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진심을 다해야 하는 이유

아이루다 2019. 2. 28. 08:10

 

A씨는 주말에 친구 B씨를 보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꼭 보고 싶어서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하고, 보면 그럭저럭 시간 보내기는 좋은 친구였기에 잡은 약속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불금에 그냥 집에 들어가서 TV나 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속을 하루 앞둔 목요일또 다른 친구 C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내일 저녁에 자신이 참석하고 있는 모임에서 번개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참석할 생각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은근히 잘 생긴 남자들도 제법 있으니까 오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한다.

 

A씨는 제안을 받고 당장은 이미 선약이 있다고 하고 거절을 하긴 했다.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만나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친구와의 선약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승부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고민이 된다.

 

친구 B와 약속을 깰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친구 B 친구가 많은 애가 아니라서 아마도 자신과의 약속이 깨지면 그냥 집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욱 고민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다. 친구 B도 역시 친구 C가 오라고 한 모임에 같이 데리고 가면 된다. 절묘한 한 수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친구 C에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친구 B와 같이 가면 어떠냐고 물어본다. 둘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니까 당연히 괜찮다고 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런데 친구 C는 자기는 사실 그 친구 B가 별로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너만 오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 모임이 얼마나 즐거울 지에 대해서 또 한번 장황하게 설명해준다.

 

A씨는 고민이 좀 더 깊어졌다. 그렇지만 결국 결정을 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갑자기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그 책의 제목을 보자 갑자기 복잡했던 머리 속이 단순해진다. 그래, 내가 행복한 것을 하고 살아야지!

 

그래서 재빨리 친구 B에게 카톡을 보낸다. 다른 친구와의 새로운 약속 때문에 약속을 깨야 한다고 말하면 친구 B가 상처를 받을 것 같으니 적당한 핑계를 대기로 한다.

 

다행히 하나가 생각났다. 어제 밤에 이번 주 토요일이 아빠 생일이니 주말에 집에 한번 들르라고 했던 엄마의 당부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B에게 오늘이 아빠 생일인 것을 깜박했다고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자 B는 실망하는 기색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리고 부담스럽게도 아빠에게 케익 선물이나 사드리라고 하면서 케잌 기프트콘을 보내준다.

 

A씨는 B씨의 선물을 받고 마음이 좀 더 무거워졌지만 그렇다고 내색할 수는 없었다. 또한 정말로 곧 아빠 생일이긴 하니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결국 C와의 약속 장소에 나가서 불금을 신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주를 잘 지내고 또 몇 주가 지났다. 그런데 또 불금이 다가오는데 딱히 일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친구 B에게 연락이 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이번엔 별 일이 없이 금요일 당일이 되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어 친구 B에게서 연락이 온다. 갑작스럽게 친언니가 집에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약속을 깨야 할 것 같다고 한다.

 

A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약속을 취소한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자꾸 생각이 난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친구 B도 다른 재미있는 약속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평소 B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는 않는데, 그래도 자꾸 그런 생각이 난다.

 

집에 돌아와 지나간 드라마나 보고 있자니 기분이 쳐진다. 그리고 자꾸 오늘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해서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의심까지 든다.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스스로 그 약속을 깬 행동을 생각해보면, 혹시나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서 약속을 깬 것에 대한 복수로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드니 기분은 점점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친구 B에게 정말로 언니가 찾아오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힌다.

 

A씨의 머리 속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하나 뿐이다. 자신이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었기에 그렇다. , A씨의 의심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참고서를 사겠다고 거짓말을 한 후 엄마에게 돈을 받아서 맛난 먹을 것을 사 먹어 본 사람이 커서 본인이 엄마가 되었을 때 참고서를 사겠다고 돈을 달라는 자신의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은 잘 속는다. 그런데 잘 속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남에게 잘 속는 것이다. ,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판단한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싸움을 걸 때 꼬리를 세우고 흔든다. 그러니 둘이 만났을 때 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순간 고양이는 공격을 하게 된다.

 

자신이 남에게 자주 거짓말을 하고 살면, 남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로 느껴진다.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사기는 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매우 큰 스트레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한가지 행동, 한마디 말조차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다 의심해야 하니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그것은 모두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는 행위이다. 그래서 당연히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 더해서 그런 의심하는 행위 자체가 불안함을 야기시킨다. 처음부터 무엇인가를 믿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안정감 중 대부분의 바로 무엇인가를 신뢰할 수 있는가 여부에서 나온다그나마 돈이 신뢰를 대신 해주는 듯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돈이 아주 많아도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돈은 많지만 사람을 믿지 못할 경우 그것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돈이 많으면 그 돈을 지켜야 하는데, 돈만 지키고 살 수는 없기에 그렇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을 끝없이 신경 써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훔쳐가지 않을지, 자신도 모르게 돈을 빼돌리지 않을지, 자신을 속이고 있지 않을지 매 순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면 결국 의심병이 심화되어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피해 망상증에 빠지게 된다.

 

원래 행복하려고 돈을 벌었는데, 돈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불안해져서 결국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다. 부모로부터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그리고 다양한 책으로부터도 배운다. 정직에 대한 가치는 너무도 자주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스스로 정직하게 사느냐 여부에 상관이 없이 강력하게 가치화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거짓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서 그것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고개를 흔들고, 손 끝이 떨리고, 상대방 시선을 피하고, 뭔가 불안하고, 눈을 자주 깜박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증상은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주입 받아서 그러는 것이다. 마치 맛있게 끓여진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면 침이 고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 정도로 정직의 가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화 되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정직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결혼할 친구가 자신이 사귀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나간 자리에서 소개받은 여자가 자신의 이상형이라면 어떨까?

 

이때 심한 경우 성적인 욕망도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을 친구 앞에서 모두 표현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지금 너와 결혼할 여자에게 성적 욕망이 느껴진다고 하면 그 친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반적으로 좋은 감정들은 표현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나쁜 감정들은 잘못 표현했다가는 큰 싸움이 날 수 있다.

 

사실 인류가 이렇게 거대한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가장 큰 역할은 정직이 아닌 거짓말이 하고 있다. 좋지 않아도 좋은 척, 싫어도 싫지 않은 척, 마음에 없어도 마음이 있는 척, 귀찮아도 좋아하는 척, 맛이 없어도 맛이 있는 척, 피곤해도 피곤하지 않는 척,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는 척까지 사람들이 하는 수 많은 ''들이 바로 인간의 사회를 지탱해주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모든 감정을 옆 사람에게 털어 놓는 사람과 함께 일주일만 지내보면 기분이 나빠지다 못해서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원한까지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인간에 대한 환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철저하게 이기적인데 그렇지 않게 보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정직이란 가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왜 정직한 것이 필요한 것일까?

 

, 필요한 경우가 있다. 거짓말만 계속 하다간 양치기 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때로는 정직해야 하는 것은 맞다그러니 실제로는 정직하지는 않더라도 남들 앞에서는 정직한 척은 해야 한다. , 정직하다는 거짓말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늘 말하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이 바로 그 척을 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말한다는 사람들이 솔직히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면 정직은 그저 그런 정도의 용도인 것일까아니다. 정직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스스로 정직할수록 다른 사람을 덜 의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자기 착각이라고 해도 결국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은 바로 자신의 행복으로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 평소에 특별한 일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주변에 대한 의심이 적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스스로 단순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도에 대해서 의심 같은 것을 잘 하지 않기에 그렇다.

 

거짓말로 지탱하고 있는 세상이기에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가치는 생각보다 매우 저 평가 되어 있다. 하지만 신뢰는 정말로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삶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자신을 둘러 싼 환경을 신뢰할 수 없기에 그렇다. 환경에 대한 정보 부족, 그것이 바로 신뢰를 할 수 없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된다.

 

집을 편하고 안정적인 장소로 여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믿을 수 있어서 그렇다. , 집이 편한 이유는 바로 집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신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물건과도 관련이 있다. 주방에서 자주 쓰는 칼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란 신뢰, 매일 보는 TV가 켜면 나올 것이란 신뢰, 입고 나가면 당연히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옷에 신뢰 등등,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무생물에 대한 신뢰도 역시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당사자는 편안해지고 안정적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행복한 삶의 기초는 되어 준다.

 

그런데 이미 설명했듯 신뢰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대했느냐에 따라 생겨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신이 남을 믿지 못하기에 신뢰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자주 거짓말을 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사기꾼은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사기는 주로 거짓말을 할 줄 몰라서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이 당하는 일이다.

 

같은 원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식적으로 대하면 대할수록 상대도 역시 자신에게 가식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반대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대하면 대할수록 상대도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더해서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상대의 태도도 바꿀 수 있게 된다. , 장시간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대하면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행복한 삶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좀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 드물다. 과거로부터 진심으로 대했다가 배신을 당하거나 이용을 당해서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가식적으로 대하려고 한다. 사실 그것이 좀 더 가볍고 편하고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생이 늘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모두 각자 마음 속에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품게 된다. 모든 관계가 가식적으로 이뤄지기에 그렇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한 손으로 친 박수와 같다다른 한 손과 부딪히지 않기에 쉽지만 허망하다.

 

결국 사람들은 내면의 텅 빈 공허함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에게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뒤쳐지는 두려움 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욕망으로 변형되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로,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욕구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가식적으로 대하면서도 최대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삶, 사실상 현대인이 살고 있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SNS가 그것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되고 있으며 그래서 그리 인기가 높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많은 시간을 쓰면 쓸수록 그 내면 비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은 그저 한가지 원인 때문에 생겨난다. 바로 주변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누구도 자신을 돕지 않을 것이란 추측 때문이다. 그 자신이 평소에 남을 돕고 살았다면 생기지 않을 두려움이 평생 남에 대해서는 가식적으로만 대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만 하려고 해왔기에 생겨난 두려움이다. 더 재미있으려고 B와의 약속을 깬 A씨의 경우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했다면 존재하지 않을 두려움이었다. 가족은 서로 진심으로 대하기에 버려질 것이란 두려움이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물론 부모들 중에서도 자식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서 자식이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평생 지고 사는 일도 있긴 하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최대한 진심으로 대했다면 인정받으려고 애쓸 필요도, 버려질 것 같아서 두려움에 떠는 일도, 외로움에 지쳐서 쓰러질 일도 없다.

 

하지만 전체 중 한 명이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상대를 가식적으로 대하기 시작하자 그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 역시도 다른 그런 행동을 흉내내면서 결국 상처는 전염이 되어서 전체가 가식적으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완전히 바짝 마르고 말았고 그로 인해서 서로간의 신뢰는 점점 그 바닥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뢰 부재의 사회는 각자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서 결국 자신이 행복한 것을 하고 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대고 있다.

 

가족간에 서로 신뢰가 충분하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무엇을 하고 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믿으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간에 신뢰가 부족하면 끝없이 상대의 삶에 끼어든다. 훈계를 하고 지적을 한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행위는 언제나 갈등만 일으킬 뿐이다. 신뢰가 부족하면 두려움이 더 크기에 아주 작은 갈등도 매우 크게 번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신뢰 부족은 불행을 부르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만다. 사실 믿을 수 없다면 누군가 해준 음식조차도 쉽게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해준 음식조차 의심해야 하는 삶, 그 삶은 도대체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

 

그러니 각자가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게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그리고 그 방법은 오직 그 스스로 신뢰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신뢰는 스스로 먼저 하지 않으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직 자신의 머리 속에서 해석되고 있을 뿐이라서 그렇다. 그저 우연히 쌓인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해석 말이다. 도대체 그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바람둥이 아빠 밑에서 자란 여자 아이가 남자는 다 쓰레기라고 믿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과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돈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믿고 사는 아이들의 믿음은 얼마나 유효한 것일까?

 

그 한계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그것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세상이 거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 자신의 머리 속이 이미 거지같아서 그렇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부처 눈에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는 경구는 무조건적인 진리이다.

 

하지만 이미 돼지가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돼지로 보이기에 아주 가끔 부처가 다가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돼지로 취급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평생 가식과 불신을 통해서 살아간다.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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