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9. Winter is coming

아이루다 2018. 11. 8. 08:28

 

"길을 잃은 거니?"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린 것은 늙은 병정개미와 헤어지고 난 후 시간이 한참 흘러서 그의 부러진 앞턱이 왼쪽이었는지 아니면 오른쪽이었는지를 기억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던 때였다. 플라테네스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디에서 아무도 없었다.

 

"위야, 위를 봐."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라테네스는 그제서야 고개를 최대한 들어서 위쪽을 바라보았다거기엔 커다란 거미줄이 보였고 그 위로 커다란 거미가 눈에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지. 그런데 너는 내가 처음 보는 개미인데, 길을 잃어서 여기로 온 것이니?"

 

상대는 이미 플라테네스가 길을 잃은 것으로 단정지은 듯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여기 처음 온 것은 맞는데, 길을 잃은 것은 아니에요."

 

플라테네스는 그것이 오지랖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느껴져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니?"

 

그것은 숲을 지나다가 만난 많은 다른 곤충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그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괜히 잘못했다가는 조언을 가장한 온갖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늘 솔직할 필요는 없다.

 

"제가 꼭 갈 곳이 있어서요."

 

플라테네스의 대답에 거미는 별다른 말이 없이 그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구나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 최대한 빨리 그곳에 도착해야 할거야."

 

"왜요?"

 

"너는 아직 그 말을 못 들어봤니? '거미가 거미줄을 치지 않고 거둬들이고 있을 때는 곧 눈이 올 것이란 뜻이다' 라는 말 말이야."

 

"?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거미는 질문의 대답대신 또 다시 물었다.

 

".. 거미줄을 손보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 그 말이 맞긴 해. 하지만 나는 지금 거미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없애고 있는 중이다."

 

"왜요?"

 

"그것 말이야, 이제 곧 눈이 올 것이거든."

 

"눈이요?"

 

"그래, . 거미줄에 눈이 많이 쌓이면 결국 다 끊어져 버리고 말지. 그래서 그 전에 다 정리를 해둬야 한다. 그리고 눈이 올 것이란 말의 의미는 이제는 나도 안전한 곳을 찾아서 겨울을 나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니 오늘 거미줄을 없애고 나면 내년 봄에나 다시 치게 될 거야."

 

"그런데 눈이 뭔데요?"

 

"? 너는 한번도 눈을 본 적이 없니?"

 

".. 제가 올 봄에 태어났거든요그래서 겨울을 한번도 지내 본 적이 없어요."

 

"저런,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구나. 눈은 말이다... 아주 위험한 녀석이지. 좀 실제적으로 설명해준다면, 눈은 겨울에만 오는 하얗고 차가운 물이야. 하지만 나도 왜 눈이 오는지, 왜 눈은 하얗고 차가운지 잘 모른단다내가 정확히 아는 것은 그 눈이 치명적으로 위험하다는 점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잘 상상이 가질 않네요."

 

"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써 아주 중요하단다. 아마도 이 숲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눈이 오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이 준비해 둔 겨울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을 잘못한 게으르고 경험이 부족한 녀석들은 아마도 내년 봄에 보질 못하겠지."

 

"흐흠.. 그렇군요."

 

플라테네스는 눈이라고 부른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상상이 되질 않았지만, 거미의 설명으로 인해서 그것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확실히 생겨났다.

 

"네가 지금 그렇군요, 라고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야. 내 본능이 말하고 있거든그러니 이제 며칠 안에 눈이 오게 될 거야. 그러니 너는 최대한 네가 원래 살고 있었던 개미 굴로 되돌아 가야만 해. 지금은 이렇게 낯설고 위험한 곳을 돌아다닐 때가 아니라고."

 

거미의 목소리엔 진심으로 걱정이 담겨있었다.

 

",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플라테네스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자신이 떠난 개미 굴로 되돌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거미의 말에 따르면 곧 눈이 오게 될 텐데,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정리되는 것은 없었다.

 

"그래, 나는 서둘러야 해서 이만~"

 

거미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다 했다고 생각한 듯 다시 자신이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라테네스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거의 끝 무렵까지 도착한 숲에는 붉고 노랗게 물었던 나뭇잎들 대신 갈색이 된 후 바닥에 떨어져 낙엽이 되어 버린 잎들만 가득했다. 정작 나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자신과 함께했던 잎들을 모두 떨구고는 그 앙상한 몸을 드러낸 채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따뜻하게 보내야 할 시기에 자신을 감싸주던 잎들을 모두 떨구고는 맨 몸을 들어낸 나무들의 태도가 잘 이해는 가질 않았지만, 비록 알지는 못해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깔려서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았다. 플라테네스는 그날 역시도 별다른 변화 없이 여전히 동쪽 방향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낯선 차가움이 느껴져서는 순간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진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것은 하얗고 빛이 나는, 아주 예쁜 형체를 갖춘 생전 처음 보는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 위에 닿았던 그것은 이내 그 아름다운 형체를 잃으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이슬과 같은 동그란 물방울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플라테네스는 잠시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지만 이내 그 새로운 것의 정체가 바로 거미가 말했던 '' 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거미의 말은 눈에 대해서 극히 일부만 표현한 것이란 것이었다. 눈은 거미가 말한 단순히 하얗고 차가운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플라테네스가 경험했던 그 수 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작은 몸 크기로 인해서 내린 눈의 결정 구조까지 보이기에 더욱 더 아름다움은 크게 다가왔다.

 

드디어 겨울이 온 것이다. 하지만 플라테네스는 겨울이 왔다는 두려움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내린 눈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한참을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가 내리는 눈에 반쯤 파묻혀서 주변이 잘 보이질 않았을 때였다. 플라테네스는 그 순간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래서 재빠르게 이동을 해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다행히 눈은 차갑긴 해도 부드럽고 쉽게 부서져서 그가 그렇게 이동을 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첫눈이지만 멈출줄 모르고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숲을 가득 채웠던 수 많은 다양한 색이 사라지고는 오직 한 가지 색으로만 채워진 풍경이었다. 플라테네스는 몇 시간 만에 자신이 알던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모습이 몹시 신기했다. 하지만 신기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눈이 점점 쌓여갈수록 걱정도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이 쌓이면서 땅과 그 자신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냥 포기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나마 눈이 덜 쌓이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동을 할 때마다 그의 몸이 작고 체중이 적게 나가는 탓에 눈을 밟을 때마다 빠지지는 않는다는 점과 아직 나뭇잎이 남아 있는 나무들 밑은 나무 자체가 눈을 막아줘서 그 밑에는 눈이 별로 쌓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플라테네스는 그런 나무들 중에서 가장 풍성한 나뭇잎을 가진 나무를 택해서 그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대한 나무 기둥 가까이에 땅을 파고는 당장 잠시라도 제대로 지낼만한 장소를 마련했다. 평소엔 대충 하루 정도만 자면 되기에 가볍게 만들었다면, 오늘은 어찌될지 모르니 좀 더 신경을 써서 잘 만들었다. 개미 굴 수준은 아니지만, 며칠을 지내도 될 만큼의 깊이와 크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식량이었다. 비록 하루 정도 먹을 수준의 비상 식량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 정도 충분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플라테네스는 자신이 만든 임시 잠자리의 입구를 막고는 안으로 들어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지만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자 잠시 후 그냥 포기해버렸다걱정해봐야 해결 될 것도 없는데 일단 최대한 버티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은 식량을 최대한 조금씩 며칠 간 먹으면서 버티기로 결정을 했다. 눈이 모두 물이 되고 나서 나가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결정하자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숲에 내린 눈은 무성한 나무들이 해를 가리기 때문에 완전히 다 녹으려면 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플라테네스는 지난 며칠 간 주기적으로 입구를 막은 돌을 치우고 밖을 확인했지만, 그럴 때마다 위쪽을 가득 채운 눈만 확인할 수 있었다그는 잠시 눈을 뚫고 지상으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는데, 지금의 체력으로는 무리한 시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다시 밑으로 내려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가자 그는 이제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먹을 것은 이미 다 떨어져서 며칠 째 굶고 있었고 의식은 흐릿해져서 현실과 꿈이 뒤섞여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의식이 또렷해질 때가 되면 '죽음' 이란 단어가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다. 죽음은 지금 현재 그의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상상했던 것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이내 곧 의식이 흐려져서는 다양한 상상이 시작되곤 했다.

 

가끔 바네사 쥰이 맛난 식사를 준비해주는 환상 속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매국이 웃으면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꿈을 꾸기도 했다. 늙은 병정개미가 젊어져서는 수 많은 개미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진군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결국엔 내가 여기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도 그들은 나를 기억해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나자 플라테네스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지?'

 

플라테네스는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다자신은 분명히 죽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는 정말로 죽은 것일까? 아니면 개미들이 죽어서 간다는, 개미들의 영혼이 모인다는 곳에 도착한 것일까? 정말로 그런 곳이 존재했던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수 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자신이 꽤나 따뜻한 곳에서 부드러운 마른 풀이 깔린 잠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그의 코를 통해서 어떤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은 아주 맛있는 냄새였고 지난 며칠간 굶은 그는 그 냄새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가만히 있어. 내가 가져다 줄 테니"

 

갑자기 낯설고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머리 속에 생각은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궁금해 하지 말고, 이것이나 먹어. , 거의 죽을 뻔했어."

 

'내가? 그렇지, 죽을 뻔했지. 그럼 내가 일단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군.'

 

플라테네스가 눈을 최대한 떠서 상대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희미하게 어떤 형체가 보였는데, 잠시 후 초점이 잡히자 그 상대가 자신과 같은 개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몸의 크기는 플라테네스보다 조금 더 컸는데, 같은 개미이면서도 뭔가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몸의 형태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먹어."

 

아무튼 확실한 것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또 하나 더 확실한 것은 상대가 결코 친절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플라테네스는 순간 그는 왜 나를 구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도를 봐서 나를 생각해서 구해준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음식 냄새가 너무 좋았고 배가 너무 고팠다.

 

"감사해요."

 

한참을 열심히 먹고 나서 그나마 힘이 생기자 감사하다는 말로 예의를 차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았어."

 

"?"

 

"내가 어제 창고를 확장하고 있다가 정신을 잃고 있는 너를 발견했거든."

 

", 그럼..."

 

"그래. 너는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대로 죽었을 거야."

 

하지만 상대는 플라테네스가 죽어도 별 상관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고마워요."

 

"네 운이지."

 

"그래도요."

 

"그런데 넌 어디 소속 개미인데 그곳에 홀로 있었던 거야? 여기 근처 개미 굴의 개미들은 이제 모두 출입 통제가 되고 있을 텐데."

 

"저요? 저는 좀 멀리에서 왔어요. 그래서 혼자 있었고요."

 

"무슨 일로? 개미가 왜 혼자 있지?"

 

"제가  일이 좀 있어요. 어디를 갈 데가 있어서요."

 

"개미가 이 겨울에 갈 데가 있다라.. 너 뭔가 좀 문제가 있는 개미구나."

 

플라테네스는 상대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라고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제가 돌아갈 수 있는 개미 굴은 근처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이미 눈이 내렸기 때문에 네가 돌아다닐 세상은 없어. 눈이 온 후 밖에 있는 여전히 밖에 있는 개미들은 모두 죽거든. 추워서 얼어 죽거나 겨우 버텨도 결국 굶어 죽지. 숲에 한번 눈이 내리면 겨울 내내 그 눈이 쌓여있거든. 내년 봄이나 되어야 눈이 녹을 텐데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모르겠어요. 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어요. 사실 제가 겨울을 처음 보내는 것이라서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뭐야? 정말로 아무 생각 없는 녀석이군. , 죽게 나둘걸 괜히 구해줬나?"

 

상대는 혼잣말 하듯 했지만 플라테네스는 너무도 분명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이내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그럼 기운을 좀 차렸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플라테네스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의 여러 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충분히 먹었으니 곧 힘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 몸으로 어디를 가려고. 일단 며칠 더 쉬어."

 

상대는 플라테네스의 그런 시도를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멀쩡한 몸으로 회복이나 되어서 나가. 그래야 죽어도 내 탓은 아니지."

 

상대는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저기.."

 

"?"

 

"이름이라도 좀 알려주세요."

 

"내 이름? 왜 그것을 알려고 해?"

 

"저의 은인이기도 하고, 이름을 알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

 

플라테네스의 말에 상대는 갑자기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플라테네스로써는 그 표정이 담고 있는 의미를 짐작하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이름 같은 것은 없어."

 

짧게 말을 마친 개미는 뭐라도 대꾸도 하기 전에 휙 되돌아서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플라테네스는 잠시 지금이라도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개미의 말처럼 이대로 나갔다간 하루도 못 견디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죽을 목숨이 살았다면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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