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13. 여정의 끝 - 2

아이루다 2018. 11. 2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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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도인지 모르지만 그 후로 잊자는 플라테네스의 질문들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 플라테네스는 답답한 마음에 잊자를 볼 때마다 끝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그저 맑은 미소로 답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 또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긴히 할 얘기가 있어요."

 

"뭔데?"

 

잊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 그 얘기가 아니고, 제가 여행 중에 만났던 친구들에 대한 얘기에요."

 

", 지난번에 잠깐 말한 베짱이랑 다른 개미들?"

 

", 맞아요. 그들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뭔데?"

 

플라테네스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을 했다.

 

"제가 느끼기에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살아갈 이유가 있었거든요. 물론 그 이유가 결국 죽음이었던 매국이는 두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만요. 아무튼 각자 자신만의 사는 이유,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는 분명히 있었어요. 베짱이 바네사는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 것, 늙은 병정개미는 숲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 수개미 아무개는 지금도 제가 잘 납득은 되질 않지만, 아무튼 생존하는 것 그 자체를 삶의 이유로 삼았죠."

 

"그래, 그랬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들이 느낀 그 가치나 의미들은 도대체 뭘까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적어도 각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렇겠지. .. 결국 또 그 얘기로 돌아가는구나."

 

잊자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면서 플라테네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렇게 친구들 얘기를 통해서라도 지난 번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에요. 맞아요."

 

플라테네스는 아닌 척 둘러대려고 하다가 잊자와 눈이 마주치자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양심 고백을 했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상대도 아니었다.

 

", 사실 내가 그날 실수로 그런 말을 한 것이니 널 뭐라고 탓할 수는 없겠구나. 그럼 기왕 시작된 김에 좀 더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보도록 할까?"

 

", 저는 당연히 좋아요."

 

"일단 그것부터 물어보자. 너는 그들이 모두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그래서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일단 제가 보기엔 그래요. 아닌가요?"

 

"내가 보기엔 아니다. 그들은 결국 모두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 그게 뭔데요?"

 

"네가 먼저 답해봐라. 그들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작곡을 하는 베짱이나, 숲의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치른 병정개미나, 살기 위해서 홀로 숨어서 사는 수개미나, 운 없게도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자살한 매미나, 도대체 그들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쉽다. 바로 각자의 행복이니까 말이다."

 

"행복이요?"

 

"그래, 행복.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가진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지."

 

".. 그렇군요. 하지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있어요. 베짱이 바네사는 그렇다고 치고 나머지 존재들도 모두 행복을 추구했다고요? 좋게 봐줘서 두 개미는 그렇다고 쳐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국의 경우가 어떻게 행복을 추구한 것이 되죠? 적어도 자살은 행복이 아니잖아요."

 

"매국이의 경우가 행복에 대해 다룰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 그는 실제로는 죽음이라는 커다란 불행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그렇죠."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부르지 못할 뿐, 더 큰 불행보다 좀 덜한 불행을 선택한 것이란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개념도 모두 상대적이다. 오늘 하루 매우 힘든 일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가 운 좋게 그냥 쉬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그리 행복하다. 하지만 원래 오늘 쉬기로 되어 있으면 쉰다는 사실에 별로 행복하지 않지. 오히려 하루 종일 그냥 있다가 보면 지루함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한단다. 이런 식으로 같이 쉰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되기도 하고 지루함이 되기도 하지."

 

"그렇긴 하네요."

 

"그래서 결국 덜 행복한 것과 더 행복한 것 중에서 더 행복한 것을, 더 불행한 것과 덜 불행한 것 중에서 덜 불행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지. 바로 행복 말이다."

 

"! 그렇군요. 그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조금 이해가 가네요."

 

"그래, 그럼 다시 질문을 해보자그 궁극적인 행복이란 것을 얻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 뭐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그들처럼 말이에요."

 

"그래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행복 그 자체도 하나로 모아지고 만단다."

 

"그게 뭔데요?"

 

"바로 다른 존재와의 관계이지."

 

"관계요?"

 

"그래, 베짱이 바네사가 아무리 열심히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해도 결국 그 연주를 들어주는 개미들이 없다면 행복할 수 없단다. 숲의 평화를 추구한 병정 개미 역시도 평화를 얻었지만 평화를 누릴 개미가 아무도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매국이는 운명을 거부하고 살았지만 결국 혼자라서 외로워서 죽었다. 그리고 수개미도 혼자 살긴 했지만 너와 관계를 맺은 순간부터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했잖니? 결국 그들 모두 누군가와의 관계가 더 행복하니까 그런 것이지."

 

", 그렇네요. 서로 다르지만 결국 관계라는 공통 분모가 있는 것이네요."

 

"그렇단다. 관계는 행복의 열쇠이며, 지난 번에 설명했듯이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이란 것은 어떤 면에서 수없이 얽힌 관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결국 관계 속에서 비록 상대적이라도 그 의미를 찾고또한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결국 삶이란 뜻이시죠?"

 

"그렇지. 하지만 삶은 그리 단순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단다."

 

"왜요?"

 

"왜냐하면 다들 행복에 너무도 깊게 빠졌거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서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왜 그것이 문제가 되죠?"

 

"그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그 이상을 원하게 되었으니까."

 

"?"

 

"행복은 좋은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불안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행복하다가도 몸이 아프면 금세 불행해지고 만다. 그것이 행복의 양면인지."

 

", 그렇긴 하죠."

 

"그러다 보니 다들 행복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었단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지."

 

"그게 뭔데요?"

 

"바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좋은 것이잖아요. 날이 좋을 때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니까요."

 

플라테네스는 자신이 일개미로써 일을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좋은 것이지. 그런데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더욱 더 먼 미래를 예측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야 더 준비를 완벽하게 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 겨울뿐만이 아니라 내년 겨울도, 내후년 겨울도 준비하게 된 것이지."

 

", 좀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준비해 두면 좋잖아요."

 

"그게 너희 개미들과 베짱이의 차이였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베짱이가 낫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미래를 준비하면 할수록 현재는 행복하기가 힘들지."

 

"그래도 안정적이긴 하죠."

 

"그래, 맞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점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럼 진짜 문제는 뭐죠?"

 

"계속 더 미래, 더 먼 미래를 보다가 결코 봐서는 안될 어떤 것을 보고 말았지."

 

"그게 뭔데요?"

 

"바로 자신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마자 존재하지 않던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 생기고 말았단다그리고 미래에 반드시 죽게 됨을 알게 된 존재들은 미칠 듯이 그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지."

 

"당연하죠. 누가 죽음을 선호하겠어요."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죽음은 상대할 수 없는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결국 반드시 일어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존재들로부터 부정되기 시작했단다. 그러니까 죽음은 언급돼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어야 했다. 그렇게 죽음은 점점 잊혀졌다. 가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이 인식되긴 하지만먼 곳에 묻고는 재빠르게 그것을 잊었지."

 

"우리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그런데 그로 인해서 문제가 생겼다."

 

"어떤 문제요?"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은 절대로 떼어 놓을 수가 없는 실제로는 동일한 것인데 이 둘을 억지로 갈라 놓은 것이지. 그러니까 죽음을 통해 삶이 의미가 있어지는데 거기에서 죽음을 강제로 떼어놓고 나니 삶이 어떻게 되겠느냐?"

 

".. 삶 역시도 같이 그 의미가 없어지고 말겠죠."

 

"그래, 그렇다. 행복하기 위해서 미래를 바라본 존재들이 죽음을 발견하고, 그 죽음이 너무 두려워서 죽음을 아예 없는 것으로 부정하다가 보니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부정하는 결과를 얻고 말았어."

 

"듣고 보니 심각한 상황이네요."

 

"그것이 끝이 아니다. 죽음이 너무 두려운 존재들은 이후 더욱 더 엉뚱한 짓을 하게 된다."

 

"또 뭘 했는데요?"

 

"죽음과 싸울 수 있는 가상의 존재를 만든 것이다."

 

"그게 누군데요?"

 

플라테네스의 질문에 잊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모두가 믿고 있는 '' 라는 개념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만들어진 ''를 통해서 죽음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 내가 만들어진 개념이라고요?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요?"

 

"지난 번에 내가 설명을 할 때, 모든 생명체는 서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했지? 그래 우리는 원래 그것이 전부였어야 했단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워진 존재들은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홀로 의미를 갖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죽음과 싸울 수 있거든."

 

"점점 더 이해가 안가는 말씀을 하시네요."

 

"그래, 좀 어려운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의 존재가 명확해져야 내가 살아갈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은 단순한 원리이지. 그러니 '' 라는 존재가 확실해질수록 죽음을 거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길 바라고, 어디에서나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게 되었지. 그리고 결국 최종적으로 영생을 꿈꾸게 된다. ,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 이길 바라게 되지."

 

".."

 

"나는 너를 통해서, 나의 삶은 너의 죽음을 밑바탕으로 삼아서, 나의 죽음은 너의 삶에 디딤돌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난다. 이것이 자연의 질서였지. 그런데 ''을 만들어낸 존재들은 그 자연의 이치에 대항하기 시작했어. 어찌되었건 간에 나만 오랫동안 살면 되니까. 그래서 삶은 나를 조금이라도 더 탁월하고 유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 되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끝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지. 이런 식으로 다른 존재와의 단절과 끝없는 비교, 이것이 지금 현재 행복에 관한 가장 문제점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오래 살고 싶은 것이 문제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요.."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를 강화하면 잠시는 내가 강해진 것 같아서 행복하지만 결국엔 주변과 모든 연결이 끊어지면서 결국 고립되고 외로워질 수 밖에 없지. 그리고 그 고립은 당연히 두려움을 더욱 더 크게 만들 수 밖에 없단다. 그 수개미나 매미의 삶이 그랬잖니? 그런 식으로 행복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더 큰 불행을 불러 오고 만단다. "

 

".. 어려운 문제네요."

 

"그리고 나를 강화하면 나타나는 증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너의 경우이다."

 

"?" 제가 뭘요?"

 

"나를 인식하게 되면서 당연히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기에 그렇단다. 매년 반복적으로 살다가 삼 년이 지나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왜 사는지 질문이 당연히 떠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 그것은 처음부터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몰랐다면 딱히 궁금해 할 질문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죽기 싫고, 그래서 ''라는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에 그런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지."

 

"..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만약 ''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들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의 커다란 순환고리 내에서 그저 잠시 주어진 삶을 살고 나서 때가 되면 죽는다. 그것이 연결을 통한 발생되는 유일한 의미이지. 그리고 거기엔 어떤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단다. 하지만 ''라는 개념이 생기면 그 ''는 죽고 싶지 않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죽고 싶지 않아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의 인식이 그것을 뛰어넘으면서 결국 극단적으로 죽음을 피하려 하게 되고 말지."

 

"결국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존재는 '' 라는 개념을 만들고, '' 죽을까 봐 평생 두려워하면서 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네요. 그리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조차도 부정하고 말고요. 이 말이 맞죠?"

 

"그래, 맞다. 제대로 이해한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슬픈 일이네요."

 

"그리고 죽음에 관해서 한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도 다들 죽음을 너무도 멀리해서 잊어 먹고 만 것이지만."

 

"그건 또 뭐예요?"

 

"죽음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보면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가치 역시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이지."

 

"좀 쉽게 설명해주세요."

 

"만약 네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네 목숨을 내놓는다면 매우 숭고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고 말이다."

 

"그렇죠. 목숨을 내놓는 행위만큼 숭고한 가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죽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네가 네 동료를 위해서 네 다리 하나를 내 놨는데 그것이 전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면, 다리가 금세 쑥쑥 자라서 바로 복구가 된다면 그것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 어려운 문제네요. 그렇게 말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 맞다. 뭔가를 잃었을 때 그것을 복구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희생이란 가치가 생겨난단다. 같은 원리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 존재하기에 가치화 될 수 있다는 뜻이지. 만약 누군가를 살렸지만 네가 가진 아무 것도 손해 볼 필요가 없었다면 그것은 희생도 아니고 당연히 숭고한 가치를 지니지도 못하게 되겠지."

 

".."

 

"결국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는 바로 죽음이 존재하기에 생겨난다고 봐야지. 그리고 그것이 죽음에 더 가까울수록 더욱 더 가치가 있어지는 것으로 믿어지기도 하고."

 

".. 그렇군요."

 

", 그럼 정리를 해보자. 내가 지금까지 설명을 통해서 삶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언급했다."

 

"죽음.. 그리고 하나는 뭐였죠?"

 

"예전에 말한 관계지. , 죽음과 관계, 이 두 개가 삶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두 단어가 된다."

 

"관계와 죽음.."

 

플라테네스는 두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읊조렸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갖게 되지. 그런 후에 죽어서 썩어 흙으로 돌아가 식물에 흡수되거나 그냥 누군가에게 식량이 되어서 소화가 되어서 또 다른 생명체의 삶을 연장시키는 토대가 되지. 즉, 죽음을 통해 삶이 완성되는 것이란다.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지."

 

"그렇군요. 그럼 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너는 이미 그 답을 다 들었다."

 

"? 언제요?"

 

"네가 봄부터 지금까지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그 답을 다 들었다. 단지 스스로 그 답을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 정말로 제가 들었어요?"

 

플라테네스의 말에 잊자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했다.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하나만 알고 살아가면 된다."

 

"뭔데요?"

 

"행복하게 살거라. 살아있는 모든 자들의 유일한 의무란다그것을 위해서 주변의 존재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아끼면서 살거라. 하지만 네가 누릴 수 있는 이상의 행복을 원하지는 말거라. 배 불리 먹고, 잠 잘 자면 된다. 그리고 맑은 하늘은 맑은 하늘대로, 흐린 하늘은 흐린 하늘로 즐기면 된다. 그것이 너의 삶이면 된다. 그 이상을 원하게 되면 죽음의 두려움이 너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더 이상 그런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단다. 잘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느라 불행해지고, 잘날 것 같지 않은 미래가 불안해서 불행해지고 만다너는 불안할수록 더욱 더 열심히 행복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한 만큼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말 뿐이다결국 너는 맑은 날의 행복과 흐린 날의 행복을 까맣게 잊고 살게 될 것이다. 오히려 과연 그런 것 따위가 과연 행복이냐고 되묻게 될 것이야."

 

".. 매우 어렵겠지만 노력해볼게요."

 

플라테네스는 그 대답을 하는 중에 문득 깨달았다. 봄에 잊자가 말했던 그 분이 도대체 누구였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그저 자신의 꿈 속에 자신에게 불만을 털어 놓았던 한 알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떠난 그 오랜 여정에서 오늘 드디어 그 답의 아주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머리 속에는 방금 전까지 잊자와 함께 얘기를 나눴던, 그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들이 아니라 그에게 매미포를 주었던 일개미 #2999부터 여왕개미, 바네사, 매국, 늙은 병정개미, 아무개 그리고 여행 중 만났던 수 많은 다른 존재들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 .. 너구나."

 

"그래 나야."

 

플라테네스는 등에 한 짐을 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 아무개를 보고는 씽긋 웃었다. 그리고 아무개는 얼이 빠진 표정을 플라테네스를 바라보았다.

 

"돌아온 거야?"

 

"그래, 돌아왔어."

 

"정말로? 이거 꿈이 아니지?"

 

아무개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꿈 아니야. 돌아왔어. 너랑 같이 지내려고."

 

그러자 아무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플라테네스는 그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너 이름부터 바꿔야겠어."

 

"이름??"

 

"그래, 아무래도 아무개는 별로야. 너랑 나랑 이제 가족이 될 테니까 그것을 약자로 해서 너를 가족개, 더 줄여서 족개로 부를게."

 

"족개라고?"

 

"그래, 족개."

 

"뭔가 좀 이상해. 그거 발음이 영 별로인데?"

 

"그래도 의미는 좋잖아. 그럼 아무개는 발음이 좋았냐?"

 

"그건 아니지만, 족개는 너무 심해!"

 

"그럼 다른 것 해볼래?"

 

"그게 뭔데?"

 

"내가 플라테네스이니가 너는 플라테우스라고 해. 비슷하게."

 

"플라테우스?"

 

"그래 족개 아니면 플라테우스, 둘 중 하나 선택해."

 

"플라테우스는 좀 낯간지러운데.."

 

"그럼 족개로 할래?"

 

".. 아냐플라테우스로 할게."

 

아무개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래, 너는 이제부터 플라테우스야."

 

플라테네스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먼저 제시하라고 알려 준 잊자의 마지막 조언을 떠올리면서 플라테우스가 불릴, 이제는 자신의 가족이 된 수개미를 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우리 여왕님이 너 한번 보고 싶데.  아이 마음 뺏어간 간 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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