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4

아이루다 2019. 2. 4. 09:03

 

"그런데 내가 이 얘기를 너한테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사실도 아니고, 그리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죽은 은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일단 얘기해 봐.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난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고."

 

서민국의 말에도 불구하고 장유정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그녀는 그 상태로 잠시 있다가 갑자기 반쯤 남은 술잔에 스스로 가득 막걸리를 따른 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두 번 반복했다. 서인국은 급하게 술을 들이키는 그녀를 말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술이 필요한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잠시 후 장유정은 좀 전 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붉어진 눈으로 서민국을 정면으로 응시했다서민국은 그 순간 그녀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느꼈다.

 

"민국아"

 

서민국은 따로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장유정이 다음 말을 이었다.

 

"네가 보기에 한은서랑 사람은 어땠어? 나처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언론 등을 통해서만 본 한은서 말이야."

 

",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하지. 천사 같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늘 행복해 보이는 사람, 솔직히 대단한 사람, 뭐 그 정도인 것 같은데?"

 

"그래, 맞아. 은서는 그런 사람이지. 실제로도 그랬어. 언론에 의해서 그 이미지가 부풀려진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나는 언론을 통해서 은서의 선의가 왜곡된 적이 더 많았다고 생각해."

 

"다행이네. 그런데 왜 그것을 묻는 거지?"

 

"그런 평가들이 다 맞는데.. 단 한 가지가 아니어서."

 

"그래? 그게 뭔데?"

 

"늘 행복하지는 않았거든."

 

"! 그거야 당연하지. 누가 언제나 행복하냐? 가끔 불행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행복한거지."

 

"그래, 그 정도면 나도 이 얘기를 안 꺼내겠지. 그런데 은서에게는 남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어."

 

"그래?"

 

"그런데 내가 죽은 은서에 대한 얘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나 좀 기분이 그래."

 

"지금 뒷담화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친구 억울함 풀어주려고 하는 건데 무슨 소리야."

 

"뭐냐.. 너 뭐냐넌 지금 은서를 죽인 사람 변호인이야무슨 그런 소리를 해."

 

장유정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비록 피의자의 변호인이긴 하지만, 나 역시도 진실을 추구한다고. 모든 숨겨진 진실을 파 헤쳐서 세상에 알려 죽은 사람도 죽인 사람도 모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야지. 그게 법의 진정한 정신이야."

 

"법의 정신 좋아하네.  자기 좋으려고 하는 거면서 쯧쯧.. 하여간 말은 청산유수야. 아무튼 은서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못하는 삶의 구멍이 하나 있었어."

 

"뭔데?

"아이."

 

"아이?"

 

"그래, 은서가 아이가 없잖아. 사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걔가 생전에 얼마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그런 은서가 아이를 낳지 못하다니, 신은 어찌 그리 착한 사람을 참담하게 대할까?"

 

"아마도 속이 꼬인 신인가 보지. 아무튼 그러니까 한은서라는 사람은 아이가 없어서 불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불행한 모습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거지?"

 

"언론에 인터뷰 할 때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 세상의 모든 고아가 제 아이에요, 라고 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고아들을 대할 때 누가 봐도 자신이 낳은 아이들처럼 대했어. 그러니 다들 은서의 말을 믿었지. 하지만 은서는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많이 괴로워했어. 남자들은 잘 이해 못할지 모르겠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아이는 안 낳으면 모를까 못 낳을 때는 자신의 존재 의미조차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갈 수 있거든."

 

"..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도 비관을 했다는 말이지?"

 

"그래 맞아. 남들에게 자신의 불행한 감정을 쉬이 표현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그렇지, 아마도 내 짐작에 은서는 그 사실로 인해서 많이 괴로워했을 거야."

 

"은서씨가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그래. 그런 것은 정말로 우리 셋만 공유된 것 중 하나야."

 

"그런데 네가 굳이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뭐야? 이 이야기는 살인 사건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내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유는?"

 

"그런데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정말로 해도 되나 모르겠다. 이것은 그냥 나 혼자 착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

 

"장유정. 여기까지 왔는데 뭘 또 망설이냐?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 그래. 나 오늘 왜 이렇게 소심해졌냐.. 그래 말 나온 김에 가보자."

 

"그래, 그래야 장유정이지."

 

장유정은 또 다시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이번엔 서민국이 같이 건배를 하고 마셔줬다. 둘의 술잔이 서로 가득 차자 장유정이 말을 이었다.

 

", 오명수, 은서 남편 있잖아."

 

",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네."

 

"나는 그 사람이 좀 수상해."

 

"어떤 면이?"

 

"사실 은서 남편이긴 해도 워낙 거물이라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볼 때마다 그렇게 선하게 웃는 표정 뒤에 뭔가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

 

", 그 정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단순히 선하기만 하면 그것도 또한 문제지. 그런데 네가 받은 느낌은 뭔데?"

 

"내가 은서한테 들었던 얘기로는, 은서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결혼하고 육 개월 정도 후부터는 거의 부부생활을 안 했다고 하더라고. 물론 그 전부터도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 결국 은서씨가 아이를 낳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구만."

 

"그렇지. 은서 잘못이 아니지. 오명수의 잘못이지."

 

"그런데 왜 은서씨는 그것 때문에 자신이 괴로워하는 거야?"

 

"거기에서부터는 좀 복잡해. 아무튼 둘의 부부생활이 보이는 것만큼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

 

"내가 갑자기 궁금해서 묻는데, 그럼 혹시 오명수가.. 그거야?"

 

"그거냐니?"

 

"그거 있잖아. 성 정체성 문제 있는 사람들."

 

", 게이? 아냐. 그건 아니야."

 

"그럼 왜 한은서같은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해서 그딴 식으로 행동했대? 같은 남자로써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데?"

 

"사실 내가 이 얘기를 들은 것도 은서 죽기 얼마 전이야. 하루는 너무 표정이 좋지 않기에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결국 15년 동안 쌓인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아이를 너무 가지고 싶은데.. 그리고 이제 점점 물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어 가는데.. 남편이랑 잠자리를 할 수가 없으니 그리 힘들었던 것이지."

 

"그러니까 도대체 그 인간은 왜 그랬대?"

 

"결혼 전에는 지켜준다고 하고, 신혼 초에는 회사 일이 바쁘다고 핑계를 댔다고 하더라고. 사실 실제로 바쁘기도 했지. 그래서 착한 은서는 그 말을 다 믿고 그런 가보다, 하고 살았었나 봐."

 

"아무리 바빠도 신혼에 여자를 홀로 두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 그건 남자의 본능이 아니야. 내가 보증해."

 

"이상한 것을 보증하네. 아무튼 나도 그건 알어. 나도 결혼했고, 매일 들이대던 남편이랑 살았어. 지금 그 인간은 뭐 내가 샤워만 해도 자는 척 하지만."

 

장유정의 말에 서민국은 낄낄대면서 웃었다.

 

"그러니까, 왜 오명수는 게이도 아니면서 그랬대?"

 

"은서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어. 아니, 모른 척하는 것인지, 말하기 싫은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거기까지 파고들면 안될 것 같아서 나도 그러냐고 하고 말았지."

 

"그래도 물어봤어야지."

 

"어떻게 물어보냐? 아무튼 여자 마음을 쥐뿔도 모른다니까. 하지만 내가 촉이 좀 있잖아. 그래서 느낀 것이 있어."

 

"그게 뭔데?"

 

"은서가 말은 안 하지만 아무래도 오명수에게 딴 여자가 있는 것 같아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야."

 

"그러니까 오명수가 바람을 피운다고? 그것도 결혼하자마자?"

 

"그래, 사실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생각해 봐돈 많지, 잘 생겼지, 몸도 좋지, 여자들 좀 꼬이게 생겼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가정하면 처음부터 이상하잖아. 둘이 결혼 할 때 얼마나 대단했어. 은서는 신데렐라라고 불리기도 했었고, 오명수도 마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을 해냈잖아. 그 당시 정말로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로맨스였는데..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변했다는 것, 그리고 그 후로 바람을 피운다는 것,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듣고 보니 그렇네. 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남자라면 가능하긴 하지."

 

"뭐라고?"

 

"남자는 일단 고기를 잡았다 싶으면 그 고기엔 관심이 떨어지거든. 또 다른 고기를 잡으려고 하게 되지."

 

"그게 뚫린 입이라고 하는 말이냐? 하여간 그런 놈들은 다 잡아서 알을 떼어 버려야 해."

 

".. 너 너무 심하게 말한다. 그리고 너랑 나랑 아무리 친해도, 남녀 사이에 할 말이 있고 없고가 있는 거지,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재미있네."

 

서민국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장유정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녀 역시도 웃음이 나고 말았다. 둘은 잠시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그러자 그나마 좀 무겁던 분위기가 덜어졌다.

 

"아무튼 세상 모든 남자가 그래도 오명수가 그러면 안되지. 자기 삶을 모두 올인해서 겨우 얻은 사랑 아냐. 그러면 그렇게 살면 안되지."

 

장유정은 마치 자신이 판사인 것처럼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탕탕 치면서 열을 올렸다.

 

", 그 속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아무튼 그래서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은서가 생각보다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심할 때는 우울증 증상도 보였다는 점이야."

 

"그렇구나. 그런데 그 사실이 살인사건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너는 오명수의 오래 된 불륜 상대, 그게 누구일 것 같아?"

 

서민국은 순간 놀라서 게슴츠레했던 눈을 크게 떴다.




 

"그게.. 혹시.."

 

"그래. 그게 세나였을지도 몰라. 처음 은서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세나가 은서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후,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고. 만약 정말로 오명수가 바람을 피운 상대가 세나였다면, 지금 세나가 은서에게 한 짓이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확신은 아니고?"

 

"당연히 확신은 아니지. 사실 네가 너에게 이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이것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어. 너라면 실제로 알게 되더라도 적어도 입을 다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이해충돌인데?"

 

"무슨 이해충돌?"

 

"내가 알아 낸 사실이 내 고객에게 이득이 될 것이 뻔한 상황일 때 그것을 내가 외면하는 것은 변호사 법 위반이지. 그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오명수랑 세나가 그런 사이라는 것이 어떻게 세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냐?"

 

"치정이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치정사건은 좀 봐준단 말이야. 그러니까 형량이 줄 수 있지."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이구나. 아무튼 넌 이 사실을 나한테 들었으니까 절대로 언론에 흘리면 안돼. 그리고 사실 나도 그냥 심증이야. 지금도 반신반의 한다고."

 

"그래, 뭐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그런데 오명수는 왜 조세나랑 바람을 피웠을까? 조세나가 예쁘긴 해도 한은서 역시도 그에 못지 않은데 말이야."

 

"세나는 좀 특이한 매력이 있으니까. 너도 봤으니 알 거 아냐. 어땠어?"

 

"?"

 

서민국은 그 순간 교도소에서 만났던 조세나를 떠올렸다. 마지막에 그의 귀에 대고 뜬금없는 말을 했었던 그녀, 만약 그녀가 그렇게 허름한 수형복을 입고 있지 않고 매력적으로 치장을 하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다.

 

"솔직히 인정, 그래 조세나는 좀 독특한 매력이 있는 여자야."

 

"맞아. 내 남편은 그것을 색기라고 하던데, 내 생각엔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닌 것 같아.  팜므파탈 같다고 할까? 아무튼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래."

 

"조심해야겠네. 팜므파탈이면 그거 남자 잡아 먹는 여자 아냐."

 

"그래. 너도 조심해라. 원초적 본능 같은 영화 보면 남자 신세 망치는 거 한 순간이잖아."

 

"그러면 조세나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오명수라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그런 건가?"

 

"나야 모르지. 세나는 자신에 관한 얘기는 절대로 안 하거든. 걘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엔 그 어느 누구도 들이지 않아. 마치 절대적으로 보호된 공간처럼 말이야."

 

"그러면 거길 오명수가 들어간 것일까?"

 

"확신은 하지 말라니까. 아무튼 만약 오명수랑 세나가 그런 관계라면, 살인 사건이 일어날만한 이유는 되는 거지?"

 

"확실히 가능성은 생겨나지. 세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이런 종류의 범죄는 보통 , 원한, 치정, 이 세 개니까 말이야."

 

".. 슬프다."

 

"그래 슬프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웃기다. 15년간 잘 지내오다가 왜 지금 시점에 갑자기 한은서를 죽였지? 조세나 입장에서 결코 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나야 모르지. 그것은 변호사인 네가 알아내야 하는 것 아냐?"

 

", 그렇구나. 내가 변호사니까 내가 알아내야겠다."

 

"그래, 부탁 좀 할게.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세나가 심리 상담을 받았다는 그 사람, 그 사람도 좀 꼭 만나봐."

 

"어차피 만나보긴 할건데, ? 딱히 이유가 있어?"

 

"아마도 그 사람은 세나의 그 숨겨진 벽 안 쪽을 봤을 수도 있으니까."

 

".. 그렇구나. 그러면 혹시나 조세나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 알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이유가 제발 우리가 방금 떠올린 그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남자 문제 때문에 친구가 다른 친구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이후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사는 얘기로 옮겨졌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흔하지만 절박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서로는 추운 날 그리 따뜻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온기 정도는 품고 있는 난로가 되어 주었다.

 

 

 

 

 


'소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데렐라의 친구 - 6  (0) 2019.02.25
신데렐라의 친구 - 5  (0) 2019.02.22
신데렐라의 친구 - 3  (0) 2019.01.30
신데렐라의 친구 - 2  (0) 2019.01.26
신데렐라의 친구 - 1  (0)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