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신데렐라의 친구 - 1

아이루다 2019. 1. 22. 11:37

 

그 해 12월은 참 특이했다. 연말마다 반복되는 연기 대상이 누구이며 어떤 논란들이 있는지, 올 해 유난히 불우이웃 성금이 잘 안 걷힌다든지, 여야 국회의원들이 다음 해 정부 예산안을 가지고 매일 공격하는 내용이라든지어떤 모녀가 30만원을 남기고는 자살을 했다든지, 내년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라든지, 올해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급이라든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부자들의 전망이라든지하는 뉴스들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 여자의 죽음이었다한은서라는 이름을 가진, 올해 41살의 가정주부의 죽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말마다 반복되는 그 많은 이슈들을 몽땅 다 땅에 묻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긴 했다. 그저 그녀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했는데, 하나는 그녀의 남편이 국내 재계 서열 3위에 해당되는 재벌가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비해서 그녀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보통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도 결혼 전 잠깐 연예인 활동을 하긴 했지만,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는, 그저 그런 배우였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크게 성공한 작품을 찍어서가 아니라 15년 전 지금의 남편인 오명수와 결혼한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엔 정말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는데, 딱히 배경도 없고, 집안도 뭔가 내놓을 만한 게 전혀 없는, 아니 사실은 형편없는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그런 대기업의 며느리가 된 사건이니 그럴 만 했다.

 

당시 신문들은 이 결혼을 두고 현대판 신데렐라의 탄생이라고 까지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은서의 성장 배경 때문이었다실제로 그녀는 소설 신데렐라와 비슷하게 어려서 친모를 잃고 그 후 계모 밑에서 컸는데, 배 다른 두 명의 언니가 있었던 상황이 신데렐라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다.

 

실제로 그녀의 새엄마가 신데렐라의 계모처럼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주변에서 흘러 나온 얘기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기도 했다또한 당사자인 한은서는 자신의 새엄마나 언니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나쁘게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후 많은 자리에서 집안 얘기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녀의 새엄마에 대해서 대부분은 신데렐라의 계모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평소엔 얼굴도 보기 힘든 오명수를 만난 것은 아주 우연 중에서도 우연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오명수가 주최하는 사회봉사 모임에 게스트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를 처음 본 오명수가 첫 눈에 반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도 그때 그녀가 신발이라도 남기고 도망쳤다면 더욱 더 이 이야기는 신비로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그 당시 그녀는 오명수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냥 얼굴도 자신의 이상형이랑은 너무 거리가 멀어서 연락처를 달라는 그의 말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오명수는 꾸준히 연락을 해왔고, 결국 그런 그의 노력에 의해 한은서가 마음을 열면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는데, 그 둘의 사랑 이야기는 그 후 어느 월간잡지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밝혀졌고,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미혼의 여성들이 백마 탄 왕자님 병이 심화되었다는 말도 회자되곤 했었다.




 

그 둘은 만난 후 꼭 3년 만에 결혼을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뻔하지만 집안이 반대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명수는 그녀와 결혼하지 못하면 자신이 집안에서 나가겠다는 배수진을 치고는 끝까지 밀어 붙여서 결혼에 성공을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한 여자가 운 좋게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스토리와 비슷해서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을망정 결혼 후 10년이나 지난 후 갑자기 전해 온 그녀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12월의 모든 이슈를 잡아 삼켜버릴 만큼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은서는 결혼 후에 뭔가 달랐다그녀가 결혼 후에 보여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두 글자를 품게 만들어 줬는데, 그것은 주로 음지를 돕는 사회 활동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연예인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는 수 많은 어려운 사정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주력을 했는데 그 사실도 한참 후에 알려져서 더욱 더 빛이 나기도 했다그녀는 고아원, 양로원, 재정적으로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 미혼모, 독거노인 등등 정부의 복지정책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사회 속 어두움에 한 줄기 빛이 되는 사람으로써 칭송을 받았고 사랑도 받았다.

 

또한 그녀를 한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들은 그녀의 따뜻하고 밝은 인성에 반해서 입에 침을 튀기면서 그녀를 칭찬하고는 했는데, 원래 연예인을 할 정도로 예쁜 얼굴이기도 했고 웃으면 너무도 선해 보이는 인상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는 착했고, 실제로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선행도 결혼 후 10년이나 지나서야 한 기자의 집요한 추적으로 인해서 밝혀진 사실로, 기사는 기사가 나가기 바로 전까지도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그런데 그녀의 그런 선행이 밝혀지자 마자 그 사이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천사 같은 모습에 대해서 털어 놓았고, 그 후로 그녀는 그 어떤 유명한 스타보다도 더 유명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팬 카페가 생겨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가 되고그녀의 그런 선행에 반해서 같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연히 그녀에게 독설을 퍼 붙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민들 대다수의 정서는 예쁘고 선한 한 그녀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정치권에서도 그녀의 이미지를 이용하려고 접근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그 길은 자신이 길이 아니라면서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는 죽기 전에도 유명했고, 죽은 후에는 더욱 더 유명했다.

 

그랬던 그녀의 죽음은 워낙 갑작스럽고 죽은 이유도 황당했기에 더욱 더 큰 이슈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단순히 사고나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누군가에 의해서 처참하게 살해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가장 친했던 20년지기 친구에 의해서 죽고 만 것이다.

 

그 후로 이 사건은 일명 신데렐라 살인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은 그 후로 매일같이 이 사건을 다뤘는데, 그녀가 생전에 해왔던 수 많은 자선 사업들, 선행,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 등등, 정말로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오는지가 신기할 정도로 자세한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반복되곤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워낙 충격이 커서 한 개인의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국내를 넘어서 외신으로도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특히 영국에서는 이 사건을 자신들의 나라에서 갑작스럽고 불운하게 일어난 다이아나 황태자비의 비극적인 죽음과 비교하면서 심층 보도를 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한은서의 죽음은 그런 단순한 사고도 아닌 가장 친한 친구의 질투심으로 야기된 살인 사건으로 일어났으니 더욱 더 사건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이유가 컸다.

 

타고난 불운한 환경을 딛고 삶의 밑바닥부터 올라섰지만, 그 후에도 자신의 아픈 경험을 잊지 않고 다른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모두 쏟아 부은 천사 같은 한 여자의 짧고도 강렬했던 삶은 전 세계의 피부색과 문화권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깊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어느 곳보다도 대한민국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국가에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현충원에 안장시켜야 한다고 억지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눈치 빠른 국회의원 몇몇은 특별법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아무 것도 이뤄지지는 않았다. 주변에 어떤 주장들이 있느냐와 상관없이 남편인 오명수가 그것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오명수는 그녀의 장례식을 일반적인 삼일장이 아닌 오일장으로 한다고 발표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의 요청이 끊이질 않아서 대도시마다 별도로 조문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문객은 5일 내내 끊이질 않았고 그래서 이틀을 더 연장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 못지 않게 유명세를 탄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그런 한은서를 살해한 20년 지기 절친 조세나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경찰의 1차 조사에 의하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그런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악마와도 같은 그녀였다. 그래서 결국 한은서는 천사로, 조세나는 질투심에 눈이 먼 악마로 묘사되곤 했는데, 한 때 잘나갔던 변호사 서민국이 그 누구도 변호를 맡지 않으려고 하는 조세나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한 일들의 연속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서민국이 그녀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은 그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바로 조세나의 또 다른 절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신세를 진 일이 있었던 친구이기에 거절하기가 힘들었지만, 사실 조세나의 변호는 그런 신세로 결정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두 번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내가 죽은 한은서를 너무도 좋아했기에 그랬다. 사실 자신의 아내가 한은서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얼마 전 그녀가 보내 온 이혼 동의서로 인해서 너무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유명세를 탈 수 있다는 욕심도 생겨서 그랬다. 한때 잘나가던 국내 대형 로펌에서 밀려서 결국 퇴사를 하게 되어 개인 사무실을 차리게 된 그가 한번쯤 던져보는 승부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최종 마음의 결정을 한 것은 바로 조세나를 만난 직후였다. 처음엔 아무리 그래도 전 국민에게 욕을 먹는 사람을 변호를 하려는 의도가 내심 불안했는데 실제로 조세나를 만나보니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른 어떤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변호사 생활 20년이 가져 다 준 촉이었다. 물론 조세나가 한은서를 살해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경찰에서는 이미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찾았고, 거기에 조세나의 다섯 손가락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밝혀 내었다. 또한 당사자인 조세나 역시도 자신의 범행 사실을 순수하게 인정을 했다.

 

하지만 서민국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본 조세나는 언론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를 연결해 준 친구에 의하면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은 지난 20년 동안 참으로 잘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한은서를 살해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 사건이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그랬다면 이미 한은서가 오명수와 결혼을 한 순간에 그런 짓을 저질렀어야 옳다.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 그녀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런데 그 후로 15년이나 지나 갑자기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살인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이 사건엔 뭔가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서민국의 입장에서 지금은 뭔가 몰두할 사건이 필요했다. 자신과의 이혼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아내, 자신을 피하려고 하는 아이들, 더해서 집안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있는 형, 자리를 잡아야 하는 개인 사무실 등등 그가 머리 속에서 밀어내어야 할 잡생각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건을 맡기로 한 순간부터 그의 머리는 오히려 무척 맑아졌다. 물론 하루가 멀다하고 걸려오는 협박 전화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요즘처럼 집중력이 좋았던 때도 드물었다.

 

서민국이 구치소에 있는 조세나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이미 12월이 지나고 언론에서도 이 사건이 좀 잠잠해질 무렵쯤인 일월 초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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