것이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다. 관우가 유비를 죽이고 감방에 갔으니 남은 장비는 갑자기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되고 말았다.

 

서민국은 춥기도 했고 늦기도 했기에 종종걸음을 걸으면서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약속 장소는 둘이 가끔 자주 보던 술집인데, 종로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골목 중 한 귀퉁이에 있는 작고 오래된 막걸리 집이었다. 이 집은 특히 빈대떡을 아주 잘했는데, 아는 사람들만 아는 숨겨진 맛집 중 하나였다.

 

서민국이 끼익 소리가 나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다행이 조금 이른 시간에 온 듯 테이블은 몇 개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안쪽을 시선을 훑자 거기에 장유정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채 들어오는 그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민국 역시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그녀가 있는 자리로 가 앞에 앉았다.

 

"오늘은 일찍 왔네?"

 

"오늘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둘이 한 약속에서 하나가 늦는다면 주로 장유정이 그런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그녀는 약속시간보다도 먼저 자리에 와 있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정말로 일이 일찍 끝나서 왔거나 아니면 그녀가 오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민국이 아는 한 그녀가 일이 끝나는 경우는 없다. 그가 아는 장유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당장 할 일이 없으면 없던 일도 만들어서라도 하는 것이 원래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서민국은 장유정이 따라준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전이 나오기 전에 준 간장에 절인 양파 조각을 하나 집어서 입 속에 넣고는 씹었다. 이미 간장 물에 절여진 양파였지만 그래도 아삭아삭하니 씹는 맛이 있었다.

 

"잘 지냈어?"

 

양파를 다 씹어서 식도를 향해 다음 여정을 보낸 후 서민국이 물었다.

 

"그럭저럭. 내가 어떻게 잘 지내겠냐? 두 절친 중에서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죽었는데.."

 

맞는 말이다. 서민국은 어쩌면 이 사건의 실제적인 최대 피해자는 장유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홀로 남은 장비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순간 서민국은 그렇다면 나는 제갈량인가?, 하는 아무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긴 하지.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 안타깝지. 그나저나 세나는 만나봤어?"

 

"만났지. 지난 수요일 오후에 구치소에 가서 면회를 했어."

 

"내가 면회 신청하면 거절하더니, 그래도 너는 변호사라고 만나주는구나."

 

"지금 누군가 볼 여유가 없는 것이겠지."

 

서민국은 말을 하면서도 정말로 그녀가 여유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사실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시간임을 잊지 않았다. 여자들과의 대화에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태도 중 하나였다. 서민국은 많은 남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알지 못해 여자들의 성질을 건드려서 결국 받지 않아 될 구박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수 많은 구박 속에서 겨우 터득한 요령이었다. 그리고 그 구박의 주체 중에서 눈 앞에 있는 장유정은 그야말로 핵심 멤버였다.

 

"그래, 걔는 잘 지내디?"

 

장유정은 술잔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다.

 

"잘 지내는 듯 보였어. 조금 초췌해지긴 했지만, 구치소에서 몇 달 있었던 사람치고는 멀쩡해 보였지."

 

"다행이네. 하기사 세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그런데 갇혀 있다고 해서 딱히 신경쓸 것 같지는 않네."

 

"그래? 원래 성격이 그런 면이 있어?"

 

장유정이 그 순간 술잔에서 시선을 떼고는 서민국과 눈을 마주친 후 대답을 했다.

 

"특이한 얘야.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민감할 때도 있고, 정말로 곰처럼 둔할 때도 있었어.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냈는데도 어떨 땐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정도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으로는 착한 애야. 정도 많고."

 

장유정은 혹시라도 자신이 조세나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듯 말을 하다가 서둘러서 그녀에게 대한 변명을 덧붙였다.

 

"궁금한 게 있는데.."

 

"?"

 

"너는 절친이 또 다른 절친을 죽인 상황이잖아. 그런데 죽인 절친이 밉지 않아? 관계를 깨고, 그것도 한은서라면 네가 하고 있는 일에 아주 큰 도움을 준 사람이잖아. 미치는 영향력도 크고. 그런데 지금 조세나가 원망스럽거나 그렇지 않아?"

 

"원망? ..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세나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은 확실해.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다 돌려 놓고 싶기도 하고그러다가 도대체 세나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곤 해그래서 내가 그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 중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장유정은 감정이 고조되는지 잠시 말을 끊고 막걸리를 반쯤 마셨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화가 나는 것이 뭔 줄 알아?"

 

"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로 모르겠다는 점이야. 우리 셋은 지난 20년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지내왔거든. 특히 은서의 다정하고 착한 성격이 세 명을 뭉치게 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 그러니 나는 지금도 세나가 은서를 그렇게 한 것이 전혀 믿기질 않아. 세상에 그렇게 착한 은서를.. 그렇게나 친했던 세나가 죽이다니 말이야."

 

"원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처럼 이쪽 계통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야키워 준 부모를 배신한 자식, 50년 지기 친구에게 평생 모은 돈을 사기 당한 사람평생 가정만 보고 살았던 남자가 사고로 죽은 후 나타난 애 딸린 숨겨진 애인 등등이 세상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그거야 남 일이고. 나는 지금 나한테 일어난 일이 믿겨지지 않는 거야. 생각해 보니 화나네. 너는 지금 그것을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냐?"

 

장유정의 말투에 급격히 감정이 실렸다.

 

",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네가 너무 상심이 큰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조세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렇다고."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나중에 네가 죽을 병에 걸려서 낙심하고 있을 때, 사람은 원래 다 죽는 거니까 너무 상심해 하지 말라고 위로해줄게. 그러면 넌 참 마음이 편해지겠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얘기가 흘러가냐. 하여간 저놈의 극단적인 성격은 평생 못 고쳐."

 

"그래, 그게 내 성격이다.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평생 남들 돕는 일을 하면서 사는지.."

 

"뭐가 신기해.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이 세상에 너처럼 번듯하게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변호사 선생님."

 

"나라고 뭐 다 좋은 지 아냐?"

 

"그래?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까 너도 요즘 뭔 일 있구나? 왜 와이프가 이혼이라도 하제?"

 

"응? .."

 

"진짜로?"

 

"그래. 하자고 하더라."

 

"결국 터졌구먼.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지."

 

"내가 뭘 못했냐? 돈도 잘 벌어다 주고, 그리고.."

 

"한 게 뭐 있다고 그리고야. 나 같아도 같이 못살지. 내가 친구니까 봐주는 거지. 아무튼 넌 남편 감으로는 꽝이야."

 

"내가 그렇게 문제야?"

 

"문제지. 넌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

 

"여자 마음?"

 

"그래, 여자 마음. 여자들이 얼마나 여린데."

 

"무슨 소리야. 내가 여자 마음을 얼마나 잘 아는데. 그러니까 너랑 지금도 이렇게 술 먹고 있잖아."

 

"나나 되니까 너랑 술 먹어 주지, 다른 여자 같으면 이미 갔어."

 

"저기요, 됐고요. 이건 그만 얘기하시죠? 오늘 그 얘기 하려고 나온 것도 아닌데."

 

"그래, 그만하자. 뭐 네가 이혼을 한다고 해서 나하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아무튼 주현씨만 불쌍하네. 이런 놈 만나가지고 쯧쯧. 애들은 또 무슨 죄야?"


"
이제 그만해라. 좋은 말로 할때."

 

"알았다. 아무튼 그럼 세나 만났던 얘기나 좀 더 해봐. 그리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세나씨는.."

 

서민국은 말을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속에서 화가 밀려왔다. 말은 원할 때 멈출 수 있지만 이미 한번 생겨난 감정은 쉽게 멈춰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아내에 대한 말을 꺼낸 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이었다그는 잠시 동안 머리 속에서 아내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밀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그 순간 주문했던 파전이 나왔다.




 

", 맛나겠다."

 

장유정은 서민국이 말을 하려다가 멈춘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젓가락을 들어서 파전을 먹는 일이 집중했다. 서민국도 맛깔스러워 보이는 두툼함 파전을 보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그도 젓가락을 들어서 같이 파전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커다랗고 두툼한 파전이 반쯤 사라진 후에야 겨우 허기가 조금 가셨다.

 

"한잔 하자."

 

장유정은 양은으로 된 술잔을 들어서 서민국의 눈 앞에 흔들었다. 그러자 서민국도 같이 술잔을 들어서 잔을 부딪힌 후 한번에 들이켰다탁하지만 차고 달콤한 맛이 입을 거쳐서 식도까지 전달되어 왔다둘은 자연스럽게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잔을 채웠다.

 

", 그럼 이제 하던 얘기나 해봐."

 

그 순간 서민국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어느 틈엔가 아내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 것이 기억났다파전 덕분이었다. 조금 전 마신 막걸리 기운이 조금 올라오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았다.

 

"세나씨는 재판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래, 자기도 양심이 있으면 그럴 만도 하지. 어떤 이유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엄청 후회를 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서민국은 그녀의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전혀 반대로 생각되었다. 그가 지난 번 본 조세나는 뭔가를 후회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가 조세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사건 배후에 한은서에 관한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이란 촉이 왔었는데, 그녀를 두 번째 만난 후로는 만약 숨겨진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조세나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런 면에서 한은서는 남들에게 드러난 모습이 전부인, 정말로 그렇게 착한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은서를 정말로 그렇게 착했어?"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아니, 뭐 그런 것 있잖아. 겉으로는 아주 착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닌, 그런 사람들 말이야."

 

"은서를 그런 쓰레기들과 비교하지마. 은서는 정말로 천사 같은 아이였어. 내가 20년을 봐왔는데 그것을 모를 것 같아?"

 

", 내가 믿지 않는 것은 아니고, 변호사 입장에서 모든 면을 다 고려해봐야 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한은서에게 숨겨진 비밀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조세나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래, 넌 변호사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게. 한은서는 그대로 한은서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실과 그 아이의 진짜 진실은 100% 일치한다고. 내가 보증할게. 그런데 너, 나는 믿냐?"

 

"? 너는 믿지. 내가 천하의 장유정을 못 믿으면 누굴 믿냐."

 

"그래, 나는 믿어야지너 초등학교 시절 바지에 똥 쌌을 때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준, 이 장유정을 믿어야지."

 

", 갑자기 그 얘긴 왜 꺼내. 그리고 진짜로 오래 전 얘기다. 이제는 좀 잊어라. 잊어!"

 

"재미있잖아. 왜 잊어. 그리고 너 다음 달부터 우리 재단에 보내는 기부금 좀 올릴래?"


"
기부금은 또 왜 올려."

 

"아니, 안 그러면 너 똥 치워줬던 사연을 라디오에 보내고 싶은 욕구가 자꾸 올라와서 말이야."

 

"협박하냐? 진짜로 너무하네. 아무튼 그 얘기는 나중에 얘기해. 지금은 네 소중한 친구 조세나에게 집중하자고."

 

"빠져나가기는 하여간, 아무튼 그래, 그럼 더 얘기해봐."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세나씨는 20년 전쯤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기록이 있어. 너는 그거 알았어?"

 

"심리 상담이 아니라, 정신과 상담?"

 

"세나씨가 심리 상담 받은 것은 알았구나. 그런데 정신과 상담 받은 것은 몰랐어?"

 

", 전혀. 심리 상담은 꽤나 오래 받아서 그것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세나는 아마도 최근까지도 그때 사귄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 같았는데?"

 

"그렇구나. 아무튼 정신과 상담에 관련된 병원 기록이 있어. 그것도 3년이나."

 

"놀랍네. 세나가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을 말이야."

 

"그래서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이야. 아무튼 그런데 그 사실이 재판엔 아주 큰 도움이 되게 생겼어."

 

"? 정신병으로 몰아가려고?"

 

"그건 아니고, 그냥 심신미약 정도만 받아도 크게 감형이 될 수 있거든. 당연히 무죄는 아니지만 무기징역이나 무거운 징역 형은 피할 수 있지."

 

"그게 다행인 건가?"

 

"?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서 너는 왜 나한테 조세나 변호를 부탁했는데?"

 

"네가 남자로써는 꽝이지만, 일 하나는 잘하잖아. 나는 그저 내 친구였던 조세나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할 뿐이야. 그 정도는 해야지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지금 현재 내 머리 속에는 생각과 감정이랑 서로 따로 돌고 있어."

 

장유정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막걸리를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파전 조각을 간장에 찍어 입 속으로 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래, 그 마음 조금은 알 것 같다."

 

"네가 뭘 알아. 이 세상 아무도 내 마음을 알 턱이 없지. 죽은 은서가.. "

 

장유정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녀 안에서 애써 버텨주던 끈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크고 서럽게 울었다. 서민국은 그런 그녀와 그의 모습을 수상한 눈길로 흘낏흘낏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릴 수도 없었다그랬다가는 아마도 더 크게 울 것이 뻔했다그래서 그냥 휴지나 뜯어서 그녀에게 건 냈다.

 

"나 좀 바보 같냐?"

 

한참 후 울음을 멈춘 장유정이 벌건 눈으로 서민국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건 아닌데, 좀 부끄럽다."

 

"? 내가 우는 것이 창피해?"

 

"아니,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나이 좀 먹는 남자랑 여자가 술집에 단 둘이 만났는데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다가 여자가 갑자기 세상 무너진 듯 울고 있으면 사람들 머리 속에 떠오른 스토리는 뻔한 것 아니겠어?"

 

"뭐로 보긴 뭐로 봐. 어린 시절 똥 싼 것 치워 준 사이로 보지. 어린 시절에 못 볼 것 다 본 사이?"

 

헛소리 하는 것 보니 이제 좀 제정신이네."

 

서민국이 이죽거리자 장유정은 씩 웃었다. 울어서 웃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우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나저나 네 생각엔 조세나가 왜 한은서를 죽인 것 같아? 정말로 두 사람을 20년 넘게 봐온 입장에서 말이야."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니. 그냥 한 가지 희미하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떠오르기는 한데.."

 

"뭔데? 얘기해봐."

 

순간 서민국의 눈빛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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