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2018년을 보내며

아이루다 2018. 12. 29. 09:01

 

올해가 오늘을 포함해서 이제 겨우 삼일 남았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참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다.

 

삼일 후가 되면 많은 분들이 2018을 썼다가 8자를 9로 바꾸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2019년도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또 2019년도 연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까마득하다. 그리고 막상 이렇게 연말이 되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봄엔 미세먼지가 끝이 없었고, 여름은 정말로 미칠 듯이 더웠다. 가을은 단풍이 너무 예뻤고, 겨울은 지금 한참 혹독하게 춥고 있다.

 

일년이 이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올해 딱히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한 것도 없고, 머리 속에 남을 만큼 좋은 일도 그리고 나쁜 일도 없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다르게 표현하면 참 평범하고 별 것 없는 한 해였다. 아마도 내 인생 전체에서 이토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해도 드물 정도이다.

 

그래도 적어 보자면, 올해부터 조금 본격적으로 주변 사찰을 찾아 다녔다. 모두 당일치기로 다녀오긴 했지만,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오래 전 그만뒀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와우라는 게임인데, 8년 전쯤 그만뒀다가 이번에 다시 시작했다. 봄에 책을 한 권 더 내려고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다. 3년 전 남편을 잃은 둘째 누나가 올해 좋은 분을 만나서 재혼을 했다. 새로 집을 짓기 위해서 땅을 좀 보러 다녔지만 구하지는 못했다. 배우고 있던 수영이 올해 좀 늘었다. 딴 건 몰라도 자유형 하나는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

 

아마도 이 정도가 올해 나에게 일어난 전부인 것 같다. 잠시 글을 멈추고 생각을 해도 더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작년 이 맘 때에 비해서 내가 참 많이 행복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원래 행복했던 아내는 이제 너무 행복해서 걱정이 될 정도로 행복해졌다. 걱정이 될 정도로 행복하다는 말에 대해서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에도 너무 자주 웃는다는 증상이 있다. 나와 함께 길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이처럼 몸을 흔들기도 한다. 사실 좀 창피하다.

 

아무튼 둘 모두 행복 수준이 최소 두 배 이상은 된 듯하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데, 행복도는 급상승을 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사실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올해가 평생 처음이다. 그 동안은 나는 행복하려고도, 행복하다는 말도 꺼내기 싫었다. 자신도 없고, 그런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러면 안될 것 같았고, 그런 말을 하면 불행해질 것 같아서 두려워서 그랬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뭔가가 변화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상처를 받는다. 여전히 뭔가 자극되고 남는다. 여전히 사람의 말과 행동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내가 바뀐 것은 없다. 단지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 어떤 종류의 나쁜 것이든 간에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비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여전히 내가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내가 뭔가를 좀 더 잘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하고 있는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떨 때는 그냥 그것을 피한다. 예전엔 그런 행동은 비겁한 짓이라고 판단해서 못했던 일이다.

 

결국 내가 행복해진 이유는 하나인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나에 대한 기대치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스스로 비난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생겨도 자책하지 않는다.

 

여기에 몇 가지 더 하자면, 괜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스러운데 안 할 수 있다면 안 한다. 이 역시도 예전엔 무리해서라도 했던 일이다. 피하기만 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은 두려움 때문에 했던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에 부담이 된다 싶으면 안 한다. 행복하려고 뭔가를 하는데 당장 나를 힘들게 한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싶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무척 편해졌다.

 

예전엔 어떤 모임에 속하든 거기에서 인정을 받고 1등을 하길 바랬다. 설령 1등을 하지는 못해도 그것을 언제나 바랬다. 가장 주목을 받고, 가장 인정을 받고, 부드럽고 여유롭게 리딩을 해낼 수 있는 그런 강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천성이 게으르다. 그래서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 그것이었다. 마음은 1등을 원하지만 몸이 게으르다. 그러니 1등을 할 수가 없다. 또한 타고난 능력 부족으로 인해서 1등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목표가 바뀌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든 쫓겨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사람들에게 나에게 내일부터 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다. 그런데 다행히 그런 말을 들을 모임엔 나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내가 남들보다 유난히 못하는 것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일은 예전부터 그나마 하는 편이었고, 수영장의 수영도, 독서모임의 토론도, 게임 속에서 게임도 그리 못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니까 쫓겨날 일은 없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는데 모임에서 쫓겨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겸손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겸손함은 잘난 사람들이 취하는 겸손함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잘난 사람들은 딱히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잘난 것을 인정해주기에 겸손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서 가지게 되는 겸손함은 심하게 표현하면 비굴함으로 표현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겸손함은 관계 속에서 아주 큰 좋은 영향을 끼친다. 쫓겨나지 않으려고 하니 끝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입히는 일이 별로 없다. 갑자기 새롭게 더 잘난 사람이 들어와도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람들에 대한 좋고 싫은 감정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 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 옳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임에서 버티는 것이 목적이니까 말이다.

 

이런 태도를 비굴함으로 판단할지, 겸손함으로 판단할지는 오직 각자의 몫이다. 나는 겸손함으로 판단한다. 물론 과거의 나는 비굴함으로 판단했다.


나는 그저 행복하려고 사는 사람일 뿐이다. 잘나려고도, 인정받으려고도, 1등을 하려고도, 용기 있으려고도, 도덕적이려고도, 뭔가 이루려고도, 가치나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도,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려고도 할 필요가 없다. 하면 좋겠지만, 할 수 없으면 안 해도 된다.

 

여전히 서투른 면이 있다. 말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예전처럼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확대해석 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그런 일들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올 한 해가 나에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한 해로 기억된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2018년도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유난히 별 다른 일이 없었지만, 유난히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한 해이니까 말이다.

 

이 변화가 내년에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년엔 뭔가 명시적인 변화가 따라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르니까 산다. 그것이 사는 이유가 된다.




 

올 한 해 동안 이 블로그에서는 아마도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났던 개미 플라테네스와의 여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될 듯 하다.


2018년도, 참 고마웠다.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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