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래방 지옥

아이루다 2019. 1. 18. 08:07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려면 남이 좋아하는 것도 해줘야 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때로는 안 좋아하는 것이라도 남이 좋아하기에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안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안 좋아하는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고별로 안 가고 싶은 여행을 가야 할 때도 있다.

 

관계 속에서는 결코 나만 좋은 것을 할 수만은 없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늘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면 뭔가 남들과 다른 것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나 돈이다. 또한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필요 이상으로 원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살아가기에 충분한 권력과 충분한 돈을 가졌어도 불구하고더욱 더 강한 권력과 더욱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인 셈이다.

 

권력과 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권력이 좀 더 강력한데, 강압적인 면이 있어서 그렇다. 만약 돈으로 그것을 하려면 꽤나 심리적으로 조심해야 한다더군다나 돈으로 하게 되면 주변에 돈만 아는 인간들만 남게 되기에 나중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돈이 아주 많으면 돈 자체가 권력화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돈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재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더러워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 그래 봐야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충분한 돈이나 권력을 가지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한번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딱히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품앗이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 어느 모임의 회장 자리와 같이 작은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좀 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은 바로 뭐든 별로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뭐든 해도 좋으니 어딜 가든 행복할 수 있다. 더욱 더 좋은 점은 그런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점이다. 뭐든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니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단지 그럴 경우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다.

 

, 가리는 것이 없는 사람인 경우 아주 넓은 관계가 맺어지지만 그 깊이가 깊어질 수는 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관계를 넓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가리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은 삶을 사는 것이 힘들다. 특히 자신이 싫어하는 곳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경우가 생기면 그곳은 지옥이 되고 만다. 그리고 여기에서 진짜 문제는 바로 어딘가를 싫어할 때 그것이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특징 때문에 그런 경우에 생긴다. ,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곳에 가야 할 경우인 셈이다.

 

바로 음치가 노래방에 가야 할 경우나,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술자리에 가야 할 경우, 운동신경이 거의 없는 사람이 체육대회에 참가해야 할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여기에 각각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지옥을 느낀다. 며칠 전부터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당일 날이 되면 그 시간이 제발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재능이 없는 모습을 희화화해서 웃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노래방에서 노래는 못해도 춤을 열심히 출 수 있고술자리에서도 술은 못 먹어도 신나게 놀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의 못난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에 웃음이 터진다상대방과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러니까 상대방의 모습이 자신에 비해서 못났다는 생각이 들수록 웃음 소리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원래 개그라는 것이 그런 심리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의 멘탈로는 하기 힘들다. 자칫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좌절과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더욱 슬픈 사실은 그런 식으로 계속 놀면 사람들이 점점 무시를 하기 시작한다. 상대를 자신의 밑으로 깔기에 쉽게 보고 쉽게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그맨들이 현실에서도 무시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상처를 받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 결국 광대 짓을 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노래를 아주 잘하고, 술을 아주 잘 먹고, 운동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하면 되지, 그냥 노는 것이지, 누가 잘하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 못해서 싫어하는 것 자체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약자가 돼 본 적이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늘 인정을 받았기에 얼마나 더 잘나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무시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 경우 못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도 없다. 자신을 잘나게 보이는 것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모든 순간에 잘하는 쪽에만 있을 수는 없다. 술을 잘 먹어도 노래방에만 가면 음치가 되기도 하고, 운동을 아주 잘하지만 술자리에서는 한잔도 못 마시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해서 좌절감을 맛본 사람들은 오히려 평소에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못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배려심이 생겨나게 된다. 지옥을 맛 본 사람이 당장 지옥 속에 있는 사람을 구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려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면 이 세상은 충분히 버틸 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둔하다. , 자신이 좋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지옥 속에서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관계 자체를 끊고 홀로 살아가려고 하게 된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심한 경우엔 아예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사는 경우도 있다.

 

이 세상의 일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하기 힘든 일, 하지 못하는 일, 하기 싫은 , 이렇게 총 다섯 가지로 나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기 싫은 일을 자주 하게 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그다지 배려하지 않는다. 누구나 당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자신의 행복에 빠지면 누군가의 괴로움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더해서 이것이 돈과 권력과 같은 강압적 수단에 의해서 이뤄지게 되면 당하는 사람에게는 진짜로 지옥이 펼쳐지게 된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고 하고 사는 삶, 그것이 어찌 지옥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렇기에 돈과 권력이 중요해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 역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배려는 중요하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잔인하다. , 누군가 뭔가를 못하면 억지로 더 그것을 시키고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한다. 술을 못 먹는 사람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려고 하고, 노래를 못하니 마이크를 사양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킨다.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챙기거나, 자신보다 못난 존재를 보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서열 상 꼴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안도감도 느낀다.

 

하지만 꼴찌가 된 사람은 삶 자체가 망가지게 된다. 불안하고, 자괴감도 들고 열등감과 분노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상처가 되어서 결국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단지 술을 잘 못 먹는다는 이유로, 단지 노래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단지 운동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된다.

 

그냥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으로, 그것이 배려까지 받지는 못해도 강요로 이어지지만 않아도 괜찮은 것이었다. 타고나길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본격적으로 지적질을 당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게 되면 거기에서부터는 문제가 된다.

 

문제는 그것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냥 방치한다는 것이다. 그냥 방관한다는 것이다. 같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 손을 얹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소수의 적극적인 강요자 보다도 오히려 다수의 방관자가 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조합이 결국 어떤 사람 큰 상처를 주고 만다.

 

어린 시절엔 서열화에서 꼴등이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너무도 강렬하기에 그럴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잔인한 이유도 바로 그런 본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삶을 어느 정도 살았고, 삶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알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사실상 삶을 헛 산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그저 우연히 하지 못하거나, 하기 싫은 일이 별로 없는 행운이 따랐을 뿐이란 점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서열을 높이는 것에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그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은 소수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되면 다수의 방관자들의 침묵 속에서 결국 분위기는 늘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배려는 사라지고 강요와 비웃음만이 남는다.

 

그리고 당사자는 사실 전혀 자신의 잘못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하지 못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거나 아니면 하지 못해서 결국 어울리지 못할 때 자신을 탓하게 된다. 왜 이렇게 못나게 태어나서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큰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삶이 우울해지고 어두워진다. 혹은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삶에 대해서 아주 커다란 적개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은 여자들의 세계보다는 특히 남자들의 세상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서열화가 훨씬 더 심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남자들 대부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도 하지 못하거나 혹은 하기 싫은 일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 바로 지속적으로 둔해지는 것이다. 모든 감각 기관을 둔하게 만듦으로써 못 먹는 것이 없는 남자, 못 가는 곳이 없는 남자, 못 하는 일이 없는 남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감각기관의 둔함은 결국 감정 자체도 둔하게 만들고 만다. 그리고 결국엔 최종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느껴야 감정이 생겨나고감정이 일어나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 흐름이 시작부터 끊기는 것이다. 누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처음부터 그것이 왜 힘들어? 그것을 왜 못 참아?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냐? 라고 생각이 드니 공감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놀림 받지 않고, 비웃음 사지 않고, 그 차이를 인정 받고 배려 받았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 자신의 감각기관을 둔하게 만들고, 감정을 둔하게 만드는 일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행복해지기가 힘든, 사실상 행복 불구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남자들 중에서는 둔하고 행복을 잘 못 느끼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어린 시절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종류가 다를 뿐, 비슷한 행복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여자들이 경험하는 행복 수준과 남자들의 행복 수준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결국 여자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는 반면, 남자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것이 남녀의 아주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결국 삶은 행복이 최종 목적 점이기에 남자들의 태도는 어긋나 있다. 그러니 보통은 여자들에게 붙어서 행복에 대해 기생을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옛말에 남자는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것이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기에 그렇다.

 

아무 것도 몰랐을 때는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안다면 삶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 하기 싫은 일, 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을 보고 강요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강요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끊어줘야 한다. 방관자 역시도 강요하는 사람 못지않게 문제니까 말이다.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각자 타고난 것이 있다.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있다. 각자 싫어하는 것이 있다. 적당히 어울려야 하고,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고,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정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야 한다. 괜히 어울려서 힘들 필요가 없다. 자신과 잘 맞지 않아서 불편하거나 혹은 함께 있기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멀리 떨어져야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못하면 못한다고 말하고 안 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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