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2

아이루다 2019. 1. 26. 15:02

 

조세나가 수감되어 있는 곳은 서울 동부구치소였다. 예전에 성동구치소가 법조타운으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그렇게 이름이 바뀐 곳이기도 했다. 새롭게 지은 건물답게 비록 구치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혐오스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높은 벽, 철조망, 감시탑 하나 없기 때문에 모르고 보면 그냥 흔하고 평범한 건물로 따로 인식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서민국은 구치소 근처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고 안으로 들어가서 약속된 시간에 조세나를 만났다. 한달 만에 보는 그녀였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약간 더 초췌해진 모습이었는데, 그것조차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누가 창살이 달린 방에 갇힌 채 한 달을 보내면 변하지 않겠는가?

 

"잘 지내셨어요?"

 

서민국의 흔한 인사에 조세나는 밑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서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보일 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서민국은 인사와 동시에 서류 가방에서 문서를 꺼내느라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조세나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 잘 지냈어요. 변호사님은 점심은 드셨어요?"

 

", 근처 국밥 집에서 간단히 먹었어요."

 

", 국밥 드셨구나. 듣고 보니 저도 국밥 먹고 싶네요."

 

조세나는 잠시 머리 속에 뭔가 떠올리는 듯 서민국의 어깨를 넘어 뒤쪽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국밥 좋아하세요?"

 

", 좋아해요. 여기 밥은 좀.."

 

"구치소 밥이 좀 그렇죠. 그런데 뭐 드셨는데요?

 

"점심에 소고기 미역국이랑 참치김치조림이 나왔더군요."

 

"먹을 만 했어요?"

 

"먹을 만은 하죠. 그런데 저는 좀 더 얼큰한 것을 먹고 싶네요. 여기 식사는 너무 건강을 생각해요. 건강하게 살아서 오래 동안 형기를 채우라는 뜻인지.."

 

"그렇군요."

 

서민국은 조세나의 표현에 자신도 모르게 순간 웃음이 낫다. 하지만 금세 서둘러 웃음을 지웠다.

 

"먹을 것 말고 따로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혹시 차별을 당한다든가 아니면 다른 죄수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에요."

 

전 국민에게 미운 털이 박힌 그녀였다구치소 안이라고 해서 그리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심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괴롭힐 약점이 있다면 그 약점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인국 입장에서는 구치소장에게 따져서라도 그녀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지금 그는 그녀의 변호사니까 말이다.

 

", 뭐 딱히. 지금은 독방에 있으니 나름 편하기도 하고요."

 

다행스럽게 조세나는 독방에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도 웃겼다. 그녀의 사건이 너무 크게 이슈화 되어 있어서 구치소 측에서 알아서 그녀를 다른 재소자들과 분리를 시킨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폭력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서인국의 머리 속에는 그런 면에서 보면 구치소에 들어와 편히 지내려면 아예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사건으로 들어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에 같이 수감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들처럼 말이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세요?"

 

"주로 책을 읽어요."

 

"무슨 책이요?"

 

조세나는 대답을 멈추고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것이 궁금하세요?"

 

"?"

 

"아니, 지금 제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하냐고요.”

 

".. , 궁금하니까 물어보죠."

 

"그렇군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변호사에게 사기 당하지 않기』 에요."

 

"?"

 

"농담이에요. 농담. 뭘 그리 정색을 하세요. 그리고 그런 책이 있지도 않아요."

 

이번엔 조세나가 웃었다. 그리고 서민국은 순간 그녀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느꼈다. 실제로 예쁘기도 했다. 비록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그녀의 외모는 꽤나 괜찮은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그녀가 죽인 한은서와 같은 연예인 양성 학원 출신이었다. 둘이 거기에서 만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둘 모두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한때 여배우를 꿈꿨던 사람들로 외모만큼은 충분했다. 더군다나 돈도 많은 사람들이니 얼마나 피부관리를 잘 했을 것인가? 돈 많고 예쁜 여자들은 나이도 예쁘게 먹는다.

 

"다행이네요. 좀 지쳐 보이긴 하는데 멀쩡해 보여서요."

 

"그럼요. 딱히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죠."

 

서민국은 순간 그녀가 정말로 얼마 전에 20년 지기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여자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만약 지금 드러나는 그녀의 태도가 모두 진심이라면, 아마도 그녀는 일종의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럼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죠. 재판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 그러세요."

 

"일단 앞으로 재판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간단히 설명을 드릴게요."

 

"."

 

"이미 알고 있겠지만, 조세나씨의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아요. 세나씨가 유죄라는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다가, 세나씨 스스로 범죄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러면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최대한의 감형인데, 제 입장에서 보면 감형도 요즘 국민들 사이에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아서 거의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 그렇겠죠. 이해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딱히 변호를 안 하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건 뭐 지난번에 다 끝난 얘기이고요. 저도 제 입장이 있으니까 변호는 계속 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을 해야 해요."

 

"어떻게요?

"제가 세나씨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더군요."


"
뭐요?"

 

"바로 세나씨가 예전에 받은 정신과 상담 기록이요."

 

"..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왜 그 사실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주지 않았어요?"

 

"왜요? 그것이 중요해요?"

 

"왜요?"

  

"세나씨가 정신과 상담을 무려 3년이나 받았다는 사실은 이후 재판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게 될 테니까요. 만약에 이번 사건을 비정상적이 정신적 문제로 인해서 충동적 범죄로 몰아갈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소위 말해서 미친년이 되면 형기가 줄어 들 것이라고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렇죠. 운이 좋아서 가벼운 조현병 정도 진단이 나오면 좋고요."

 

"이미 십 수년 전 얘기인데도 그래요?"

 

", 상관없어요. 일단 과거에 어떤 식으로든 상담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언제 왜 받았는지는 생각하지 않죠."

 

"그런 것도 같네요. 예전에 제가 상담 받을 때 그런 얘기 좀 들었으니까요."

 

"아무튼 희망은 그것이에요."

 

"그것이 희망인가요?"

 

조세나는 별로 기대가 없는 얼굴로 물었다.

 

"희망이죠. 무기징역을 받아서 평생 감옥에서 썩는 것보다는 낫죠. 형법 10 1항에 해당되기는 힘들지만, 2항인 심신미약만 인정받을 수 있다면 희망이 있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무죄를 받을 수준은 아니지만 감형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물론 그럴 경우 일정 수준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요."

 

"그럴까요?"

 

조세나는 또 다시 서민국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을 쫓아 뒤쪽을 바라보았으니, 거기엔 그저 하얀 벽 밖에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그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조세나씨."

 

"?"

 

"조금 더 집중하세요. 중요한 시기에요. 그리고 재판에서는 1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1심만 성공하면 사실 2심과 대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심의 유지나 감형이에요. 그러니까 1심 준비에 모든 총력을 다해야 하죠."

 

"싫은데요?"

 

"?"

 

"제가 왜 집중을 해요? 집중은 변호사님이 해야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보다 변호사님이 더 아쉬운 재판 아닌가요? 그러니까 모든 세상 사람들한테 욕을 먹고 있는 저를 변호하려는 것 아니에요. 지금 설마 저를 위해서 변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서민국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쳐도 저 혼자 변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도 미리 얘기를 해줬으면 그리 헤매지 않고 찾았을 텐데 말이에요."

 

서민국의 목소리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그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조세나가 찌른 것이다.

 

"그래요? 그럼 더 말씀 드릴까요?"

 

"뭐가 더 있어요?"

 

", 있죠. 저는 그 정신과 상담 말고 그 후로도 꾸준히 심리학 상담을 받았어요."

 

"심리학 상담이요?"

 

", 하지만 그것은 병원 기록에 남는 것이 아니라서 재판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그게 정확히 무슨 상담이죠?"

 

"..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요? 일종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 그래서 치료를 하는 과정이죠."

 

"?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고요?"

 

", 그러니까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정적 반응들의 진짜 원인을 찾는 과정이에요. 이렇게 설명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많이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뭔가 복잡하네요. 아무튼 그런데 왜 그런 상담을 받았어요?"

 

"궁금해서요. 제 안에 일어나는 그 많은 감정들이 도대체 왜 생겨나는지 궁금했거든요. 특히 몇 가지 감정들이요."

 

"어떤 감정이요?"

 

"변호사님 흥미 생기시나 보다. 목소리에서 짜증이 줄었어."

 

조세나는 또 다시 웃었다.

 

"?"

 

"아니에요. 아무튼 제가 궁금했던 감정은 바로 제가 죽인 한은서에 대한 감정이었어요."

 

쉽지 않은 표현이 쉽게 나왔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어떤 감정인데요."

 

"정말로 몰라서 물어요? 당연히 질투심과 열등감이죠. 또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질투심과 열등감이요?"

 

", 맞아요. 사실 그것을 안 것도 심리 상담을 한참 한 후에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지금은 명확이 알고 있어요."

 

"그럼 결국 그런 감정들 때문에 그리 오래되고 친했던 친구를 그렇게 한 것인가요?"

 

"변호사 선생님의 생각은 어때요? 제가 그런 뻔하고 케케묵은 감정들 때문에 은서를 죽였을 것 같아요?"




 

서민국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잘 모르겠네요."

 

", 복잡하니 일단 그렇다고 알고 있으세요."

 

"그나저나 여기 서명이나 좀 해주세요. 제가 세나씨 과거 정신과 상담 기록을 열람해야 하는데, 본인 동의가 있어야 하거든요."

 

서민국은 동의서 서류를 내밀고 볼펜도 건 냈다. 그러자 조세나는 서류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본 후에 서명란에 서명을 했다.

 

"변호사님이 그 기록들 보면, 저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시게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럼 조금 부끄러운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세나의 표정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적어도 서민국은 그렇게 느꼈다.

 

"일입니다, . 그리고 혹시 그 상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모르겠네요. 저를 상담해준 사람이 그 내용을 다 기록했는지는 확실치 않거든요."

 

"그럼 그 상담사를 만나 볼 수는 있겠죠? 연락처하고 이름을 좀 알려주세요."

 

"만나 보시 게요?"

 

", 만나보면 또 뭔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요. 만나 보세요. 그런데 조심하세요. 그 사람을 만나면 변호사님 영혼까지 탈탈 털릴 수도 있거든요."

"? 그게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 사람, 그런 일이 전문이에요. 사람 심리 꿰뚫어 보는 일. 그래서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요."

 

", 저야 업무상 만나니까 별 일 있겠어요? 아무튼 이제 면회 시간 다 끝나가니까 연락처 적어주세요."

 

조세나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서 건 냈다.

 

"이 사람 어디에 살아요?"

 

"일산에 살아요."

 

"멀다.."

 

"좀 멀죠. 아무튼 잘 만나 보세요."

 

", 그럼 다음 면회 시간은 따로 연락 드릴게요. 아마도 이젠 훨씬 더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에요."

 

", 그러세요. 오랜만에 대화를 하니 저도 좋군요."

 

서민국은 대답대신 살짝 멋쩍게 웃으면서 서류 가방을 챙겼다.

 

"그럼 일어나 볼게요."

 

", 이거 챙겨가세요."

 

조세나는 자신이 썼던 볼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서민국은 펜을 받기 위해서 몸을 좀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조세나는 그 자신도 살짝 앞으로 몸을 숙여서 그녀의 입을 서민국의 귀에 대고는 조용히 소근거렸다.

 

"변호사님은 제가 정말로 정신과 치료 받은 기록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말을 안 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한 말이 귀를 통해서 입력이 되고, 그 입력이 이후 신경망을 거쳐 뇌에 도착한 후, 뇌에서 해석이 이뤄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게 되며 그에 따른 감정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욕을 하면 화가 나고,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서민국은 조세나의 말을 듣는 그 순간 해석을 하기도 전에 온 몸에 소름부터 돋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나 비로소 왜 자신이 소름이 돋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쯤 이미 조세나는 자리를 떠나 자신이 나온 뒤쪽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서민국은 그 자리에서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문을 통해 완전히 모습을 감춘 후에야 긴 한숨을 한번 내 쉬고는 그 자신도 반대쪽 밖으로 나왔다그곳에는 비록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그에게 매우 익숙한 상식과 자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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