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12. 잊자

아이루다 2018. 11. 19. 09:27

 

"저기 나비씨, 혹시 근처에 빛이 나는 검은색으로 돌로 지어진 집 본 적이 있어요?"

 

플라테네스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호랑나비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호랑나비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나갈 뿐이었다벌써 일주일째였다. 처음부터 깊은 숲 속이라는 명확하지 않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출발했기에 당연히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그럼에도 처음엔 희망에 들떠 에너지가 넘치던 플라테네스도 일주일 동안 계속 허탕을 치자 점점 기운이 빠져갔다. 그리고 슬금슬금 걱정과 불안감이 느껴지면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도대체 정말로 존재나 하는 것일까?'

 

그나마 좋은 점은 매일 하루씩 지나면서 봄의 기운이 완연해져서 이젠 숲은 수 많은 곤충들로 가득해졌고 먹을 것들도 풍부해졌다. 연한 녹색을 띄고 싹을 틔운 작은 잎들은 금세 자라서 무성해진 나무가 되었고, 많은 풀들이 이미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나비와 벌을 유혹했다. 플라테네스 역시도 꿀을 몹시 좋아해서 달콤한 향이 나는 꽃을 보면 재빠르게 줄기를 타고 올라서 꽃 속에 담긴 작은 꿀을 먹곤 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벌과 마주치기도 했고, 나비도 보게 된다. 그와 같은 개미들도 보였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존재들도 보게 되는데, 어느 한 날은 온 몸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벌레를 보게 되었다.

 

"너는 누구니?"

 

악취인 듯 싶기도 하고 그냥 특이한 것 같기도 한 냄새를 풍기는 벌레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작은 개미를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 말이야?"

 

"그래 너, 몸에서 특이한 냄새가 나는 너 말이야."

 

"아하,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냄새가 좀 그렇지? 그런데 그건 일종의 신호야. 동료를 부르기도 하고, 동료에게 경고를 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이용하기도 해."

 

", 그렇구나. 그럼 지금은 왜 냄새를 풍기는데?"

 

", 그건 그냥 배가 아파서 방구를 뀐 거야. 미안해. 냄새가 좀 심하지?"

 

"아냐, 그냥 괜찮아."

 

사실 괜찮지는 않았다. 플라테네스는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리가 아플 정도로 냄새가 심하다고 느꼈지만 상대방을 생각해서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물어 볼 것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이다. 오늘 먹은 것이 뭔가 좀 소화가 안 되는 듯 자꾸 방구가 나와. 미안해."

 

노린재는 미안하다는 듯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 순간 냄새가 더 심해져서 플라테네스는 그 표정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물어 볼 것이 하나 있어. 혹시 너 이 근처에 검고 빛나는 돌로 지은 집 본 적 있니?"

 

"검고 빛나는 돌?"

 

"그래, 그런 돌로 지은 집."

 

".. 본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플라테네스는 순간 냄새를 잊을 정도로 흥분했다.

 

"으음.. 그러니까 아주 예전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뭔가 좀 기분 나쁜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 재빠르게 빠져 나왔던 것 같은데.. , 맞다. 그때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냄새 좀 아주 심하게 풍기고 나왔지 히히."

 

"무슨 복수?"

 

"무슨 복수긴, 내가 기분이 나빠졌으니 복수를 해야지."

"꼭 그래야 하는 거야?"

 

플라테네스는 누군지는 몰라도 복수를 당한 그 존재가 불쌍했다.

 

"당연하지. 아무튼 보긴 봤어. 그런데 잘 기억이 잘 안 나네."

 

"여기에서 멀어?"

 

"그리 멀지는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나도 길을 잃어서 갔던 곳이라서 어떻게 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걸.."

 

".. 그렇구나. 혹시 가는 길에 뭔가 특징은 없었고? 기억나는 것 없어?"

 

플라테네스의 말이 노린재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는 더욱 더 강한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내가 그쪽으로 들어간 것은, 아주 달콤한 그리고 생전 처음 맡아보는 꽃 향기에 끌려서 그랬어. 하지만 그 냄새를 너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 그 달콤함이란, 설명하기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꽃 향기라고?"

 

"그래, 꽃 향기, 아니 꽃 향기가 아닐지도 모르지. 실제로 꽃을 본 적은 없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 냄새를 맡게 되면 누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바로 알게 될 거야. 그러니 그곳을 찾고 싶다면 코를 최대한 벌름거리면서 다녀봐."

 

플라테네스는 노린재를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렸다가 그의 냄새를 가득 들어 마시고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어질어질해졌다.

 

"그래, 고마워. 그럼 이만."

 

플라테네스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더 있다가는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존재 앞에서 토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지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정말로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개의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검고 빛나는 돌로 만든 집을 실제로 본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 며칠 동안 플라테네스는 하루 종일 코만 벌름거리면서 다녔다. 그리고 덕분에 예상치 못하게 한가지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엔 정말로 다양한 냄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었다. 꽃들에서 나는 수 많은 향기들뿐만 아니라 다른 곤충들의 몸에서 나는 도대체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냄새들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가늠도 안 되는 정체 불명의 냄새들도 가득했다.

 

햇살이 가득한 날이 달랐고, 비가 와서 축축한 날이 달랐다. 아침이 달랐고 저녁이 달랐다. 밤이 되면 또 다른 냄새들이 맡아지곤 했다. 세상은 태양에 의해서만 낮과 밤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냄새와 소리로도 달라졌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플라테네스는 이제 냄새 만으로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까지 민감해졌다. 하지만 노린재가 말한 그토록 강렬한 향기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작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 사이 또 다시 시간은 훌쩍 흘렀다. 봄이 시작될 무렵 출발했는데 이제 벌써 낮에는 꽤나 더우 여름의 초입까지 지나있었다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아마도 매미가 울기 시작할 것이다. 플라테네스는 매미를 떠올리는 순간 매국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그 아이는 이제 평화로워졌을까?'

 

별 의미 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아무개가 잘 살고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는 지금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네사도 지금쯤이면 늘 밖에 나와서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자신의 연주를 들어보라고 하고 있을 것이다. 늙은 병정개미가 지난 겨울을 잘 지냈을 지가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웃음이 났다.

 

햇살이 강해서 덥긴 했지만 바람은 시원한 날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본격적이 여름철이 아니라서 숲 속은 조용한 편이었다. 매미도 나오기 전이고, 많은 풀벌레들도 아직까지는 자신의 짝을 부르는 소리를 내기 전이었다. 가끔 멀리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개미들의 행진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런 소리들은 금세 숲의 정적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에 불고 지나갔다.

 

그것은 단 한 순간이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불어 온 한 줄기 바람 속에서 플라테네스는 자신의 짧은 생애 동안 단 한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그 향기의 달콤함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어떤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노린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것은 정말로 설명하기 힘든 냄새였고, 맡는 순간 바로 그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향기였다. 플라테네스는 급격히 흥분되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당연히 그쪽에서 향기가 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참을 걸어도 향기의 근원에는 좀처럼 다가가지 못했다.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 향기는 강렬해지고 있기에 자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확신은 가질 수 있었다

 

그 사이 숲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고 빼곡하게 들어 찬 나무들로 인해서 햇살도 거의 들지 않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플라테네스는 향기에 흠뻑 취해서는 그런 생각은 하나도 하지 못한 황홀함에 빠진 상태였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플라테네스 눈 앞에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꽃이 하나가 나타났다. 꽃은 대단히 컸고 그 색상은 향기만큼이나 아름답고 다채로웠는데, 그 무엇보다 그 꽃에서 나오는 꽃 향기는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단지 꽃의 모양이 좀 특이했는데그것은 평소에 플라테네스가 봐왔던 모양과 달리 밑으로 둥글게 모양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커다란 바구니 같았다. 그리고 꽃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그 안을 바라보니 그 봉오리의 가장 밑부분에서 모든 향기가 발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달콤함의 이유가 되는 꿀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봉오리는 매우 커서 플라테네스와 같은 크기의 개미들은 수십 마리가 들어가도 충분히 보였고 잘하면 매국의 몸도 들어갈 만 했다. 물론 조금 무리일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플라테네스는 생각할 틈도 없이 향기의 근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고여 있는 꿀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로 처음으로 맛보는 너무도 좋은 냄새와 너무도 맛이 있는 꿀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잊혀지고 오직 눈 앞의 꿀만이 모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순간 그 봉우리의 윗부분이 닫히면서 자신이 갇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렇게 실컷 먹고 나자 갑자기 졸렸다. 그리고 그는 잠에 들었다.

 

그 후로 플라테네스가 잠을 깬 것은 전혀 낯선 곳이었다. 분명히 자신은 향기 가득한 꿀이 가득한 환상적인 장소에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향기는 고사하고 어둡고 춥기까지 한 어떤 장소였다. 플라테네스는 순간 자신이 어딘가로 납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심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보이는 곳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비슷한 장소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플라테네스는 멀리 밝은 빛이 스며드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본능적으로 그 빛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러자 다행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따뜻한 햇살 느껴졌다. 그리고 햇살이 느껴지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플라테네스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봐서 자신이 어디에 갇혀 있었는지 확인을 했다. 그런데 거기엔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검고 빛나는 돌로 만들어진 집이 보였다. 플라테네스는 순간 놀라서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일어난 게냐?"

 

갑자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플라테네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또 다시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커다랗고 위압적인 존재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국 정도는 상대도 안될 정도의 몸 크기를 가지고 있었고, 검은 색의 정말로 단단해 보이는 껍질과 커다란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앞쪽으로 나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앞턱은 플라테네스 정도는 아주 가볍게, 좀 더 힘을 쓰면 늙은 병정 개미나 매국이 정도도 두 동강이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듯 보였다. 플라테네스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무서워하지 말거라."

 

다행히 상대의 목소리는 그 무서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목소리를 듣자 플라테네스의 뒷걸음질이 멈춰졌다.

 

"잘못하면 죽을 뻔 했다. 그 꽃, 정말로 조심해야 하거든."

 

플라테네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달콤했던 향기, 그 달콤했던 맛,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함정이었단 말인가?

 

"저를 구해주신 것인가요?"

 

", 그렇다고 봐야지. 아무튼 늦기 전에 내가 너를 발견해서 다행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꽃은 뭐죠?"

 

"나도 그 이름은 모른단다. 하지만 그 꽃이 달콤한 향기와 꿀로 지나가는 곤충을 잡아 먹고 사는 것은 알고 있지. 그리고 조금만 조심을 하면 아주 맛있는 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알고 있고 말이다."

 

", 그러면 그 달콤한 향기와 꿀로 저 같은 작은 곤충들을 유혹해서 잡아먹는 것인가요?"

 

"그렇단다. 그 꿀을 먹는 곤충은 마취 성분으로 인해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지그래서 절대로 한번에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그렇군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를 구해주셨군요."

 

"네 운이다."

 

"아무튼 그래도 감사해요. 그런데, 누구세요?"

 

플라테네스는 그제서야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검고 빛나는 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 바로 그가 찾던 존재가 아닌가?

 

"나 말이냐?"

 

", 그리고 이 검고 빛나는 돌로 지어진 집을 보니 제가 찾던 분 같기도 한데.."

 

플라테네스는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나를 찾았다고?"

 

", 예전에 만난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검고 빛나는 돌로 만들어진 집에 사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했어요. 그는 아주 오래 살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도 했죠. 그래서 저는 그 존재를 만나러 온 것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라.."

 

"혹시 그 분이 본인인가요?"

 

"내가? 으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 꽃 이름조차 모르잖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런 꽃 이름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플라테네스는 순간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장소는 분명히 아무개가 말한 그곳과 일치하는 유일한 장소였다근처에 노린재가 말한 달콤한 꽃 향기라는 증거도 있다그러니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이곳에 살고 계신 것은 맞죠?"

 

"그래, 이곳이 나의 집이다. 그리고 여기 앞이 내가 농사를 짓는 밭이지."

 

플라테네스는 상대가 말하는 밭이라고 부르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풀들이 가득했지만 특이한 점은 같은 종류의 풀들이 뭉쳐서 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래 풀들은 보통 엄청나게 서로 뒤섞여서 자라는데, 그 점은 꽤나 특이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에 혼자 살고 계신가요? 혹시나 아까 제가 말한 아주 오래 살아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분은 없나요?"

 

"흐흠..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그런 존재는 없다. 나는 혼자 살고 있다."

 

상대는 확신 있게 대답을 했고 그로 인해서 좀 더 불안해졌다.

 

"그렇군요.."

 

"그런데 넌 왜 그런 존재를 찾아 다니고 있는 거니?"

 

"그게.."

 

플라테네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설명했다.

 

"네가 왜 사는지 알고 싶어서 개미 굴을 떠나 벌써 일년 가까이 답을 찾아 다니고 있다고?"

 

", 그래요."

 

"너도 참 대단한 아이구나. 그런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거리를 이동했다니 말이다."

 

"대단하긴요.. 아직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하니. 아무래도 여기엔 네가 찾는 그런 존재는 없는 듯 한데 말이다."

 

",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곳을 실제로 찾았으니 적어도 속은 후련하네요."

 

"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빠르구나. 참 좋은 성격이다."

 

"그래요저는 그냥 어쩔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하는 것뿐이에요."

 

"그래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말은 쉽지 보통 그러지들 못해서 그리 힘들게 산단다. 안 되는 것을 그냥 안 되는 것으로 놔두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게지. 그렇게 살려니 억울하고, 답답하고, 후회되고, 견딜 수 없고, 두렵지. 그래서 보내지 못하고 억지로 쥐고 있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결국 세게 쥘수록 자신만 더 다치게 된단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지."

 

"그렇군요. 뭔가 좀 심오한 얘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을 잘 아세요?"

 

플라테네스는 상대의 말을 듣다 보니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

 

"글쎄다. 그냥 좀 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라고 해야겠지."

 

"그럼.. 정말로 오래 살아서 모든 것을 알게 된 존재가 바로 아저씨가 아니세요? 지금 아닌 척 하는 것 아닌가요? "

 

"내가? 아니다. 무슨, 내가 그런 존재씩이나 되겠느냐."

 

"흐흠.. 그러면 아저씨는 누구세요?"

 

"?  말이냐? .. 그거 참 어려운 질문이구나.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상대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 순간 플라테네스는 자신이 상대가 오해할만한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 죄송해요. 제가 궁금한 것은 아저씨의 이름이에요. 참고로 저는 플라테네스라고 해요."

 

"너의 이름은 플라테네스구나. 참 좋은 이름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냐. 난 내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구나."


"왜요?"


"이름을 사용해 본 적이 너무 오래 되었거든."


 "그래도 기억해보세요. 예전엔 분명히 이름이 있었을 것 아니에요."

 

"그래, 그 말도 맞다.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상대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도 나는 과거엔 나루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다. 이제는 완전히 잊혀진 이름이지만."

 

"나루라고요? 좋은 이름이네요. 그런데 왜 이름이 잊혀지죠?"

 

"그것은 바로 나에겐 이름이란 개념은 더 이상 무의미하니까 그렇단다."

 

"? 왜 이름이 무의미해요? 저는 제 이름에 의미가 있어서 마음에 드는데요."

 

플라테네스의 말에 상대는 대답대신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자 플라테네스가 다시 말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있어야 뭐라고 부를 것 아니에요적어도 아저씨를 '그것' 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적어도 호칭은 있어야겠지. 그럼 나를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너는 좋은 생각이 없니?"

 

"저요? 흐흠.. 잠시만요 생각을 좀 해볼게요."

 

둘 사이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그리고 한참 후 플라테네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보시다시피 개미인데요."

 

"? 나는 하늘소란다."

 

"하늘소요?"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때요?"

 

"하늘님? .. 듣기는 좋은데 뭔가 좀 느낌이 어색하다. 그냥 내가 언뜻 떠오른 호칭이 있는데, 그것으로 불러 줄래?"

 

"뭔데요? 아저씨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가장 좋죠."

 

"나는 그냥 잊혀진 장소에서 사는 잊혀진 존재란다. 그러니 그 말을 줄여서 '잊자' 라고 부르려무나"

 

"네에? 잊자라고요?"

 

플라테네스는 살아 생전에 아무개보다 더 막 지은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 잊자. 나름 괜찮은 호칭 같구나."

 

"그렇군요. 참 좋은 이름이네요. 정말로요."


"표정을 보니 너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어떻게 그게 마음에 들겠어요. 원래 이름인 나루가 훨씬 더 나은데요?"

 

"그것은 잊혀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왜 좋은 이름은 버리고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정해요."

 

"아까도 말했잖니. 이름은 무의미한 것이니까 그렇다그런데 너의 의견처럼 서로를 부를 호칭도 필요하니 간편하게 지어서 사용하면 된다."

 

"그럼 잊자는 지금 막 생각해낸 것인가요?"

 

"그런 셈이지. 네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에겐 이름은 필요 없었으니까."

 

"지금 갑자기 자신을 아무개라고 불러주길 바랬던 어떤 개미가 떠오르네요."

 

"아무개라고? 그것도 정말로 좋은 이름이구나.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플라테네스는 잠시 일자 눈이 되었다.

 

"그래요.. 아무튼 그거 따져서 뭐하겠어요."

 

플라테네스는 이름 얘기는 그쯤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혹시 잊자님은 제가 찾는 분은 아니더라도 제가 궁금해 하는 질문의 답을 내줄 수 있는 분을 알지는 못하시나요?"

 

"으음.. 지금은 당장 딱히 생각나는 존재는 없구나. 그런데.."

 

"그런데요?"

 

플라테네스의 두 눈은 커졌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런 존재가 있어요?"

 

"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거기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단다."

 

"뭔데요?"

 

"그것은 말이다네가 그 분은 아무 때나 만날 수도 없고 또한 만나기 위해서 어딘가로 찾아 갈 수 있는 분도 아니라는 문제이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만나고 싶어서 노력을 한다고 해도 만날 수 없다는 뜻이지."

 

"네에? 그럼 어떻게 만나죠?"

 

플라테네스의 마음 속엔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것은 말이다.. 네가 그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널 만나러 찾아온단다. 너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수동적이라고 봐야지."

 

"그 분이 스스로 저를 찾아온다고요?"

 

"그렇단다. 하지만 언제 어디로 찾아올지를 모르기에 너무 막연하기는 하지. 운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도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흐흠.."

 

설명을 듣고 보니 잊자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찾아 갈 수 없다는 말은 이해를 한다고 치고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정말로 찾아오긴 하는 것일까? 잊자라는 존재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네가 좀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 내가 제안 하나를 하마. 여기에서 잠시 머물면서 기다려 보지 않겠니? 너에게 그런 인연이 있다면 그 분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장 어디로 갈 데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플라테네스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차피 어디선가 막연하게 기다려야 한다면 다시 아무개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아니면 그냥 또 다시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도 또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잠시만이라도 여기에 머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알겠어요. 그런데 아직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물어보거라."

 

"왜 이곳이 아주 오래 살아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가 사는 곳으로 소문이 났을까요?"

 

"으음..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약간 짐작이 가는 구석은 있구나."

 

"그게 뭔데요?"

 

"내가 하늘소 중에서도 장수 하늘소거든."

 

"그게 왜요?"

 

"장수 하늘소라고 하니 다들 내가 오래 살아서 장수 하늘소라고 상상한 듯 하구나."

 

잊자는 그 말을 하고는 커다랗게 웃었다. 그러자 플라테네스도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하고는 따라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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