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10. 정체성

아이루다 2018. 11. 11. 08:16

 

그는 이름도 없고, 이상하게 혼자 살고 있고늘 퉁명스러운 말투를 쓰고, 뭔가 불만도 많아 보이는 개미였지만, 그래도 아픈 플라테네스를 보살피는 일만큼은 열심히 했다그래서 때가 되면 빼먹지 않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고몸이 잘 회복되고 있는지  자주 살펴봐주었다. 혼자 오래 살다가 보니 건강 챙기는 법만큼은 잘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플라테네스는 며칠 만에 많이 회복될 수 있었다. 비록 그 사이 이름없는 개미의 불친절한 말투와 태도로 인해서 마음은 어느 정도 불편했지만, 첫날 느꼈던 불편함 이상으로 더 이상 불편해지지는 않았고 현재의 아픈 몸으로 밖에 나간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점을 받아들이고는 회복에 집중한 것도 도움이 컸다.

 

"이제 많이 나아졌군."

 

이름없는 개미는 플라테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느껴요. 몸이 이제 거뜬하네요."

 

", 그런데 그런 말투 쓰지마. 나는 존대나 예의 뭐 그런 것 질색이거든.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그냥 편하게 말해."

 

"? .. 응 그래."

 

"그리고 오바하지마. 넌 며칠 전에 거의 죽을 뻔 했었어. 그러니 지금 몸이 회복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저 며칠 전의 몸에 비해서 나아진 것뿐이지 결코 제대로 회복된 상태가 아니야."

 

"그렇긴 해도.. 아무튼 지금은 많이 괜찮은데?"

 

"? 그러면 이제라도 바로 밖으로 나가려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아무래도 여기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또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밖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겨울 내내 이곳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서 생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겨울에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 쯧쯧, 넌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나 소리 하고 있구나. 겨울에 개미가 밖으로 나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냥 자살이야. 거기엔 무슨 생존의 비법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도.."

 

"내가 장담하지. 너 여기에서 나가는 순간 네 목숨은 잘해야 하루나 이틀이야. 아마도 십중팔구 얼어 죽겠지. 혹시나 운이 좋아서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어도 지난 번처럼 결국 굶어 죽고 말 거야. 또 다시 운이 좋게 나같이 좋은 개미를 만나지 못하는 이상, 넌 죽은 목숨이라고."

 

상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플라테네스는 왠지 이 상황이 몹시 답답했다나가면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계속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는 문제는 고사하고, 여기에서 남의 식량이나 축내면서 빌붙어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난 며칠은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계속 그렇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이렇게 되려고 자신이 개미 굴을 떠나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어. 분명히 이곳은 너의 집이고 나는 지금 매일 너의 소중한 식량을 축내고 있는 상황이잖아."

 

"맞아. 내 소중한 식량을 축내고 있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살하러 나가는 너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그것은 좀 다른 문제야."

 

"그렇다고 해서 그냥 여기에서 식충이 노릇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어."

 

둘의 의견은 팽팽히 맞섰다.

 

"그럼 일단 며칠 있다가 몸이 완벽히 회복된 후에 다시 얘기해보자."

 

"? .."

 

플라테네스 역시 딱히 대안이 있는 상황이 아니고 몸도 확실히 정상화 된 것은 아니기에 일단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사실 반대한다고 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넌 정말로 이름이 없어?"

 

"이름? 넌 왜 그렇게 이름에 집착하지?"

 

"이름은 중요한 것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들었거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의미해? 어떤 미친 녀석이 그런 소리를 했지?"

 

이름없는 개미는 갑자기 뜬금없이 화를 냈다.

 

"예전에 만났던 베짱이가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그가 내 이름도 만들어줬지그래서 내 이름이 플라테네스인거야. 방랑자라는 뜻을 가졌어."

 

"그런 게으르고 멍청한 베짱이 녀석이 한 말을 믿는단 말이야? 너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아이구나. 아무튼 지난번 말했듯이 난 이름 같은 것은 없어. 그리고 새로 이름 따위를 짓고 싶은 마음도 하나도 없고."

 

"알았어. 그런데 왜 그렇게 갑자기 화를 내는 거야.."

 

플라테네스는 상대방의 그런 반응이 싫다기 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내가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아무튼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것이 있어."

 

이름없는 개미는 재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는 화제를 돌렸다.

 

"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겨울이 다 되어 가는데 겨울을 보낼 장소도 마련하지 않고 홀로 그렇게 있었던 거지? 지난번에 얘기 들었을 때는 네가 살던 개미 굴로부터 멀리 떠나왔다고 했는데, 그곳에 있을 때 겨울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던 거야?"

 

질문을 가장했지만 사실은 책망이었다. 하지만 플라테네스의 입장에서 그런 책망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당연히 듣긴 했지. 사실 겨울에 대해서 자주 들었어. 그런데 내가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한 것이 그들 중 어느 하나도 겨울에 내리는 무서운 눈에 대해서 얘기를 해준 개미가 없었다는 점이야내 입장에서 지금 상황을 보면 겨울 자체도 무서운 존재이지만 실제로 겨울이 무서운 것은 눈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데 말이야."

 

플라테네스는 그 신비스럽고 아름답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감춰 버리고 마는, 그래서 먹을 것조차 감추는 온 세상을 덮은 하얀 눈을 떠올렸다.

 

"왜 그러냐고? 후후 뻔하지. 그 개미 녀석들은 다 어리석고 겁쟁이거든."

 

이름없는 개미는 비웃으면서 대답했다.

 

"?"

 

"너는 올해 겨울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개미들은 자기들이 평소 떠드는 것과 달리 겨울에 대해서 쥐뿔도 몰라그저 입으로만 겨울에 대해서 아는 척하면서 떠들어 대지. 그러다가 실제로 겨울이 오면  겁쟁이들은 땅 속에 처박혀서는 밖에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 그것이 무슨 말이야. 나에게 겨울에 대해서 설명해준 개미들은 분명히 겨울을 한번 이상 지났고, 그것에 대해서 나에게 자세히 설명도 해줬는데."

 

"물론 그들이 겨울을 나긴 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개미들은 실제로 겨울이 오면 굴의 입구를 단단히 틀어 막고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렇게 겨울 내내 안전하게 땅 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거지. 그러니까 그들이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거나,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버린 광경을 구경한 적이나 있겠어? 그러니 당연히 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것이지냉정히 말하면 그들의 겨울에 대한 공포심은 모두 상상에 의한 거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어서 생긴 것들이란 뜻이야."

 

".. 그렇구나. 그래서 그들이 날씨가 춥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눈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구나.."

 

플라테네스는 그제서야 뭔가 좀 이해가 갔다. 그들이 자신에게 왜 눈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는지, 아니 못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눈의 존재에 대해서 아예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은 모두 겁쟁이고 바보들이야. 나하고는 전혀 다르지."

 

이번엔 잘난 척이었다. 플라테네스는 마치 자신은 그런 존재들과는 뭔가 다른 어떤 것인 냥 말하고 있는 상대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것을 따지기엔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도움이 너무 컸다.

 

"그런데 넌 왜 혼자 살아?"

 

"? 당연하지 그런 바보들하고 같이 살 수는 없잖아."

 

"그럼 다른 개미들이 모두 바보라서 혼자서 살게 되었다는 뜻이야?"

 

", 꼭 그런 것은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자신감 있게 말을 하던 상대가 처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플라테네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그도 역시 어떤 사정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기야 혼자 사는 개미가 사연이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튼 너나 나나 혼자 있는 것은 동일하네. 차이라면 너는 이렇게 근사한 집과 남에게도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있고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점만 다르구나."

 

"그것이 아주 큰 차이지.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혼자라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해 두고 살아.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겨울은 다른 개미들과는 달리 그저 밖으로 나가기 좀 힘든 시기일 뿐이지."

 

이름없는 개미는 또 다시 으스댔다. 겨울에 대해 잘 알고, 겨울에도 밖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도대체 저렇게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것일까? 플라테네스는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래, 넌 좀 대단하구나."

 

"당연하지. 아무튼 좀 쉬어. 며칠 더 경과를 보자."

 

"알았어."

 

그 후로도 이름없는 개미는 자주 플라테네스의 방으로 왔다. 이제 거의 회복이 되어서 병 간호는 거의 할 것이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것을 핑계 삼아서 왔다. 그리고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엔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다른 개미들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잔뜩 떠든 후 돌아가길 반복했다. 플라테네스는 그런 대화가 좀 피곤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과거에 생각보다 큰 상처를 입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캐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몸이 다 회복이 되면 떠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네가 왜 사는지 알고 싶어서 네가 살던 곳을 떠났다는 거야?"

 

"그래, 그런 셈이지."

 

"넌 참 이상한 개미구나? 사는 것이 그냥 사는 것이지, 무슨 왜 사는지 이유가 필요해. 사는 것이 생존이라는 이유 말고 뭐가 더 필요한데?"

 

"물론 네 말처럼 생존도 중요하지. 오히려 생존이 그렇게 중요하니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뭔가 중요하다면 당연히 그것의 이유가 있기 마련일 것 아냐."

 

"아니, 생존 그 자체가 이유라는데, 뭘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해.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그렇다고 해서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아는 베짱이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 살아. 멋진 곡을 만들고 그것을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행복하니까 산다고 해. 그것은 생존하고는 좀 다른 것 아닐까?"

 

", 또 게으른 베짱이 얘기군.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것은 생존하고 관계가 없지. 그런데 그것도 일단 숨쉬고 살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소리 아냐? 죽으면 작곡이고 연주고 아무 것도 못해. 그러니까 사는 것은 생존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야."

 

이름없는 개미의 표현이 투박하긴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플라테네스는 답답했다생존하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이유라면 그 끝에 반드시 죽게 되는 모든 생명체의 아이러니함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럼 넌 생존하기 위해서 사는 거야?"

 

"당연하지. 매일 나는 그것을 위해 노력해. 지금 너와 내가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내가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을 해서 모아 놓은 식량 덕분이야. 그것이 없었다면 너는 당연히 죽었을 것이고, 나도 죽었겠지. 그러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수도 없었고."

 

"그럼 너는 그것이 끝이야? 홀로 이렇게 살다가 결국 늙고 병들면 죽고 마는 것이?"

 

".. 그래. 그것이 끝이지."

 

"넌 무섭지 않니?"

 

"무섭지 않아."

 

"그래, 무섭지는 않다고 하자. 그럼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아? 이렇게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움? 참나, 그런 것은 나에겐 사치야. 난 외로움이나 지루함을 느낄 시간조차 없는데 무슨 그런 호강스러운 소리를 하는 거야."

 

", 그렇구나."

 

물론 이름없는 개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당연히 바쁘면 외로움도 지겨움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테네스가 그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지난 몇 달간 홀로 여행을 하면서 그 역시도 간혹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플라테네스 역시도 매일 열심히 걸었고, 밤이 오면 잠자리를 준비 했으며, 매일 식량을 얻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 늘 바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 홀로 있다는 감정을 느낄 때는 그날 밤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개미 굴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거기엔 여왕 개미도 나왔고, 수호 개미들도 보였으며, 자신에게 매미 포를 준 개미 #2999도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떠나게?"

 

이름없는 개미는 한쪽 구석에 플라테네스가 대충 꾸려놓은 짐을 보고는 갑자기 냉랭해진 어투로 변해서는 물었다.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 지금 나가면 죽어. 그래도 떠날 거야?"

 

"죽을지 않을지는 나가봐야 알겠지. 겨울이 오기 전에는 겨울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몰라서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겨울이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배워야지."

 

"과연 네가 그것을 배울 기회나 있을까? 며칠이면 죽고 말 텐데."

 

"너는 왜 다른 개미들을 그렇게 다 어리석고 겁쟁이라고 비난하면서 내가 정작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가겠다는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야? 오히려 응원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야?"

 

"용기와 만용은 분명히 구분해야지. 넌 지금 만용을 부리는 거야."

 

"해봤어? 밖에 나가서 겨울을 상대하는 경험을 해봤냐고!”

 

"해봤냐고? .. 해보긴 했지. 물론 제대로 한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모르는 개미가 어디 있어. 뻔하고 뻔한 거지. 그러니까 네가 지금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냥 스스로를 어리석은 바보라고 광고하는 꼴이라고."

 

이름없는 개미는 이죽거리면서 말했다플라테네스는 조금 짜증이 났다.

 

"진짜로 뻔한 것을 알려줄까? 그것은 바로 지금의 너처럼 개미가 절대로 홀로 살지 않는다, 개미는 나처럼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모든 베짱이는 게으르다, 매미는 여름이 되면 다들 나무 위로 올라가 울다가 죽는다, 자신의 왕국이 망한 개미는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런 것들이지.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증거가 있잖아. 당장 너와 나처럼 말이야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에 뻔하고 뻔한 것에 대해서 그토록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플라테네스는 말을 하다가 점점 더 화가 났다. 뭐 딱히 식량을 나눠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남의 식량을 축내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겠다는데 저렇게 반드시 죽는다는 저주를 퍼 붙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겨울이 힘들고 눈이 두려운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고자 하는 의지도 그에 못지 않게 강할 수 있다. 플라테네스를 그렇게 믿었다.

 

"정말로 그렇게 떠나고 싶어?"

 

플라테네스의 언성이 높아지자 이름없는 개미는 약간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당연하지나는 꼭 내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그깐 질문의 답?"

 

"너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아니 정확히 말해서 네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지. 그것은 오직 나에게 속해 있는 질문이니까. 그것은 나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네가 그렇게 폄하해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거야."

 

플라테네스는 상대방의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좀 더 화가 났지만 외부 반응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래, 그것은 너의 질문이지. 그런데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살아야 답을 찾을 것 아냐. 그런데 네가 죽으로 나가겠다는 것을 내가 말리지 않는 것은 내 책임이지."

 

"그래. 맞아. 살아야 뭐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너는 왜 내 삶이 계속 되길 바라지? 내가 사는 것과 네가 사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저 잘난 너만 잘 먹고 잘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그래. 나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그런데 너도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뭔가 특별해아니면 나를 구해줬다는 이유로 그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는 거야?"

 

순간 이름없는 개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한참을 플라테네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너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이름없는 개미는 그 순간 그를 만난 후 가장 진지해진 어투로 말했다.

 

"?"

 

"너 자신에 대해서 말이야. 그리고 나에 대해서 그렇고."

 

"? 그것이 무슨 말이야."

 

"넌 내가 어떻게 보이니?"

 

"개미지. 물론 나하고는 조금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결국 개미지."

 

".. 그것 밖에 느끼질 못하니?"

 

"그것 말고는 뭐가 다른데?"

 

이름없는 개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야 개미이지만, 나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개미야. 그리고 반대로 너는 암개미지. 그래서 너랑 나랑은 같은 개미이긴 하지만 전혀 달라."

 

"수개미? 그리고 내가 암개미라고?"

 

플라테네스는 상대방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 우리는 성별이 다르다고."

 

"그게 무슨 뜻인데?"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설명을 해줘."

 

"너는 개미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모르니?"


"
그거야 여왕님한테서 태어나지."

 

"그럼 여왕님은 처음에 어떻게 여왕이 된 것일까?"

 

"내가 듣기로는 결혼 비행을 했다고 해. 그럼 여왕 개미가 될 수 있다고 하던데?"

 

"맞아. 그런데 그런 여왕의 결혼 비행에 꼭 필요한 존재가 하나가 있지."

 

"뭔데?"

 

"바로 나 같은 수개미들. 그러니까 여왕개미가 일개미들을 낳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미들이 필요해."

 

"수개미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그래. 하지만 수개미들은 그 결혼 비행을 마치고 나면..."

 

"나면?"

 

"죽어."

 

"죽는다고? 왜 죽어?"

 

"수개미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나니까. 결혼 비행을 하고 나면 수개미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사라져. 너의 질문에 따르면, 수개미의 삶의 이유는 결혼 비행이지. 그래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죽는 거야."

 

"왜 그러지그래, 그건 내가 잘 모르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넌 뭐야?. 넌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아직 결혼 비행을 하기 전인 거야?"

 

", 결론적으로는 그런 셈이지. 하지만 난 달라. 난 그런 수개미의 운명을 거부했거든. 예전에 내가 결혼 비행을 해야 할 때에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는 이곳으로 왔지. 그리고 그 후로 이렇게 쭉 홀로 살고 있어."

 

플라테네스는 갑자기 매국이 떠올랐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상대는 확실히 매국과는 다른 선택을 한 모양이었다. 그랬다면 이미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혹은 자살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수개미인 것보다 네가 암개미인 것은 안 궁금하니?"

 

"너는 내가 암개인줄은 어떻게 아는데?"

 

"당연하지. 개미 굴에서 사는 모든 개미는 암개미야. 수개미는 여왕의 결혼 비행 전후로만 아주 잠깐 살아 있거든보통 수개미들은 몇 주만 살고 죽어."

 

그 순간 이름없는 개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슬픔이 느껴졌다.

 

"정말로?"

 

플라테네스는 깜짝 놀랐다.

 

"맞아. 내가 수개미라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

 

플라테네스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내가 암개미고 네가 수개미라는 사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사실이 내가 왜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것과 연관이 되는 것인데?"

 

".. 그것은 말이야, 우리 둘이 마음이 맞는다면 이곳에서 함께 새로운 가족을 꾸릴 수도 있거든."

 

이름없는 개미는 그 순간 그를 만난 후 가장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가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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