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두 계절의 시간

아이루다 2018. 9. 6. 06:49

 

아침은 가을, 낮은 여전히 여름, 그리고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또 가을이 된다. 환절기라는 그럴듯 한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냥 두 계절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 이렇게 가을이 오고 있다. 이미 수 없이 지나간 가을들과 그리 다를 바는 없지만, 올 여름이 유난히 더웠던 탓인지 가을이 좀 더 반갑다.

 

어제는 오랜만에 걷기를 시도했다. 간만에 사진도 좀 찍고 싶어서 말이다. 아마도 6월 중순 경까지 걷다 말았으니 거의 세 달 만이다. 거리는 좀 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니까 말이다. 집에서 성내천을 따라서 한강까지, 그리고 거기에서 잠실철교를 걸어서 넘어서 강변역까지 가는 거리이다. 대략 8.5Km 정도 된다.

 

몇 해전만 해도 이 길을 주 5왕복으로 걸었었다. 운동 삼아서, 생각을 좀 하려고, 사진도 좀 찍고 싶어서 걸었다. 한 여름에도 걸었고, 한 겨울에도 걸었다. 비가 와도 걸었고, 눈이 와도 걸었다.

 

그런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아침 공기가 선선해서 나선 길이었는데, 한 시간 가량 걸으니 뙤약볕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중간에 버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덕분에 한 30분 정도 시간을 벌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아무래도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버스틀 타기 전 근처 그늘이 진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이미 몸에 난 땀을 천천히 말렸다.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맑았으며 빠르게 다가와서는 온 몸을 통과해서 멀리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사이 땀은 금세 사리지고 말았다.

 

번 시간 만큼 벤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짧은 명상도 시도했다. 역시나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온 몸에서 올라오는 기분 좋은 느낌은 참 좋았다.

 

눈으로는 햇살에 반짝이면서 흐르는 물살이 보였고, 귀로는 가을 느낌을 담은 음악 소리가 들렸고, 피부엔 시원한 바람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더해서 땀을 내고 걸은 후 피곤해진 근육들이 자리에 앉자 한껏 편안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제법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렇게 내 삶의 하루는 고정되어 갔다. 나는 언제가 미래의 어느 날 어제 그 시간을 문득 기억하게 될 것이다. 딱히 별 다른 일도 없었고, 별 다른 장소도 아니고, 별 일이 있었던 날도 아니지만, 그냥 기억이 날 것이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아내가 휴가를 냈다. 그래서 근처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절에 다녀올 생각이다. 출발해서 밥 먹고, 절 근처를 산책하고 오는 일정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런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가을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소소한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마 동맹  (0) 2018.12.07
겨울비  (0) 2018.12.04
30대 후반 이후로 조금 낫게 사는 법  (0) 2018.08.08
많이 덥다  (0) 2018.08.02
누군가의 죽음  (0) 2018.07.25