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8. 옛날 이야기

아이루다 2018. 11. 4. 08:23

 

"이 과일 처음 먹어 보는데 정말 맛있네요."

 

"그렇지?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이 과일의 맛을 본 때는 바로 세 번째 전투에 참가 했을 때였단다그 당시 나는 적의 기습으로 인해 내가 속해있던 부대와 헤어져서는 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숲을 헤매고 있었는데..."

 

점심 식사 이후 저녁을 먹을 때가 될 때까지 병정개미와의 대화는 매번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어떤 종류의 대화 주제도 결국 늙은 병정개미가 겪었던 과거의 전쟁 이야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의 몸에 난 커다란 흉터에 대한 질문은 말할 것도 없이, 맛난 먹을 것에 대한 칭찬도,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도, 심지어 가을 날씨가 좋다는 평범한 말도 결국엔 전쟁에 관련된 과거 이야기로 이어졌다.

 

플라테네스도 처음엔 늙은 병정개미의 이야기를 꽤나 흥미롭게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플라테네스로서는 거의 대부분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기에 그랬다. 그래서 오후 동안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이 저녁을 먹고 나서까지 이어지자 점점 즐거움보다는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그것은 바로 지겨움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려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를 하고 말았다. 어떤 종류의 질문도 결국 한 가지로 모였기에 그랬다. 물론 상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마치 그의 머리 속에는 거대한 깔때기가 있고 그것이 모이는 지점에 전쟁에 관한 기억들만 존재하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플라테네스 입장에서는 초대를 받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은 손님 입장이기에 현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드럽게 넘길 지혜가 필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필살기가 필요했다.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개미 굴을 왜 떠나왔는지 안 궁금하세요?"

 

"너 말이냐? 그래 궁금하긴 했지하지만 아까 낮에 물어봤는데, 네가 딱히 대답을 하지 않기에 그냥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했다."

 

"그럼 지금은 궁금하셔도 돼요. 제가 지금은 그것에 대해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흐흠?? 그러냐.. 그럼 얘기해 보거라."

 

늙은 병정개미는 갑작스러운 플라테네스의 주문으로 인해 약간 떨떠름한 기색은 있었지만, 다행히 별다른 저항 없이 물어주었다. 플라테네스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그게 말이죠복잡하게 설명할 것이 없이, 제가 왜 사는지 궁금해서 떠났어요. 태어나고 자란 그곳에서는 어떠한 답을 찾기가 힘들어서요."

 

"네가 왜 사는지 몰라서 떠났다고?"

 

", 맞아요."

 

".. 아마도 네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어떤 이유요?"

 

"아마도 너의 삶에는 네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일만한 살아가야 할 이유나 혹은 목적이 없어서 그러겠지."

 

"이유나 목적이요?"

 

"그래. 원래 살아있는 것들은 그런 것이 있을 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군요. 그럼 할아버지는 그런 것이 있었어요?"

 

"당연히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들이 바로 다 그것의 일부였으니까.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숲의 평화를 원했다. 그래서 그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뤄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지. 만약 너에게 나와 비슷한 목적이 있었다면 스스로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게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전쟁에 참가할 때마다.."

 

순간 플라테네스는 위기감을 느꼈다. 또 다시 그 얘기로 빠지면 안 된다.

 

"할아버지전쟁 얘기는 궁금하긴 한데 조금만 있다가 해주시고요, 다른 질문이 있어요."

 

"그래? 그게 뭐냐? 말 나온 김에 마음껏 질문해보려무나."

 

일단 순발력 있게 막긴 했지만, 플라테네스의 머리 속에는 다음 질문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 중에서 오늘 가장 빠르게 머리를 돌려야 했다. 순간 다행히도 하나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과거는 꽤나 힘들었잖아요. 지금이야 그렇게 재미있게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분명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이 분명해요.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종류의 힘듦이나 고통이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버티실 것인가요?"

 

"당연히 그렇지. 내 삶 자체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지금이야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만약에 그렇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삶이 너무도 불행해서 견딜 수 없어도 말이에요?"

 

"그럴수록 더욱 더 힘을 내야지. 자신이 품은 목적만 확실히 의미가 있다면힘들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지. 만약 도착해야 할 곳이 명확한데 조금 힘들다고 포기해버리거나 되돌아 가 버리고 말면 어떻게 그곳에 도착할 수 있겠니. 그리고 오히려 반대로 누구나 쉽게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라면 딱히 그곳에 갈 필요가 있겠니? 그것은 누구나 갈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쉬운 것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어. 누가 잠자는 것을 의미 있거나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니. 그것은 누구나 쉽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 그렇군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쉽게 얻는 것은 의미나 가치가 있기가 힘들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것이 행복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반대로 오히려 가치가 있는 일을 하려면 행복하기가 쉽지 않고요."

 

"그래, 당연히 행복한 것은 아니지. 오히려 불행하지. 하지만 목적에 대한 명확한 신념만 있다면 그런 불행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단다. 나를 봐라. 내 젊은 시절은 전쟁과 폭력 그리고 슬픔이 가득하지만, 내가 이뤄낸 이 평화로 인해서 이 숲에 사는 많은 개미들이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니? 이만하면 내 젊은 시절의 불행을 충분히 보상받을만한 가치인 듯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물론 가치는 충분히 있죠. 그런데 정작 할아버지는 불행했잖아요. 혹시나 가치가 있으면서도 행복한 것은 없을까요? 만약 제가 할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제 삶의 이유를 찾고 싶다면 그런 것을 찾고 싶은데요. 물론 할아버지의 삶도 충분히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한다면 솔직히 그리 내키지는 않네요. 저는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가치와 행복을 동시에 가지고 싶다라.. 쉽지 않는 일이구나. 보통 행복한 일을 하게 되면 가치가 생겨나기 힘드니까 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을 구경하고베짱이의 연주회를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고 즐겁긴 하지만 거기에서 가치가 생겨나긴 힘들지. 오히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가치 있다고 알려진 일을 멈추고 놀아야 하니까 말이다. 가치라는 것은 처음부터 열심히 노력할 때 생겨나야 정상이 아니겠니?"

 

"그렇긴 하겠죠. 그렇다면 결국 왜 사는지 진짜로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비록 힘들어도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사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요?"

 

"내 생각엔 그렇구나."

 

플라테네스는 잠시 생각을 했다. 분명히 할아버지의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뭔가 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또한 어렵게 살려낸 이 대화 주제에 대한 흐름도 끊어서는 안되니 뭔가 질문을 하긴 해야 했다.

 

"다른 질문이 있어요."

 

"그래 해보려무나."

 

"만약에 할아버지의 삶을 되돌려서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여전히 지금과 같은 삶인가요? 아니면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으세요?"

 

"그거야 당연히 지금의 삶이다거기엔 그 어떤 갈등도 있을 수 없지."

 

"만약에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왕국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도요? 그러니까 홀로 살아남는 불행함이 없었어도 지금과도 같은 결정을 하실 것인가요?"

 

".. 그건.."

 

그 순간 처음으로 늙은 병정개미은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플라테네스는 그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의 돌멩이처럼 단단한 확신에 조그마한 틈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플라테네스는 자신의 머리 속을 떠도는 뭔가 이상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저는 그러니까 충분히 행복하게 일반적으로 사는 것과 분명히 불행하긴 하지만 가치가 있는 삶 중에서 어떤 쪽을 선택하실 것인지 묻는 것이에요."

 

"그것은 정말로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구나."

 

"그렇긴 해요. 사실 묻고 있는 저도 그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긴 하구나. 만약에 나에게 그런 불행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왕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대로 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이런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겠네요.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하니 처음부터 선택이란 것 자체도 무의미하네요. 어차피 삶은 한 가지 방향으로밖에 흐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럼 내가 하나 묻자. 너는 어땠니? 물론 너는 나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 역시도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났잖니. 물론 분명히 네가 답을 찾고 싶은 질문이 있어서 그곳을 떠났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니? 집을 떠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두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너는 나처럼 병정개미도 아니었으니 더욱 더 그 두려움은 컸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낮에 너를 처음 본 인상은 꾀죄죄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그래서 내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고."

 

"그 점은 정말로 감사해요. 그리고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와 상황은 좀 다르지만, 아무튼 저 역시도 비슷한 선택을 하긴 했네요."

 

"그렇지. 그러면 너는 행복과 불행 중에서 불행을 선택한 것이니?"

 

".. 잠시만요. 그것은 좀 생각 좀 해보고요."

 

지겨움을 벗어나게 위해서 시작한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플라테네스는 한번도 생각도 해보지 못한 자신이 개미 굴을 떠난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판단을 해야 했다. 물론 바네사를 만났을 때 그로부터 '왜 사는지를 왜 궁금해하지?', 라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얻고는 순간 혼란스러웠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불행과 행복 중 선택이란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자신은 정말로 불행을 선택한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러니까.. 떠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떠났거든요. 그러니까 물론 거기에 있으면 몸은 편하고 안전하긴 했을 것이에요. 하지만 그뿐이겠죠. 그래서 생각만큼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해요. 당연히 저의 머리 속에 들어온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사는 것이 저를 무척 힘들게 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는 더 불행한 것과 덜 불행한 것 중에서 덜 불행한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 좋게 말하면 덜 행복한 것과 더 행복한 것 중에서 더 행복한 것을 선택한 것이고요."

 

"그렇다면 떠나는 선택이 너를 더 행복하게 했다는 뜻이냐?"

 

"물론 육체적으로는 아니겠죠. 하지만 행복이란 그 자체만 보면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란 뜻이에요. 행복이 언제나 육체적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 그렇긴 하다. 나 역시도 이렇게 많은 상처를 입고 그때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구나."

 

"그렇다면 할아버지도 저랑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내가 행복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거의 고통이었지. 그리고 그로 인해서 내 기억들도 거의 대부분 그것들로 채워지고 있고. 내가 겪은 그런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만약 내가 행복을 추구한 결과라면 사실 좀 끔찍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내가 행복을 추구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긴 해요."

 

"그러니 내가 행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그래야지."

 

늙은 병정개미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즐겁고 신나게 과거 얘기를 하던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갑자기 그는 늙고 불행함의 기억만 남아 있는 개미가 되어 버렸다. 플라테네스는 의도치 않게 분위기가 이렇게 되 버린 것이 미안했다.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상대가 더 이상 과거 얘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도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다행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드네요. 정말로 가치 있는 목적을 찾아야만 제가 품은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무슨 뜻이냐? 그것 말고 뭐가 더 있을 수 있겠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왜 사는지의 이유가 결국 힘듦과 고통밖에 없는 것이잖아요. 가치라는 것이 그래야만 생길 수 있으니까요. 물론 다른 면도 있긴 하지만, 당장 매일 사는 이유가 고통과 불행이라면 그것이 저를 또 다시 혼란스럽게 하네요."


플라테네스는 그 순간 매국이 떠올랐다. 사는 것이 불행과 고통이라서 스스로 자살을 한 매미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매국이 삶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인가?


"하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면, 결국 나처럼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만약에 반대로 목적을 이루는 거에 실패하면요? 할아버지는 다행히 그것을 얻었지만, 모두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개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을 하죠.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요. 그런데 제가 들은 얘기로는, 정작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어서 베네사, 아니 베짱이 연주회를 보러 간데요.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을 해서 얻은 먹을 것을 입장료로 지불하고요.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음.. 그러니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더 고통을 참고, 더 힘듦을 견뎌내야지. 그래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네,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해요.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삶이 그렇게 노력으로만 채워지고 나면 나중에 그 목적을 이루고 나서, 그러니까 개미들에게 겨울이 오듯이 그런 시기가 오면 정작 저는 뭐를 하고 살아야 할까요?"


"흠.. 그거야 그때가서 생각해야지. 이루기전부터 왜 그것을 고민하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고 있어요?"


"나야 뭐 이렇게 살고 있지. 이제 갈 날도 많이 남지 않았으니 그냥 낮에는 햇빛 쬐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그렇게 살지."


"그럼 할아버지는 지금은 행복하세요?"


"행복?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살아온 삶에는 행복이란 단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오히려 행복해서도 안되는 것이었고. 그러니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별로 상관이 없구나."


"행복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요.."


플라테네스는 그 순간 바네사의 주장과 눈 앞의 늙은 병정개미의 주장이 심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은 행복만이 최고라고 하고, 한쪽은 행복이 뭐 그리 대수냐 라고 말하고 있었다. 둘 모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어 보였는데, 과연 누구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나간다고 해도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밤도 많이 깊어져 있었다.

 

"밤도 늦었고 이제 그만 자야겠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그래, 이만 자자."

 

늙은 병정개미는 더 이상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에 흥미를 잃은 듯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플라테네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곧 졸려서 그 역시도 금세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왕 온 김에 하루 더 머물다 가려무나."

 

잠을 자고 나서 그런지 늙은 병정개미의 목소리는 훨씬 더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플라테네스에게 하루 더 머물다 가라고 설득을 했다.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겨울이 오기 전에 뭔가 결론을 내야 할 듯 해서 마음이 급해서요."

 

"왜 사는지 답을 찾고 싶어서?"

 

", 그렇죠."

 

"그런데 무턱대고 다닌다고 해서 그 답이 나오는 것이냐? 차라리 여기에서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나가는 것은 어떠냐?"

 

늙은 병정개미의 제안을 듣고 플라테네스는 잠시 고민을 했다.

 

"아니에요. 아직은 움직일 수 있으니 움직여야죠. 혹시나 그럴 상황이 되면 다시 와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그래, 그러면 아쉽지만 헤어져야겠구나. 내가 그랬듯이 너도 너의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늙은 병정개미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 비록 하루지만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 잘 가라."

 

", 그럼 안녕히 계세요."

 

플라테네스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그가 싸준 도시락을 짊어 지고는 또 다시 길을 나섰다. 부쩍 더 추워진 날씨에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아직은 멈출 때는 아니었다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혹은 아예 그런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 점은 지금 멈추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계속 가야 했다. 그것만이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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