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갈등 이야기

아이루다 2019. 2. 15. 08:42

 

누군가에게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갈등들은 성격 차이, 취향 차이, 선택 차이, 선호도 차이, 가치 차이, 목적 차이, 판단 기준의 차이 등등, 사람마다 가진 수 많은 차이점으로 인해서 나타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인간관계를 그만두지 않는 한 말이다.

 

원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한 목적은 행복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협동을 통한 이득, 정보 교환의 이득, 자신의 등 뒤를 지켜주는 이득 등을 기반으로 해서 인정받는 행복, 함께하는 행복, 공감 받는 행복 등의 본격적인 행복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갈등은 관계를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만든다그래서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는데 결국 부부 갈등으로 인해 결국 이혼이라는 불행으로 결론이 나는 일이 꽤나 흔하다.

 

그래서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최소화 시키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갈등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행복한 삶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갈등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행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이다.

 

그러니 갈등을 잘 다루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제가 있다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후천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갈등을 잘 다루는 능력을 가진다는 말 자체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그냥 포기하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갈등들에 그냥 그대로 노출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으니 그 많은 갈등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슬픈 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갈등은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기에 그렇다. 이상한 말 같지만, 갈등은 원래 그렇다.

 

점심 시간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짜장면을 먹고 싶고 누군가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갈등은 생겨난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소소한 취향의 차이로 인해서 생겨나는 갈등이 나중에는 더욱 더 폭발력을 가질 가능성도 높다.

 

, 많은 부부들이 이혼에 이를 정도로 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그 시작은 그저 밖에 나갔다 온 후 반드시 손을 씻는 버릇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생활 속 버릇 차이 하나로 인해서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갈등으로 인해서 상대가 마음에 안 들고, 씻지도 않은 그런 더러운 손으로 뭔가를 집어 먹는 모습을 보면 혐오감까지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은 점심 시간에 서로 다른 것을 먹고 싶어한다. 그래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때 운이 좋게 한 사람이 짜장면을 먹고 싶지만 김치찌개도 괜찮으면 별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상대에게 맞추면 되니까 말이다. 또한 반대로 김치찌개를 먹고 싶지만 짜장면도 괜찮을 경우도 별 다른 갈등이 생겨나지 않는다.

 

진짜 갈등은 짜장면을 먹고 싶은데 김치찌개를 별로 먹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그 반대일 경우에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점심 식사라는 단순한 선택으로 인해서 생각보다 큰 갈등이 생겨나고, 이것이 반복될 경우 서로 깊은 반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래서 점심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괜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런 상황과 비슷하게 영화를 보러 갈 때 어떤 장르를 볼 지, 여행을 떠날 때 어떤 장소로 떠날 지, TV 채널, 외식 종류, 쉬는 날 집에 있을지 나갈지 등등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무엇인가를 할 때는 언제든 이런 종류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취향이 자주 잘 맞지 않을 경우 갈등은 반드시 심화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이 싫어한다면 그냥 서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고,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으러 가면 된다는 뜻이다.

 

왜 꼭 같은 먹어야 할까? TV를 두 대를 놓고, 여행도 각자 가고, 영화도 혼자 보러 다니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꼭 왜 같이 하려고 해서 갈등을 만드는 것일까?

 

, 꼭 같이 하는 것이 좋다면 백 번 양보해서 자신이 좀 싫더라도 상대를 위해서 맞춰주는 방법도 있다. 오늘은 상대에게 맞추고, 내일을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방법 말이다. 아니면 둘 모두 괜찮은 국수를 먹으로 가는 방법도 선택 가능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제 3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바로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비난하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김치찌개에 대한 비난이나 짜장면에 대한 비난을 한다. 왜 그런 맛없는 것을 먹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웃기는 일 같지만 사람들의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이런 내용은 정말로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장점과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단점이 끝없이 언급된다. 그러다가 누군가 동조해주는 사람이라도 하나 있으면 매우 크게 고무가 되어서 좀 더 자신감이 있어진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정당해진 것이다.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비단 사물이나 행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 자체에 대한 선호도 역시도 그 대상이 된다. , 싫어하는 누군가에 대한 단점 지적이나 좋아하는 누군가에 대한 장점 칭찬을 하는 것이다. 이 역시도 짜장면이냐 김치찌개냐 하는 문제와 근본적으로는 완벽히 같다.

 

사실 사람의 모든 결정은 자신은 무엇을 통해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짜장면을 먹으면 행복하고, 공포 영화를 보면 행복하고, 바다로 여행을 떠나면 행복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뉴스를 보면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같이 있는 누군가는 그것들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해서 결국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게 되었기에 갈등이 시작된다. ,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 입장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단지 그 대상만 다를 뿐, 그 사람 역시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원했는데 그것을 얻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때 상대에 대한 원망이 생겨나면서 그것이 갈등으로 번져가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아주 단순한 취향적 문제이다. 누가 옳고 그른 일이 아니다. 짜장면을 먹고 싶어하거나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하는 것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를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더해서 자신이 별로 먹고 싶지 않는 것을 먹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원망이 생겨나면서 화가 난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느낀다.

 

이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이기심이니까 말이다.

 

최초에 갈등의 원인이 된 취향의 차이는 그냥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정 맞지 않으면 서로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안함으로 인해서 그런 결정도 못한다그것은 바로 계속 그렇게 따로 다니면 결국 관계가 깨질 것 같은 불안함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서로 같이 어울리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회사 욕을 하지만, 정작 그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의 단점을 지적하면서도 그 상대와 관계를 끊지는 못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취향의 차이로 인해서 누군가와 서로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을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싫어도 억지로 같이 먹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도 깊게 박혀 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에 마음 속에 원망이 생겨나고 이것이 화로 쌓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발하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갈등이든지 그 갈등이 그저 개인의 선택 차원으로 마무리가 되면 별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갈등으로 인해서 상대에 대한 원망이 생겨나고, 그 원망이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비난하게 만든다면 그때부터가 갈등은 큰 문제로 번지고 만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억지로 맞춘 이유가 바로 관계를 끊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해서 상대에게 맞추다가 결국 상대와 영영 이별을 하는 결론이 나고 만다. 결혼을 한 후 상대에게 억지로 맞추다가 결국 폭발해서 이혼을 하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다가 망한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얼마나 허무한 결론일까?

 

그리고 그런 결론에 다다를 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비난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자신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게 되어서 기분이 상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으로 인해 결국 상대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게 되면 그것은 갈등의 폭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폭발된 갈등은 관계를 끊게 만든다.

 

그러니 자신이 매일 하는 말을 스스로 잘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남들을 비난하고 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그 수 많은 근거 있어 보이는 비난들은 그저 이미 감정이 상했기에 그것을 합리화 하려고 덧붙이는 것일 뿐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담배를 피워서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담배를 끊었다고 해도 좋아지지가 않는다. 그냥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이유가 딱히 없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상한 감정을 자꾸 정당화 하려고 든다. 그러니 결국 상대의 취향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비난은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상대가 무엇인가를 별로 안하고 싶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을 하고 싶어하냐고 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투로 말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서로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의 갈등은 심화되고 결국엔 크게 싸우고 만다. 처음엔 그냥 싫거나 그냥 좋은 것인데, 그것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이유가 된다.

 

좋은 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취향이다. 그런데 그것을 비난하려고 든다. 자신에게 생겨난 나쁜 감정들을 합리화 하려고 말이다.

 

만약 이것만 멈출 수 있다면 갈등은 생겨나지만 그것이 폭발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싫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싫어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억지로 하고 나서 감정만 더 쌓인다.

 

결국엔 갈등 그 자체는 별로 문제가 없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기에 갈등은 반드시 생겨날 수 밖에 없는데, 그 갈등 상황에서 자신에게 생겨난 나쁜 감정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커지고 만다.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기에 심각해지고 만다.

 

그냥 싫으면 싫고 그냥 좋으면 좋은 것으로 끝나면 안될까? 그것을 굳이 그렇게 비난하고, 그것을 굳이 그렇게 칭찬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칭찬은 좋은 것 같지만 그것도 일종의 비난이다. 칭찬을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처가 생기니까 말이다.

 

감정적으로 좋은 것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왜 그것이 좋은지 설명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왜 그것이 싫은지를 설명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같은 원인만 이해할 수 있다면 갈등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갈등은 충분히 다뤄질 수 있다. 설령 머리 속에 떠돌아도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아도 말이다.

 

그러니 말만 좀 줄여도 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들 너무 말이 많다. 내면에 쌓인 감정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말이 말을 만들어 내서 그렇다. 말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처음엔 약간의 생채기로 시작하는데 말을 하다가 보면 그것은 거대한 상처처럼 변해 버린다. 감정 정당성이 생기면 생길수록 그렇다. 억울해서 그렇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짜증이 나니까 그렇다.

 

결국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편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타인을 비난하는 것에 다 쓰고 말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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