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어머니와 동태찌개

아이루다 2018. 12. 16. 06:55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내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50대에 들어서니,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 나이는 이제 그냥 생각하지 않고 마음 속에 묻어두고 살고 있다.

 

젊은 시절 일을 하시다가 다친 허리 고질병 말고는 감기도 잘 안 걸리시는 건강한 체질이셨는데, 나이가 드시니 이제 독감 예방주사를 맞기도 하시고 작년에는 공짜라서 3가를 맞으셨다가 유행했던 C형 독감에 걸리셔서 한달 넘게 고생을 하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또래 분들이나 한 10 아래 분들만큼이나 혹은 더 건강하신 편이다. 워낙 부지런하시고 요즘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덕인 듯싶다.

 

그래도 노환으로 인한 다양한 근육통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질병인 허리를 비롯해서 어깨, , , 등등 다양한 곳이 아프다. 특히 김장이나 제사와 같은 큰 행사를 치르시고 나면 많이 아프시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통증 치료를 잘한다는 한 병원을 알게 되었다. 큰 누나에게 허리 디스크가 왔었는데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졌기에 알게 된 병원이다. 그리고 그 병원은 수술 치료가 아닌 시술만으로 치료를 한다.

 

특이하게도 양방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침으로 치료를 하는 곳인데, 대충 원리는 침으로 아픈 부위의 근력을 강화시켜서 통증을 완화 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 같다. 물론 이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원리이지만, 아무튼 효과는 좋은 듯 보인다.

 

문제는 이런 시술을 하는 병원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그 병원에 가려면 두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야 한다. 그리고 내려서도 잠깐 버스를 타야 한다. 어머니 체력으로 견디기가 그리 쉬운 이동 거리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모시고 그 병원에 다녀왔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리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집에서 어머니 집까지 차로 안 막히고 40, 어머니 집에서 병원까지 안 막히고 1시간 10분 정도, 치료를 하는 시간이 약 한 시간 정도, 다시 병원에서 어머니 집으로 그리고 어머니 집에서 내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차가 안 막혀도 거의 네 시간이 걸리는 일정이고, 막히면 다섯 시간은 우습게 넘어간다. 그리고 대부분 막힌다.

 

그나마 요즘은 격주로 가고 있어서 부담이 좀 덜하긴 하다.

 

처음엔 이래저래 좀 힘들었다. 부담감도 좀 있었고, 하루 일정을 거의 비워야 하기에 그것을 맞추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바뀐다.

 

아마도 태어나서 올해 일년만큼 어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씩 차를 거의 다섯 시간을 타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에 수영장을 다니면서 나이 드신 분들과 대화를 많이 한 탓에 어머니와의 대화가 그리 어렵지가 않다.

 

보통 나이 드신 분들의 대화 중 나타나는 흔한 특징, 같은 말 반복하기, 갑자기 바뀌는 대화 주제, 나는 잘 공감하기 힘든 오래 전 이야기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지금껏 어머니와 보내 왔던 시간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부담스럽고 귀찮은 그 일이 요즘은 즐겁지는 않아도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봄과 여름엔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 오전 중 빠르게 다녀왔는데, 요즘은 하루를 온전히 뺄 수 있어서 끝나고 밥까지 얻어 먹고 올 수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내가당신이 손수 키운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무척 미안해 하신다. 그래서 기름값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뭐라도 반찬 하나라도 챙겨 보시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무엇보다도 내게 따뜻한  한끼라도 챙겨주실 수 있어서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원래 요리를 무척 잘하신다. 내 어머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잘하신다. 그래서 어머니 집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맛이 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내가 밥이라도 얻어 먹는 날이면 재료와 솜씨를 아끼지 않고 밥을 해주신다. 그러니 맛이 없기도 힘들다.

 

지난 화요일엔 동태찌개를 해주셨다.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그냥 밑반찬에 간단한 국 하나 정도로 먹는 나에겐 진수성찬이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꽤나 추웠기에 따뜻하고 얼큰한 동태찌개는 그야말로 맛난 음식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맛나게 먹었다. 단지 너무 얼큰하게 끓이셔서 맵긴 했다. 그래도 먹는 동안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다. 어머니 음식을 그리 오랫동안 먹어왔는데 그날 따라 그리 맛있었고, 그런 동태찌개를 준비하신 어머니 마음이 느껴져서 먹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련했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잘 표현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냥 맛나면 맛있게 먹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안 먹는다. 그런데 그날 따라서 나도 모르게 정말로 맛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한 공기를 먹고 나니 더 먹겠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그냥 반 공기를 더 먹었다. 배가 너무 부르긴 했지만, 올해 한 김장을 미리 익혀서 처음으로 꺼낸 김치의 맛과 얼큰한 동태찌개 속에 들어있는 동태 살과 알 그리고 커다란 새우 먹는 즐거움은 그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던 것 같다.

 

다 먹고 난 후 맛있게 잘 먹었다고 감사를 드렸다. 어머니가 활짝 웃으신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밥만 먹고 어머니 집을 나섰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내게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운전 조심해서 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눈에 넣어서 안 아픈 아들, 고마워' 라고 하신다.

 

참 흔한 표현이다. 많이 들어 본 표현이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울컥하면서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을 딱히 표현할 단어는 없다. 하지만 내가 설명하지 못해도 어머니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어머니 보다 한참 크기에 어머니는 나를 절대로 눈에 넣을 수는 없다.

 

언제까지 병원을 모시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는 그냥 미래이다. 그 미래는 분명히 어머니와 나의 이별이 예약되어 있겠지만, 그날이 오더라도 나는 그리 많이 슬플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아내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하긴 하지만 말이다.

 

많이 받았고 조금밖에 못 드렸지만 그럼에도 그리 고마워 하신다.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드려야겠다. 그럴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내가 처음 보고 펑펑 울었던 만화의 한 장면이다. http://jhst.tistory.com/m/14


 



'소소한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기  (0) 2019.01.07
2018년을 보내며  (0) 2018.12.29
고구마 동맹  (0) 2018.12.07
겨울비  (0) 2018.12.04
두 계절의 시간  (0) 201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